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은 이집트에서 보디발의 종이 된다. 보디발은 여호와가 요셉과 함께하여 그를 형통하게 하심을보고 가장 총무의 직책을 맡긴다. 그러나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과 모함으로 요셉은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힌다. 그곳에서도 여호와는 요셉과 함께하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신다. 요셉은 감옥에서도 모든 일을 총괄하는 자가 된다. 하나님은 이 일에도 그와 함께하고 그를 형통하게 하신다. 단순하게 계산 해보면 17세에 팔려서 노예가 되고 30세에 총리에 오르니 약 13년 정도의 시간을 노예로 보내게 된다. 요셉은 이 시기를 어떻게 보냈을까?
1.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으로(2, 3, 5, 21, 23절)
39장에서 가장 많이 반복하여 사용 되었다. 요셉은 훗날 자신의 삶을 고백하고 회고할 때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일하심”을 절절히 고백한 것을 보면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은 노예 요셉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형통한 자가 되어(2-3절), 형통하게( 23절)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으로 요셉은 ‘형통한 자가 되었다.’ 새번역은 ‘앞길이 잘 열리도록 그를 돌보셨다(2절)’, ‘하는 일마다 잘 되도록 주님께서 돌보신다는 것을(3절)’ 으로 번역했다. 23절도 ‘주님께서 요셉을 돌보셔서 그가 하는 일은 무엇이나 다 잘 되게 해주셨다’로 번역했다.
요셉의 이야기에서 사용 되는 “형통”의 의미가 익히 알고 있는 형통의 의미와 다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따라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돌보신다”. 이것이 형통이다. 삶을 살다보면 예기치 않은 일을 만나고, 돌발 변수에 큰 혼란을 겪기도 한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 큰 곤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를 “돌보아 주시는 것” 이것이 형통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돌보아 주실까?
3.주인이 보고, 간수장의 눈에 들었다(3, 21절)
보디발은 “….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며, 요셉이 하는 일마다 잘 되도록 주님께서 돌보신다는 것을 알았다. 주인은, 요셉이 눈에 들어서, 그를 심복으로 삼고, 집안 일과 재산을 모두 요셉에게 맡겨 관리하게 하였다(새번역_3-4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애굽사람 보디발은 요셉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요셉의 하나님의 실존을 인정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일하심을 깨달은 보디발의 집에 더욱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일하셨다는 것이다(새번역_5-6절). 보디발은 요셉을 통해 요셉의 성실함과 준수함과 능력이 그의 하나님의 “돌보심”임을 알았다. 그것을 보았다.
간수장도 마찬가지다. “간수장은 요셉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아무것도 간섭하지 않았다. 그렇게 된 것은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며, 주님께서 요셉을 돌보셔서, 그가 하는 일은 무엇이나 다 잘 되게 해주셨기 때문이다(새번역_23).”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형통”하게 되는 것은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존재감”이 그 사람을 통해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런 존재감은 결국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요셉의 모습처럼, “하나님 앞에서” 생활하는 실제를 통해 증거 된다.
4.요셉의 유혹에 대한 단호함(9절)
요셉은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주인 보디발에게 은혜를 입어 노예 였지만 집안 관리자로서 일을 하게 된다. 안정적인 삶이 정착되나 싶었으나 또 예기치 않은 위기가 닥친다.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한 것이다. 이 유혹은 한 두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집요하게 계속 요구되었다(7, 10절). 하지만 요셉은 이 유혹에 대하여 단호했다. 보디발에 대한 충성심 뿐 아니라 “…내가 어찌 이런 나쁜 일을 저질러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새번역_9절)”
하지만 집요한 유혹은 마침내 모함에까지 이르게 된다. 문맥의 흐름상 보디발의 아내는 일부러 주변의 종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요셉을 불러 노골적으로 유혹한다. 하지만 요셉은 자신의 옷을 붙잡고 늘어지는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 겉옷조차 팽개치고 뛰쳐나갔다. “…그러나 요셉은, 붙잡힌 자기의 옷을 그의 손에 버려 둔 채, 뿌리치고 집 바깥으로 뛰어나갔다(새번역_12절).”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단호했던 행동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다. “모함”….자신의 유혹을 면전박대한 요셉에게 보디발의 아내는 버려두고 간 옷을 빌미로 자신을 범하려 했다며 되려 모함한다. 그녀의 종들을 불러 ‘히브리 사람(녀석)’이라는 말로 이 모함에 함께 동조하게 하였다(11, 14절). 결국 요셉은 보디발의 감옥에 갇히고 만다(20절).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발버둥치면 하나님께서 은헤를 주셔서 모든 일이 다 잘될 줄 아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형통”이다. 그런데 요셉을 형통하게 하셨다고 하는데, 이런 ‘형통’이라니… 형들에게서 노예로 팔리고, 종살이 하는 집에서 여주인에게 모함을 받아 옥에 갇히는 것이 형통이라니…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은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오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는 일들 이었다. 장차 아브라함의 자손을 민족으로 이루게 하시려고 필요한 보금자리, 보호처를 마련하시려는 하나님의 이끄심이었다.
-그렇다! 하나님의 “돌보심(형통)”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 베푸시는 은혜다. 비록 예상치 못한 노예생활, 모함을 받아 감옥생활에 처할 지라도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돌보심”은 적재적소에서 가시적으로 나타나 “하나님의 돌보심”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곧 “형통”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 위해 나의 삶의 모든 현장에서 드러나는 “돌보심”이 곧 형통이다. 만사형통은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이 나의 삶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형통은 내가 바라고 원하는 일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라고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용하시는 이를 어떤 상황에서도 “돌보아” 주심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과정을 채우시는 것을 말한다. 설사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악함과 직면하여도, 구조적인 완악함 속에서 처절한 고통 속에 처해 질지라도, 그 가운데서 “돌보아 주신다”.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 이루어지도록 말이다.
-또 묵상하면서 요셉의 관점에서 보자면, 하나님께서는 그처럼 억울한 지경에 처한 상황에서도 “그의 손에 위탁(4, 6, 22, 23절)” 받게 한 것을 최선의 노력을 하게 하시고 최상의 결과를 맺게 하심으로 “돌보심”의 구체적인 증거를 보이셨다.
-하나님의 “돌보심(형통)”은 그의 손에 위탁된 모든 일을 통해 열매로 드러난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속에서도 자신의 능력이 드러나는 것보다 하나님의 돌보심이 들어나는 사람이다. 자시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이름 앞에 정직하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겉옷까지라도 버려두고 도망칠 만큼 지켜야 할 선을 단호하게 지키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놀라운 “돌보심(형통)”이 나의 삶에도 이미 임했다. 주님으로 인해 이미 이런 살을 살고 있다. 하지만 요셉의 이야기는 나를 되돌아 보게 한다. 하나님의 돌보심 안에 살고 있는 나는 과연 요셉과 같은 하나님 앞에서 죄에 대한 “단호함”이 있을까? 뿐만 아니라 모함 받은 그 억울함을 그대로 감당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이끄시는 것임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래서 요셉의 모습은 큰 울림을 준다. 하나님의 돌보심(형통)의 삶은 예기치 못한 어려움과 오해와 억울함 속에서도 낙망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고 기다리는 삶이다. 그것이 바로 형통(돌보심)을 입는 삶이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돌보심을 보디발과 간수가 제대로 보았다는 점을 간과 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형통의 사람은 타인이 먼저 그 형통함을 볼 수 있는 사람이다. 가까이에서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통함(돌보심)을 입고 있는 것’을 먼저 본다.
*또 이 하나님의 돌보심이 손해나 도전이 아니라 유익함을 알았기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사람”임을 이야기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요셉을 통해 주인의 집을 잘 되게 하셨고, 감옥의 사무도 능숙하게 감당하게 하셨다. 이를 통해 그 집이 복을 받았고, 감옥의 일머리가 잡혔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심으로 이루어주시는 돌보심(형통)이다.
*감히 간절히 구해본다.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아 주셔서, 하나님의 뜻이 더온누리교회를 통해 세상에 선명하게 드러나게 해주시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여 주시고,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심으로” 더온누리교회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믿는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가는 시간 속에서 더욱 더 단호하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이것이 혹 억울한 일을 만나게 하여도, 모함을 당하게 하여도, 올곧게 하나님의 이끄심을 신뢰하며 인내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래본다.
*”형통”,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까지 세밀하게 간섭하시는 “돌보심”이다. 형통은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내 삶의 형통은 나의 성공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하나님의 돌보심이 드러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내가 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오만해 하지 말자.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돌보아 주심으로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이다. 다만, 나의 손에 맡겨진 것을 정직함과 성실함으로 땀 흘리기를 주저하지 말자… 오늘도 그렇게 흘릴 땀을 기대하자…
1.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으로(2, 3, 5, 21, 23절)
39장에서 가장 많이 반복하여 사용 되었다. 요셉은 훗날 자신의 삶을 고백하고 회고할 때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일하심”을 절절히 고백한 것을 보면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은 노예 요셉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형통한 자가 되어(2-3절), 형통하게( 23절)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으로 요셉은 ‘형통한 자가 되었다.’ 새번역은 ‘앞길이 잘 열리도록 그를 돌보셨다(2절)’, ‘하는 일마다 잘 되도록 주님께서 돌보신다는 것을(3절)’ 으로 번역했다. 23절도 ‘주님께서 요셉을 돌보셔서 그가 하는 일은 무엇이나 다 잘 되게 해주셨다’로 번역했다.
요셉의 이야기에서 사용 되는 “형통”의 의미가 익히 알고 있는 형통의 의미와 다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따라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돌보신다”. 이것이 형통이다. 삶을 살다보면 예기치 않은 일을 만나고, 돌발 변수에 큰 혼란을 겪기도 한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 큰 곤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를 “돌보아 주시는 것” 이것이 형통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돌보아 주실까?
3.주인이 보고, 간수장의 눈에 들었다(3, 21절)
보디발은 “….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며, 요셉이 하는 일마다 잘 되도록 주님께서 돌보신다는 것을 알았다. 주인은, 요셉이 눈에 들어서, 그를 심복으로 삼고, 집안 일과 재산을 모두 요셉에게 맡겨 관리하게 하였다(새번역_3-4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애굽사람 보디발은 요셉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요셉의 하나님의 실존을 인정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일하심을 깨달은 보디발의 집에 더욱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일하셨다는 것이다(새번역_5-6절). 보디발은 요셉을 통해 요셉의 성실함과 준수함과 능력이 그의 하나님의 “돌보심”임을 알았다. 그것을 보았다.
간수장도 마찬가지다. “간수장은 요셉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아무것도 간섭하지 않았다. 그렇게 된 것은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며, 주님께서 요셉을 돌보셔서, 그가 하는 일은 무엇이나 다 잘 되게 해주셨기 때문이다(새번역_23).”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형통”하게 되는 것은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존재감”이 그 사람을 통해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런 존재감은 결국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요셉의 모습처럼, “하나님 앞에서” 생활하는 실제를 통해 증거 된다.
4.요셉의 유혹에 대한 단호함(9절)
요셉은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주인 보디발에게 은혜를 입어 노예 였지만 집안 관리자로서 일을 하게 된다. 안정적인 삶이 정착되나 싶었으나 또 예기치 않은 위기가 닥친다.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한 것이다. 이 유혹은 한 두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집요하게 계속 요구되었다(7, 10절). 하지만 요셉은 이 유혹에 대하여 단호했다. 보디발에 대한 충성심 뿐 아니라 “…내가 어찌 이런 나쁜 일을 저질러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새번역_9절)”
하지만 집요한 유혹은 마침내 모함에까지 이르게 된다. 문맥의 흐름상 보디발의 아내는 일부러 주변의 종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요셉을 불러 노골적으로 유혹한다. 하지만 요셉은 자신의 옷을 붙잡고 늘어지는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 겉옷조차 팽개치고 뛰쳐나갔다. “…그러나 요셉은, 붙잡힌 자기의 옷을 그의 손에 버려 둔 채, 뿌리치고 집 바깥으로 뛰어나갔다(새번역_12절).”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단호했던 행동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다. “모함”….자신의 유혹을 면전박대한 요셉에게 보디발의 아내는 버려두고 간 옷을 빌미로 자신을 범하려 했다며 되려 모함한다. 그녀의 종들을 불러 ‘히브리 사람(녀석)’이라는 말로 이 모함에 함께 동조하게 하였다(11, 14절). 결국 요셉은 보디발의 감옥에 갇히고 만다(20절).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발버둥치면 하나님께서 은헤를 주셔서 모든 일이 다 잘될 줄 아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형통”이다. 그런데 요셉을 형통하게 하셨다고 하는데, 이런 ‘형통’이라니… 형들에게서 노예로 팔리고, 종살이 하는 집에서 여주인에게 모함을 받아 옥에 갇히는 것이 형통이라니…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은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오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는 일들 이었다. 장차 아브라함의 자손을 민족으로 이루게 하시려고 필요한 보금자리, 보호처를 마련하시려는 하나님의 이끄심이었다.
-그렇다! 하나님의 “돌보심(형통)”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 베푸시는 은혜다. 비록 예상치 못한 노예생활, 모함을 받아 감옥생활에 처할 지라도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돌보심”은 적재적소에서 가시적으로 나타나 “하나님의 돌보심”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곧 “형통”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 위해 나의 삶의 모든 현장에서 드러나는 “돌보심”이 곧 형통이다. 만사형통은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이 나의 삶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형통은 내가 바라고 원하는 일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라고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용하시는 이를 어떤 상황에서도 “돌보아” 주심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과정을 채우시는 것을 말한다. 설사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악함과 직면하여도, 구조적인 완악함 속에서 처절한 고통 속에 처해 질지라도, 그 가운데서 “돌보아 주신다”.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 이루어지도록 말이다.
-또 묵상하면서 요셉의 관점에서 보자면, 하나님께서는 그처럼 억울한 지경에 처한 상황에서도 “그의 손에 위탁(4, 6, 22, 23절)” 받게 한 것을 최선의 노력을 하게 하시고 최상의 결과를 맺게 하심으로 “돌보심”의 구체적인 증거를 보이셨다.
-하나님의 “돌보심(형통)”은 그의 손에 위탁된 모든 일을 통해 열매로 드러난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속에서도 자신의 능력이 드러나는 것보다 하나님의 돌보심이 들어나는 사람이다. 자시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이름 앞에 정직하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겉옷까지라도 버려두고 도망칠 만큼 지켜야 할 선을 단호하게 지키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놀라운 “돌보심(형통)”이 나의 삶에도 이미 임했다. 주님으로 인해 이미 이런 살을 살고 있다. 하지만 요셉의 이야기는 나를 되돌아 보게 한다. 하나님의 돌보심 안에 살고 있는 나는 과연 요셉과 같은 하나님 앞에서 죄에 대한 “단호함”이 있을까? 뿐만 아니라 모함 받은 그 억울함을 그대로 감당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이끄시는 것임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래서 요셉의 모습은 큰 울림을 준다. 하나님의 돌보심(형통)의 삶은 예기치 못한 어려움과 오해와 억울함 속에서도 낙망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고 기다리는 삶이다. 그것이 바로 형통(돌보심)을 입는 삶이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돌보심을 보디발과 간수가 제대로 보았다는 점을 간과 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형통의 사람은 타인이 먼저 그 형통함을 볼 수 있는 사람이다. 가까이에서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통함(돌보심)을 입고 있는 것’을 먼저 본다.
*또 이 하나님의 돌보심이 손해나 도전이 아니라 유익함을 알았기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사람”임을 이야기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요셉을 통해 주인의 집을 잘 되게 하셨고, 감옥의 사무도 능숙하게 감당하게 하셨다. 이를 통해 그 집이 복을 받았고, 감옥의 일머리가 잡혔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심으로 이루어주시는 돌보심(형통)이다.
*감히 간절히 구해본다.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아 주셔서, 하나님의 뜻이 더온누리교회를 통해 세상에 선명하게 드러나게 해주시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여 주시고,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심으로” 더온누리교회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믿는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가는 시간 속에서 더욱 더 단호하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이것이 혹 억울한 일을 만나게 하여도, 모함을 당하게 하여도, 올곧게 하나님의 이끄심을 신뢰하며 인내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래본다.
*”형통”,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까지 세밀하게 간섭하시는 “돌보심”이다. 형통은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내 삶의 형통은 나의 성공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하나님의 돌보심이 드러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내가 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오만해 하지 말자.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돌보아 주심으로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이다. 다만, 나의 손에 맡겨진 것을 정직함과 성실함으로 땀 흘리기를 주저하지 말자… 오늘도 그렇게 흘릴 땀을 기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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