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요담의 우화와 아비멜렉의 악행 [사사기 9:7-21]
 – 2026년 09월 20일
– 2026년 09월 20일 –
아비멜렉이 스스로 왕이 되기 위해 형제 70명을 처형할 때 유일하게 탈출한 요담이 그의 잔인함을 세겜 사람들에게 비유로 전한다.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는 왕이 되는 대신 풍성한 열매를 맺어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자신들의 사명에 집중하겠다며 나무들의 간청을 고사한다. 그런데 가시나무는 달랐다. “자신의 그늘에 들어오라”고 외치면서, 그렇지 않으면 불로 태우겠다고 위협한다(7-16절). 요담은 이 우화를 마치고 격렬하게 외친다.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운 너희도 이와 같이 될 것이라고…(17-21절).



1. 요담의 용기(7절)
요담은 “스스로 숨어서(숨어 있었으므로_5절)” 살아남았다. 형제들을 바위 위로 끌고 갈 때 이미 숨었을 가능성이 크다. 요담의 은둔은 아비멜렉의 몇몇 비류들에게는 골치 아픈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요담을 끝내 찾아내지 못하고 세겜으로 돌아가 즉위식을 거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요담은 은둔을 거듭하다가 사람들을 통해 즉위식 소식을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목숨이 두려워 더 깊은 음지로 숨어 들어간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선다. 세겜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그리심산에 올라 큰 소리로 그 백성들을 향해 외친다.

이런 행동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 안에 아비멜렉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이미 세력을 결집했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본문은 “사람들이 요담에게 그 일을 알리매…(7절)”로 시작하는데, ‘스스로 숨은’ 요담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면 이미 아비멜렉에 대항하는 세력이 조직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요담의 용기는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세력이 커서 생긴 것이 아니다. 요담은 “…세겜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그리하여야 하나님이 너희의 말을 들으시리라(7절 하)”라고 외쳤다. 하나님 앞에서 이 소리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세력이 조직을 갖추었다 한들 아비멜렉의 세력과는 비교할 수 없었을 테다. 그럼에도 요담은 “하나님 앞에서” 이 일을 행한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행하던 아비멜렉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하나님의 뜻을 알리고 외쳐야 할 때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순수한 마음으로 해야 함을 깨닫는다.



2.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16절)
요담이 용기 있게 그리심산 정상에서 세겜을 향해 외친 말은 “너희가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16절)”였다. 나무들이 자신들의 왕을 뽑는 이야기를 통해 아비멜렉이 가시나무 같은 자임을 만천하에 고발한다. 나무들에게 먼저 추대된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는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기름과(9절), 단 것과 아름다운 열매와(11절), 포도주를(13절) 내는 것에 만족하고 기뻐하며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9, 11, 13절)”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왕이 되는 것보다 지금 자신들이 감당하는 본연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더 의미 있고 기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시나무는 기가 찰 “호언장담”을 내뱉는다. ‘너희가 정말로 나에게 기름을 부어, 너희의 왕으로 삼으려느냐? 그렇다면, 와서 나의 그늘 아래로 피하여 숨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가시덤불에서 불이 뿜어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살라 버릴 것이다(새번역_15절).’ 기름도 없고 열매도 없으면서 날카로운 가시만 내는 나무 주제에 나무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선뜻’ 왕 노릇을 하겠다는 것이다.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제안을 받는 그 자리에서 “엄포”를 놓는 모습은 앞으로 가중될 백성들의 고통과, 결국 하나님을 떠나 멸망당할 미래를 내다보게 한다. 세겜 사람들은 가치 없고 고통과 불편만 주는 해악 덩어리인 가시나무 같은 아비멜렉을 선택한 것이다. 요담은 “이 선택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라고 묻는 것이다.

아비멜렉의 삶의 흔적은 왕이 되기 위해 세겜 사람들에게 보여 준 모습 그 자체다. 그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열매도 보여 주지 못했다. 그런 그가 왕이 되고 싶어 시도한 것은 비겁한 “분노 유발”, 망국의 “혈연과 지연” 붙잡기, “폭력으로 억압하기”였다. 왕이 될 수만 있다면 이런 것쯤이야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긴 것이다. 삶의 열매가 없는 그가 다른 이들의 열매를 짓밟으며 그들의 왕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런 해악 덩어리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운 세겜 사람들의 선택 역시 악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바알이 싸우려는 자’의 아들들을 따를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기드온이 미디안으로부터 자신들의 조상을 구원하여 준 것도 잊어버린 채, 미디안에게 비참하게 진멸당할 뻔한 지경까지 몰린 자신들을 구해 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들이 섬기는 바알의 대적을 따를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기드온의 자손이면서 자신들과 혈육인 아비멜렉을 대신 섬기는 것은 좋은 선택지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비멜렉의 악함은 문제 되지 않았다. 그는 왕의 재목이 아니었지만 자신들의 구미에 딱 맞았기에, 그들은 “악인과 동행”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모든 백성을 고통 가운데로 몰아가는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



3. 진정한 왕, 하나님께서 계시기에
요담의 우화는 이스라엘 백성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왕이 되어 달라는 추대에도 자신들의 사명을 따라 사는 삶에 만족하고 즐거워하는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는 공교롭게도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들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왕이 되고자 하는 욕망보다 왕이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열매를 내는 삶을 살고, 그 삶을 즐거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사 시대의 고통은 “사명 따라” 사는 삶에는 관심 없고 “욕망 따라” 사는 삶을 추구하다 반복된 열매들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 가운데 남겨 둔 이방 민족의 삶의 체계를 눈여겨보게 된다. 이스라엘이 힘이 있었을 때는 상관없었지만, 그들이 세력을 키우고 안정되어 이스라엘을 넘보고 나아가 억압하는 상황이 반복되자,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왕을 바라보게 된다. 그들의 강성함이 왕의 존재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들처럼 우리도” 왕을 세워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우셔서 그들의 조상의 삶에 평화를 주셨어도 이를 바라보지 못했다.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가 얼마나 평안한지, “여호와 샬롬”을 누리지 못했다. 세상 왕의 강성함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이에 이스라엘은 “우리도 저들처럼” 왕을 세워 달라는 요청을 반복한 것이다. 특히 이전 네 명의 사사 이야기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기드온에게 우리를 다스려 달라고 한 백성들의 간청이 이를 뒷받침한다(삿 8:22).

하지만 요담의 이야기에서는 분명한 하나님의 의지가 돋보인다.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가 이구동성으로 고백한다. ‘내가 어찌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이 풍성한 기름 내는 일을 그만두고 가서, 다른 나무들 위에서 날뛰겠느냐?(새번역_9절)’, ‘내가 어찌 달고 맛있는 과일맺기를 그만두고 가서, 다른 나무들 위에서 날뛰겠느냐?(새번역_11절)’, ‘내가 어찌 하나님과 사람을 즐겁게 하는 포도주 내는 일을 그만두고 가서, 다른 나무들 위에서 날뛰겠느냐?(새번역_13절)’ “내가 어찌 ~ 그만두고 가서, 다른 나무들 위에서 날뛰겠느냐?”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세상 나라의 삶과 다르다.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사명을 따라 그 안에서 열매 맺고,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고 행복하게 하며 살아가는 인생이다.

이 귀한 사명을 버리고 “어찌 세상을 다스린다며 날뛰겠는가?” 이 땅에서의 삶은 하나님께서 은혜와 축복의 산물로 주신 “기름을 내고, 과일을 맺으며, 포도주를 내는” 사명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여기에 행복이 있다. 하나님께서 왕이 되셔서 우리를 통치하시면 된다. 우리는 그의 통치 안에서 사명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기쁨과 행복을 누리면 된다. 인간 왕은 필요하지 않다!



나는?
-본문에서 기드온의 아들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요담은 ‘나무 우화’를 통해 아비멜렉 왕권의 부당성과 그를 왕으로 추대한 세겜 사람들의 우매와 불의를 지적한다. 이 비유는 앞으로 이스라엘에 닥칠 일을 예고하는 기능도 있다. 요담은 축복의 산인 그리심산에서 저주를 선언한다. 기름이 나서 유용한 감람나무, 단 열매를 맺어서 유용한 무화과나무, 포도주로 사람을 기쁘게 하는 포도나무는 왕의 자리를 거절한다. 이 나무들은 각자 자기 역할을 소중히 여기며 자족한다. 받은 소명 이상을 넘보지 않는다. 이런 모습이 리더의 참모습이 아닐까?

-요담은 아비멜렉이 왕이 되었다는 소식에 그리심산에 올라 세겜 사람들을 비난한다(7절). 야망을 숨긴 채 유화적인 말(2절)로 사람들을 선동하던 아비멜렉과 달리, 요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듯 그들의 악행을 지적한다. ‘축복의 산’에서 들리는 요담의 저주는 악에 눈감고 불의에 동조하는 뒤틀린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처럼 들렸다. 지금 나와 우리 공동체 안에서도 입맛에 맞는 말씀만 골라 듣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말씀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면 언젠가 그들처럼 우리도 흉측한 모습으로 변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왕을 세우기 위해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를 찾아가지만, 그들은 자신의 자리와 본분을 ‘버리고’ 나무들 위에서 우쭐댈 수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8~13절).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신의 소명과 역할을 더 소중히 여기기에 왕이 되어 달라는 요청을 거절한 것이다. 자격 없는 이들(가시나무)은 자리만 탐하지만, 자격을 갖춘 이들은 주어진 자리에서 제 소임을 다한다. 그러니 주님이 부르신 자리와 주신 은사를 서로 견주어 자랑하지도, 위축되지도 말아야 한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그 자리가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자리다.

-그런데 가시나무는 왕이 되어 달라는 제안을 수락하면서 자신의 ‘그늘(통치, 보호)’에 피하라고 말한다. 지키지 못할 공약만 늘어놓으며 허세를 부린다. 또 자기 체제에 복종하지 않으면 불로 태우겠다고 협박까지 한다(14~15절). 왕이 되겠다고 나선 가시나무는 왕이 될 자격과 능력도 없이 왕권을 차지한 아비멜렉을 풍자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상과 인생을 의지하는(4절) 자의 성취를 인정하지 않으시고, 탐욕의 대가를 치르게 하신다(56, 57절).

-요담은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운 것이 ‘진실하지도 의롭지도’ 못한 일이라고 질책한다(16~21절). 그것은 기드온이 이스라엘에 바친 충정을 배신하는 일이었고, ‘온전함과 진실함(수 24:14)’으로 하나님만 섬기기로 한 언약을 저버리는 행위였다. 진리와 진실을 떠난 그들의 불의한 공모는 잠시 뜻을 이룬 듯 보였지만 오래가지 못했다(57절).

*주제도 모르고 왕이 되겠다는 그를 나의 욕망과 일치한다고 해서 지지하고 세우는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 사실 이 외침은 아비멜렉의 악함을 고발한다기보다 세겜 사람들의 죄악을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자기들의 이익에 맞기만 하면 어떤 악함이나 악인과도 손잡고 합종연횡하는 그들의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상태를 성토하는 것이다.

*이런 세겜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소름 끼치도록 일치하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이 보여 두렵고 떨린다. 너무나도 심각하게 들어맞는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사사기 9장의 이야기가 재현되고 있다. 열매도 없고, 가치도 없으며, 인품도 미천하고, 큰소리치며 호령만 하는 가시나무 같은 이가 “스스로 제왕”이 되겠다고 나서는 이 판에, 세겜 사람들처럼 맞장구치며 추임새를 넣고 있는 이 나라가 개탄스럽다. 과연 이런 현재가 진실하고 의로운가?

*기쁨과 행복의 축제가 되어야 할 지도자 선출 과정에서, “분노와 편 가르기”로 증오와 미움을 양산하며 대립으로 이끌어 가는 “세겜 사람들” 같은 이들의 농락에 반복해서 놀아나야 하겠는가! 과연 이것이 진실하고 의로운가?

+ 기도제목

*주님, 내가 먼저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라는 외침에 반응하겠습니다.
*주님, “진실하고 의로운” 선택을 위해 나를 돌아보겠습니다. 주님의 뜻을 더욱 구하겠습니다. 용기 있게 외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