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 6:13-22 성전 봉헌과 유월절과 무교절 준수
귀환 공동체는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완료하고 다리오 왕 제6년(주전 526년) 아달월 3일에 역사적인 봉헌식을 거행한다. 그들은 성대한 성전 봉헌식을 마친 후 모세의 율법을 따라 유월절을 지킨다. 성전 봉헌식과 유월절 의식의 거행은 이스라엘 역사에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예루살렘 성전 재건의 주제를 다루는 에스라서 전반부(1~6장)의 종결 부분으로, 성전 건축의 완공과 봉헌식을 소개하는 단락(13~18절)과 유월절을 지키는 단락(19~22절)으로 구성된다. 1장에서는 고레스가 하나님의 감동으로 성전 건축을 지시하지만, 6장에서는 페르시아 왕 다리오가 하나님의 감동으로 성전 재건을 완성한다(스 6:22).
1. 조서의 이행과 성전 건축의 완공(13~18절)
다리오 왕의 조서에 대한 강 건너편 총독과 관리들의 반응으로 시작한다. 다리오 왕의 조서가 내려지자 강 서편의 총독과 관리들은 지체하지 않고 ‘신속히’ 왕의 명령을 시행한다. ‘신속히 시행하다(오스파르나 아바두)’로 번역된 아람어는 12b절의 ‘신속히 행할 지어다(오스파르나 이트아비두)’와 직접 연결된다. 에스라는 이를 통해 다리오 왕의 명령이 지체없이 그리고 정확하게 시행되었음을 강조한다.
그런데 성전 건축의 일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게 된 데는(14b절, ‘성전 건축하는 일이 형통한지라’)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하나님 사람들(특히 학개와 스가랴)의 권면을 따랐기 때문이다(14a절). 기록에 따르면 학개는 주전 520년에 예언 활동을 했고(학 1:1; 2:10) 스가랴는 주전 520년부터 518년까지 예언 활동을 했다(슥 1:1; 7:1). 성전 건축의 재개 연도와 두 예언자의 활동 연대가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것은 건축의 재개에 두 예언자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음을 의미한다. 성전 건축은 그로부터 약 3~5년 후인 515년(다리오 왕 6년) 12월(아달월) 3일에 완공된다(15절).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솔로몬 성전이 파괴된 후 거의 70년 만에 두 번째 성전이 완공된 것이다(렘 25:12~14; 29:10; 슥 1:12~17).
본문은 성전 건축의 일이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소저를 따른 것’이라고 밝힌다(14절). 성전 건축은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에 따른 것이고, 다음으로 페르시아의 왕들(고레스, 다리오, 아닥사스다)의 허락과 지원에 의한 것이다. 이 세 왕 중 아닥사스다 왕은 성전 건축과 직접 관련이 있는 인물은 아니다. 아닥사스다는 느헤미야를 통해 성벽을 재건하도록 조서를 내리고, 성전 제도의 개혁을 도운 사람이다(느 2:1, 8). 이것으로 볼 때 에스라서는 성전 건축과 성벽 재건을 분리하지 않는다. 성전 건축은 성벽과 공동체 재건으로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본문은 특히 성전과 성벽 건축을 도운 페르시아 왕들의 이름 앞에 “하나님의 명령”을 언급함으로써 성전 건축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한다. 성전 건축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주도하시며 성취하신 역사였다.
2. 성전 봉헌식(16~17절)
성전이 완공되자 백성들은 성전 봉헌식을 거행한다. 성전 봉헌식은 다리오 왕 제6년(주전 526년) 아달월 3일에 치러진다(15절). 봉헌식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기타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다(16절). 귀환 공동체의 구성원이 주로 유다와 베냐민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본문은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언급한다. 이것은 귀환 공동체의 정체성을 역사적 이스라엘로 규명하고자 하는 의도와 관계된다. 이런 배경에서 회복된 성전은 포로기 이전과 이후의 이스라엘을 하나로 연결하는 기능을 한다.
이것은 성전 봉헌식 때 귀환 공동체가 드렸던 예물 목록에 반영되어 있다. 그들은 속죄 제물로 이스라엘 지파의 수를 따라 숫염소 12마리를 드린다(17절). 이스라엘 자손이 성전 봉헌식 때 드린 전체 제물은 속죄제 외에 수소 100마리, 숫양 200마리, 어린 양 400마리, 도합 700마리다. 이는 솔로몬 성전 봉헌식 때 드린 제물의 양(소 2만 2천 마리, 양 12만 마리) 과 비교하면 매우 적은 양으로 포로기 이전에 비해 축소된 귀환 공동체의 현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본문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회복된 성전을 구심점으로 귀환 공동체를 통해 이어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귀환민들은 봉헌식에 이어 성전 예배에 필요한 조직을 편성한다(18절). 제의 종사자인 제사장과 레위인의 조직은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규례대로 이루어졌다(18b절). 이것은 철저하게 율법에 충실히 하고자 하는 귀환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 생활을 통해 토라의 백성으로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바벨론 포로는 역사적으로 암울한 시기지만, 신학적으로는 매우 창조적인 시기다.
3.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킴(19~22절)
성전 봉헌식은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는 것으로 끝맺는다. 성전 봉헌식이 12월에 거행되었음을 고려할 때, 그로부터 한 달의 시간이 지난 후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다시 모인 것이다(19절).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해방을 기념하는 날로 이 시점에서 귀환 공동체가 유월절을 지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지금의 유월절은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이라는 새로운 출애굽을 기념한다.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유월절 양을 잡기 전의 규정에 따라 먼저 정결 의식을 행한다(20a절). 유월절 양을 잡는 것이 레위인의 직무는 아니었지만(출 1:6; 신 16:2), 후에 레위인들이 이 일을 전문적으로 하게 되었다(대하 30:17; 35:3~6).
유월절 의식에 참여한 사람들은 세 부류로 소개된다. 제사장과 레위인을 중심으로 한 귀환민들(20절), 그 땅에 남아 있던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율법에 충성하는 사람들(21a절), 이들과 함께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이방인들이다(21b절). 본문은 그 자리에 함께 참석한 사람들 가운데 ‘이방 사람의 더러운 것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벨론에 사로잡혀 가지 않고 남아 있던 백성들 가운데서 율법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단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이방 사람들의 문화와 종교에 동화되었던 ‘그 땅의 사람들’과 구별된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은 그곳에 살던 사람들 가운데 개종한 이방인들을 가리킨다(참조, 대하 30:18~19; 민 9:14). 구약의 율법은 이방인들도 정결 의식을 거친 후 유월절 의식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참조, 민 9:13~14). 귀환민들은 율법에 근거하여 ‘더러운 것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한’ 이방인도 참여하도록 한 것이다(21b절).
유월절 행사 이후 곧바로 무교절을 지킨다(22절). 무교절은 유월절 이후 일주일 동안 지키는 절기로, 집안의 묵은 누룩을 제거하고 새로운 수확을 준비하는 의미를 지닌다. 무교절을 지키면서 성전 중심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준비를 한다. 본문은 끝으로 이 행사가 기쁨의 잔치였음을 밝히면서(22b절) 축제의 분위기로 에스라서 전반부를 마무리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굴욕적인 바벨론 포로 시대를 청산하고 성전과 율법을 중심으로 한 거룩한 백성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본문인 이러한 과정에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이 있었음을 강조한다(22절).
나는?
-다리오 왕의 조서가 반포된 후 성전 건축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마침내 완공된다. 그것은 왕의 조서와 그 조서에 즉각적으로 순종한 총독과 그 동료들,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의 권면에 순종하여 성전 건축에 나선 이스라엘 장로들과 백성들의 수고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성취였다. 그러나 저자는 그 과정의 맨 앞에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14절)”을 놓고 있다. 성전 건축은 하나님이 계획하셨고, 주도하셨으며, 성취를 책임지신 역사(役事)였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권력자든 부자든, 믿는 자든 불신자든, 이 세상의 모든 조건을 다 사용하셔서 주의 감동하심에 순종하는 백성들 가운데 거처를 삼아 거하시려고 일하고 계신다.
-이스라엘은 즐거운 마음으로 성전을 주께 봉헌한다. 자신들을 통해서 지어 올리셨지만,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이 건축자이심을 고백하는 의식이다. 어떤 예물로도 감사를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하나님의 성전 귀환은 큰 은혜다. 거기서 이스라엘은 유월절을 지켰다. 귀환한 자들과 이방인 중에 그 땅의 부정한 것과 결별하고 이스라엘에 속하여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이 함께 즐거움 가득한 유월절 축제에 참여했다. 예배의 참다운 기쁨은 여호와께 속하고 여호와를 구할 때 찾아온다.
-회복된 성전에서 유월절(무교절)을 지키게 하심으로 백성들에게 기쁨을 되찾아주셨다. 유배 생활에서의 귀환과 가나안에서 안전한 장착은 제2의 출애굽 사건이었다. 이제 그들에게 유월절은 단지 조상들을 구원하신 ‘역사 속 하나님’에 대한 기억과 감사가 아니라, 자신들을 구원하여 새로운 나라를 시작하게 하신 ‘현재의 하나님’에 대한 감사였다. 최고 권력자의 마음도 주장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나는 어떻게 모시고 있는가?
-다리오 왕과 총독들과 선지자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성전 재건의 역사를 형통케 하셨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성전을 건축하라는 명령만 주신 것이 아니라, 그 명령에 순종할 수 있게 사람들과 여건까지 동원해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은 우리가 지기에 무거운 짐이 아니라 사랑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명령하실 뿐만 아니라 그 명령을 실행할 수 있게 함께 멍에를 메 주시는 주님의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하자.
-재건된 성전은 과거 하나님이 조상들과 맺은 언약에 대해 포로 후 백성들도 연속성을 갖고 있다는 데 커다란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즐거움으로 가득 찬 제사로 성전 봉헌식을 드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지금까지 내 삶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나는 무엇을 드리며 나아가고 있을까? 특히 봉헌식을 하면서 속죄제를 드리는 모습은 나 자신을 살펴 죄를 고백할 것을 요청한다.
*때가 되면 이루신다. 선지자를 보내셔서 무딘 마음을 뒤흔들어 다시 사명의 자리로 서게 하시고, 주변 환경과 인물들을 주관하셔서 목적하신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다. 예레미야의 선포가 허언이 아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 일을 만드시고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 이름이 여호와라는 여호와(렘 33:2)” 참으로 맞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의롭고 가치 있는 일일수록 더욱 그렇다. 하나님께서 감동 주시고 사명으로 감당하라는 일도 매한가지다. 그렇기에 좌절보다 때가 되면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인내해야 한다. 포로에서 70년만에 돌아오게 하겠다는 약속을 70년이 차자 성취하신 하나님이시지 않는가!
*믿음의 걸음에서 여러 상황과 여건에서 지치고 힘들어서 손 놓고 있었던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생각난다면 다시 믿음의 힘을 불어넣어야 한다. 말씀이 들리고 깨우쳐져서 마음이 반응하고 걸음이 이어진다면, 담대하게 믿음으로 이어가야 한다. 하나님이 결국 이루실테니….
*주님, 시작하신 일을 형통케 하셔서 공동체가 큰 기쁨을 누리게 하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주님, 하나님 나라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저마다 깨닫고 다시 믿음으로, 다시 사명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열심과 섭리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믿음과 사명의 길을 인내하며 감당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