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인생이 탄탄대로 이기를 꿈꿉니다. 내가 계획한 대로 일이 풀리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며, 평안한 삶을 사는 것이 우리의 바람입니다. 하지만 성경 속 믿음의 인물들의 삶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사용하시기 전 반드시 거치는 코스가 있습니다. 바로 ‘구덩이’와 ‘광야’입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의 아들 중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요셉의 인생이 가장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순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제까지는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채색옷’의 주인공이었으나, 오늘 그는 벌거벗겨진 채 구덩이에 던져지고 이방의 노예로 팔려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중요하게 보아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눈으로 보면 비극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기 위한 거대한 ‘구원의 서막’이었습니다. 우리 삶의 구덩이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함께 바라보길 원합니다.
1. 꿈을 시기하는 세상과 영적 저항 (18-20절)
요셉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을 찾아 세겜과 도단을 헤맵니다. 형들은 멀리서 요셉을 보자마자 그를 죽이기로 결의합니다. 그들의 분노는 단순한 형제간의 갈등을 넘어섭니다.
하지만 정작 형들이 죽이고 싶었던 것은 요셉 개인이 아니라, 요셉이 꾸었던 ‘하나님의 통치’에 관한 꿈이었습니다. 꿈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형인 자신들이 아우인 요셉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통치와 관련된 내용이지만 요셉의 형들은 이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동생이라고 해도 요셉을 죽여서라도 그런 일은 일어나기 않길 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비전을 품고 살려고 할 때, 세상은 우리를 시기하고 조롱합니다. 심지어는 우리를 핍박하며 죽이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을 비웃고, 여러분의 정직함을 어리석다 말하는 목소리가 있습니까? 심지어는 고난을 주고 핍박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까? 그 가운데 마음이 어렵고 견디기 벅찬 마음이 있습니까? 그것은 여러분 안에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과 비전 그를 통해 이루실 생명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반드시 ‘영적 저항’이 따릅니다. 고난이 올 때 “왜 나만 겪는가”라고 묻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나님이 내 인생을 통해 이루실 꿈이 얼마나 크길래 이런 시련이 오는가”라며 기대로 반응하십시오.
2. 채색옷을 벗기시는 하나님의 섭리 (21-24절)
형들은 요셉을 붙잡자마자 그가 입고 있던 ‘채색옷’을 벗겨버립니다. 이 옷은 아버지 야곱의 편애와 요셉의 특권을 상징합니다. 그런 채색옷을 벗겼다는 것은 단순히 형들이 그 옷을 입고 있는 요셉을 질투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우기 전, 그가 의지하고 자랑하던 모든 외적인 조건들을 강제로 제거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보호막인 채색옷이 벗겨져야 비로소 요셉은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는 단독자로 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요셉이 던져진 구덩이는 물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는 그 깊고 어두운 곳에서 요셉은 무엇을 보았을까요? 땅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음을 깨닫고 오직 하늘의 별을 보여주셨던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에서 ‘채색옷’이 찢겨 나가는 아픔을 겪고 계십니까? 건강이, 재물이, 혹은 명예가 사라지는 아픔 가운데 있습니까? 더욱 힘든 것은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는 깊고 어두운 구덩이에 계십니까? 하나님은 지금 당신을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더 크고 견고한 ‘은혜의 옷’을 입히기 위해 준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3. 악인의 꾀를 선으로 바꾸시는 타이밍 (25-28절)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 넣어두고 앉아 음식을 먹는 잔인함을 보일 때, 마침 멀리서 이스마엘 상인들이 나타납니다. 유다는 요셉을 죽이는 대신 팔아넘기자고 제안합니다.
세상은 이를 ‘우연한 만남’이라 부르지만, 성경은 이를 ‘하나님의 섭리’라고 부릅니다. 만약 상인들이 5분만 일찍 지나갔거나 늦게 왔다면 요셉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은 악한 형들의 마음과 이방 상인들의 상술조차도 당신의 계획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은 20에 팔려가는 요셉의 모습은 은 30에 팔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기도 합니다. 요셉이 먼저 팔려가 애굽에 ‘생명의 창고’를 준비했듯, 우리 주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먼저 고난의 길을 가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타인의 악한 의도나 우연처럼 보이는 불행한 사고 때문에 인생이 꼬였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역전의 하나님 이십니다. 당신의 자녀를 약속의 땅으로 옮기시는 분입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의 아들 중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요셉의 인생이 가장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순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제까지는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채색옷’의 주인공이었으나, 오늘 그는 벌거벗겨진 채 구덩이에 던져지고 이방의 노예로 팔려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중요하게 보아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눈으로 보면 비극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기 위한 거대한 ‘구원의 서막’이었습니다. 우리 삶의 구덩이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함께 바라보길 원합니다.
1. 꿈을 시기하는 세상과 영적 저항 (18-20절)
요셉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을 찾아 세겜과 도단을 헤맵니다. 형들은 멀리서 요셉을 보자마자 그를 죽이기로 결의합니다. 그들의 분노는 단순한 형제간의 갈등을 넘어섭니다.
하지만 정작 형들이 죽이고 싶었던 것은 요셉 개인이 아니라, 요셉이 꾸었던 ‘하나님의 통치’에 관한 꿈이었습니다. 꿈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형인 자신들이 아우인 요셉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통치와 관련된 내용이지만 요셉의 형들은 이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동생이라고 해도 요셉을 죽여서라도 그런 일은 일어나기 않길 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비전을 품고 살려고 할 때, 세상은 우리를 시기하고 조롱합니다. 심지어는 우리를 핍박하며 죽이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을 비웃고, 여러분의 정직함을 어리석다 말하는 목소리가 있습니까? 심지어는 고난을 주고 핍박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까? 그 가운데 마음이 어렵고 견디기 벅찬 마음이 있습니까? 그것은 여러분 안에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과 비전 그를 통해 이루실 생명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반드시 ‘영적 저항’이 따릅니다. 고난이 올 때 “왜 나만 겪는가”라고 묻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나님이 내 인생을 통해 이루실 꿈이 얼마나 크길래 이런 시련이 오는가”라며 기대로 반응하십시오.
2. 채색옷을 벗기시는 하나님의 섭리 (21-24절)
형들은 요셉을 붙잡자마자 그가 입고 있던 ‘채색옷’을 벗겨버립니다. 이 옷은 아버지 야곱의 편애와 요셉의 특권을 상징합니다. 그런 채색옷을 벗겼다는 것은 단순히 형들이 그 옷을 입고 있는 요셉을 질투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우기 전, 그가 의지하고 자랑하던 모든 외적인 조건들을 강제로 제거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보호막인 채색옷이 벗겨져야 비로소 요셉은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는 단독자로 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요셉이 던져진 구덩이는 물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는 그 깊고 어두운 곳에서 요셉은 무엇을 보았을까요? 땅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음을 깨닫고 오직 하늘의 별을 보여주셨던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에서 ‘채색옷’이 찢겨 나가는 아픔을 겪고 계십니까? 건강이, 재물이, 혹은 명예가 사라지는 아픔 가운데 있습니까? 더욱 힘든 것은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는 깊고 어두운 구덩이에 계십니까? 하나님은 지금 당신을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더 크고 견고한 ‘은혜의 옷’을 입히기 위해 준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3. 악인의 꾀를 선으로 바꾸시는 타이밍 (25-28절)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 넣어두고 앉아 음식을 먹는 잔인함을 보일 때, 마침 멀리서 이스마엘 상인들이 나타납니다. 유다는 요셉을 죽이는 대신 팔아넘기자고 제안합니다.
세상은 이를 ‘우연한 만남’이라 부르지만, 성경은 이를 ‘하나님의 섭리’라고 부릅니다. 만약 상인들이 5분만 일찍 지나갔거나 늦게 왔다면 요셉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은 악한 형들의 마음과 이방 상인들의 상술조차도 당신의 계획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은 20에 팔려가는 요셉의 모습은 은 30에 팔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기도 합니다. 요셉이 먼저 팔려가 애굽에 ‘생명의 창고’를 준비했듯, 우리 주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먼저 고난의 길을 가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타인의 악한 의도나 우연처럼 보이는 불행한 사고 때문에 인생이 꼬였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역전의 하나님 이십니다. 당신의 자녀를 약속의 땅으로 옮기시는 분입니다.
은혜를 함께 나누는 댓글이 여기에 표시됩니다.
대댓글도 같은 공간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