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아비멜렉의 최후 [사사기 9:46-57]
 – 2026년 09월 22일
– 2026년 09월 22일 –
요담의 저주가 성취되었다. 아비멜렉은 가알의 농간에 넘어간 세겜 사람들을 진멸하고 그 성을 헐고 소금을 뿌렸다. 세겜 망대에 피해 있던 나머지 주민들은 엘브릿 신전의 보루(은밀한 곳)로 피신했다. 하지만 아비멜렉은 그 보루의 입구에 불을 질러 천 명을 몰살시켰다. 이복형제 70명을 몰살시키며 왕에 오른 그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세겜 사람들마저 진멸한 것이다(46-49절).

세겜 사람들의 불의함에 대해 요담이 선포한 대로 “그렇지 아니하면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서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을 사를 것이요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에서도 불이 나와 아비멜렉을 사를 것이니라(20절)” 하신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아비멜렉의 불이 세겜을 불살랐다.

아비멜렉의 분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세겜과 동맹 관계였던 데베스까지 공격한다. 데베스 주민들은 밀리고 밀려 “어느 견고한 망대”로 도망하여 결사 항전을 벌였다. 아비멜렉은 여기에서도 주민들이 가득 피신해 있는 망대를 불사르려고 했다. 그때 한 여인이 맷돌 위짝을 아비멜렉의 머리 위에 내려던져 두개골을 깨뜨린다. 여인에게 죽임을 당하는 치욕을 견딜 수 없어, 그는 무기를 든 청년에게 자신을 찔러 죽이라고 하여 최후를 맞이했다. 아비멜렉을 따라 세겜을 몰살하고 데베스를 살육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광기가 비로소 멈췄다(50-55절).



1. 갚으셨고, 갚으셨으니(56-57절)
사사기 저자는 이 일에 대하여 분명한 해석을 내린다. “하나님은 아비멜렉에게 자기 형제 일흔 명을 죽여 자기 아버지에게 저지른 죄의 값을 이렇게 갚으셨고, 또 세겜 사람들의 죄악도 그들에게 모두 갚으셨다. 여룹바알의 아들 요담의 저주가 이렇게 그들에게 그대로 이루어졌다(새번역_56-57절).” “하나님께서 이같이 갚으셨고… 갚으셨으니”라고 분명하게 기록한다. 아비멜렉의 악행을 갚으셨고, 세겜 사람들의 악행을 갚으셨다.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이시다. 바울도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 이 점을 분명하게 일깨웠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7-9).” 나의 삶이 하나님의 때에 심판으로 갚음받는 인생이 아니라, 선을 행하여 은혜의 열매를 거두는 삶이 되기를 결심해 본다. 지금 당장의 명분과 이익을 따라 세겜 사람들처럼 “진실과 의로움”과는 상관없는 선택을 할 때 그것이 어떤 열매로 나타나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행한 대로 갚으신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의를 붙들고 붙들어야 산다!



2. 파멸에 이르는 순간까지도
아비멜렉은 바알브릿 보루에 피신한 세겜 사람들에 대하여 “내가 하는 것을 보았으니, 너희도 빨리 그대로 하여라(새번역_48절)” 말하며 나무를 찍어다 쌓았다. 백성들은 “아비멜렉을 따라” 나무를 찍어 쌓고 불을 질러 천 명을 죽인다. 형제 70명을 살해했던 아비멜렉은 이제 세겜 사람들을 몰살하는 데 거침이 없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을 백성들은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 데베스를 점령할 때도 전투를 벌인 것이 아님을 짐작케 한다.

그 주민들은 싸울 능력도 없었다. 그저 “견고한 망대”로 도망가 문만 걸어 잠글 뿐이었다. 어떤 군사적인 대항도 없었기에 아비멜렉은 망대 밑으로 직접 가서 불사르려고 했던 것이다. 방패를 든 자도 따르지 않았다. 주민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한 여인이 던진 맷돌 위짝에 그의 두개골이 깨져 버렸다. 망대에서 던진 맷돌 위짝이었는데 즉사하지 않고 숨이 붙어 있었다.

또한 자신에게 돌을 던진 자가 “한 여인”이었고, 여인의 손에 죽을 수 없으니 죽여 달라고 말하는 것을 볼 때 의식이 또렷했음을 알 수 있다. 의식이 또렷했기에 자신의 명예를 위해 여인의 손에 죽는 치욕을 남길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이르기를 여자가 그를 죽였다 할까 하노라(54절)” 이 치욕을 감당할 수 없어 병사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그가 생각한 것은 그저 “한 여인”에게 죽임당했다고 손가락질당할 자신뿐이었다.

그것이 치욕스러울 뿐이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됐다. 어쩌면 맷돌에 맞아 두개골이 깨졌어도 숨이 남아 있을 때, 도리어 자신의 삶을 되돌아봐야 했다. 요담이 그리심산에서 외쳤던 그 저주를 되돌아봐야 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선언하신 그 저주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자신을 돌아봐야 했다. 그래야 그나마 부끄러워도 “회개”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아비멜렉은 그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버린다. 오직 자신의 이름과 명예만 생각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마지막까지 자신의 권력에만 집착하고, 그 권력이 여자에 의해 무너지는 것만 두려워하다니. 마지막이라도 하나님께 돌아올 기회를 이렇게 허무하게 날려 버릴 정도로 자기 권력에 취한 사람의 말로가 이렇다. “너희도 보았으니… 빨리 따라 하라(48절)”며 자신을 보고 따르라 했던 백성들이 본 그의 최후는, 두개골이 깨진 비참한 시신뿐이었다.



나는?
-세겜 망대 사람들은 잔인한 아비멜렉을 피해 가장 안전하다고 믿은 ‘신전의 보루’에 몸을 숨기지만, 결국 불에 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46~49절). 그들이 세운 지도자에 의해 몰살당하고, 그들이 그토록 따르던 신은 그들을 지켜 주지 못했다. 이것이 헛된 우상을 섬기고 불의한 자를 왕으로 옹립한 죄악에 대한 ‘참혹한 대가’였다. 이처럼 심판의 날에는 내가 의지하던 세상의 그 무엇도 나를 지켜 주지 못한다. 도리어 그것은 내 생명을 옭아매는 도구나 나를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피해 선택한 최후의 장소는 엘브릿 신전의 보루였다. 자신들이 섬기는 신의 보호를 받으려고 신전의 은신처로 도망한 것이다. 아비멜렉은 보루에 불을 질러 그곳으로 피한 세겜 사람 약 천 명을 몰살한다. 세겜 사람들은 보호받으려고 들어간 신전 안에서, 자신들이 불법적으로 세운 왕에게 불타 죽은 것이다. 하나님을 버리고 섬긴 바알도, 기드온을 배신하고 세운 아비멜렉도 그들을 지켜 주지 못했다. 요담의 저주는 곧 하나님의 저주였던 것이다.

-세겜을 진멸한 아비멜렉은 그 여세를 몰아 ‘영토 확장’을 위해 데베스를 침공한다(50~55절).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데베스까지 침공한 것은 그의 잔학성과 야욕의 끝을 보게 한다. 하지만 자기 욕망 때문에 배반에 배반을, 살인에 살인을 거듭하던 아비멜렉이 무명의 여인이 던진 맷돌에 맞아 허망하게 죽자, 그를 추종하던 무리도 뿔뿔이 흩어진다. 영원할 것 같던 악인의 위세와 철권통치가 허무하게 무너진 것이다. 그는 3년 동안(22절) 왕권에 취해 살다가 자기 가문과 함께 영원을 잃어버린 어리석은 사람이다. 내가 추구하고 또 성공이라고 칭송받는 것들이 하나님께도 의미가 있는 것인지 돌아보고 또 돌아보아야 한다.

-아비멜렉은 뚜렷한 이유와 명분 없이 전쟁을 확대했다. 세겜만이 아니라 주변의 데베스까지 점령하여 세력을 넓히려고 했다. 그의 폭력적인 본성 그대로였다. 데베스 사람들도 망대 꼭대기로 올라가 숨었지만, 아비멜렉은 세겜과 마찬가지로 불태워 죽이려고 했다. 하지만 망대를 불사르려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한 여인이 맷돌 위짝을 던져 그 머리를 부순다. ‘한 바위’에서 형제 70명을 죽이고 세겜 사람들 천 명을 몰살한 아비멜렉은, 결국 ‘한 여인’이 던진 ‘한 돌’에 맞아 죽는다. 하나님은 그렇게 아비멜렉을 심판하셨다.

-악인들의 악행을 반드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다(56~57절).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의 배반과 반역, 전쟁과 죽음은 모두 그들이 행한 악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이다. 그들에 대한 심판은 유예된 것일 뿐(3년, 22절) 철회된 것이 아니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침묵이 악에 대한 묵인은 아니다.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시고, 인간의 때가 아닌 하나님의 때에 심판하신다. 이 땅에 여전히 악인이 득세하는 것도 즉각적인 보응이 없거나 용서를 경박하게 이해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내가 죄에 눈감는다고 해서 하나님도 내 죄에 눈감으시는 것은 아니다. 축복이든 심판이든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실현된다.

*너희가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고 외쳤던 요담의 질문에 답할 사람들이 모두 죽어 버렸다. 어느 누구도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죽어 버렸다. 죽기 직전에라도 이 질문에 답했어야 했다. “내가 행한 것이 진실로 거짓되고 불의하다”고 고백했어야 했다.

*아비멜렉을 따르던 백성들은 요담의 호소가 어떻게 응답되는지 똑똑히 보았다. 세겜 사람들이 불과 연기에 죽어 가는 것도, 아비멜렉이 죽는 것도 보았다. 망대에 숨었다가 불에 타 죽은 이들도 보았고, 두개골이 깨지고 칼에 찔려 비참하게 죽은 아비멜렉의 시체도 보았다. 하나님을 떠난 이들의 비참한 결말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그런데 과연 백성들이 이것을 보고도 요담의 말대로 행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을까?

*일어난 일을 보고 “무엇을 보는가”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아침이다.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에 의해 망대로 쫓기고 바알브릿의 보루로 쫓길 때, 요담의 저주가 생각나야 했고 그때라도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했다. 그들에게 남은 희망이 바알브릿의 보루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깨달아야 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그들은 끝까지 바알만 바라보았다. 요담의 선포를 도무지 생각하지 못했다. 말씀이 잊힌 그들에게 남은 건 비참한 죽음뿐이었다. 말씀이 생각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아침이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생각나게 하시는” 은혜가 얼마나 크고 소중한지 깨닫지 않을 수 없다.

*세겜 사람들도 한 번에 무너지지 않았다. 최후의 순간까지 아주 짤막한 시간이 있었다. 아비멜렉도 마찬가지다. 최후의 순간 직전에 아주 짧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 찰나의 시간은 “회개”의 기회였다. 염치없지만 주님의 이름을 불러야 할 순간이었다. 어쩌면 주님께서 주신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세겜 사람들은 바알브릿의 보루를 택했고, 아비멜렉은 자신의 명예를 택했다. 바알브릿이 자신들을 구해 주리라 믿었고, 쓸데없는 명예에 집착하여 회개의 기회를 날려 버렸다. 적어도 자신들이 행한 악행을 돌아보고, 자신이 저지른 죽음의 행보를 후회라도 했어야 했다.

*”아비멜렉이 행한 악행을 하나님이 이같이 갚으셨고, 또 세겜 사람들의 모든 악행을 하나님이 그들의 머리에 갚으셨다”

*사사기 9장은 결국 배신을 공모한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의 공멸로 끝났다. 이 모든 것은 요담의 저주를 통해 들려주신 하나님의 뜻이 성취된 것이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단호하시다. 왕이라도 악을 행하면 보응하신다.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고 끝까지 자기 백성을 인도하신다. 하나님을 떠나 치르는 싸움은 끝을 알 수도 없고 자기중심적이 되기 쉽다. 내가 바로 서지 못하면 가족과 공동체도 바로 설 수 없다. 우리가 싸워야 할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서로 살리고 함께 사는 정결한 싸움임을 늘 기억해야 할 것이다.

+ 기도제목

*주님, 짤막한 순간 속에 성령께서 일깨워 주시는 은혜를 붙잡겠습니다.
*주님, 반드시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을 살 때 죄의 유혹을 견뎌 보겠습니다.
*주님, 죄에 대하여 반드시 보응하시는 주님의 뜻을 잊지 않고, 죄의 유혹을 성령을 의지하여 분별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담대히 맞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