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와 승리의 찬양 [사사기 5:1-18]
 – 2026년 09월 10일
– 2026년 09월 10일 –
4장 24절은 “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가나안 왕 야빈을 점점 더 눌러서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더라”라고 기록한다. 드보라와 바락은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한다. 승리의 전장에 울려 퍼지는 환호의 찬양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드높여진다. 드보라와 바락의 호소에 부응하여 참전한 지파들은 승리의 감격 속에서 찬양을 드리지만, 참전의 나팔 소리를 외면한 지파들을 향한 책망의 소리도 주저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노래는 드보라와 바락이 전쟁의 선두에 서서 목숨을 걸고 싸워 승리를 맛본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 군사(18절) 일만 명의 헌신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사실 이 전쟁은 중과부적이 확실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막강한 시스라의 철 병거 구백 승과 싸워야 하는 것을 알고도 자원했다는 것은, 생명을 걸고 임하는 그들의 각오가 고스란히 드러난 일이다.

드보라는 “이스라엘의 어머니”로서 분명한 믿음과 단호한 통솔력을 발휘하였고, 바락은 전선의 선봉에 섰다. 스불론과 납달리의 일만 군사는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다. 그들의 헌신이 승리로 이어지게 하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또 찬송하는 기념비적인 노래이다.



1. 여호와를 찬송하라! 왜?(1~3절)
드보라와 바락이 ‘노래(쉬르, sing_1, 3절)’한다. 그 노래의 내용은 여호와를 찬송하고(2절_바라크_축복하다), 찬송하라(3절_자마르_찬양하다, 노래하다, 연주하다)는 것이다. 곧 기손 강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하솔 왕 야빈을 ‘진멸’하게 하신 하나님을 “축복하고 노래하라”고 명령한다.

*찬송은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특히 찬송의 내용이 “하나님을 축복”하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노래”하는 것임을 알려 준다.

*그렇다면 왜 여호와를 찬송해야 할까? 2절은 이 전쟁에 참여한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기꺼이” 헌신한 그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찬양하라고 명령한다. 그런데 그 찬양의 표현을 “축복”을 비는 것으로 한다. 하나님께서 시스라와 철 병거 구백 승을 물리치시려고 행하신 모든 일뿐 아니라, “기꺼이” 헌신하여 전장으로 달려오도록 마음에 동기를 부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의미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십 년 동안 야빈에게 “심한 학대”를 받았다. 그 정도를 가늠하게 하는 구절이 6~8절이다. “대로가 비었고… 오솔길로 다녔다”, “마을 사람들이 그쳤다(용사가 끊어졌다_새번역)”, “방패와 창이 보였던가?” 등의 표현이 그 실상을 짐작하게 한다.

*대로가 비었다는 것은 무역상들의 발길이 끊어졌다는 뜻이다. 무역로가 철저히 막혔다는 의미다. 오솔길(뒷길)로 다녔다는 것은 심한 학대의 여파로 하솔 왕의 군사들을 피해 다녔다는 뜻이다. 또 마을 사람들이 그쳤다(용사가 끊어졌다)는 것은 철저한 군사적 박해로 인해 군사로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부족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방패와 창이 보였던가 하는 표현은 군사 무기조차 변변치 않았던 현실을 보여 준다.

*이런 상황, 곧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안하고 막막하며 변변한 군사력도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싸워 이겨 주셨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세상의 기준과 조건에 턱없이 열악한 환경이 낙심의 조건일 수 없다. 진정 낙심해야 할 것은 “전능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고, 알면서도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또 “전능의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그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전쟁의 승패는 조건과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느냐에 달려 있다.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승리의 감격을 마음껏 부를 수 있는 삶이기를 소망해 본다. 무엇보다 승리의 현장에서 마음껏 “노래”하며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꿈꿔 본다.



2. 무엇을 어떻게 찬양할까?(4~14절)
놀라운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한다(4~5절). 저마다 하나님께 기꺼이 헌신하여 전장에 나아오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한다(9절). 백성의 지도자들부터 흰 나귀를 탄 귀족, 양탄자에 앉은 부자, 길을 걸어 다니는 평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하나님의 출정 명령 앞에 하나 된 마음으로 즐겁게 헌신하여 나아오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한다.

이렇게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자원하여 결전의 전장에 나오기만 하면 승리가 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주님께서 나를 도우시려고(자원하여 헌신함으로 전장에 내려온 지도자와 백성들을 도우시려고) 용사들 가운데 내려오셨다!”(새번역, 13절) 그렇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여 주심이 이 노래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하나님의 역사의 현장에 나아와 동참하도록 기회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이다. 시스라와의 전쟁에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의 많은 방백이 죽음을 각오한 헌신으로 최전선에 섰다(18절). 이렇게 한마음으로 헌신한 이들을 통해 승리를 가져오셨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을 통해 그 나라가 견고하게 서 간다.

*이를 깨달은 드보라와 바락은 주저 없이 “노래”한다. 사사 시대 민초들 사이에서 불리던 국민 찬송이 지금 불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쉬르_1, 3절)뿐 아니라 악기와 함께 부르는 노래(자마르_3절)도 함께 부른다. “쉬르와 자마르”로 하나님을 노래(sing)한다. 훗날 시편 저자가 노래하듯, 비파와 수금(하프)과 소고(탬버린) 등으로 연주하며 노래(쉬르)하며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찬양한다. 하나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을 맛보았다면 어찌 주저하겠는가!

*하나님께서 함께하여 주시는 것만으로도 목소리로 노래하고(쉬르), 악기를 동원하여 찬송한다(자마르). 모든 것을 동원하여 찬송하여도 다함이 없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렇게 찬양해야 한다.



3. 찬송의 자리에 동참하지 못한 지파들과 그 이유(15절 하반절~17절)
시스라와 야빈 왕과의 전투에 동참하지 않은 지파들과 그들의 형편을 정확하게 언급한다. 르우벤, 길르앗, 아셀, 단 지파였다.

르우벤과 길르앗은 요단 동편에 거주한 지파다. 전쟁에 참전한 에브라임, 베냐민, 마길(므낫세의 장남), 스불론, 잇사갈, 납달리 지파는 하솔 왕 야빈의 철 병거에 직접 “심한 학대”를 받고 있던 지파들이었다. 이들은 드보라와 바락의 부름에 선뜻 일어나 전쟁에 동참하였다. 특히 본문은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의 일만 명이 기손 강 전투에 임하여 목숨을 걸고 싸웠다고 기록한다(18절).

그런데 요단 서편(가나안 땅)에서는 단 지파와 아셀 지파가 불참하였고, 요단 동편에서 땅을 분배받은 길르앗(갓과 므낫세 반 지파)과 르우벤 지파도 이 전쟁을 외면했다. 요단 동편 지파들은 가나안 입성 전에 땅을 분배받으면서 요단 서편의 전투에 참전할 것을 약속한 바 있다(민 32:25~27). 그런데 이들은 선조들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물과 초지가 풍성한 르우벤 지파는 토론만 벌이다 참전의 기회를 놓쳤고, 길르앗과 단 지파와 아셀 지파에게는 고민한 흔적조차 없다. 가나안 왕 야빈의 혹독한 학대에서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그 고난이 실감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고난과 동떨어진 자기 일상을 살아가느라 민족의 전쟁에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다.

*공동체의 관심사에 하나님의 마음으로 연합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모르겠다.



나는?
-전쟁의 승리 후에 드보라와 바락은 여호와를 찬양한다. 이스라엘 영솔자들의 지휘와 백성의 즐거운 헌신이 이루어 낸 승리였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이스라엘의 역사 내내 약속을 지키시는 행동으로 그 역사를 일구셨던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그 권능으로 이루신 승리였음을 찬양하는 것이다. 홍해와 광야와 시내산을 그 앞에서 잠잠하게 하시고 진동하게 하셨던 하나님을 인정할 때, 이스라엘은 승리를 지속적으로 누릴 것이다. 또한 그 능력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진심 어린 사랑을 믿을 때 약속해 주신 가나안의 복을 누릴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기에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 백성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기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온전히 그 말씀(약속)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임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드보라는 승리의 날에 이스라엘을 찬양의 자리로 초대한다. 오랜 압제 속에서 무기력하게 살던 방백과 백성에게, 이날의 감격을 잊지 말고 참전하도록 이끄신 하나님을 자원하여 송축하자고 말한다. 부유한 사람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전쟁터든 우물 곁이든, 하나님의 의로우신 일(승리와 구원)을 만방에 전하라고 명령한다(1~3, 9~12절). 하나님 백성의 예배와 찬양은 그분의 살아 계심과 능력에 대한 산 증거(증인)이며, 세상을 향한 선교적 메시지다.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과 지금도 내 삶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향한 나의 노래와 고백이 끊이지 않기를 소망한다.

-이스라엘의 대적을 치시려고 백성 앞에 서서 나아가실 때(4:14), 땅과 산들은 흔들리고 하늘은 비를 쏟는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거룩한 용사(사사)’로 강림하시자, 불리하던 전력과 전세는 순식간에 역전된다(4, 5, 13절). 힘을 우상으로 떠받드는 세력(용사)을 심판하신 하나님은, 악이 준동하는 이 세상도 의와 공평과 진실로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심판의 주님이 오실 것이기에, 이 땅의 악에 동조하지 말고 시련의 때를 타협 없이 잘 인내하여 살아 내야 하리라.

-하나님이 강림하시고(13절) 드보라가 일어나기 전까지(7절), 이스라엘 백성은 대로를 두고도 샛길로 숨어 다닐 만큼 숨죽여 살아야 했다. 막강한 대적과 싸울 무기도, 지켜 줄 보호자도 없었다(6~8절).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배신한 죄의 대가는 혹독했다. 그러니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미래를 버리는 일이요, 고통과 파멸을 자초하는 일이다.

-모든 지파가 전쟁에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드보라의 참전 요구에 헌신적으로 응한 지파도 있었지만, 거리가 멀고 바쁘다는 이유로 공동체의 위기를 외면한 지파도 있었다(14~18절). 하지만 명백한 말씀을 굴복시킬 만큼 떳떳한 불순종은 없다. 헌신이 광신처럼 호도되고 철저하게 이기적인 세상에서, 나와 우리 공동체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라고 부르심 받은 그 소명을 감당하며 시련을 견뎌 내고 있을까?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과 함께하신 하나님이, 이제는 가나안과 전쟁하시려고 그 광야를 지나 가나안으로 들어오신다. 하나님의 등장에 땅이 흔들리고 산이 진동하며 폭우와 비구름이 쏟아진다. 자식의 어려움을 알고 득달같이 달려오는 아버지의 모습과 흡사하다. 그 폭우로 시스라의 철 병거는 고철 덩어리가 되었다. 하나님의 달려오심……. 자녀들이 당하는 고난을 외면할 수 없어 민감하게 반응하여 달려오신 그 폭풍우가 백성을 살렸다.

-대로에 다니는 사람 없고 모두 오솔길로 피해 다니던 때에, 드보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의 어머니 노릇을 한다. 그는 하나님의 승리를 선포하면서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날지어다” 하며 담대히 하나님의 전쟁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드보라 자신과 바락이 이 전쟁의 선봉에 선다. 지도력의 무게가 이런 모습이 아닐까? 말로만이 아닌 ‘행동과 현장’에 거하는 모습이 곧 지도력의 핵심이 아니겠는가. 내게 맡겨 주신 목양의 터 안에서, 순종의 행함으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과 함께하기를 결심해 본다.

-에브라임, 베냐민, 마길(므낫세), 스불론, 잇사갈, 납달리 지파는 철 병거에 의해 핍박을 많이 받던 지역이었다. 그들은 드보라의 요청에 선뜻 일어나 전쟁에 참여한다. 스불론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가장 용맹하게 나선다. 반면에 철 병거의 영향을 적게 받은 요단 동편의 르우벤과 길르앗, 해변의 아셀 지파와 북쪽의 단 지파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고난이 없으니 전의(戰意)도 없었다.’ 자신만 안전하면 그만이었다. 형제의 고통에 침묵하였다. 오늘날 교회의 위기 앞에 우리 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까? 스불론처럼 주님의 교회의 거룩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영적 전투의 현장을 누볐으면 좋겠다. 우리는 괜찮다는 안주함에 영적 기개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온 이스라엘이 온전히 하나 되어 치른 전쟁은 아니었지만, 드보라와 바락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서로 마음이 분열되어 오합지졸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이렇게 한 것은 정말 훌륭하다. 그래서인지 본문은 드보라를 “이스라엘의 어머니”(5:7)라고 부른다. 그녀의 조언과 지휘와 격려로 나약한 남자들이 깨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기대하게 하였다. 하나님의 승리를 경험하는 데까지 양육하였다. 진정한 지도자는 자기 능력을 과시하는 대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모두가 나서게 하는 사람임을, 드보라가 선명하게 보여 준다. 나는 어떤가?

-지금 우리 시대에는 이렇게 포용하고 연합하여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어머니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지도자들이 늘 양극단에 치우쳐 국민과 그 삶을 바라보기보다 경쟁과 정쟁만 일삼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사랑해 주셔서, “드보라”와 같이 연합하고 포용하는 리더십으로 교회 공동체들이 다시 한번 회복의 길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드보라의 리더십은 분열을 넘어 연합으로 이끄는 리더십이다. 직면한 각종 문제를 넉넉히 이기며 나아가도록, 하나님께서 행하실 승리를 기대하며 지금 흩어져 있는 마음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그 리더십을 잘 닦아야 하겠다.

-사사 드보라의 시대는 하나님이 주신 승리를 기억하고 전하는 공동체로 회복한 시대였다. 오늘날 교회도 하나님의 위대한 승리를 기억하고 찬양하며 전하는 공동체로 부름받았다. 승리의 하나님을 만나 그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다. 우리도 세상에서 얻은 부와 영광을 자랑하는 이야기보다,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꽃피우는 공동체로 빚어 가야 하지 않겠는가!

-부와 권력과 명예를 얻는다고 교회가 강력해지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의 공동체, 능력의 공동체로 설 수 있는 것은 위용 넘치는 건물의 소유에 있지 않다. 교회의 힘은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거룩한 무리에게서 나오고, 다수가 회개하여 하나님 나라 가치관으로 살아갈 때 비로소 드러난다. 우리 더온누리 공동체가 이런 공동체로 생동해야 하지 않겠는가!

-드보라의 요청에 반응하여 참여한 지파와 참여하지 않은 지파를 선명하게 기록해 놓았다. 형제들이 나가서 피 흘릴 때, 어떤 이들은 편히 앉아 바라만 보았다. 다른 이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고군분투하며 치열하게 살아 내는데, 몇몇은 안일과 편안함에 묻혀 욕망만 좇았다. 하나님 나라의 영적 전쟁의 현장에 방관자는 있기 마련이다. 그렇더라도 방관자에게 마음을 빼앗겨 스스로 무너지기보다, 함께 싸우는 지체들과 단단히 항오를 짜고 마음과 힘을 모아 전진해야 할 것이다. 다른 이들이 어찌하든, 함께한 이들과 더불어 주님의 용맹하고 신실한 용사가 되어 싸워야 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이을 자는 주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그 나라 이야기를 기억하고 간직하는 공동체다. 돈과 힘이 정의라는 세상이 만들어 가는 이야기를 따라 살지 않고, 십자가가 영광이라는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좇아 사는 공동체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 공동체도 주님의 십자가에 참여하며 하나님 나라를 지금 여기에 단단히 세워 가야 할 것이다.

+ 기도제목

*주님, 결코 쉬운 상황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기에 승리를 노래하렵니다.
*주님, 모두가 하나 되기 어려워도, 자원하여 헌신한 지체들만이라도 더욱 하나 됨을 추구하겠습니다.
*주님, 드보라의 리더십이 그립습니다. 저도 이 리더십을 사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