창 25:1-18 아브라함의 죽음
하나님께서 백세 때 주신 이삭에게 그에게 어울리는 좋은 아내를 얻어줌으로써 아브라함은 아버지와 족장으로서의 마지막 책임을 다하였다. 그리고 25장에서는 아브라함의 죽음에 대한 준비와 아브라함의 죽음과 장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고대에는 죽기 전에 아들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었으며, 본처의 아들들은 확실한 몫을 보장받을 수 있었지만, 첩의 아들들은 상속의 권한이 없어서 전적으로 아버지의 유언에 달려 있었다. 이스마엘의 경우는 물과 약간의 음식이 담긴 가죽 부대만을 받고 집에서 쫓겨났다. 하지만 본문에서 아브라함은 그의 서자들에게도 얼마간의 재산을 나누어 주고 있다.
본문은 아브라함의 마지막 이야기의 마지막으로 부록처럼 세 가지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아브라함과 그두라와의 결혼, 그녀의 아들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통해 이삭만이 유일한 후계자라는 것을 분명하게 한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죽음과 장례 에피소드다. 마지막으로 이스마엘의 계보가 언급된다.
1. 아브라함이 후처를 얻다(1~6절)
겉으로 드러난 서사의 흐름으로 보면 사라가 죽고 이삭이 결혼한 후에 아브라함은 후처를 얻는다. 그러나 이삭이 40세에 결혼할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140세였다. 따라서 그가 175세에 사망할 때까지 35년의 공백이 있는데, 이때 그두라를 새 부인으로 얻어 자녀를 낳았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러므로 서사의 흐름이 아니라 아브라함은 사라가 죽기 오래전에 이미 그두라를 후처로 두었을 가능성이 크다. 본처는 아니지만 그두라는 아브라함에게서 여섯 아들을 낳는다.
본문은 그두라가 낳은 여섯 아들(시므란, 욕산, 므단, 미디안, 이스박, 수아)과 욕산과 미디안은 그 후손들까지 언급한다. 이들 대부분은 아라비아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아라비아 종족들의 기원이 되었다. 욕산의 후손 중에 앗수르가 언급되지만, 후대 중동의 강자인 아시리아 민족과 무관하다. 본문에서 주목할 인물은 ‘미디안’이다. 그두라의 아들 미디안은 후대의 미디안 종족의 조상이다. 구약의 미디안 종족은 여러 권력자가 분할 통치하는 부족 연맹체의 특징을 가졌다. 민수기 31:8에는 바알브올 음행 사건이 발생했을 때 처형된 미디안의 다섯 왕의 이름이 등장한다. 또, 그들은 광범위하게 돌아다니는 유목민(출 3:1, 모세의 장인 이드로)이나 약대를 타고 다니는 무역상의 모습으로 등장한다(창 37:28, 요셉을 사들여 애굽으로 간 상인들). 특히 그들 중의 일파인 겐 족속이 중요한 미디안 종족으로 등장한다. 미디안은 다섯 아들을 낳는다. “에바, 에벨, 하녹, 아비다, 엘다아이”다. 추측하기로 미디안 연맹체는 이들 다섯 아들이 후손인 부족으로 구성되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모든 유산을 유일한 상속자인 이삭에게 넘겨주었다(5절). 그는 자신의 ‘첩의 아들들’에게 재산의 일부를 떼어준다. 아브라함은 땅을 소유하지 않았기에 유산에는 막대한 가축과 종들, 은금과 귀중품 등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소유를 주었다’는 표현은 직역하면 ‘선물(마타나)을 주었다’라는 뜻이다. ‘첩들’이라는 표현으로 보아 그두라와 하갈 둘 다 포함되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유산 상속은 본부인의 아들들에게만 해당하였으며, 첩의 아들은 상속권이 전혀 없었다. 다만 아버지가 자신의 재량대로 풍성한 선물을 줄 수 있었다.
2. 아브라함의 장례(7~11절)
아브라함이 향년 175세에 죽었다(7절). 그는 75세에 가나안 땅에 들어왔으므로 가나안에서 100년을 산 셈이다. 본문에서 ‘열조에게 돌아갔다’라는 형식문이 성경에서 처음 등장한다(8절). 이삭과 이스마엘이 나란히 상주 역할을 했다(9절). 그들은 아브라함의 시신을 아브라함이 구입했던 마므레 앞의 막벨라 굴에 안치한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복을 주셨다. 아브라함의 복이 이제 이삭에게 이어진다.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로 거처를 옮긴다.
참고로 이삭은 아브라함이 죽기 35년 전에 결혼하여 그의 손자들인 야곱과 에서 15세쯤 죽는다. 25:26은 이삭이 60세에 쌍둥이를 낳았다고 보고한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100세에 이삭을 낳아 그의 나이 140세에 이삭을 결혼시켰고, 그의 나이 160세에 60세의 이삭이 쌍둥이 야곱과 에서를 낳은 것이다. 그리고 그가 175세에 사망할 때 이삭은 75세였고 손주 쌍둥이는 15세였다. 즉, 아브라함의 죽음은 이삭과 리브가가 쌍둥이를 출산하고 15년 후의 사건이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저자는 그의 죽음을 후손의 번성과 함께 묶으려고 일부러 야곱과 에서의 출생 이야기 전에 배치한 것이다.
3. 이스마엘의 족보(12~18절)
그두라의 후손들이 소개된 후 이스마엘의 족보가 소개된다. 특별히 이 족보는 아브라함 이야기를 매듭짓고 이삭 이야기로 전환한다. 이는 사라와 하갈, 이삭과 이스마엘 사이의 갈등을 상기시키면서 이삭 이야기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이스마엘은 나중에 야곱이 그러하듯 총 열두 명의 자녀를 낳았다. “느바욧, 게달, 앗브엘, 밉삼, 미스마, 두마, 맛사, 하닷, 데마, 여둘, 나비스 게드마” 이들에게서 각각 종족들이 분화된다. 이들은 대체로 여러 아랍 종족의 조상들이며 또한 그들의 이름이 성읍 이름이나 지역명이 되었다(16절).
이스마엘은 137세에 죽었다.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이삭이 60세에 쌍둥이를 낳았을 때, 이삭보다 14살 많은 이스마엘은 74세였다(이스마엘이 14세 때에 이삭이 태어났다). 그의 자손들은 아라비아의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시내 반도 북부)와 근접한 이집트 변방의 술까지 광범위하게 분포하였다. 이 지경은 오늘날의 아라비아와 시내 반도다. 18절의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다’라는 앞서 16:12에서 여호와 사자의 예언 성취다. 이스마엘 후손의 미래는 앞서 16:12의 ‘모든 형제와 대항하며 산다’라는 여호와 사자의 예언대로 성취된다. 개역 개정은 16:12에서는 “지리적 대척”으로, 본문에서는 “관계적 배척”으로 번역했다. 하지만 두 가지 의미가 모두 포괄되어 있다.
나는?
-아브라함은 후처 그두라에게서 여섯 아들을 낳았지만, 자신의 기업은 오직 이삭만 잇게 했다. 이스마엘에게 그랬듯이 여섯 아들은 이삭을 떠나 동쪽에서 살도록 재물을 주어 떠나보냈다. 저자는 이러한 아브라함의 행동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끝까지 신뢰하고 실행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또한 “많은 민족”이 되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실제 역사 속에서 성취되고 있다. ‘모든 소유’를 이삭에게 주고 그두라의 아들들에게는 재산만 주었다는 것을 하나님의 언약이 누구를 통해 이어지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런 행동을 통해 아브라함은 약속의 자녀를 분명하게 구분하는 결단을 한 것이다.
-삶에서 무엇을 남길지 고민할 때 최우선으로 해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 뜻에 따라 신앙을 이어가는 것이다. 신앙을 이어가는 길은 하나님의 뜻과 약속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 물론이다.
-75세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오직 부르신 이만 의지하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 아브라함은 약속이 모두 실현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가나안 땅에서 100년 동안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경영하실 하늘의 도성을 기대하며 우거하다가 175세에 세상을 떠난다. 하나님께서 복 주신대로 충분히 연수를 누리다가(15:15) 죽어 아내가 묻혀 있는 막벨라 굴에 묻힌다. 이 굴은 아브라함이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소유한 가나안 땅이다. 이곳에 묻혔다는 것은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했음을 보여준다. 그의 죽음과 매장까지도 한 편의 메시지였고, 간증이었으며, 설교였다.
-아브라함이 175세에 죽었다는 언급은 장수했다는 뜻보다는 하나님과 동행한 삶에 대한 성경의 평가로 보아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묻힌 막벨라 굴이다. 그곳은 자신이 값 주고 산 가나안 땅이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 그 땅을 온전히 소유하지 못했지만, 죽음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그 땅에 묻힌다. 아브라함의 죽음 이후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셨다는 것은 이제 이삭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이 이어질 것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은 이 땅의 삶에서 무엇인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을 지켜 가는 것이다.
– 아브라함은 죽었지만,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라”라는 하나님의 약속마저 죽은 것은 아니었다. 믿음으로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다 죽은 아브라함의 소망을 이삭에게 “복 주심으로” 이어가실 것이고, 결국 그 후손에서 날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하실 것이다. 이삭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다른 아들 이스마엘에게 주신 약속(21:17~18)도 성취하신다. 이스마엘은 열두 아들을 낳고 그들은 모두 지역의 방백들이 된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마엘과 함께하셨기 때문이다(21:20).
*하나님께서 약속한 사라와의 사이에 주실 후손의 약속에 대해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했던 시절 결혼하여 낳은 아들들이 어디로 흩어져 어떤 민족을 이루게 되었는지를 간략하게 알려주는 것이다. 애굽 출신 여종 하갈에게서 얻은 이스마엘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후손에 대한 약속을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오랜 시간을 거쳐 확고히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일 수 있다. 그만큼 아브라함은 연약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강건하다.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아브라함의 불안정한 모습과 선명히 비교된다.
*흥미로운 것은 1절에서는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했다고 기록하는데, 원문은 “잇샤”로 여자, 아내라는 뜻이다. 그리고 6절에서는 개역 개정본에는 번역이 분명하게 되어 있지 않지만, “첩들(필레게쉬_둘째 부인) 에게서 얻은 아들들”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 단순한 추측만으로 보자면 그두라를 정식 아내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는 유업을 이을 후사에 대한 아브라함의 간절한 마음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간절한 만큼 하나님을 신뢰하여 기다리는 모습보다, 어떡해서든 무슨 방법이든 시도하고 또 시도한 모습이 역력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나는 과연 어떠한가? 우직하게 기다리는가? 나름 최선의 방법을 동원하며 이를 하나님의 약속 실현이라며 자부하는가? 하갈이나 그두라를 얻으며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땠을지 참 궁금하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신실하게 사라의 몸을 통해 이삭을 주신 것이다.
*믿음은 마음의 바램이나 소망, 머리의 생각이 아니다. 구체적인 행동이며 실천이다. 아브라함은 죽음의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주실 땅에 대한 믿음의 확고함을 후손들에게 보인다. 가나안땅 전체에 비하면 보잘것없이 적은 면적의, 그것도 묘지이지만 주실 가나안 땅을 확고히 바라보는 믿음의 행동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이삭에게 복을 주셨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이어 가시겠다는 의미다. 하나님이 약속하는 복이 나에게서만이 아니라 나의 후손들에게도 이어지도록 내가 먼저 믿음의 행동들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본문은 아브라함이 죽은 이후 이삭을 본격적으로 등장시킨다. 하지만 먼저 그의 이복형제들을 자세하게 소개한다. 하나님의 시선은 이제 이삭에게 고정될 것이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 사건들이 일어나도 결국 하나님의 시선은 약속의 자녀에게 맞춰진다. “주목하여” 보신다.
*이삭과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장례를 함께 치른다(9절). 행간에 많은 이야기들이 감추어져 있겠지만, 21장에서 비극적으로 끝날 것 같은 관계가 꼭 그렇지마는 않다는 것을 희미하게나마 보여준다. 아버지의 장례를 함께 치르면서 막벨라 굴 앞에 선 그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브라함도 이삭의 장자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꼭 그렇게 할 필요까지 없었지만, 그두라의 아들들에게 많은 재물(선물)을 안기며 동방으로 이주하게 하였다. 이스마엘에게도 그렇게 했으리라. 장례식 때의 이런 모습은 아브라함의 지혜라고밖에 추측이 되지 않는다. 나도 아비로서 자녀들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조금이나마 힌트를 얻는다.
-무엇보다 도전이 되는 것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행동으로 굳건히 붙잡고 있는 부분이다. 가나안 땅에 살면서 유일하게 돈을 주고 산 땅이 묘지이다. 그 묘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실 땅을 바라보는 그의 믿음은 75세 때 부름을 받아 100년을 가나안 땅에 살면서 다듬어진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일 것이다. 지금 눈으로 보기에 보잘것없는 것에 믿음을 사용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이 대단한 이유다! 아직 땅은 그들의 것이 되지 못했다. 그들의 것이라고는 겨우 묘지 부지뿐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바라보고 행동한 것은 가나안 땅이었다. 지금 묘지에, 그것도 내가 죽어서 내 것이라며 눕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은 가나안 땅이다! 라는 행동의 믿음이 곧 막벨라 굴에 장사 지내는 것이었다. 죽음의 순간에서 미래의 약속을 바라보았다!
*나에게 행동의 믿음은 무엇일까? 오늘도 말씀 행동으로 살아내면 그것이 곧 나와 후손들에게 임한 하나님 나라의 실제이리라!
*주님, 하나님의 약속을 따르면서 그 약속의 성취를 맛보는 믿음의 삶을 살아내겠습니다.
*주님, 이제 아브라함의 시대는 저물었습니다. 하지만 이삭을 통해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가실 주님의 이야기를 기대합니다. 늘 주님의 섭리를 기대하며 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