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꿀벌이지만 번개처럼, 횃불처럼, 등불처럼 [사사기 4:1-10]
 – 2026년 09월 08일
– 2026년 09월 08일 –
사사기 4~5장은 드보라 사사와 므깃도 전투에 관한 사건을 언급한다. 4장은 내러티브 형식으로, 5장은 시 형식으로 구성된다.

이스라엘이 다시 타락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이번에 그들을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파신다.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에게는 가나안의 강력한 무기인 철 병거가 있어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극도로 억압하였고,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여자 사사 드보라를 보내 주시고, 그녀를 통해 바락을 불러 가나안과의 전쟁을 준비하신다.

여인천하의 시대가 열렸다! 아쉽게도 에훗이 죽은 후 이스라엘은 “또” 악을 행한다(1절). 하솔 왕 야빈과 시스라는 철 병거 900대를 앞세워 이스라엘을 “심하게 억압”한다. 울부짖는 이스라엘을 구한 사사는 “여선지자 드보라”였다. 드보라는 하나님의 감동을 따라, 시스라와 그의 철 병거를 넘겨주시겠다는 메시지를 바락에게 전했으나 그는 주저한다. 이에 드보라는 시스라가 여인의 손에 죽게 될 것을 예언한다.



1. 이스라엘의 타락과 드보라 사사 소개(1~5절)
1~3절은 드보라 서사의 프롤로그다. 에훗이 죽은 후에 나타난 다음 세대 이스라엘은 다시 하나님을 잊고 악을 행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이번에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신다. 당시 가나안 지역의 대부분은 이스라엘이 정착하여 살고 있었기에, ‘가나안 왕’이라고 불리는 야빈은 ‘하솔’ 지역만 다스리는 지도자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당대 최고의 무기인 철 병거 900대가 있었다. 그 때문에 그는 아직까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점령당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이스라엘 자손을 20년 동안 심하게 학대하였다.

이 철 병거를 지휘하는 군대 장관은 하로셋 학고임에 거하는 시스라였다. 5장 6절을 보면, 그들은 사람들이 대로로 다니지 못하고 꼬불꼬불한 산길로 몰래몰래 다닐 정도로 철저하게 억압하였다. 이렇게 상황이 힘들어지자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께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는다. 그들이 섬기던 가나안의 신들이 그들을 구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4~5절은 드보라 사사를 소개한다. 드보라라는 이름의 뜻은 “꿀벌”이다. 저자는 “랍비돗의 아내(에쉐트 랍비돗)”로 그녀를 소개하는데, 랍비돗에는 번개, 횃불, 등불이라는 의미가 있다. “~의 아내”로 번역된 “에쉐트”는 “~의 여자”라는 의미도 있다. 직역하면 “횃불의 여자(아내)”이다. 드보라(꿀벌)는 “번개(횃불, 등불)의 여자”인 것이다. 앞서 사사들의 이름을 소개하는 히브리어 어순과 비교하면, “랍비돗의 아내”는 남편 랍비돗의 여자라는 의미보다 드보라의 별명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더구나 드보라를 소개하는 문장(4절)의 단어들은 모두 여성형으로 기록되었다. 드보라는 여성 중의 여성이었다.

당시 사회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여성상이다. 에훗이나 삼갈과 같이 의외의 선택을 하나님께서 하신 듯하다. 그럼에도 여선지자 드보라는 라마와 벧엘 사이에 거주하며 구원자뿐 아니라 재판관의 역할까지 감당하였다. 그 영향력은 상당하여, 바락의 경우는 드보라가 함께 출정하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고까지 할 정도였다(8절).



2. 어? 이번에도 이렇게?(6~10절)
에훗과 삼갈은 각각 훈련받은 대로 살아내지 못하고,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 마음을 두었던 연약한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용하시니, 이스라엘을 모압과 블레셋에서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

드보라도 마찬가지다. 당시 세계관에서 ‘여인’의 위치는 매우 열악했고 부정적이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여성을 통해 구원의 사역을 진행하셨다. 당시 여성 비하적인 문화 가운데 있었지만, 적어도 여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창조 때부터 변함없이 “하나님의 형상”(창 1:27)으로 동등하게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 바울은 갈라디아에 보낸 서신을 통해 남자나 여자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을 밝혔다(갈 3:28).

성경에 등장하는 여성 리더십으로는 모세와 함께 출애굽의 역사를 동역했던 미리암(출 15:20~21), 남 유다 요시야 왕 때의 훌다(왕하 22:14~20), 예수님께서 출생하시기 전 성전에서 밤낮으로 금식하며 기도한 안나(눅 2:36) 등을 들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꼭 필요한 자리에 최적의 사람을 세우셔서 그 뜻을 펼치신다. 하나님 앞에서 남성과 여성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오직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일 뿐이다.

*그렇기에 드보라가 남자냐 여자냐의 문제이기보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드보라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셨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하겠다. 하나님의 세워 주심은 성별과 관련이 없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선택되고 진행된다. 남자인가, 여자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순종하는가의 문제다!

*구약성경의 여성 리더십은 여러 면에서 제약되었지만, 드보라처럼 여성 지도자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끼치는 리더십의 영향력이 어떠한가일 것이다. 놀랍게도 드보라의 리더십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5절)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납달리 지파의 유명한 장수인 바락이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나도 가려니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8절)라고 말한 장면을 통해 그녀의 탁월함과 권위를 엿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여 세우시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을 세우신다.



3. 드보라와 바락의 차이
드보라를 소개할 때 “랍비돗의 아내”(4절)라고 했다. 랍비돗이 ‘번개, 횃불, 등불’ 등의 의미라는 것도 앞서 살펴보았다. 드보라는 철 병거 900대를 앞세운 하솔 왕 야빈의 “심한 학대”(3절)가 가나안 땅 북부 지역을 뒤덮은 상황에서,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4~6km) 사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판결하며 “하나님의 뜻(진리)의 횃불”을 든 여인이었다.

하솔 왕의 ‘심한(호즈카: 무력, 폭력, 강압, 세력)’ 학대(라하츠: 압착하다, 압박하다) 속에서, 그녀는 말씀의 횃불을 치켜들고 어둡기만 한 가나안 북부 지역을 밝히고 있었다. 때로 ‘번개’처럼 이스라엘의 주눅 들고 나약한 믿음을 일깨워 주었을 것이다. 때로는 ‘등불’처럼 잔잔하게 위축된 마음속을 밝혀 주기도 했을 것이다. 드보라는 하나님의 말씀의 번개, 횃불, 등불을 비추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시내산에 임재하신 하나님의 모습이 드보라를 통해 엿보인다. ‘번개, 불(횃불, 등불)’은 시내산 꼭대기에 임재하신 하나님의 모습이며, 광야 40년 동안 추운 밤을 따뜻하게 덮어 주었던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20년간 하솔 왕 야빈의 극악한 무력 아래 짓밟히고 눌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종려나무 아래에서 전해 주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판단은 “번개였고, 횃불이었으며, 등불이었다!”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께서 나에게도 이와 같은 말씀의 은사를 주시기를 갈망하게 된다. 때로 번개처럼, 때로 횃불처럼, 때로 등불처럼 나를 통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해 주시기를 갈망한다. 나를 통해 전하는 말씀을 듣는 성도님들이 때로 번개처럼, 횃불처럼, 등불처럼 받아들이도록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기를 갈망해 본다. 주님, 행하시옵소서!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드보라를 통해, 야빈과 시스라를 심판하실 장수로 ‘바락’을 부르셨다. 드보라는 평소에 거하던 라마와 벧엘 사이에서, 납달리 게데스에 거주하던 바락을 부른다. 바락은 드보라의 부름에 한걸음에 갈릴리 동북쪽에서부터 그 먼 거리를 달려왔다. 그리고 납달리와 스불론 지파에서 1만 명을 모아 다볼산으로 출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는다. 하지만 바락은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의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넘겨주리라”(7절)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번개의 여인 드보라”가 함께 가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고(8절) 어깃장을 놓는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먼저, 그만큼 하솔 왕 야빈의 무력에 대한 두려움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보다 더 컸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특히 사사기 저자는 3절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은 동기를 이렇게 기록했다. “야빈은 철 병거 구백 대가 있어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3절). 원문의 어순에 따르면, 철 병거가 두려워서 부르짖은 편에 더 가깝다. 그렇게 두려워하던 것을 이제 기손 강에서 직면해야 한다.

당연한 두려움이 바락을 덮쳤다. 철 병거의 위용을 알고 있는 데다, 기손 강의 드넓은 평야는 철 병거가 활약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어서 더더욱 두려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해도 답이 없었다. 그러니 “번개의 여인, 횃불의 여인, 등불의 여인”인 드보라라도 함께 가야 하지 않겠나 싶은 것이다. 드보라를 세우신 하나님, 전쟁을 승리로 이끄시려고 이미 결정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했다. 철 병거 900대와 악명 높은 시스라와 야빈 왕이 하나님보다 더 두려운 존재였던 것이다. 무려 20년을 그렇게 짓눌려 살았다.

*드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선지자로서, 또 하나님의 말씀대로 분별하여 판결하는 사사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횃불이었고 등불”이었다. 하지만 바락은 ‘천둥, 번개’라는 자기 이름의 뜻이 무색할 만큼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그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질적인 차이가, 삶의 태도에 있어서 확연한 차이를 만들었다. 사람보다, 계획보다, 현실과 현장보다, 경험보다 결이 다른 말씀이 선포될 때 필요한 것은 “그 말씀을 선언하신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결국 그 믿음이 삶의 차이를 만든다.



나는?
-80년간의 샬롬은 에훗의 죽음과 함께 기울다가, 이스라엘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함과 동시에 끝나 버린다. 하나님께서는 하솔의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20년간이나 넘기셔서 ‘쥐어짜고 짓밟도록’ 허락하신다(1~3절). 150년 전 여호수아가 정복하여 불사른 하솔(수 11:10~15)을 다시 일으키셔서, 자기 백성이 도리어 정복당하게 하신 것이다. 순종하면 이스라엘을 살려 일으키시지만, 불순종하면 그들의 대적을 살려 징계하신다.

-20년의 학대 끝에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세우신 사사는 여선지자 드보라였다. 왼손잡이 에훗처럼 인간의 기대를 넘어선 선택이었다. 대로에 다니는 이가 없을 만큼 겁쟁이던(5:6~7)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드보라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로 부름받았다. 꿀나무인 종려나무 밑에서 그녀가 베푼 공정한 재판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백성들에게 ‘꿀’과 같았을 것이다(4~5절).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정의롭고 자비로운 한 여인을 통해, 이스라엘의 눈물과 탄식을 위로하여 주신 것이다.

-이스라엘이 구원과 반역을 되풀이할수록 하나님의 심판도 거세진다. 구산 리사다임에게는 8년을, 에글론에게는 18년을 시달렸는데, 이번에는 이보다 더 긴 20년 동안 학대를 당한다(3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너무 가혹하게 다루신다고 말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하나님께 얼마나 자주 반역하는지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 나와 우리 교회 공동체는 어떤 영적 주기를 반복하고 있을까?

-드보라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승리를 전하면서, 시스라와의 전쟁에 바락을 책임자로 보낸다. 하지만 바락은 드보라가 동행해야 가겠다고 고집한다. 드보라는 동행을 약속하지만, 시스라를 처단하는 영광은 바락이 아닌 다른 여인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책망한다(6~10절). 드보라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본 것에 반해, 바락은 철 병거 구백 대를 먼저 보았기에 마음이 위축된 것이다. 나는 상황과 하나님 가운데 무엇을 먼저 보고 있을까?

*현실의 벽에 절망할 때가 있다. 사방의 적은 강력하고, 지금 시도하는 것들을 전망하면 좌절감만 밀려올 때가 있다. 그런데 하필 그때 믿음의 도전을 하라고 촉구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감동도 함께 온다. 이 딜레마를 어찌해야 하나……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앞일을 알지 못하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는 다 계획이 있다는 사실이다! 현실과 하나님의 계획 사이의 간격을 믿음으로 메워야 한다.

*여선지자이자 사사인 드보라는 현실과 하나님의 말씀 사이의 간격을 믿음으로 메워 선포하고, 바락과 함께 담대하게 올라갔다. 하지만 바락은 연약한 믿음을 인간적인 의지 대상, 즉 눈에 보이는 것으로 메우며 나아가려 했다. 이것이 드보라와 바락의 결정적인 차이다. 그렇다면 고심할 필요가 없다. 드보라처럼 현실과 하나님의 말씀 사이의 간격을 “믿음”으로 채워 내야지!

+ 기도제목

*꿀벌(드보라)이었지만 그녀가 감당한 사역은 “번개처럼, 횃불처럼, 등불처럼” 이스라엘을 비춘 것이었다. 그것처럼 나에게 맡겨 주신 더온누리교회도 번개와 같고 횃불과 같으며 등불과 같은 말씀을, 말씀대로만 전하도록 은혜 주실 줄 믿는다.
*주님, 드보라의 삶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번개, 횃불, 등불임을 믿습니다. 나에게 맡기신 말씀을 전할 때 번개처럼, 횃불처럼, 등불처럼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주님, 그렇기에 저도 드보라처럼 번개, 횃불, 등불의 삶을 살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