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물러섬 없는 은혜 [이사야 31:1-9]
– 2026년 08월 22일
– 2026년 08월 22일 –
31장은 아직도 애굽을 의지하려 하는 유다를 책망하며 앗수르의 패망을 예언함으로 애굽을 더이상 의지하지 말라는 말씀을 강조한다. 앗수르의 계속되는 위협 앞에서 유다 지도자들이 애굽과 군사동맹을 맺어 의지하려 했던 상황에서 하나님은 그것이 오히려 화를 불러오는 행위임을 경고하신다.
31장 전체 내용의 흐름은 이렇다.
1-3절 : 애굽을 의지하는 유다를 책망하심
4-5절 :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호하심
6-7절 :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촉구
8-9절 : 앗수르 패망 예언
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애굽을 의지하려는 자들을 책망하신다. 선지서에 많이 등장하는 ‘화 있을진저’로 시작하는 형식의 글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애굽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강력하게 지적하고 계신다. 그들은 하나님을 앙모하지 않고 구하지도 않는 자들이다.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악행하는 자들과 그를 돕는 자들을 치실 것이다(2절).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들이 보고 있는 애굽도 사람일 뿐이고 그들의 말들도 육체일 뿐인 것을 기억하게 하신다(3절). 결국 그들은 엎드러져 멸망하게 될 것이다.
– 내게 주시는 말씀
– 눈 앞에 다가온 위기의 순간, 그럴 때일수록 사람의 힘과 방법보다 하나님을 먼저 의지해야 한다. 위기의 순간에 내가 떠올리는 것은 사람의 도움인가 하나님인가.
– 눈에 보이는 능력이 커보여도 그것이 꼭 내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 눈 앞에 애굽이 보일 수 있다. 많은 말과 병거가 보이고 손만 내밀면 나를 도와줄 것 같지만 내가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그 모든 것들도 다 헛된 것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4-5절에서 하나님은 애굽을 의지하려 하는 유다를 책망하신 후 그 책망의 이유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호하시는 것에 있음을 알게 하신다.
5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뛰어넘어 구원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보호하시겠다고 하신다.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계셨고 앞으로도 계속 함께 하실 것이었다. 그것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려 하고 눈에 보이는 것에 도움을 얻으려 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것이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 내게 주시는 말씀
– 하나님은 언제나 자기 백성을 강하고 신실하게 보호하신다. 그래서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위협이 크고, 눈에 보이는 도움도 커보이지만 무엇보다 위대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그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심을 믿는 자기 백성을 하나님은 강하고 신실하게 보호하신다. 나를 그렇게 보호하실 것이다. 내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위대하신 하나님께 더욱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한다.
6-7절은 이제 예루살렘에게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명령한다.
6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라 촉구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섬겼지만 ‘하나님만’ 섬기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도’ 섬기고 가나안의 우상도 섬겼다. 하나님은 그것을 거역이고 음행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것을 심판하시면서도 계속해서 ‘돌아오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이사야서에서, 선지서들 안에서 계속해서 표현되고 있다.
– 내게 주시는 말씀
– 돌아오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뿐 아니라 오늘을 사는 나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음성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다른 신을 함께 섬겼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싫어하셨듯 내가 오늘을 살면서 하나님도 섬기고 돈과 명예도 섬기는 그 모습을 하나님은 싫어하신다. 그 삶에서 온전히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말씀하신다. 그 음성에 순종해야 한다.
이 모든 말씀을 하는 이유가 8-9절에서 말하는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엎드러지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8 앗수르는 칼에 엎드러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니겠고 칼에 삼켜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닐 것이며 그는 칼 앞에서 도망할 것이요 그의 장정들은 복역하는 자가 될 것이라
엉뚱한 것을 의지하려 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그들을 하나님께서 보호하고 계심을 다시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명령하신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승리하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위대해 보이는 앗수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것이었다.
9 그의 반석은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물러가겠고 그의 고관들은 기치로 말미암아 놀라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여호와의 불은 시온에 있고 여호와의 풀무는 예루살렘에 있느니라
앗수르는 물러갈 것이나 여호와의 불과 풀무는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백성을 보호하실 것이며 그 하나님의 손길을 결코 물러서지 않으실 것이다. 앗수르의 반석은 겨우 ‘두려움’ 때문에 물러나지만 하나님의 보호는 어떤 위협 앞에서도 물러섬이 없는 보호하심이다. 결국 승리는 인간적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에 달려 있는 것이다.
앗수르는 강하고 위대해 보였지만 영원할 수 없었다. 하나님 앞에서 앗수르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이러저리 치이는 약소국의 신으로 존재하셨지만 세상 그 어떤 신보다, 그 어떤 나라보다 위대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인도와 보호하심은 결코 물러섬이 없다.
– 내게 주시는 말씀
– 내가 강하다고 느끼는 것이 영원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신다. 내 건강, 내 재산이나 명예, 혹은 친구나 아는 사람, 내가 의지할만한 그 어떤 것도 영원할 수 없다. 영원한 것은 오직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이다.
– 물러섬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깨달으라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한번도 언약을 지키지 않은 적이 없고 약속을 뒤집지도 않으셨다.
의지할 것은 하나님 밖에 없음을 다시 한 번 말씀하신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이고 그렇게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시며 내 마음을 점검하라고 하신다. 진짜 알고 있는가. 진짜 믿고 있는가.
마음을 돌아보며 내가 눈에 보이는 것을 더 의지하는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 의지하는지 돌아보라 하신다. 세상은 변하고 내 마음도, 내가 의지하는 다른 것들도 영원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물러섬이 없고 흔들리지 않음을 기억하라 하신다.
31장 전체 내용의 흐름은 이렇다.
1-3절 : 애굽을 의지하는 유다를 책망하심
4-5절 :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호하심
6-7절 :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촉구
8-9절 : 앗수르 패망 예언
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애굽을 의지하려는 자들을 책망하신다. 선지서에 많이 등장하는 ‘화 있을진저’로 시작하는 형식의 글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애굽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강력하게 지적하고 계신다. 그들은 하나님을 앙모하지 않고 구하지도 않는 자들이다.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악행하는 자들과 그를 돕는 자들을 치실 것이다(2절).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들이 보고 있는 애굽도 사람일 뿐이고 그들의 말들도 육체일 뿐인 것을 기억하게 하신다(3절). 결국 그들은 엎드러져 멸망하게 될 것이다.
– 내게 주시는 말씀
– 눈 앞에 다가온 위기의 순간, 그럴 때일수록 사람의 힘과 방법보다 하나님을 먼저 의지해야 한다. 위기의 순간에 내가 떠올리는 것은 사람의 도움인가 하나님인가.
– 눈에 보이는 능력이 커보여도 그것이 꼭 내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 눈 앞에 애굽이 보일 수 있다. 많은 말과 병거가 보이고 손만 내밀면 나를 도와줄 것 같지만 내가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그 모든 것들도 다 헛된 것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4-5절에서 하나님은 애굽을 의지하려 하는 유다를 책망하신 후 그 책망의 이유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호하시는 것에 있음을 알게 하신다.
5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뛰어넘어 구원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보호하시겠다고 하신다.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계셨고 앞으로도 계속 함께 하실 것이었다. 그것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려 하고 눈에 보이는 것에 도움을 얻으려 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것이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 내게 주시는 말씀
– 하나님은 언제나 자기 백성을 강하고 신실하게 보호하신다. 그래서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위협이 크고, 눈에 보이는 도움도 커보이지만 무엇보다 위대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그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심을 믿는 자기 백성을 하나님은 강하고 신실하게 보호하신다. 나를 그렇게 보호하실 것이다. 내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위대하신 하나님께 더욱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한다.
6-7절은 이제 예루살렘에게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명령한다.
6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라 촉구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섬겼지만 ‘하나님만’ 섬기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도’ 섬기고 가나안의 우상도 섬겼다. 하나님은 그것을 거역이고 음행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것을 심판하시면서도 계속해서 ‘돌아오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이사야서에서, 선지서들 안에서 계속해서 표현되고 있다.
– 내게 주시는 말씀
– 돌아오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뿐 아니라 오늘을 사는 나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음성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다른 신을 함께 섬겼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싫어하셨듯 내가 오늘을 살면서 하나님도 섬기고 돈과 명예도 섬기는 그 모습을 하나님은 싫어하신다. 그 삶에서 온전히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말씀하신다. 그 음성에 순종해야 한다.
이 모든 말씀을 하는 이유가 8-9절에서 말하는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엎드러지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8 앗수르는 칼에 엎드러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니겠고 칼에 삼켜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닐 것이며 그는 칼 앞에서 도망할 것이요 그의 장정들은 복역하는 자가 될 것이라
엉뚱한 것을 의지하려 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그들을 하나님께서 보호하고 계심을 다시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명령하신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승리하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위대해 보이는 앗수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것이었다.
9 그의 반석은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물러가겠고 그의 고관들은 기치로 말미암아 놀라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여호와의 불은 시온에 있고 여호와의 풀무는 예루살렘에 있느니라
앗수르는 물러갈 것이나 여호와의 불과 풀무는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백성을 보호하실 것이며 그 하나님의 손길을 결코 물러서지 않으실 것이다. 앗수르의 반석은 겨우 ‘두려움’ 때문에 물러나지만 하나님의 보호는 어떤 위협 앞에서도 물러섬이 없는 보호하심이다. 결국 승리는 인간적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에 달려 있는 것이다.
앗수르는 강하고 위대해 보였지만 영원할 수 없었다. 하나님 앞에서 앗수르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이러저리 치이는 약소국의 신으로 존재하셨지만 세상 그 어떤 신보다, 그 어떤 나라보다 위대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인도와 보호하심은 결코 물러섬이 없다.
– 내게 주시는 말씀
– 내가 강하다고 느끼는 것이 영원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신다. 내 건강, 내 재산이나 명예, 혹은 친구나 아는 사람, 내가 의지할만한 그 어떤 것도 영원할 수 없다. 영원한 것은 오직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이다.
– 물러섬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깨달으라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한번도 언약을 지키지 않은 적이 없고 약속을 뒤집지도 않으셨다.
의지할 것은 하나님 밖에 없음을 다시 한 번 말씀하신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이고 그렇게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시며 내 마음을 점검하라고 하신다. 진짜 알고 있는가. 진짜 믿고 있는가.
마음을 돌아보며 내가 눈에 보이는 것을 더 의지하는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 의지하는지 돌아보라 하신다. 세상은 변하고 내 마음도, 내가 의지하는 다른 것들도 영원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물러섬이 없고 흔들리지 않음을 기억하라 하신다.
+ 기도제목
–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그 어떤 것보다 더 위대함을 기억하게 하시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마음을 주소서.
– 모든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섬기는 마음과 삶의 태도에서 하나님께 온전히 돌아오게 하소서.
– 하나님의 은혜를 결코 물러섬이 없음을 기억하게 하시고 모든 상황과 환경 안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게 하소서.
– 모든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섬기는 마음과 삶의 태도에서 하나님께 온전히 돌아오게 하소서.
– 하나님의 은혜를 결코 물러섬이 없음을 기억하게 하시고 모든 상황과 환경 안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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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8월 24일
시온성을 보는 눈
[이사야 33:1-24]
28-35장의 화 있을진저로 시작되는 6부분의 마지막 부분이다.
화 있을진저라는 표현은 신약에서 마23장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예수님이 꾸짖으신 적이 있는 표현이다. 33장의 전체적인 내용을 봤을 때, 역사적 관점에서 앗수르의 압제에서 구원하시고 시온을 회복하시는 내용으로 보여지기도 하지만, 앗수르를 정확히 말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본문의 표현들이 종말론적인 부분을(4절, 5절, 10절, 14절, 20절, 22절) 많이 언급하고 있어서, 현재 우리 상황에서 미래에 이루어질 종말에 초점을 맞추어서 보고자 한다.
1-6절 학대하는 자로부터 주의 백성들의 구원요청
1절 학대하는 자는 당시 앗수르를 가르키는 것 같지만, 앗수르를 포함한 이 땅의 권력과 힘을 쥐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박해하는 모든 세력을 말한다.
2절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탄원시 같은 표현이 나온다.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란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어달라고 요청한다. 이 요청의 대상이 여호와 이신데, 이 여호와가 곧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4절의 황충과 메뚜기는 하나님의 징계나 심판 환란때에 자주 나오는 표현이다. 대표적으로 요엘에서 황충같은 군대, 계시록에도 비슷한 의미로 사용이된다.
결국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요청에 의해서 환란으로부터 구원하시고 정의와 공의를 시온에 충만하게 하신다.(5절) 그리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그의 백성들에게 평안함을 허락하실 것이다.(6절)
7-16절 여호와의 개입과 주의 백성을 보호하심
7-9절은 앞부분의 상황보다 더욱 악화된 상황을 보여준다. 대로가 황폐하고 행인이 끊어지며, 조약이 파기되고,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다. 백향목이 울창해야 할 레바논은 마르고, 비옥한 평야인 샤론은 사막과 같이 되고, 바산과 갈멜은 목축이 유명할 만큼 초목이 풍성했는데 황폐해 진다.
10절 이러한 황폐한 가운데 여호와께서 개입하신다. 10절은 ‘이제’라는 표현을 3번 연달아 말하며 하나님께서 개입하고 11-14절까지 육체와 이땅의 불타없어질 것을 의지했던 열방들을 불로 심판할 것을 말씀한다
15절 이 불심판 가운데 6가지의 하나님의 뜻대로 거하는 사람많이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높은 곳 시온산에서 보호하심을 받는다.
16절 말씀은 엘리야가 몸을 숨긴 그릿 시냇가 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돌보신 것을 연상하게 한다. 엘리야는 까마귀의 음식과 시냇가 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의 만나와 반석의 물로 공급하셨다. 중요한 것은 엘리야나 광야의 것은 다중단이 되었지만 본문은 그의 물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라고 말씀하신다.
17-24절 시온에 계신 우리의 왕
17절 마침내 그렇게도 기다리던 왕을 뵙게 된다.
20절 광야의 장막과 같지 아니한 옮겨지지 아니하는 장막인 안정된 처소인 예루살렘을 보게 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위엄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고(21절) 재판장이며 입법자시며 왕이 되시고 구원자가 되신다.(22절) 이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또 백성은 병과 죄가 제하여질 것이다.(24절)
전체적인 내용이 계시록의 전개와 유사하다. 4절의 황충은 계시록 9장의 다섯 번째 나팔에서의 전갈의 권세를 받은 황충 그리고 14절의 불로 심판하시는 내용은 계시록19장의 바벨론의 패망, 20절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은 계시록 21장의 새예루살렘 성등이 그러하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상황과 유사하다고 볼수 있다. 세상의 열강들과 나라는 영원한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소망하는 자들을 학대하고, 속이고 있으며, 우리의 마음과 믿음을 빼앗아 가려고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구하고, 예수님이 이루실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는 신자들은 심령에 불타지 않는 영적인 믿음을 가지고 인내하며, 환란을 통하여 연단받고, 통과하여 정결한 믿음으로 옮겨지지 아니할 영원한 장막을 소망해야 할 것 이다. 그곳에서 공의와 정의가 충만하신 우리 예수님께서 재판장, 입법자, 왕으로 서실 것이며, 그의 백성들은 아픈 것이나 죄의 저주가 없는 상태로(사33:24, 계21:3, 계22:3) 영원토록 살게 될 것이다.
화 있을진저라는 표현은 신약에서 마23장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예수님이 꾸짖으신 적이 있는 표현이다. 33장의 전체적인 내용을 봤을 때, 역사적 관점에서 앗수르의 압제에서 구원하시고 시온을 회복하시는 내용으로 보여지기도 하지만, 앗수르를 정확히 말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본문의 표현들이 종말론적인 부분을(4절, 5절, 10절, 14절, 20절, 22절) 많이 언급하고 있어서, 현재 우리 상황에서 미래에 이루어질 종말에 초점을 맞추어서 보고자 한다.
1-6절 학대하는 자로부터 주의 백성들의 구원요청
1절 학대하는 자는 당시 앗수르를 가르키는 것 같지만, 앗수르를 포함한 이 땅의 권력과 힘을 쥐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박해하는 모든 세력을 말한다.
2절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탄원시 같은 표현이 나온다.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란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어달라고 요청한다. 이 요청의 대상이 여호와 이신데, 이 여호와가 곧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4절의 황충과 메뚜기는 하나님의 징계나 심판 환란때에 자주 나오는 표현이다. 대표적으로 요엘에서 황충같은 군대, 계시록에도 비슷한 의미로 사용이된다.
결국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요청에 의해서 환란으로부터 구원하시고 정의와 공의를 시온에 충만하게 하신다.(5절) 그리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그의 백성들에게 평안함을 허락하실 것이다.(6절)
7-16절 여호와의 개입과 주의 백성을 보호하심
7-9절은 앞부분의 상황보다 더욱 악화된 상황을 보여준다. 대로가 황폐하고 행인이 끊어지며, 조약이 파기되고,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다. 백향목이 울창해야 할 레바논은 마르고, 비옥한 평야인 샤론은 사막과 같이 되고, 바산과 갈멜은 목축이 유명할 만큼 초목이 풍성했는데 황폐해 진다.
10절 이러한 황폐한 가운데 여호와께서 개입하신다. 10절은 ‘이제’라는 표현을 3번 연달아 말하며 하나님께서 개입하고 11-14절까지 육체와 이땅의 불타없어질 것을 의지했던 열방들을 불로 심판할 것을 말씀한다
15절 이 불심판 가운데 6가지의 하나님의 뜻대로 거하는 사람많이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높은 곳 시온산에서 보호하심을 받는다.
16절 말씀은 엘리야가 몸을 숨긴 그릿 시냇가 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돌보신 것을 연상하게 한다. 엘리야는 까마귀의 음식과 시냇가 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의 만나와 반석의 물로 공급하셨다. 중요한 것은 엘리야나 광야의 것은 다중단이 되었지만 본문은 그의 물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라고 말씀하신다.
17-24절 시온에 계신 우리의 왕
17절 마침내 그렇게도 기다리던 왕을 뵙게 된다.
20절 광야의 장막과 같지 아니한 옮겨지지 아니하는 장막인 안정된 처소인 예루살렘을 보게 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위엄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고(21절) 재판장이며 입법자시며 왕이 되시고 구원자가 되신다.(22절) 이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또 백성은 병과 죄가 제하여질 것이다.(24절)
전체적인 내용이 계시록의 전개와 유사하다. 4절의 황충은 계시록 9장의 다섯 번째 나팔에서의 전갈의 권세를 받은 황충 그리고 14절의 불로 심판하시는 내용은 계시록19장의 바벨론의 패망, 20절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은 계시록 21장의 새예루살렘 성등이 그러하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상황과 유사하다고 볼수 있다. 세상의 열강들과 나라는 영원한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소망하는 자들을 학대하고, 속이고 있으며, 우리의 마음과 믿음을 빼앗아 가려고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구하고, 예수님이 이루실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는 신자들은 심령에 불타지 않는 영적인 믿음을 가지고 인내하며, 환란을 통하여 연단받고, 통과하여 정결한 믿음으로 옮겨지지 아니할 영원한 장막을 소망해야 할 것 이다. 그곳에서 공의와 정의가 충만하신 우리 예수님께서 재판장, 입법자, 왕으로 서실 것이며, 그의 백성들은 아픈 것이나 죄의 저주가 없는 상태로(사33:24, 계21:3, 계22:3) 영원토록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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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8월 23일
곤비한 땅 큰 바위 그늘
[이사야 32:1-20]
본문의 배경은 히스기야 시대의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앞서,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잠드는 영’(27:10)을 보내셔서 깊은 잠에 빠지게 하신다고 하셨다. 이는 곧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을 떠난 것임을 의미하며, 유다는 하나님이 아닌 앗수르를 섬기는 것을 공식화하였고 정의와 공의는 이미 무너져 있는 상황이었다.
1. 장차 오실 한 왕의 통치(1-8절)
징치 오실 ‘한 왕’이 소개된다. 그는 ‘공의와 정의’로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것이다.(1절) 지금까지 나왔던 인간의 모든 노력으로는 온전한 회복이 불가능함을 전제하고 있다. 이 왕은 광풍을 피하는 곳, 마른 땅의 냇물, 곤비한 땅에 큰 바위와 같다고 말한다.(2절) 이는 곧 광폭한 앗수르와 애굽의 압제 속에 있던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진정한 회복과 안정감이 되실 것을 의미한다.
3-8절에는, 이로 인한 실제적인 변화를 묘사한다. 감긴 눈, 듣지 못하는 귀, 조급한 마음, 어눌한 혀가 모두 회복된다. (3-4절) 이로 인해, 더 이상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지지 않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떠난 이에게는 심판을, 존귀한 사람은 존귀하게 인정받는 바른 가치와 하나님의 통치가 회복된다. (7-8절)
2.하나님의 심판(9-14)
이사야는 나아가 현재 남유다가 의지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안일함과 염려 없는 태도를 책망한다.(9절) 오히려 이사야는 염려가 없는 사람들을 향하여 포도 수확은 없을 것이며 당황과 어려움이 있게될 것을 예언한다. (12절) 이로 인해 그 땅에서는 가시와 찔레가 나며(사5:6) 그들이 살아갔던 모든 삶의 자리는 황폐하게될 것이다.(13-14절)
3.위로부터 내리는 영(15-20)
15절부터는, 다시 회복의 메세지가 주어진다. 이는 곧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부어주심’을 통해 시작된다. 곧, 인간의 노력, 개입은 전혀 없고 하나님께서 위에서부터 시작되는 영을 통해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신다. 이로 인해,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자 숲으로 회복될 것이다. (16절) 이는 다시 1절에 나왔던, ‘장차 오실 한 왕’을 통해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정의로 통치하는 때가 시작됨을 말한다. 이를 통해, 공동체 안에는 화평과 안전이 있다. 그 공의와 정의 결과는, 어디에든지 편히 씨를 뿌리며, 소와 나귀를 어디로든지 몰게 된다. (30절)
나는?
–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그 온전한 회복은 언제인지 다시금 묻게 된다. 예수님은 이 땅에 이미 오셨고, 회복하셨건만 세상의 광폭한 지배는 멈추지를 않는다. 겉만 보고 있을 때에는, 상세히 모르지만 깊이 들어갈수록 이 세상의 권력과 왕의 통치가 얼마나 악하고 수많은 이들이 비틀거리고 있는지를 마주한다. 이같은 상황 속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에수 그리스도의 통치와 다스림, 오늘 이 자리에 임했건만 이 답답함과 괴로움은 언제까지일까 생각하게 된다.
– 그러나 다시 한 번 15절의 말씀과 같이 ‘위로부터 내리는 그 영’을 생각한다. 폭우가 올 때에 우리를 가려주시는 우산이 되시며, 마른 땅에 냇물이 되신다고 말씀하신다. 최근처럼 더운 이 날에, 큰 바위 그늘이 우리 예수님이심을 말씀하신다. 다시금 그 주님께서만 주시는 진정한 평안을 구해야함을 꺠닫는다. 동시에, 내가 가공하고 만들어내는 평안은 점차 사라져야함을 보게 된다.
– 결국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그저 꽃길이 아님을 본다. 흔들리는 하루하루의 삶, 우리의 감정의 기복 속에도 이끄시는 하나님이심을 보게 된다.
1. 장차 오실 한 왕의 통치(1-8절)
징치 오실 ‘한 왕’이 소개된다. 그는 ‘공의와 정의’로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것이다.(1절) 지금까지 나왔던 인간의 모든 노력으로는 온전한 회복이 불가능함을 전제하고 있다. 이 왕은 광풍을 피하는 곳, 마른 땅의 냇물, 곤비한 땅에 큰 바위와 같다고 말한다.(2절) 이는 곧 광폭한 앗수르와 애굽의 압제 속에 있던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진정한 회복과 안정감이 되실 것을 의미한다.
3-8절에는, 이로 인한 실제적인 변화를 묘사한다. 감긴 눈, 듣지 못하는 귀, 조급한 마음, 어눌한 혀가 모두 회복된다. (3-4절) 이로 인해, 더 이상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지지 않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떠난 이에게는 심판을, 존귀한 사람은 존귀하게 인정받는 바른 가치와 하나님의 통치가 회복된다. (7-8절)
2.하나님의 심판(9-14)
이사야는 나아가 현재 남유다가 의지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안일함과 염려 없는 태도를 책망한다.(9절) 오히려 이사야는 염려가 없는 사람들을 향하여 포도 수확은 없을 것이며 당황과 어려움이 있게될 것을 예언한다. (12절) 이로 인해 그 땅에서는 가시와 찔레가 나며(사5:6) 그들이 살아갔던 모든 삶의 자리는 황폐하게될 것이다.(13-14절)
3.위로부터 내리는 영(15-20)
15절부터는, 다시 회복의 메세지가 주어진다. 이는 곧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부어주심’을 통해 시작된다. 곧, 인간의 노력, 개입은 전혀 없고 하나님께서 위에서부터 시작되는 영을 통해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신다. 이로 인해,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자 숲으로 회복될 것이다. (16절) 이는 다시 1절에 나왔던, ‘장차 오실 한 왕’을 통해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정의로 통치하는 때가 시작됨을 말한다. 이를 통해, 공동체 안에는 화평과 안전이 있다. 그 공의와 정의 결과는, 어디에든지 편히 씨를 뿌리며, 소와 나귀를 어디로든지 몰게 된다. (30절)
나는?
–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그 온전한 회복은 언제인지 다시금 묻게 된다. 예수님은 이 땅에 이미 오셨고, 회복하셨건만 세상의 광폭한 지배는 멈추지를 않는다. 겉만 보고 있을 때에는, 상세히 모르지만 깊이 들어갈수록 이 세상의 권력과 왕의 통치가 얼마나 악하고 수많은 이들이 비틀거리고 있는지를 마주한다. 이같은 상황 속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에수 그리스도의 통치와 다스림, 오늘 이 자리에 임했건만 이 답답함과 괴로움은 언제까지일까 생각하게 된다.
– 그러나 다시 한 번 15절의 말씀과 같이 ‘위로부터 내리는 그 영’을 생각한다. 폭우가 올 때에 우리를 가려주시는 우산이 되시며, 마른 땅에 냇물이 되신다고 말씀하신다. 최근처럼 더운 이 날에, 큰 바위 그늘이 우리 예수님이심을 말씀하신다. 다시금 그 주님께서만 주시는 진정한 평안을 구해야함을 꺠닫는다. 동시에, 내가 가공하고 만들어내는 평안은 점차 사라져야함을 보게 된다.
– 결국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그저 꽃길이 아님을 본다. 흔들리는 하루하루의 삶, 우리의 감정의 기복 속에도 이끄시는 하나님이심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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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8월 22일
물러섬 없는 은혜
[이사야 31:1-9]
31장은 아직도 애굽을 의지하려 하는 유다를 책망하며 앗수르의 패망을 예언함으로 애굽을 더이상 의지하지 말라는 말씀을 강조한다. 앗수르의 계속되는 위협 앞에서 유다 지도자들이 애굽과 군사동맹을 맺어 의지하려 했던 상황에서 하나님은 그것이 오히려 화를 불러오는 행위임을 경고하신다.
31장 전체 내용의 흐름은 이렇다.
1-3절 : 애굽을 의지하는 유다를 책망하심
4-5절 :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호하심
6-7절 :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촉구
8-9절 : 앗수르 패망 예언
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애굽을 의지하려는 자들을 책망하신다. 선지서에 많이 등장하는 ‘화 있을진저’로 시작하는 형식의 글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애굽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강력하게 지적하고 계신다. 그들은 하나님을 앙모하지 않고 구하지도 않는 자들이다.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악행하는 자들과 그를 돕는 자들을 치실 것이다(2절).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들이 보고 있는 애굽도 사람일 뿐이고 그들의 말들도 육체일 뿐인 것을 기억하게 하신다(3절). 결국 그들은 엎드러져 멸망하게 될 것이다.
– 내게 주시는 말씀
– 눈 앞에 다가온 위기의 순간, 그럴 때일수록 사람의 힘과 방법보다 하나님을 먼저 의지해야 한다. 위기의 순간에 내가 떠올리는 것은 사람의 도움인가 하나님인가.
– 눈에 보이는 능력이 커보여도 그것이 꼭 내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 눈 앞에 애굽이 보일 수 있다. 많은 말과 병거가 보이고 손만 내밀면 나를 도와줄 것 같지만 내가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그 모든 것들도 다 헛된 것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4-5절에서 하나님은 애굽을 의지하려 하는 유다를 책망하신 후 그 책망의 이유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호하시는 것에 있음을 알게 하신다.
5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뛰어넘어 구원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보호하시겠다고 하신다.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계셨고 앞으로도 계속 함께 하실 것이었다. 그것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려 하고 눈에 보이는 것에 도움을 얻으려 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것이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 내게 주시는 말씀
– 하나님은 언제나 자기 백성을 강하고 신실하게 보호하신다. 그래서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위협이 크고, 눈에 보이는 도움도 커보이지만 무엇보다 위대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그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심을 믿는 자기 백성을 하나님은 강하고 신실하게 보호하신다. 나를 그렇게 보호하실 것이다. 내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위대하신 하나님께 더욱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한다.
6-7절은 이제 예루살렘에게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명령한다.
6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라 촉구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섬겼지만 ‘하나님만’ 섬기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도’ 섬기고 가나안의 우상도 섬겼다. 하나님은 그것을 거역이고 음행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것을 심판하시면서도 계속해서 ‘돌아오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이사야서에서, 선지서들 안에서 계속해서 표현되고 있다.
– 내게 주시는 말씀
– 돌아오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뿐 아니라 오늘을 사는 나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음성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다른 신을 함께 섬겼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싫어하셨듯 내가 오늘을 살면서 하나님도 섬기고 돈과 명예도 섬기는 그 모습을 하나님은 싫어하신다. 그 삶에서 온전히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말씀하신다. 그 음성에 순종해야 한다.
이 모든 말씀을 하는 이유가 8-9절에서 말하는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엎드러지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8 앗수르는 칼에 엎드러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니겠고 칼에 삼켜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닐 것이며 그는 칼 앞에서 도망할 것이요 그의 장정들은 복역하는 자가 될 것이라
엉뚱한 것을 의지하려 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그들을 하나님께서 보호하고 계심을 다시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명령하신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승리하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위대해 보이는 앗수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것이었다.
9 그의 반석은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물러가겠고 그의 고관들은 기치로 말미암아 놀라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여호와의 불은 시온에 있고 여호와의 풀무는 예루살렘에 있느니라
앗수르는 물러갈 것이나 여호와의 불과 풀무는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백성을 보호하실 것이며 그 하나님의 손길을 결코 물러서지 않으실 것이다. 앗수르의 반석은 겨우 ‘두려움’ 때문에 물러나지만 하나님의 보호는 어떤 위협 앞에서도 물러섬이 없는 보호하심이다. 결국 승리는 인간적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에 달려 있는 것이다.
앗수르는 강하고 위대해 보였지만 영원할 수 없었다. 하나님 앞에서 앗수르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이러저리 치이는 약소국의 신으로 존재하셨지만 세상 그 어떤 신보다, 그 어떤 나라보다 위대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인도와 보호하심은 결코 물러섬이 없다.
– 내게 주시는 말씀
– 내가 강하다고 느끼는 것이 영원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신다. 내 건강, 내 재산이나 명예, 혹은 친구나 아는 사람, 내가 의지할만한 그 어떤 것도 영원할 수 없다. 영원한 것은 오직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이다.
– 물러섬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깨달으라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한번도 언약을 지키지 않은 적이 없고 약속을 뒤집지도 않으셨다.
의지할 것은 하나님 밖에 없음을 다시 한 번 말씀하신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이고 그렇게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시며 내 마음을 점검하라고 하신다. 진짜 알고 있는가. 진짜 믿고 있는가.
마음을 돌아보며 내가 눈에 보이는 것을 더 의지하는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 의지하는지 돌아보라 하신다. 세상은 변하고 내 마음도, 내가 의지하는 다른 것들도 영원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물러섬이 없고 흔들리지 않음을 기억하라 하신다.
31장 전체 내용의 흐름은 이렇다.
1-3절 : 애굽을 의지하는 유다를 책망하심
4-5절 :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호하심
6-7절 :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촉구
8-9절 : 앗수르 패망 예언
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애굽을 의지하려는 자들을 책망하신다. 선지서에 많이 등장하는 ‘화 있을진저’로 시작하는 형식의 글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애굽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강력하게 지적하고 계신다. 그들은 하나님을 앙모하지 않고 구하지도 않는 자들이다.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악행하는 자들과 그를 돕는 자들을 치실 것이다(2절).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들이 보고 있는 애굽도 사람일 뿐이고 그들의 말들도 육체일 뿐인 것을 기억하게 하신다(3절). 결국 그들은 엎드러져 멸망하게 될 것이다.
– 내게 주시는 말씀
– 눈 앞에 다가온 위기의 순간, 그럴 때일수록 사람의 힘과 방법보다 하나님을 먼저 의지해야 한다. 위기의 순간에 내가 떠올리는 것은 사람의 도움인가 하나님인가.
– 눈에 보이는 능력이 커보여도 그것이 꼭 내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 눈 앞에 애굽이 보일 수 있다. 많은 말과 병거가 보이고 손만 내밀면 나를 도와줄 것 같지만 내가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그 모든 것들도 다 헛된 것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4-5절에서 하나님은 애굽을 의지하려 하는 유다를 책망하신 후 그 책망의 이유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호하시는 것에 있음을 알게 하신다.
5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뛰어넘어 구원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보호하시겠다고 하신다.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계셨고 앞으로도 계속 함께 하실 것이었다. 그것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려 하고 눈에 보이는 것에 도움을 얻으려 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것이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 내게 주시는 말씀
– 하나님은 언제나 자기 백성을 강하고 신실하게 보호하신다. 그래서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위협이 크고, 눈에 보이는 도움도 커보이지만 무엇보다 위대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그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심을 믿는 자기 백성을 하나님은 강하고 신실하게 보호하신다. 나를 그렇게 보호하실 것이다. 내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위대하신 하나님께 더욱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한다.
6-7절은 이제 예루살렘에게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명령한다.
6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라 촉구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섬겼지만 ‘하나님만’ 섬기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도’ 섬기고 가나안의 우상도 섬겼다. 하나님은 그것을 거역이고 음행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것을 심판하시면서도 계속해서 ‘돌아오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이사야서에서, 선지서들 안에서 계속해서 표현되고 있다.
– 내게 주시는 말씀
– 돌아오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뿐 아니라 오늘을 사는 나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음성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다른 신을 함께 섬겼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싫어하셨듯 내가 오늘을 살면서 하나님도 섬기고 돈과 명예도 섬기는 그 모습을 하나님은 싫어하신다. 그 삶에서 온전히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말씀하신다. 그 음성에 순종해야 한다.
이 모든 말씀을 하는 이유가 8-9절에서 말하는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엎드러지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8 앗수르는 칼에 엎드러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니겠고 칼에 삼켜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닐 것이며 그는 칼 앞에서 도망할 것이요 그의 장정들은 복역하는 자가 될 것이라
엉뚱한 것을 의지하려 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그들을 하나님께서 보호하고 계심을 다시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명령하신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승리하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위대해 보이는 앗수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것이었다.
9 그의 반석은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물러가겠고 그의 고관들은 기치로 말미암아 놀라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여호와의 불은 시온에 있고 여호와의 풀무는 예루살렘에 있느니라
앗수르는 물러갈 것이나 여호와의 불과 풀무는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백성을 보호하실 것이며 그 하나님의 손길을 결코 물러서지 않으실 것이다. 앗수르의 반석은 겨우 ‘두려움’ 때문에 물러나지만 하나님의 보호는 어떤 위협 앞에서도 물러섬이 없는 보호하심이다. 결국 승리는 인간적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에 달려 있는 것이다.
앗수르는 강하고 위대해 보였지만 영원할 수 없었다. 하나님 앞에서 앗수르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이러저리 치이는 약소국의 신으로 존재하셨지만 세상 그 어떤 신보다, 그 어떤 나라보다 위대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인도와 보호하심은 결코 물러섬이 없다.
– 내게 주시는 말씀
– 내가 강하다고 느끼는 것이 영원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신다. 내 건강, 내 재산이나 명예, 혹은 친구나 아는 사람, 내가 의지할만한 그 어떤 것도 영원할 수 없다. 영원한 것은 오직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이다.
– 물러섬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깨달으라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한번도 언약을 지키지 않은 적이 없고 약속을 뒤집지도 않으셨다.
의지할 것은 하나님 밖에 없음을 다시 한 번 말씀하신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이고 그렇게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시며 내 마음을 점검하라고 하신다. 진짜 알고 있는가. 진짜 믿고 있는가.
마음을 돌아보며 내가 눈에 보이는 것을 더 의지하는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 의지하는지 돌아보라 하신다. 세상은 변하고 내 마음도, 내가 의지하는 다른 것들도 영원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물러섬이 없고 흔들리지 않음을 기억하라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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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8월 21일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사야 30:18-33]
이사야 30장 18~33절은 하나님을 떠나 세상의 힘을 의지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회복과 구원의 말씀이다.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위협 앞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애굽을 의지하려 했다. 눈앞의 문제를 빨리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보다 세상의 힘을 붙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며 은혜를 베풀기를 원하셨다. 18절은 이 본문의 핵심을 보여준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시고, 우리에게 바른 길을 보여주시며, 마침내 친히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신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세 가지 은혜를 살펴보고자 한다.
1. 하나님은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18~20절)
18절은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라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기다리신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어려움을 당하면 “왜 하나님께서는 빨리 도와주시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나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왜 응답하지 않으실까?”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성경은 오히려 우리에게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너를 기다리고 계신다.” 왜 기다리십니까?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이유는 우리를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19절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시온과 예루살렘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가 네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그가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말씀이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을 때 외면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복은 무엇일까? 금은보화가 많아지는 것일까? 건강을 얻는 것일까? 권력을 얻는 것일까? 평안한 삶을 사는 것일까? 물론 이러한 것들도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은혜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큰 복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다. 돈이 많아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있다면 우리의 영혼은 메마를 수 있다. 건강해도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다면 참된 평안을 누리지 못할 수 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우리의 마음은 공허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가장 큰 은혜이며 가장 큰 복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애굽을 의지했다. 자기들의 방법을 붙들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셨다. 오늘 우리도 돌아보아야 한다. 돈을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람을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경험을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능력을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스라엘에게 애굽이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던 대상이었다면, 우리에게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다시 내게로 돌아오라.”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회복의 시작이다.
2. 하나님은 기다리는 자에게 바른 길을 보여주신다. (21~26절)
21절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길을 보여주시는 장면을 말씀한다.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수르의 위협 앞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애굽이 도움이 될까? 다른 나라가 도움이 될까? 어떻게 해야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바른 길을 보여주시는 분이다. 사사기 21장 25절에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이렇게 기록한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스라엘에게 왕이 없었던 것이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왕이셨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생각과 자기 판단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압제를 당하고, 서로 싸우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우리도 하나님 없이 살아가면 결국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 없이 우리는 참된 길을 찾을 수 없다. 하나님 없이 우리는 영적인 방향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하나님 없이 우리는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지 분별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22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버린다. “나가라 하리라.” 그동안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던 우상을 버리는 것이다.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던 것을 내려놓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보다 더 믿었던 것을 내려놓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던 것을 내려놓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가장 중요한 분으로 모시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회복시키신다. 23~25절에서는 메마른 땅에 비가 내리고, 곡식이 풍성하게 자라며, 가축들이 풍성한 목장에서 먹게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회복은 단순한 물질적 풍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메마른 삶에 다시 생명을 주신다는 것이다. 메마른 땅에 비가 내린다. 죽어가는 땅에서 싹이 난다. 열매가 맺힌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메마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 돌아오면 메마른 영혼에 다시 생명의 비가 내린다. 주님안에서 기도가 살아난다. 말씀이 살아난다. 예배가 살아난다. 가정이 회복된다. 관계가 회복된다. 26절에서는 더욱 놀라운 회복을 말씀한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를 싸매시는 분이다. 우리에게는 사람들이 모르는 상처가 있다. 말하지 못한 상처가 있다. 가족 때문에 생긴 상처가 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있다. 일 때문에 생긴 상처가 있다. 실패 때문에 생긴 상처가 있다. 죄 때문에 생긴 상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상처를 보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너의 상처를 싸매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처를 무시하지 않으신다. 우리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우리의 실패 때문에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상처 입은 우리를 찾아오셔서 싸매시고 고치신다. 그러므로 지금 힘들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신다. 우리가 아직 보지 못했을 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길을 준비하고 계신다. 우리 인생에는 수많은 선택이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될 때가 있다. 어떤 결정이 하나님의 뜻인지 알기 어려울 때도 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이것이 바른 길이다. 이리로 가라.” 중요한 것은 내가 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세상이 원하는 길은 당장에는 달콤해 보이고 좋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길은 결국 우리를 생명의 길에서 멀어지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길,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길이다.
3. 하나님은 결국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 (27~33절)
27절부터 본문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보라 여호와의 이름이 원방에서부터 오되 그의 진노가 불 붙듯 하며 빽빽한 연기가 일어나듯 하며 그의 입술에는 분노가 찼으며 그의 혀는 맹렬한 불 같으며.” 하나님께서 일어나신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대적을 향하여 심판하신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이스라엘이 스스로 싸워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신다. 하나님께서 대적을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 30절에서도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호와께서 그의 장엄한 목소리를 듣게 하시며 혁혁한 진노로 그의 팔의 치심을 보이시되 맹렬한 화염과 폭풍과 폭우와 우박으로 하시리니.”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해 친히 싸우시는 분이다. 우리의 인생에도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사람의 힘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그때 하나님께서 개입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힘이 되어주시고, 우리의 대적을 막아주시며, 우리를 위해 친히 싸워주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18절 말씀을 다시 기억해야 한다.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하나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기다리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일하실 때를 기다리신다. 우리의 눈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일하고 계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일어나신다. 33절에는 도벳이 등장한다. 도벳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에 대한 심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악을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조급함이 아니라 믿음이다. 하나님보다 앞서가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금 당장 일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여도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는 늦음이 없다. 하나님은 가장 정확한 때에 일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처를 싸매시고,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며, 우리의 대적을 심판하시고, 우리를 회복시키신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때로는 하나님께서 너무 늦게 오시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늦음이 없다. 오늘 18절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기 바란다.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나는?
나는 어려움을 만났을 때 하나님보다 세상의 방법과 사람을 먼저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기다리시며 은혜를 베풀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그것을 내려놓고 있는가?
나는 내 생각과 판단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바른 길을 걷고 있는가?
나는 지금 당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하나님께서 나의 상처를 알고 계시며 싸매시고 고치시는 분임을 믿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며 조급함 대신 믿음으로 기다리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께서 결국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는 소망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가?
묵상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리기 전에 먼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해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의 기다림은 무관심이 아니라 사랑이며 은혜이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회복의 시작이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의지했던 사람과 물질과 경험과 능력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가장 중요한 분으로 모셔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기다리는 자에게 “이것이 바른 길이니 이리로 가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판단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길을 따라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고 맞은 자리를 고치신다. 사람은 우리의 상처를 몰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눈물과 아픔을 알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해 친히 싸우시는 분이다.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도 문제의 크기를 바라보기보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는 늦음이 없다. 우리의 눈에는 지연처럼 보여도 하나님께서는 가장 정확한 때에 일하시며 결국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
1. 하나님은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18~20절)
18절은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라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기다리신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어려움을 당하면 “왜 하나님께서는 빨리 도와주시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나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왜 응답하지 않으실까?”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성경은 오히려 우리에게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너를 기다리고 계신다.” 왜 기다리십니까?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이유는 우리를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19절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시온과 예루살렘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가 네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그가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말씀이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을 때 외면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복은 무엇일까? 금은보화가 많아지는 것일까? 건강을 얻는 것일까? 권력을 얻는 것일까? 평안한 삶을 사는 것일까? 물론 이러한 것들도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은혜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큰 복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다. 돈이 많아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있다면 우리의 영혼은 메마를 수 있다. 건강해도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다면 참된 평안을 누리지 못할 수 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우리의 마음은 공허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가장 큰 은혜이며 가장 큰 복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애굽을 의지했다. 자기들의 방법을 붙들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셨다. 오늘 우리도 돌아보아야 한다. 돈을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람을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경험을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능력을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스라엘에게 애굽이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던 대상이었다면, 우리에게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다시 내게로 돌아오라.”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회복의 시작이다.
2. 하나님은 기다리는 자에게 바른 길을 보여주신다. (21~26절)
21절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길을 보여주시는 장면을 말씀한다.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수르의 위협 앞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애굽이 도움이 될까? 다른 나라가 도움이 될까? 어떻게 해야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바른 길을 보여주시는 분이다. 사사기 21장 25절에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이렇게 기록한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스라엘에게 왕이 없었던 것이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왕이셨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생각과 자기 판단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압제를 당하고, 서로 싸우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우리도 하나님 없이 살아가면 결국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 없이 우리는 참된 길을 찾을 수 없다. 하나님 없이 우리는 영적인 방향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하나님 없이 우리는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지 분별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22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버린다. “나가라 하리라.” 그동안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던 우상을 버리는 것이다.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던 것을 내려놓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보다 더 믿었던 것을 내려놓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던 것을 내려놓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가장 중요한 분으로 모시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회복시키신다. 23~25절에서는 메마른 땅에 비가 내리고, 곡식이 풍성하게 자라며, 가축들이 풍성한 목장에서 먹게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회복은 단순한 물질적 풍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메마른 삶에 다시 생명을 주신다는 것이다. 메마른 땅에 비가 내린다. 죽어가는 땅에서 싹이 난다. 열매가 맺힌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메마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 돌아오면 메마른 영혼에 다시 생명의 비가 내린다. 주님안에서 기도가 살아난다. 말씀이 살아난다. 예배가 살아난다. 가정이 회복된다. 관계가 회복된다. 26절에서는 더욱 놀라운 회복을 말씀한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를 싸매시는 분이다. 우리에게는 사람들이 모르는 상처가 있다. 말하지 못한 상처가 있다. 가족 때문에 생긴 상처가 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있다. 일 때문에 생긴 상처가 있다. 실패 때문에 생긴 상처가 있다. 죄 때문에 생긴 상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상처를 보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너의 상처를 싸매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처를 무시하지 않으신다. 우리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우리의 실패 때문에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상처 입은 우리를 찾아오셔서 싸매시고 고치신다. 그러므로 지금 힘들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신다. 우리가 아직 보지 못했을 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길을 준비하고 계신다. 우리 인생에는 수많은 선택이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될 때가 있다. 어떤 결정이 하나님의 뜻인지 알기 어려울 때도 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이것이 바른 길이다. 이리로 가라.” 중요한 것은 내가 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세상이 원하는 길은 당장에는 달콤해 보이고 좋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길은 결국 우리를 생명의 길에서 멀어지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길,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길이다.
3. 하나님은 결국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 (27~33절)
27절부터 본문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보라 여호와의 이름이 원방에서부터 오되 그의 진노가 불 붙듯 하며 빽빽한 연기가 일어나듯 하며 그의 입술에는 분노가 찼으며 그의 혀는 맹렬한 불 같으며.” 하나님께서 일어나신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대적을 향하여 심판하신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이스라엘이 스스로 싸워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신다. 하나님께서 대적을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 30절에서도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호와께서 그의 장엄한 목소리를 듣게 하시며 혁혁한 진노로 그의 팔의 치심을 보이시되 맹렬한 화염과 폭풍과 폭우와 우박으로 하시리니.”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해 친히 싸우시는 분이다. 우리의 인생에도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사람의 힘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그때 하나님께서 개입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힘이 되어주시고, 우리의 대적을 막아주시며, 우리를 위해 친히 싸워주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18절 말씀을 다시 기억해야 한다.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하나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기다리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일하실 때를 기다리신다. 우리의 눈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일하고 계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일어나신다. 33절에는 도벳이 등장한다. 도벳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에 대한 심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악을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조급함이 아니라 믿음이다. 하나님보다 앞서가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금 당장 일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여도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는 늦음이 없다. 하나님은 가장 정확한 때에 일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처를 싸매시고,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며, 우리의 대적을 심판하시고, 우리를 회복시키신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때로는 하나님께서 너무 늦게 오시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늦음이 없다. 오늘 18절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기 바란다.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나는?
나는 어려움을 만났을 때 하나님보다 세상의 방법과 사람을 먼저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기다리시며 은혜를 베풀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그것을 내려놓고 있는가?
나는 내 생각과 판단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바른 길을 걷고 있는가?
나는 지금 당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하나님께서 나의 상처를 알고 계시며 싸매시고 고치시는 분임을 믿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며 조급함 대신 믿음으로 기다리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께서 결국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는 소망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가?
묵상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리기 전에 먼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해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의 기다림은 무관심이 아니라 사랑이며 은혜이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회복의 시작이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의지했던 사람과 물질과 경험과 능력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가장 중요한 분으로 모셔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기다리는 자에게 “이것이 바른 길이니 이리로 가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판단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길을 따라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고 맞은 자리를 고치신다. 사람은 우리의 상처를 몰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눈물과 아픔을 알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해 친히 싸우시는 분이다.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도 문제의 크기를 바라보기보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는 늦음이 없다. 우리의 눈에는 지연처럼 보여도 하나님께서는 가장 정확한 때에 일하시며 결국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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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8월 20일
돌이켜 구원을 얻을 것이라
[이사야 30:1-17]
본문의 역사적 배경인 주전 8세기 말 남유다 왕국 히스기야 왕 집권기 때의 일입니다.
국가 존망이 걸린 미증유의 대위기 앞에 서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을 이미 지도에서 지워버린 당대 최고의 잔혹한 패권국 앗수르가 남쪽으로 군대를 몰고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철기 무기와 막강한 기병대로 무장한 앗수르의 대군 앞에서
유다 백성과 위정자들은 극심한 공포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이때 유다의 지도자들이 선택한 길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앗수르의 맞수이자 전통의 강호였던 남쪽의 애굽과 비밀 군사 동맹을 맺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애굽행 사절단이 금과 보물을 낙타와 나귀 등에 가득 실고 사막을 지나 애굽으로 비밀리에 출발할 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선포하신 불호령이자 통곡의 메시지입니다.
1. 하나님을 배제한 자구책은 ‘수치’와 ‘수욕’으로 돌아옵니다 (1-7절)
하나님은 애굽으로 사신을 보내며 구원을 도모하는 유다를 향해 첫 마디부터 격렬한 탄식을 쏟아내십니다.
[사30: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패역한 자식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죄에 죄를 더하도다
여기서 ‘패역한 자식들’이란 부모의 권위와 사랑을 완전히 짓밟고 배반한 자녀를 뜻합니다. 유다는 머리를 맞대고 치밀한 정치적 계산과 전략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애굽과 피로 맺는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 속에 ‘하나님의 뜻’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막의 맹수들이 들끓는 위험한 네게브 지역을 지나 자신들이 가진 모든 보물을 낙타와 나귀에 실어 애굽으로 보냈습니다.
[사30:6] 네겝 짐승들에 관한 경고라
사신들이 그들의 재물을 어린 나귀 등에 싣고 그들의 보물을 낙타 안장에 얹고 암사자와 수사자와 독사와 및 날아다니는 불뱀이 나오는 위험하고 곤고한 땅을 지나 자기에게 무익한 민족에게로 갔으나
눈에 보이는 강대국의 군사력과 기병이라는 그늘에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비참한 수고를 향해 뭐라고 평가하십니까?
[사30:2-3]
2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도다
3 그러므로 바로의 세력이 너희의 수치가 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함이 너희의 수욕이 될 것이라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핵심 구절은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도다”입니다. 유다는 국가의 사활이 걸린 문제를 결정하면서 단 한 번도 하나님께 기도하여 묻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애굽은 어떤 존재입니까?
[사30:7]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
‘라합’은 고대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포악한 괴물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애굽은 실속 없이 입만 거창하고 막상 위기가 오면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채 엎드려 있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밤잠을 이루지 못하며 머리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고민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만의 애굽행 계획’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단 한 번도 꿇어 엎드려 묻지 않은 채 “내 경험으로, 내 인맥으로, 내 재정으로, 세상의 방식대로 처리하면 되겠지” 하며 달려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뺀 완벽한 계산은 결국 우리에게 참된 구원이 아니라 헛된 수치와 수욕을 안겨줄 뿐입니다.
2. 달콤한 거짓을 찾고 ‘거룩한 진리’를 배척하는 심성 (8-14절)
유다 백성이 왜 그토록 하나님께 묻지 않고 애굽으로 달려갔을까요? 그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이미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이 백성의 실상을 놋판과 책에 기록하여 후세에 영원히 증거로 남기라고 명령하십니다.
[사30:8]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후세에 영원히 있게 하라
하나님이 폭로하신 그들의 영적 실상은 충격적입니다.
[사30:9-10]
9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 하는 자식들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들이라
10 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찾아와 “애굽을 의지하지 말고 회개하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잡으라”고 선포할 때 그 말을 듣기 싫어했습니다. 그들은 회개를 촉구하는 ‘정직한 소리’ 대신 마음을 안심시켜 주는 ‘부드러운 말’과 ‘거짓된 평안’을 요구했습니다. 심지어 선지자들을 향해 “우리 앞에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더 이상 언급하지도 말라!”(11절)고 거칠게 항의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자신들의 욕망과 세속적 길에 방해가 된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외면하고 거짓 평안에 안주하려 했던 그들의 결말은 어떠합니까?
13-14절에서 하나님은 두 가지 강력한 비유로 심판을 경고하십니다.
[사30:13-14]
13 이 죄악이 너희에게 마치 무너지려고 터진 담이 불쑥 나와 순식간에 무너짐 같게 되리라 하셨은즉
14 그가 이 나라를 무너뜨리시되 토기장이가 그릇을 깨뜨림 같이 아낌이 없이 부수시리니 그 조각 중에서, 아궁이에서 불을 붙이거나 물 웅덩이에서 물을 뜰 것도 얻지 못하리라
높은 담이 불쑥 나와 무너짐 (13절): 겉보기에는 견고해 보이는 담이지만
내부에 금이 가고 배가 부풀어 오르다가 어느 한순간에 폭삭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토기장의 그릇이 산산조각 남 (14절): 토기장이가 아낌없이 그릇을 깨뜨려
화로에서 불을 담거나 웅덩이에서 물을 긷지 못할 만큼 조각 하나 남지 않게
완전히 부숴버리듯 심판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버리고 세속의 타협점을 찾을 때 우리가 쌓아 올린 모든 성벽은 아무런 경고도 없이 한순간에 산산조각 날 수 있습니다.
3. 구원의 유일한 비결: “돌이켜 조용히 신뢰하라” (15-17절)
이제 본문의 가장 찬란한 하이라이트이자 영적 진수가 담긴 15절 말씀에 다다릅니다.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은 참된 구원의 길, 영적인 비결을 선포하십니다.
[사30:15]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이 구절에는 위기를 돌파하는 하나님의 4가지 핵심 원리가 들어있습니다.
① 돌이킴 (회개, Return)
‘돌이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슈브(Shuv)’는 방향의 전환 즉 회개를 의미합니다. 세상으로, 애굽으로 달려가던 발걸음과 시선을 즉시 멈추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내 뜻과 내 고집을 꺾는 것이 구원의 시작입니다.
② 조용히 있음 (안식, Rest)
‘조용히 있어야’라는 말은 인간적인 조급함과 두려움에서 나오는 분주한 발버둥을 멈추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허우적거릴수록 수렁에 더 깊이 빠집니다.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정적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③ 잠잠함 (평정심, Quietness)
‘잠잠하고’는 불평과 불만, 인간적인 모사와 꾀를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것입니다. 상황을 내 판단대로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마음의 소란함을 잠재우는 것입니다.
④ 신뢰함 (믿음, Trust)
‘신뢰하여야’는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 그분의 주권을 온전히 믿고 그분께 내 삶의 주도권을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애굽으로 신속하게 달려가는 ‘속도’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멈추어 서서 그분을 바라보는 ‘믿음’을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머무를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유다 백성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이 은혜로운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사30:16]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하였으므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하였으므로 너희를 쫓는 자들이 빠르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조용한 신뢰’보다 자신들이 가진 ‘빠른 말(군사력과 인간적 속도)’을 더 믿었습니다. 자신들의 힘으로 위기를 빠르게 빠져나갈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너희를 쫓는 자들이 더 빠르리니”(16절b)라고 응수하십니다.
내 힘으로 달리는 속도보다 나를 찾아오는 고난과 위기의 속도가 훨씬 더 빠릅니다.
결국 적 한 사람이 호령하면 유다 군사 천 명이 놀라 도망치고 적 다섯이 호령하면 온 군대가 흩어져 산 꼭대기의 깃대나 언덕 위의 깃발처럼 홀로 외롭고 비참하게 남게 될 것(17절)이라 경고하십니다.
[사30:17]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 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산마루 위의 기치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결론: 애굽의 그늘을 벗어나 여호와의 날개 그늘 아래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까? 내 삶에 감당하기 힘든 앗수르의 위기가 찾아왔을 때 조급함에 쫓겨 하나님께 묻지도 않은 채 ‘빠른 말’을 타고 애굽의 그늘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장 내 눈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세속의 부드러운 말에 현혹되어 나를 살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타고 있는 세상의 ‘빠른 말’은 결코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의지하는 세상의 ‘애굽’은 헛된 수치만 안겨줄 뿐입니다. 오늘 주님은 지치고 불안해하는 우리를 향해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씀하십니다.
“이제 그만 허우적거림을 멈추어라. 돌이켜 내게로 오라.
조용히 내 안에 머물라. 잠잠히 나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의 구원이 되고, 너의 영원한 힘이 되어 주리라.”
세상의 소란스러운 소리와 내 안의 두려운 소리에 귀를 닫으시길 바랍니다. 조용히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기도의 자리를 회복하십시오. 내 힘과 꾀를 내려놓고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볼 때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물댄 동산처럼 우리의 삶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 조용한 신뢰 속에서 주시는 천국의 평강과 능력이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의 삶에 풍성히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국가 존망이 걸린 미증유의 대위기 앞에 서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을 이미 지도에서 지워버린 당대 최고의 잔혹한 패권국 앗수르가 남쪽으로 군대를 몰고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철기 무기와 막강한 기병대로 무장한 앗수르의 대군 앞에서
유다 백성과 위정자들은 극심한 공포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이때 유다의 지도자들이 선택한 길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앗수르의 맞수이자 전통의 강호였던 남쪽의 애굽과 비밀 군사 동맹을 맺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애굽행 사절단이 금과 보물을 낙타와 나귀 등에 가득 실고 사막을 지나 애굽으로 비밀리에 출발할 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선포하신 불호령이자 통곡의 메시지입니다.
1. 하나님을 배제한 자구책은 ‘수치’와 ‘수욕’으로 돌아옵니다 (1-7절)
하나님은 애굽으로 사신을 보내며 구원을 도모하는 유다를 향해 첫 마디부터 격렬한 탄식을 쏟아내십니다.
[사30: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패역한 자식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죄에 죄를 더하도다
여기서 ‘패역한 자식들’이란 부모의 권위와 사랑을 완전히 짓밟고 배반한 자녀를 뜻합니다. 유다는 머리를 맞대고 치밀한 정치적 계산과 전략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애굽과 피로 맺는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 속에 ‘하나님의 뜻’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막의 맹수들이 들끓는 위험한 네게브 지역을 지나 자신들이 가진 모든 보물을 낙타와 나귀에 실어 애굽으로 보냈습니다.
[사30:6] 네겝 짐승들에 관한 경고라
사신들이 그들의 재물을 어린 나귀 등에 싣고 그들의 보물을 낙타 안장에 얹고 암사자와 수사자와 독사와 및 날아다니는 불뱀이 나오는 위험하고 곤고한 땅을 지나 자기에게 무익한 민족에게로 갔으나
눈에 보이는 강대국의 군사력과 기병이라는 그늘에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비참한 수고를 향해 뭐라고 평가하십니까?
[사30:2-3]
2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도다
3 그러므로 바로의 세력이 너희의 수치가 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함이 너희의 수욕이 될 것이라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핵심 구절은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도다”입니다. 유다는 국가의 사활이 걸린 문제를 결정하면서 단 한 번도 하나님께 기도하여 묻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애굽은 어떤 존재입니까?
[사30:7]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
‘라합’은 고대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포악한 괴물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애굽은 실속 없이 입만 거창하고 막상 위기가 오면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채 엎드려 있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밤잠을 이루지 못하며 머리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고민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만의 애굽행 계획’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단 한 번도 꿇어 엎드려 묻지 않은 채 “내 경험으로, 내 인맥으로, 내 재정으로, 세상의 방식대로 처리하면 되겠지” 하며 달려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뺀 완벽한 계산은 결국 우리에게 참된 구원이 아니라 헛된 수치와 수욕을 안겨줄 뿐입니다.
2. 달콤한 거짓을 찾고 ‘거룩한 진리’를 배척하는 심성 (8-14절)
유다 백성이 왜 그토록 하나님께 묻지 않고 애굽으로 달려갔을까요? 그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이미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이 백성의 실상을 놋판과 책에 기록하여 후세에 영원히 증거로 남기라고 명령하십니다.
[사30:8]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후세에 영원히 있게 하라
하나님이 폭로하신 그들의 영적 실상은 충격적입니다.
[사30:9-10]
9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 하는 자식들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들이라
10 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찾아와 “애굽을 의지하지 말고 회개하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잡으라”고 선포할 때 그 말을 듣기 싫어했습니다. 그들은 회개를 촉구하는 ‘정직한 소리’ 대신 마음을 안심시켜 주는 ‘부드러운 말’과 ‘거짓된 평안’을 요구했습니다. 심지어 선지자들을 향해 “우리 앞에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더 이상 언급하지도 말라!”(11절)고 거칠게 항의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자신들의 욕망과 세속적 길에 방해가 된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외면하고 거짓 평안에 안주하려 했던 그들의 결말은 어떠합니까?
13-14절에서 하나님은 두 가지 강력한 비유로 심판을 경고하십니다.
[사30:13-14]
13 이 죄악이 너희에게 마치 무너지려고 터진 담이 불쑥 나와 순식간에 무너짐 같게 되리라 하셨은즉
14 그가 이 나라를 무너뜨리시되 토기장이가 그릇을 깨뜨림 같이 아낌이 없이 부수시리니 그 조각 중에서, 아궁이에서 불을 붙이거나 물 웅덩이에서 물을 뜰 것도 얻지 못하리라
높은 담이 불쑥 나와 무너짐 (13절): 겉보기에는 견고해 보이는 담이지만
내부에 금이 가고 배가 부풀어 오르다가 어느 한순간에 폭삭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토기장의 그릇이 산산조각 남 (14절): 토기장이가 아낌없이 그릇을 깨뜨려
화로에서 불을 담거나 웅덩이에서 물을 긷지 못할 만큼 조각 하나 남지 않게
완전히 부숴버리듯 심판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버리고 세속의 타협점을 찾을 때 우리가 쌓아 올린 모든 성벽은 아무런 경고도 없이 한순간에 산산조각 날 수 있습니다.
3. 구원의 유일한 비결: “돌이켜 조용히 신뢰하라” (15-17절)
이제 본문의 가장 찬란한 하이라이트이자 영적 진수가 담긴 15절 말씀에 다다릅니다.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은 참된 구원의 길, 영적인 비결을 선포하십니다.
[사30:15]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이 구절에는 위기를 돌파하는 하나님의 4가지 핵심 원리가 들어있습니다.
① 돌이킴 (회개, Return)
‘돌이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슈브(Shuv)’는 방향의 전환 즉 회개를 의미합니다. 세상으로, 애굽으로 달려가던 발걸음과 시선을 즉시 멈추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내 뜻과 내 고집을 꺾는 것이 구원의 시작입니다.
② 조용히 있음 (안식, Rest)
‘조용히 있어야’라는 말은 인간적인 조급함과 두려움에서 나오는 분주한 발버둥을 멈추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허우적거릴수록 수렁에 더 깊이 빠집니다.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정적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③ 잠잠함 (평정심, Quietness)
‘잠잠하고’는 불평과 불만, 인간적인 모사와 꾀를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것입니다. 상황을 내 판단대로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마음의 소란함을 잠재우는 것입니다.
④ 신뢰함 (믿음, Trust)
‘신뢰하여야’는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 그분의 주권을 온전히 믿고 그분께 내 삶의 주도권을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애굽으로 신속하게 달려가는 ‘속도’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멈추어 서서 그분을 바라보는 ‘믿음’을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머무를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유다 백성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이 은혜로운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사30:16]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하였으므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하였으므로 너희를 쫓는 자들이 빠르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조용한 신뢰’보다 자신들이 가진 ‘빠른 말(군사력과 인간적 속도)’을 더 믿었습니다. 자신들의 힘으로 위기를 빠르게 빠져나갈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너희를 쫓는 자들이 더 빠르리니”(16절b)라고 응수하십니다.
내 힘으로 달리는 속도보다 나를 찾아오는 고난과 위기의 속도가 훨씬 더 빠릅니다.
결국 적 한 사람이 호령하면 유다 군사 천 명이 놀라 도망치고 적 다섯이 호령하면 온 군대가 흩어져 산 꼭대기의 깃대나 언덕 위의 깃발처럼 홀로 외롭고 비참하게 남게 될 것(17절)이라 경고하십니다.
[사30:17]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 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산마루 위의 기치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결론: 애굽의 그늘을 벗어나 여호와의 날개 그늘 아래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까? 내 삶에 감당하기 힘든 앗수르의 위기가 찾아왔을 때 조급함에 쫓겨 하나님께 묻지도 않은 채 ‘빠른 말’을 타고 애굽의 그늘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장 내 눈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세속의 부드러운 말에 현혹되어 나를 살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타고 있는 세상의 ‘빠른 말’은 결코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의지하는 세상의 ‘애굽’은 헛된 수치만 안겨줄 뿐입니다. 오늘 주님은 지치고 불안해하는 우리를 향해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씀하십니다.
“이제 그만 허우적거림을 멈추어라. 돌이켜 내게로 오라.
조용히 내 안에 머물라. 잠잠히 나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의 구원이 되고, 너의 영원한 힘이 되어 주리라.”
세상의 소란스러운 소리와 내 안의 두려운 소리에 귀를 닫으시길 바랍니다. 조용히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기도의 자리를 회복하십시오. 내 힘과 꾀를 내려놓고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볼 때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물댄 동산처럼 우리의 삶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 조용한 신뢰 속에서 주시는 천국의 평강과 능력이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의 삶에 풍성히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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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8월 19일
역전과 회복
[이사야 29:15-24]
29장은 예루살렘을 상징적으로 ‘아리엘’이라 부르면서 예루살렘이 심판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을 말하지만 결국은 그들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회복시키실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15-24절은 특별히 예루살렘을 향해 인간의 지혜와 계획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인정하라고,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남은 자를 회복하시는 분이신 것을 말씀하고 있다. 모든 수치와 부끄러움을 씻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 15–16절: 하나님 몰래 계획하고 하나님보다 인간의 지혜를 의지하는 자들을 책망
15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의 일을 어두운 데에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
하나님의 눈을 피해 다른 나라와 은밀하게 정치적 거래를 도모하고 있던 유다의 지도자들을 책망하신다. 그들이 하는 행동은 일부러 하나님의 눈을 피하려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아실 것을 그들도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뜻이 아닌 행동, 하나님께 묻지 않는 것,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는 행동들은 하나님의 눈을 피하려는 것이 된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행동하고 싶고 하나님의 뜻이 내 마음에 들지 않으니 그것을 피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그들의 선택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조상들을 노예였던 땅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불신하는 패역한 행동이면서 진흙에 불과한 인간이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무시하는 교만이었다.
– 내게 주시는 말씀
– 나는 하나님을 창조주로, 나의 구원자로 온전히 인식하고 믿으며 모든 일을 행하고 있는지 돌아본다. 하나님의 눈을 피하는 행동은 내 삶에 없는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삶의 모습을 가지고도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눈을 피하는 모습은 없는가.
–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불신하는 패역한 행동은 내 삶에 없는가. 진흙보다 못한 존재이면서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을 조종하려 하고 내 입맛에 맞게 하나님이 움직여 주시기를 바라는 어리석은 모습은 내 안에 없는가.
* 17–21절: 하나님께서 역전의 은혜를 베푸심 —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가난하고 겸손한 자가 기뻐함
17 오래지 아니하여 레바논이 기름진 밭으로 변하지 아니하겠으며 기름진 밭이 숲으로 여겨지지 아니하겠느냐
상태의 역전
울창한 숲과 높은 산으로 유명한 레바논이 기름진 밭으로 변하고 반대로 기름진 밭은 숲처럼 변화될 것을 말씀하신다.
19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가난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사회, 영적 질서의 역전
17절에서 상태의 역전을 이야기하고 바로 이어서 사회적, 영적 질서가 역전될 것을 예언하신다. 15절에서 ‘하나님 없이 자기 계획을 꾸미는 교만한 자’와 반대되는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의 기쁨이 더할 것이라 말씀하신다.
17절의 레바논은 단순히 자연환경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존의 질서를 뒤집어 새로운 질서를 이루실 것을 보여주는 비유적 이미지로 이해할 수 있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것을 완전히 뒤집을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을 선포한다. 하나님께 모든 능력이 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꾸실 힘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교만할 수 없다. 겸손한 자를 일으키시는 능력이 하나님께 있기에, 산을 밭으로, 골짜기를 평지로 바꾸는 능력이 하나님께 있기에
– 내게 주시는 말씀
– 내 눈에 보이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절대 변하지 않을 것들이 변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하다. 하나님은 내 눈으로 보는 것을 완전히 뒤집을 능력이 있으시다.
–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교만 때문에 낮아질까봐 두려워서가 아니라 창조주이고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마음과 삶으로 온전히 느끼고 알기에 저절로 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한다는 19절의 말씀도 이와 같은 것이다.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기쁨을 주실 것이라는 말도 되지만 겸손한 자가 하나님을 깨닫고 앎으로 인해 모든 상황과 환경에 관계없이 하나님 한분을 알고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누릴 수 있음을 말하고 있음을 깨닫게 하신다.
22–24절: 야곱의 남은 자가 하나님을 거룩하게 여기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깨닫게 됨
22-24절은 17-21절의 역전과 회복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날지를 보여주고 있다.
22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여호와께서 야곱 족속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야곱이 이제는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겠고 그의 얼굴이 이제는 창백해지지 아니할 것이며
22절은 수치가 제거됨을 말한다.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 안에서도 겸손하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킨 남은 자들의 수치가 없어질 것을 말씀하신다. 이 회복의 시작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었다.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그 후손의 남은 자들의 수치를 제거하실 것이다.
23 그의 자손은 내 손이 그 가운데에서 행한 것을 볼 때에 내 이름을 거룩하다 하며 야곱의 거룩한 이를 거룩하다 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며
[사29:13]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이로 인해 그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인정하고 선포하게 될 것이다. 이전의 문제였던 형식적인 신앙(29:13)과 반대되는, 역전된 모습이 보여지게 될 것이다. 역전된 모습은 망한 나라, 비참한 자신의 삶이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참되게 알고 경외하게 되는 것이었다.
24 마음이 혼미하던 자들도 총명하게 되며 원망하던 자들도 교훈을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이제 남은 자들에게서 시작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선포하고 경외하는 모습은 마음이 혼미하던 자들과 원망하던 자들도 함께 하나님 앞에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 내게 주시는 말씀
–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내 삶의 모든 수치가 제거될 것이다. 날마다 더 하나님과 더 가까이,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몸부림치며 살아야 한다.
– 내 삶의 궁극적인 회복은 삶의 환경이 변하는 것보다 상황과 환경이 변하지 않을지라도 그 삶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선포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임을 깨닫게 하신다. 따라서 내 삶의 기도의 제목들 역시 환경의 변화를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모든 상황과 환경 안에서 신실하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선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구하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단순히 나 혼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아니라 나의 가족, 이웃, 공동체, 지역사회, 나라와 열방에 이 모습들을 흘려보낼 수 있는 삶이 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내 삶을 통해 마음이 혼미하던 자들이 총명하게 되고 원망하던 자들이 교훈을 얻게 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15-24절은 특별히 예루살렘을 향해 인간의 지혜와 계획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인정하라고,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남은 자를 회복하시는 분이신 것을 말씀하고 있다. 모든 수치와 부끄러움을 씻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 15–16절: 하나님 몰래 계획하고 하나님보다 인간의 지혜를 의지하는 자들을 책망
15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의 일을 어두운 데에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
하나님의 눈을 피해 다른 나라와 은밀하게 정치적 거래를 도모하고 있던 유다의 지도자들을 책망하신다. 그들이 하는 행동은 일부러 하나님의 눈을 피하려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아실 것을 그들도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뜻이 아닌 행동, 하나님께 묻지 않는 것,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는 행동들은 하나님의 눈을 피하려는 것이 된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행동하고 싶고 하나님의 뜻이 내 마음에 들지 않으니 그것을 피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그들의 선택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조상들을 노예였던 땅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불신하는 패역한 행동이면서 진흙에 불과한 인간이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무시하는 교만이었다.
– 내게 주시는 말씀
– 나는 하나님을 창조주로, 나의 구원자로 온전히 인식하고 믿으며 모든 일을 행하고 있는지 돌아본다. 하나님의 눈을 피하는 행동은 내 삶에 없는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삶의 모습을 가지고도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눈을 피하는 모습은 없는가.
–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불신하는 패역한 행동은 내 삶에 없는가. 진흙보다 못한 존재이면서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을 조종하려 하고 내 입맛에 맞게 하나님이 움직여 주시기를 바라는 어리석은 모습은 내 안에 없는가.
* 17–21절: 하나님께서 역전의 은혜를 베푸심 —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가난하고 겸손한 자가 기뻐함
17 오래지 아니하여 레바논이 기름진 밭으로 변하지 아니하겠으며 기름진 밭이 숲으로 여겨지지 아니하겠느냐
상태의 역전
울창한 숲과 높은 산으로 유명한 레바논이 기름진 밭으로 변하고 반대로 기름진 밭은 숲처럼 변화될 것을 말씀하신다.
19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가난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사회, 영적 질서의 역전
17절에서 상태의 역전을 이야기하고 바로 이어서 사회적, 영적 질서가 역전될 것을 예언하신다. 15절에서 ‘하나님 없이 자기 계획을 꾸미는 교만한 자’와 반대되는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의 기쁨이 더할 것이라 말씀하신다.
17절의 레바논은 단순히 자연환경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존의 질서를 뒤집어 새로운 질서를 이루실 것을 보여주는 비유적 이미지로 이해할 수 있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것을 완전히 뒤집을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을 선포한다. 하나님께 모든 능력이 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꾸실 힘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교만할 수 없다. 겸손한 자를 일으키시는 능력이 하나님께 있기에, 산을 밭으로, 골짜기를 평지로 바꾸는 능력이 하나님께 있기에
– 내게 주시는 말씀
– 내 눈에 보이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절대 변하지 않을 것들이 변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하다. 하나님은 내 눈으로 보는 것을 완전히 뒤집을 능력이 있으시다.
–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교만 때문에 낮아질까봐 두려워서가 아니라 창조주이고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마음과 삶으로 온전히 느끼고 알기에 저절로 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한다는 19절의 말씀도 이와 같은 것이다.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기쁨을 주실 것이라는 말도 되지만 겸손한 자가 하나님을 깨닫고 앎으로 인해 모든 상황과 환경에 관계없이 하나님 한분을 알고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누릴 수 있음을 말하고 있음을 깨닫게 하신다.
22–24절: 야곱의 남은 자가 하나님을 거룩하게 여기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깨닫게 됨
22-24절은 17-21절의 역전과 회복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날지를 보여주고 있다.
22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여호와께서 야곱 족속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야곱이 이제는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겠고 그의 얼굴이 이제는 창백해지지 아니할 것이며
22절은 수치가 제거됨을 말한다.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 안에서도 겸손하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킨 남은 자들의 수치가 없어질 것을 말씀하신다. 이 회복의 시작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었다.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그 후손의 남은 자들의 수치를 제거하실 것이다.
23 그의 자손은 내 손이 그 가운데에서 행한 것을 볼 때에 내 이름을 거룩하다 하며 야곱의 거룩한 이를 거룩하다 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며
[사29:13]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이로 인해 그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인정하고 선포하게 될 것이다. 이전의 문제였던 형식적인 신앙(29:13)과 반대되는, 역전된 모습이 보여지게 될 것이다. 역전된 모습은 망한 나라, 비참한 자신의 삶이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참되게 알고 경외하게 되는 것이었다.
24 마음이 혼미하던 자들도 총명하게 되며 원망하던 자들도 교훈을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이제 남은 자들에게서 시작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선포하고 경외하는 모습은 마음이 혼미하던 자들과 원망하던 자들도 함께 하나님 앞에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 내게 주시는 말씀
–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내 삶의 모든 수치가 제거될 것이다. 날마다 더 하나님과 더 가까이,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몸부림치며 살아야 한다.
– 내 삶의 궁극적인 회복은 삶의 환경이 변하는 것보다 상황과 환경이 변하지 않을지라도 그 삶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선포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임을 깨닫게 하신다. 따라서 내 삶의 기도의 제목들 역시 환경의 변화를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모든 상황과 환경 안에서 신실하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선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구하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단순히 나 혼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아니라 나의 가족, 이웃, 공동체, 지역사회, 나라와 열방에 이 모습들을 흘려보낼 수 있는 삶이 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내 삶을 통해 마음이 혼미하던 자들이 총명하게 되고 원망하던 자들이 교훈을 얻게 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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