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22:39-53 간절한 기도로 연 십자가의 길
유월절 만찬을 마치고 감람산으로 이동하셨다. 본문은 예수님의 기도에 관한 누가의 서술인데 매우 간결하게 묘사한다. 그러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앞둔 고뇌에 찬 예수님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예수님은 체포되기 전에 기도하셨고(39~46절), 체포하러 온 자들을 당당하게 마주하며 체포당하신다(47~53절).
1. 감람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신 예수님(39~46절)
예수님은 나가 감람산으로 가셨고 제자들도 따랐다(39절). ‘누가’는 이 모습을 “습관을 따라(키티토 에쏘스)” 가셨다고 표현한다. 마치 제사장이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를 수행하듯(1:9 ‘전례를 따라’) 예수님은 자신의 소명을 따라 신실하게 나아가신다. 품 안에 있던 제자가 돈을 받고 자신을 팔아넘기고,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속의 형벌이 기다리고 있는 시점에 예수님은 묵묵히 사명을 수행하러 나아가신다.
감람산에 이르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경고하신다(40절). 제자들에게서 돌 던질 만큼 떨어진 곳으로 가서 무릎 꿇고 기도하신다(41절). 이로 보면 제자들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제자들은 볼 수 있었고 음성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모습과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제자들은 깊은 슬픔에 빠져들게 된다(45절). 예수님은 무릎을 꿇고 극도의 긴장과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격렬하게 탄원하며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42절).”라고 간구하신다.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 한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님을 강하게 한다(43절). 이는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하심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아는 것이 기도할 힘이 된다. 예수님은 간절히 기도하셨고,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처럼 됐다(44절).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의 도움을 받는 중에도 인간으로 깊은 고뇌에 빠져 혈투를 벌이는 기도를 하신다.
기도하시고 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오신다(45절).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고난의 잔을 마시러 갈 결심을 하셨다. 제자들은 슬픔 때문에 잠이 들었다(45절). 극도의 슬픔이 온 몸의 힘을 빼고 탈진시킨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고통을 이해하셨다. 하지만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자지 말고 깨어 기도하라고 명령하신다(46절). 이처럼 예수님의 감람산 기도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명령으로 시작하고 마친다(40, 46절). 그리고 중간에 예수님께서 고뇌와 고통 가운데서 기도하시는 모습이 배열된다(42~44절). 즉 본 단락의 핵심은 “기도”이다. 제자들은 약하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사탄이 그를 삼키려고 요구한 사실을 언급하신 것처럼(31절) 극심한 시련이 닥치면 누구나 사탄의 시험에 넘어지기 쉽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믿음이 약해지지 않게 기도하신 것처럼(32절), 제자들은 믿음이 약해져 시험에 빠지는 비극에 이르지 않게 기도해야 할 것이다.
고뇌와 번민으로 힘든 순간에 제자들이 모본으로 삼아야 할 기도는 예수님의 기도다. 첫째,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셨다. ‘누가’는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강조하기 위해 그의 기도를 세 차례 언급한다(41, 44, 45절). 광야에서 시험했던 사탄은 감람산에서도 시험했지만, 예수님은 기도로 사탄을 패배시키신다. 둘째, 예수님은 심판과 진노의 잔을 마시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신뢰하셨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다. 이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주의 기도” 그대로 기도하셨음을 의미한다. 고통 가운데서 홀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예수님에게 보내신 것과 같이 하나님은 아버지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순종”하기 위해 기도하는 자녀들과 함께하신다. 셋째, 예수님께서 고뇌와 분투로 기도하신 모습처럼 제자들과 신자들은 슬픔과 낙심의 감정을 토해내며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도 통곡하셨으니 나도 통곡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넷째, 하늘로부터 천사가 예수께 힘을 주는 장면은 기도하는 자녀의 고통을 하나님께서 기도에 침묵하시고 관심을 두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 기도를 중단하고 시험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녀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항상 함께하신다. 하나님의 침묵은 그의 뜻이 확고함을 보여줄 뿐, 자녀들의 기도에 무관심하신 것이 절대 아니다.
2. 체포되는 예수님(47~53절)
예수님께서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실 때, 한 무리가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무리를 이끌고 있던 사람은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유다였다(47절). ‘누가’는 예수님께서 제자에 의해 배반당하신 것을 의도적으로 자세하게 언급한다. 유다는 사탄의 시험에 넘어진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는 예수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온다. 유대 문화에서 입맞춤은 존경과 사랑의 표시였지만, 유다는 체포하러 온 자들이 예수님을 식별할 수 있도록 입을 맞추려 한 것이다. 그이 입맞춤은 배신의 입맞춤이었다. 예수님은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48절) 라고 말씀하신다. 유다는 땅에서 머리 둘 곳 없이 지내고 고난 중에 있는 “인자”이신 무시하고 무가치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께서 영광중에 재림하고 심판하실 “인자”이신 것을 알지 못했다.
예수님을 둘러싼 자들, 곧 제자들이 이 광경을 보고 칼로 쳐야 하는지 묻는다(49절). 이윽고 제자 중 한 명이 대제사장의 종을 쳤고 종의 오른쪽 귀가 떨어졌다(50절). 예수님은 “이것까지 참아라.”라고 말씀하시고 종의 귀를 만져 치유하셨다(51절). 사복음서에서 유일하게 누가만 종의 치유 사실을 기록해 놓았다. ‘누가’는 이 장면을 통해 예수님께서 극도로 긴장된 순간에서도 치유와 회복의 사명을 수행하신 점을 강조한다.
예수님은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경비대장들과 장로들이 강도를 체포하듯이 검과 몽치를 들고 온 것을 지적하신다(52절). 예수님은 날마다 그들과 함께 성전에 있었지만, 그때에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예수님께 손을 대지 않았다(53절).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의 권세로다”(53절). 라고 말씀하신다. ‘어둠’은 사탄을 상징한다. 종교 지도자들과 유다가 자신들의 욕망에 충성했지만, 그들은 사실상 사탄의 권세에 충성하는 악의 도구들이다.
‘누가’는 어둠의 권세를 따르는 “너희(53절)”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하는 “너희”를 대조한다.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 어둠의 권세를 위해 활동하는 자들이 지금은 이기는 것 같지만 결국은 기도하는 제자들이 이긴다. 기도하며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의 방식이 결국은 이긴다.
나는?
-예수님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유월절 만찬을 마치시고 제자들과 함께 평소 즐겨 찾으시던 감람산으로 가셨다. 그곳은 익숙한 곳이지만 더는 안전한 곳이 아니다. 가룟 유다의 밀고로 쉽게 체포될 수 있는 곳이 되어 버렸다. 그것을 모두 아시면서도 가셨다. 지금은 잡힐 때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다가올 십자가를 외면하지 않으셨고, 아버지의 뜻을 수용하고 순종하기 위해 기도하신다. 기도의 자리는 아버지와의 교제 안에서 쉼을 누리는 안식처이며, 아버지의 뜻에 자기 뜻을 복종시키는 치열한 격전지다. 사명과 순종은 성실한 기도로만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도는 순종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며 큰소리치는 제자들을 기도의 자리로 데려가신다. 영적인 위기 앞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검이 아니라 기도였다. 과신이 아니라 믿음이었다. 기도에 실패한 제자들은 엄습하는 슬픔을 이겨낼 수 없었다. 임박한 시험을 이길 수 없었다. 이겨내 보려고 세상의 무기와 혈기로 대처한다. 하지만 검으로는 자신을 지킬 수도 없고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도 없다. 꾸준한 기도, 깨어 있는 기도, 간절한 기도만이 시험과 유혹을 이기는 길이다. 기도 가운데 내가 죽어야 내 안에서 주께서 사시고, 주님이 역사하시게 할 수 있다. 기도가 깨어 있게 만든다.
-예수님은 피할 길을 구하지 않고 십자가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구하셨다. 하나님은 그런 아들을 천사를 보내 기도로 도우셨다. 기도는 자기 뜻을 관철하려는 고집이 아니라 아버지 뜻을 수용하려는 순종이다. 예수님은 기도하신 대로 순종하셨다. 유다를 앞세운 무리에게 순순히 붙잡혀 가셨다. 저항하지도, 위협하지도 않으셨다. 오히려 검을 쓰며 저항하는 제자들에게 참으라고 꾸짖으신다.
-예수님은 위협에 굴복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것이다. 아버지의 뜻을 묻는 기도와 그 뜻대로 사는 순종이 어우러진 신앙의 삶을 보여주셨다. 기도가 있었기에 순종할 수 있었고, 기도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셨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며 담대하게 감당하도록 이끈다.
*예수님의 기도는 자신의 뜻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기 위한 씨름이었다. 기도는 그분에게 고통을 회피하는 수단이 아니라, 고통을 감당할 힘을 얻는 통로였다. 예수님은 인간적 고뇌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며 참 제사장으로서 자신을 드리신다. 우리의 기도는 내 뜻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 고통 앞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 오히려 무릎 꿇고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몸부림이 되어야 한다.
*누가는 제자들이 ‘슬픔 때문에’ 잠들었다고 기록한다. 이는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내면의 무력감 때문이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기도하지 않음으로써 결국 다가올 시험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예수님은 이미 앞서(22:32) 베드로를 위해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셨다. 기도는 영적 시험 앞에서의 유일한 대비책이다. 우리도 많은 경우 현실의 고통과 절망 앞에서 무기력하게 잠든다. 그러나 기도는 그 상황에서 깨어 있게 한다.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아무것도 감당할 수 없다는 고백과 함께 우리는 깨어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검을 사용하지 말라고 명하신다. 십자가는 인간적 저항으로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이기 때문이다. ‘입맞춤’은 외적인 친밀의 상징이지만 그 안에 배신이 숨겨져 있었고, 예수님은 그 숨은 악까지도 평온하게 직면하신다. 폭력이 아닌 치유로 응답하신 예수님은 메시아로서의 길을 분명히 하신다. 우리도 억울함과 배신 앞에서 즉각적인 대응 대신, 예수님처럼 침묵과 인내, 그리고 치유로 응답해야 한다. 교회와 성도는 세상의 방법으로 싸우지 않고, 사랑과 치유로 반응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자신을 넘겨주신다. 이 시간은 어둠의 권세가 일시적으로 작동하는 시간이지만, 예수님은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뜻 아래에 있음을 확신한다. 이것은 패배가 아니라 순종의 절정이다. 예수님의 태도는 체념이 아니라 왕의 의지로 고난을 맞이하시는 주권자의 모습이다. 우리가 겪는 억울함과 어두움의 때도 결국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우리는 어둠에 압도되지 않고, 주님의 뜻을 따라 순종으로 나아가는 담대함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시간은 끝내 우리를 밝은 아침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주님,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하기 위해 간절하게 몸부림치는 주님의 기도 모습을 바라봅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순종하기 위해 이렇게 몸부림친 적이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구합니다.
지난 이틀간의 고말기를 진행하며 서로 담당해야 할 부분을 정리해 봅니다.
1.예배전(찬양전)
평소 김선철 집사님때와 달리 찬양 음량이 다소 작았어요. 좀 더 키워도 됩니다. 조명은 찬양팀이 올라왔을 때 점등이요
2.찬양
시작할 때 이틀 연속 음량이 너무 컸어요. 나만 느끼는것 아니죠? 문제는 바로 시정이 안되고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잡힌다는 거예요. 아시다시피 방송실에서는 본당의 음량을 직관적으로 체크하지 못하니 누군가 이를 전달할 필요가 있겠죠?
예배 담당인 이홍기 목사님이 인도와 세션으로 있었던 어제와 오늘의 경우에서는 앞으로 김승호 목사님이 본당에서 시작할 때 듣고 있다고 방송실과 소통해서 곧바로 조치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어제 오늘 세션 음량 뿐 아니라 싱어 음량도 어제 그런 현상이 있었다면 오늘 곧바로 시정되어 시작해야 했을 텐데 그렇지 못했어요… 이건 누군가 담당을 정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니, 앞으로는 음향을 전공한 김승호 목사님이 담당하세요. 김승호 목사님이 예배나 찬양을 인도하면 성광훈 목사님이 하세요.
3.말씀 후 적용찬양과 기도회를 시작할 때 -오늘 처럼 소등 -자막 가사 0.5초 빠르게(자막 끝부분 한마디 남겨 놓을 때 넘김) -기도할 때마다 목사님들이 큰 소리로 합심기도 분위기를 이끄셔야 하는 거 아시죠? -마기막 합심기도가 시작하고 기도찬양과 세션 반주를 자연스럽게 이어가도록 세션들이 곧바로 반주를 끝내지 말고 연주하는 부분에서 끝까지 하고 끝내도록요. 내일부터는 호흡을 잘 맞춰 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