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야곱과 에서, 팥죽으로 장자권을 거래하다. [창 25:19-34]
 – 2026년 04월 15일
– 2026년 04월 15일 –
창 25:19-34 야곱과 에서, 팥죽으로 장자권을 거래하다.
 
새로운 전환점이 되는 이삭의 족보(톨레도트)가 시작된다. 리브가의 불임과 이삭의 기도, 그리고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쌍둥이를 출산하는 이야기가 앞부분에 나온다. 하지만 태에서부터 에서와 야곱의 갈등이 시작되고, 그 갈등이 출산과 성장 과정 속에서 계속된다. 특히 장자권이라는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삭은 족장사에서 중심인물은 아니다. 실제로 이삭은 야곱의 장자권 탈취 사건 이후 거의 나타나지 않으며 야곱이 중심 인물이다. 그럼에도 장대한 야곱 스토리의 대부분, 곧 그 다음 ‘에돔의 톨레도트’가 나타날때까지 25:19~35:29 전체가 이삭의 톨레도트로 묶인다. 이는 이삭이 무려 180세까지 살기 때문이다. 독자적인 야곱의 톨레도트는 37:2에 가서야 나타난다.
 
 
 
1. 이삭의 족보(19~20절)
이삭의 족보와 더불어 서사의 장면이 전환된다. 이후의 야곱의 이야기는 180세까지 사는 이삭의 삶 속에 포괄된다. 이삭은 40세에 리브가와 결혼했다. 이삭의 삶 전반부는 영적 분별력을 지닌 순종의 삶이었지만, 본문의 장면은 그의 신앙적 쇠락을 엿보게 한다.
 
 
 
2. 에서와 야곱의 출생(21~26절)
아브라함에 이어 이삭도 오랜 기간 자녀를 갖지 못한다. 이삭은 아내의 임신을 위해 ‘간구했다(아타르)’. 이 동사는 매우 절박한 기도를 표현할 때 사용된다. 보통 고통과 질병을 해결해달라는 기도에 자주 사용된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리브가를 잉태하게 하신다. 리브가의 잉태에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역사했음을 보게한다. 
 
태중의 아이들이 ‘싸웠다(라차즈)’로 번역된 단어는 매우 강한 다툼에 주로 사용된다. ‘부수다, 꺠트리다, 박살내다’등으로 번역된다. 두 태아가 태중에서 그야말로 맹렬히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미 태중에서부터 야곱과 에서가 동거하기에는 방이 좁디 좁다. 그들의 최초 전쟁터는 엄마 뱃속이다. 그런데 리브가는 자기의 태에 쌍둥이가 들어있는지 모른다. 이런 태아들의 싸움에 매우 당황하여 하나님께 기도한다. 여호와께서는 짧은 시로 태중의 아이가 둘이며,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알린다. 두 아이가 태어날 것이며 그들이 각자 민족을 이룰 것이다. 그러나 한쪽이 더 강할 것인데,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다. 이 예언은 리브가가 이해하기 어려워, 이후 그녀의 삶 속에서 점차 그 의미를 깨달아가게 된다.
 
때가 되어 아이들이 태어났는데, 에서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았다.’라고 소개한다. 히브리어의 붉은 색은 갈색에서 홍색의 범위를 모두 포괄한다. 따라서 에서의 피부색은 빨간색이라기 보다는 갈색 계통으로 이해해야 한다. 빨간색(아돔, 홍색)은 에서의 별명이자 그의 후손 종족의 이름인 에돔의 기원이 된다. 또한 ‘털옷(세아르)’은 에서 후손들의 거주지인 세이르(세일(산), 창 14:6; 32:3)의 기원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에서의 이런 신체적인 특징은 그 자체로 문명 및 문화와 동떨어진 그의 삶의 방식을 암시한다. 동생 야곱은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다. 이로 인해 ‘야아콥(야곱)’이라는 이름이 주어진다.
 
이삭은 60세에 쌍둥이 아들을 얻었는데, 이는 그가 씨(후손)를 위해 기도한 지 무려 20년만의 응답이었다.
 
 
 
3. 서로 상극인 두 아이(27~28절)
두 아이는 자라면서 상극의 기질과 성향을 보이며, 전혀 다른 생활 방식을 보인다. 에서는 사냥에 능통했으며 들에 나가기를 좋아했다. 반면, 야곱은 ‘조용한’ 사람으로 집에서 지내야 편한 인물이었다. ‘조용한(탐)’으로 번역된 단어는 기본적으로 “완전한, 온전한”이라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야곱에 대하여 사용될 때는 이런 뜻과는 무관하다. ‘차분하고 조용하다’는 의미에 적합하다. 에서가 거칠고 투박한 반면에 야곱은 차분하고 조용했다는 비교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해도 무방할듯하다.
 
이삭은 에서를 사랑했다.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다. 이유는 밝히지 않지만, 추측하기로 유순한 성격으로 어머니의 말을 잘 들었을 것이고, 늘 집안에 머물며 어머니의 일을 도와, 리브가의 편애를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삭의 기질과 성향은 에서보다 야곱에 더 가까웠다. 그는 조용히 기도하는 사람이고(창 24:63), 다툼을 싫어했으며(창 26:12~22), 아버지 아브라함과 같은 왕성한 육체적 활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도 에서를 좋아한 것은 에서가 그의 식탐을 채워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부부의 편애가 결국 비극을 불러온다. 특히 고기에 대한 이삭의 집착은 나중에 노년의 노쇠한 몸과 시력 상실, 그리고 판단력과 영적 분별력을 잃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창 27:1~4).
 
 
 
4. 장자권을 잃은 에서(29~34절)
운명의 드라마가 시작된다. 야곱은 에서의 장자권을 거머쥐기로 결심하고 계획한다. 그는 형 에사가 사냥에서 돌아올 것을 예상하고 시간에 맞춰 의도적으로 죽을 쭤 놓는다(29절). 이것은 적갈색 렌틸콩으로 만든 ‘팥죽(네지드 아다심, 34절)’이다. 허기진 에서는 ‘붉은 것을 달라’고 부탁한다(30절). 원문은 ‘그 붉은 것, 이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이다. ‘붉은 죽(아돔)’이 두 번이나 반복되며 그의 허기진 상태와 거칠고 급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야곱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그는 에서의 장자권을 오늘 당장 자신에게 팔라고 말한다(31절). 교활하고 비열한 야곱은 자비시믕로 늘 양보했던 아브라함과 비교 대비된다. 아버지의 상속물은 아들들의 숫자에 맞춰 분배되며 장남은 항상 두 배를 가질 권리를 갖는다. 장자는 이런 특권을 누리며 집안의 장손으로서 가문의 전통을 잇는다. 그런데 에서는 당장에는 혜택이 없는 장자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장자권을 멸시했다(34절). 어떤 학자는 이때 에서는 장자의 법적 지위는 유지하고 다만, 장자가 누리는 혜택인 유산 상속권을 팔아 넘긴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27장에서 에서는 야곱에게 두 번째로 속아서 장자권 자체를 잃는다. 미래에 누릴 복을 잃고 가문의 혈통이 야곱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에서는 사냥과 들판의 삶을 좋아하기에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받아 장막에 기거해야 하는 생활에 별 관심이 없었는지 모른다.   
 
야곱은 맹세를 요청하여 다짐을 받아낸 뒤 떡과 팥죽을 내놓았다. 이 경우 구두 증거가 될 수 없었기에 법적 효력이 있는 어떤 증표를 나누어 가졌을지 모른다. 에서는 그저 야곱이 준 음식을 먹고 마신 뒤 일어나 갔다. 이는 에서가 이 일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음을 보여준다. 그는 장자권을 멸시(바자)했다.
 
 
 
나는?
-사라처럼 리브가도 천만인의 어미가 될 약속과 함께 20년 동안 불임도 받는다. 약속은 생명으 ㅣ주권자인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는 선물이 되게 하신 것이다. 이삭이 기도를 통해 자녀의 약속이 오직 하나님의 선물임을 인정하자 20년의 긴 기다림 끝에 열매가 맺게 하신다. 약속을 신뢰한다는 것은 탐욕과 인간적인 확실성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불임과 불안전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바로 그때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리브가는 오래 불임 시간을 지나 이삭의 간구로 임신한다. 그러나 태중에서는 격렬한 다툼이 일어난다. 이는 장차 일어날 언약의 긴장을 예고하는 것이다. 리브가가 여호와께 묻자 하나님은 두 민족의 미래를 말씀하시면서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혈통과 관습, 장자권이라는 인간적인 질서를 뒤바꾼다. 이를 통해 강조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다. 본문은 언약의 계승이 인간적인 질서나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유로운 뜻에 달려 있음을 분명히 한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인간의 삶 속에서 긴장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자기 주권적인 선택으로 그 약속을 성취해 가신다.
 
-잉태의 은총이 고통스러운 현실로 바뀌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대답은 신학적이다. 그 대답의 핵심은 야곱을 통한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것은 혼돈과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그이 운명에 대한 말씀이며, 장자권에 대한 당대의 상식을 뒤엎는 역전의 계획이다. 어린 자, 과부, 고아, 나그네, 세리, 창기에 대한 하나님 나라의 뒤집힌 관심처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은혜로, 지혜로 역사를 만들어가실 것을 분명히 하신다.
 
-기다리던 아이를 둘이나 한꺼번에 얻었지만, 둘은 태중에서부터 다투더니 야곱이 먼저 나오려고 에서의 발꿈치를 잡는 등 날 때부터 갈등이 시작된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외모와 성격을 따라 이름을 짓는 것뿐이었다. 자녀를 주신 것도, 자녀의 인생을 만들어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온 야곱이 이번에는 에서의 장자권을 붙잡니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산다. 본문은 야곱의 인간적인 간교함도 숨기지 않지만, 당장 눈에 보이고 즉시 얻을 수 있는 자원에만 연연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축복을 가볍게 여긴 에서의 영적인 무감각을 강조한다.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의 중요성을 알고, 비록 인간적인 방식이지만 그것을 꼭 붙잡으려고 한다. 이에 반해 에서의 결정은 사실상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 약속의 후사 되기를 포기한 것으로서, 스스로 자기 운명을 팥죽 란 그릇 이상의 의미가 없는 인생으로 만들고 말았다(히 12:12~17).
 
 
*천만인의 어미가 되리라는 약속을 가졌음에도 리브가는 불임이었다. 약속은 인간적인 조건이 아니라 철저히 선물로 받고 믿음으로 받는다는 것을 배워야 했다. 그 믿음의 표현이 기도이고 기다림이다. 20년의 기다림과 끈질긴 이삭의 기도 끝에 열매가 비로소 맺혔다.
 
*두 자녀를 낳았지만 자녀의 장랴는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이 결정하신다. 부모의 바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쓰실 것이다. 아이들 자신은 물론이고 부모도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야곱은 태중에서부터 주인이 되게 하리라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제 힘으로 장자가 되려고 형과 씨름한다. 그의 인생이 어떤 인생이 될 것인지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하나님은 약속을 주실 뿐 아니라 성취하시는 분이다. 리브가는 사라처럼 아이를 갖지 못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달리 이삭은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셨다. 리브가의 20년간의 불임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기회가 되었다. 지금 나의 삶 앞에 놓인 문제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결국 하나님 나라 상속자는 인간이 지닌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선택과 약속에 의해 결정된다. 내가 주님의 자녀로 선택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그러므로 늘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열망뿐 아니라 방법도, 결과뿐 아니라 과정도 거룩해야 한다. 야곱은 사냥에 실패해 허기져 돌아온 에서에게 팥죽을 주고 장자의 명문을 받아낸다. 이는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형의 성품과 사정을 계산하여 치밀하게 의도된 일로 보여진다. 야곱의 행동이 거짓된 것은 아니지만, 결코 정당하다고 할 수 없다. 에서 또한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바꿨다는 것은 평소 그의 관심과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나는 혹시 야곱처럼 선한 목적을 위해 불의한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은가? 혹은 에서처럼 당장의 욕구와 필요로 인해 소중한 영적 특권을 가볍게 여기고 있지는 않을까?
 
 
 
*주님, 구원과 영생의 약속을 소중히 여기며, 선함 방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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