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죽음과 가상칠언 [요 19:28-30 + 가상칠언]

요 19:18–30 + 가상칠언: 예수님의 죽음과 가상칠언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극심한 목마름의 고통을 당하셨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시기를 원하셨다. 그리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자발적으로 죽음을 맞이하셨다. 예수님의 삶의 의미는 십자가에서 하신 마지막 말씀 가운데 드러난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과업을 끝까지 완수하셨다는 선언이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를 외치고 죽음을 맞이하신다. 예수님의 생애는 … Read more

십자가 아래 새 하늘 가족 [요 19:17-27]

요 19:17-27 십자가 아래 새 하늘 가족 예수께서 결국 십자가에 못 박히신다. 지상에서 보면 이것은 유대 당국자들의 모함과 심약하고 비겁한 빌라도의 판결에 의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성경에 기록된 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제물이 된 것이다. 이때 요한은 예수님을 고난당하는 다윗의 자손으로 묘사한다. 그의 십자가로부터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 Read more

빌라도의 심문과 선고 [요 18:39-19:16]

요 18:39-19:16 빌라도의 심문과 선고 빌라도의 계속된 심문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예수님은 왕이시면서 사람이시고, 또한 하나님의 아들로 묘사된다. 그러나 정작 유대인들은 그러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가이사를 왕이라 한다. 빌라도는 예수가 억울하게 체포되어 심문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놓아주려고 힘썼지만, 자신의 정치적 생명에 관계된 비판을 듣고 그를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유대인들에게 넘겨준다.   1. 예수님에 … Read more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요 18:28-38]

요 18:28-38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님과 빌라도가 재판정에서 만난다. 첫 번째 심문을 통해 예수님은 세상 나라와 다른 하늘나라의 왕이시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 나라는 진리에 기초하는 나라다. “유대인의 왕(33절)”이라는 타이틀은 “이스라엘의 임금(왕)”이라는 말로 앞서 사용되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할 때(1:49), 그리고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께(12:13) 이 호칭을 사용하였다. 예수님에 대한 빌라도의 첫 번째 심문은 예수님의 왕권에 대한 것이었다(33, … Read more

예수님의 내가 그니라 vs 베드로의 나는 아니다 [요 18:12-27]

요 18:12-27 예수님의 “내가 그니라” vs 베드로의 “나는 아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에게 심문을 받으신다. 이 와중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다. 수모를 당하시며 곤욕을 치르시는 예수님과 부인하는 베드로의 모습이 대조를 이룬다. 예수님이 체포될 당시의 대제사장은 가야바일 때, 안나스는 그의 장인이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안나스를 대제사장이라 부른다(18:19, 22). 추측하기로는 은퇴한 대제사장들을 포함하여 복수의 대제사장이 산헤드린 공의회를 움직였던 것 같다(마 16:21; 20:18; … Read more

기꺼이 잡혀 주시는 사랑 [요 18:1-11]

요 18:1-11 기꺼이 잡혀 주시는 사랑 요한은 예수님의 수난을 수치의 길이 아닌 영광과 승리의 길로 묘사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가는 고뇌를 노출하며 모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대속자의 길을 기꺼이 걸아가는 예수님의 고뇌를 전달해준다. 본문은 예수님이 체포되시는 장면으로 단지 수동적으로 어쩔수 없이 체포되시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내어 주시는 … Read more

진리와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소서 [요 17:17-26]

요 17:17-26 진리와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소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 속으로 보내시기 전에 아버지께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해 주시기를 구하신다. 제자들이 세상으로 보냄받는다면 세상이 그들을 보고 예수를 믿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그 모두가 사랑으로 하나 되고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의 연합 안에 들어오기를 기도하신다. 제자들은 사랑의 공동체이며 영광의 공동체이기도 하다. 아버지와 아들이 창세전부터 누려 오신 영광을 제자들도 … Read more

주님의 대제사장적인 기도 [요 17:1-16]

요 17:1-16 주님의 대제사장적인 기도 예수님께서 기도하신다. 중보기도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자신을 영화롭게 해달라는 기도이다. “대제사장적 기도”라고 불리우는데 하나님과 제자들 사이를 화목케 하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이 기도는 제자들을 위하여 주님께서 하나님께 대신 기도하신 것이다. 무슨 내용일까?   1.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1절)”….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되게 하셔서, 아들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 주십시오(새번역_1절).” 주님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 Read more

주님의 말씀이 주시는 평화 [요 16:25-33]

요 16:25-33 주님의 말씀이 주시는 평화…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으면 하나님께서 친히 사랑하여 주신다(27절). 이런 이들에게는 비유로 말씀하지 않고 하나님께 직접 주님의 이름으로 구할 수 있게 된다(25-26절)고 약속하신다. 주님께서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28절)고 직접 밝히신다. 이에 제자들은 주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신 것”을 믿었다(29-30절). 주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 Read more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요 16:16-24]

요 16:16-24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무지한 제자들의 모습과 이를 깨우치시는 예수님의 자상한 모습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예수님이 먼저 자신의 떠남을 말씀하시자(13:31~35), 베드로는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13:36~38). 예수님이 아버지의 집을 말씀하시자(14:4), 도마는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14:5). 그러자 예수님은 자신의 길에 대해서 설명하시고(14:6~7), 빌립은 그 설명을 이해하지 못했다(14:8). 예수님은 자신과 아버지와의 관계를 언급하시지만(14:9~21), 가롯이 아닌 유다는 그의 언급을 …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