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배신이 배신을 불러왔다 [사사기 9:22-45]
 – 2026년 09월 21일
– 2026년 09월 21일 –
요담이 담대하게 그리심산에서 나무 우화를 선포한 후 3년이 지나, 하나님께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세겜 사람들과 아비멜렉의 사이를 틀어지게 하신다. 기드온(여룹바알)을 배신한 아비멜렉을 세겜 사람들이 배신한다. 배신을 배신으로 갚게 하신다. 끊이지 않는 살육이 시작된다. 하나님께서 죄의 값을 물으시는 심판이 시작된 것이다.

아비멜렉은 형제들의 핏값을 치르고 3년 동안 왕과 같은 지위를 누렸다. 하지만 하나님은 악인을 결코 형통하게 내버려 두지 않으시는 분이다.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이시다” 24절은 “갚되… 돌아가게 하심이라(갚으신 것이다)”라는 형식으로, 아비멜렉의 포악함과 그것을 묵인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를 지지한 세겜 사람들을 심판하시는 분명한 이유를 말씀해 주신다. “…포학한 일을 갚되 … 아비멜렉의 손을 도와 그의 형제들을 죽이게 한 세겜 사람들(에게로)…”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어떻게 갚으시는가?



1. 배신은 배신으로(22-29절)
세겜 사람들에게 들어간 “하나님께서 보낸 사악한 영(23절)”은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이 서로 “배반”하게 만들었다. 그 구체적인 경위가 25절부터 설명된다. 먼저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괴롭히려고 산마다 매복을 시켜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을 강탈하려 하였다(25절). 즉, 아비멜렉의 통치에 불안을 야기하는 것이다. 아비멜렉은 이런 소식을 들으면서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또 에벳의 아들 가알이 자기 친족들과 더불어 세겜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그리고 이내 신망을 얻게 된다. 이후 때마침 추수 때가 되어 세겜 사람들은 추수의 기쁨으로 포도주를 만들어 잔치를 베푼다. 신전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며 아비멜렉을 저주하였다고 기록한다. 세겜 사람들의 마음이 완전히 돌아선 것이다. 가알은 이 틈을 타 세겜 사람들을 선동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세겜 백성을 통솔할 권한을 주면 아비멜렉을 처단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선전포고를 하고 만다.

*세겜 사람들의 배신은 의외다. 그러나 놀랄 일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영을 보내셨기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길을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지 않으신다면 결코 평안의 길을 갈 수 없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거역하는 방법은 3년 전 아비멜렉이 자신들의 신전의 돈으로 산 ‘비류들’이 한 행동과 다를 바 없다. 악한 영에 사로잡힌 이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이토록 추해지고 비겁해져도 깨닫지 못한다.

*세겜 사람들은 여전히 바알브릿 신전에서 하나님을 외면하고 우상과 벗하여 즐긴다. 추수 때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키라고 하신 봄의 맥추절(오순절), 혹은 가을의 수장절의 시기와 맞닿아 있는데, 절기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신전에서 방탕하며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수확의 기쁨을 허비한다. 여기에 자신들이 섬기는 아비멜렉을 저주하며 수확의 기쁨을 누린다. 이제 곧 심판받을 줄도 모른 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방자히 행하고 있다.



2. 70명의 형제들도 죽였는데… 배신자들쯤이야…(30-45절)
가알과 세겜 사람들의 투쟁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비멜렉에게 속한 “스불” 장군의 계략으로 세겜은 아비멜렉과의 전쟁에서 패하게 된다. 포기할 줄 모르는 아비멜렉의 잔인함은 세겜을 완전히 멸망시키고 그 땅에 소금을 뿌려 버린다. 아예 삶의 거처로 삼지 못하도록 죽음의 땅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아비멜렉의 포악함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가알의 선동에 화가 난 스불의 말을 따라 지체하지 않고 밤에 세겜으로 출정하여 매복하고 있다가, 가알이 성문을 나서자 그 틈을 타 가알과 세겜 사람들을 단번에 제압해 버린다. “많은 사상자가 성문 앞까지 널렸(40절)”지만 아비멜렉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다음 날 세겜 사람들을 살육하였다. “그날 종일 그 성읍 사람들과 싸워서 그 성읍을 점령하였다. 그는 성읍 안에 있는 백성을 죽이고 나서, 성읍을 헐고, 거기에 소금을 뿌렸다(새번역_45절)” 세겜 사람들의 배신을 피로 갚는다.

아비멜렉은 멈출 줄 모르는 피의 폭주 기관차다. 멈출 줄 몰랐기에 멈춰야 할 때도 분간하지 못한 것이다. 배신이 배신을 낳고 또 배신을 잉태한다. 소름 끼치도록 악의 화신이 되어 버린 아비멜렉, 그리고 그를 따르는 병사들… 하나님 나라 백성끼리 서로 죽이면서, 하나님께서 제사장 나라로 세우신 뜻이 여지없이 짓밟히고 만다. 세상과 다를 바 없는 하나님 나라에는 배신과 배신, 피의 향연만 넘칠 뿐이었다.

*죄악이 죄악을 부른다. 아비멜렉은 아버지 기드온을 배신하고 형제들을 배신하며 그 자리를 차지했는데, 자신이 썼던 바로 그 방법으로 세겜 사람들에게 배신당한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결코 좌시하지 않으신다. 죄를 반드시 물으신다. 지금 당장 어떤 도전이 없다고 이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범죄함에 대하여 무덤덤해지는 것은 이미 사탄의 궤계에 걸려든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유유상종”일까… 아비멜렉이나 세겜 사람들이나, 가알이나, 스불이나 도긴개긴이다. 더 나아가 서로 죄를 짓도록 부추기는 듯하다. 스불은 아비멜렉과, 가알은 세겜 사람들과 죽이 잘 맞는다. 서로 마음을 모아 상대를 죽이고 억압하는 데 뜻을 모은다. 하나님 나라 백성답지 않다.

*억압하고 죽이는 것에 몰두하는 지도자를 잘 판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교회의 지도자든 국가의 지도자든, 백성을 살리고 세우는 것이 아니라 넘어뜨리고, 짓밟고, 무시하며, 외면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상식에 맞고 정의와 법도를 존중하는 리더를 분별하여 선택해야겠다.



나는?
-악한 영을 악인들 가운데 보내셔서 서로 배반하게 하신다(22~24절). ‘진실과 의로움(16절)’이 없는 악인들의 불의한 연합과 연대가 무너진 것은 예언의 성취(20절)이자 ‘하나님의 보응’이다. 아무리 악이 위세를 떨치고 의와 진실이 무너진 듯 보여도, 모든 것은 하나님이 개입하실 때까지만 허용된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악인들에게 오늘의 번영은 위장된 심판일 뿐이다. 그러니 불의한 성공을 부러워하지 말고 의로운 패배에 절망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아비멜렉의 통치 3년이 지나자 세겜의 반(反)아비멜렉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급기야 산꼭대기마다 매복하여 지나는 사람들의 것을 강탈하는 불법을 자행한다. 그런데 이 일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보내신 악한 영이 있었다. 즉, 일부의 일탈 행위가 아니라 아비멜렉의 악행에 대한 하나님 심판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배반은 반역으로 나타났다(25~29절). 반역의 주모자는 세겜 출신 가알이었다. 술에 취한 가알은 아비멜렉의 왕권을 비난하고 비하하며, 세겜인들이 자신의 뜻을 따라준다면 그를 몰아낼 수 있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호기 어린 허세였을 뿐, 그는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줄행랑을 친다(39~41절). ‘하나님을 향한 충성’이 사라지면 우리도 잠깐 있다 사라지는 눈앞의 권력 앞에서 비굴해지거나, 밥줄을 움켜쥔 세상의 눈치를 보며 비겁한 기회주의자처럼 처신하지 않을 거라고 자신할 수 없다.

-첩의 아들 아비멜렉에게 쉽게 동조하여 반역을 지지했던 세겜이, 이제 다시 종의 아들 가알을 지지하여 아비멜렉에게 저항하려고 한다. 가알은 아비멜렉에게 정통성이 없음을 강조하여, 그를 치려 하는 자신을 지지해 달라고 한다. 아비멜렉처럼 가알도 상대방을 비난하여 지지세를 확보한 것이다. 아비멜렉은 자신이 이용한 방법으로 저항을 받게 된다.

-스불은 아비멜렉에게 반역의 상황은 물론 대응 전략까지 알려 준다. 이전에는 세겜인들이 아비멜렉을 해하려고 매복하더니(25절), 지금은 아비멜렉이 세겜인들을 공격하기 위해 매복한다(30~40절). 서로 골육지친이라 부르며 의기투합하던 그들이 서로 원수가 되어 칼을 겨눈다. 의와 진실이 없다면, 즉 하나님 나라와 그 뜻에 어긋난다면, 동맹도 우정도 영원하지 못하며 오늘의 충성이 내일의 배반과 변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아비멜렉은 가알을 공격하고 스불의 도움을 받아 가알을 쫓아낸다. 그러고는 자신을 배신한 세겜을 공격하여 그 백성을 죽이고 성을 헐고 소금을 뿌린다. 그들은 군인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고 처단한다. 세겜은 불의한 세력에 동조하여 억울한 목숨을 죽인 대가로, 한때는 자신들이 세운 왕이었던 아비멜렉을 통해 심판을 받는다. 악과 범죄로 맺어진 관계의 말로가 이렇다.

-아비멜렉은 반역의 주동자를 몰아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배반한 세겜 성을 철저히 응징하여 또다시 반역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초토화한다(41~45절). 한때 왕으로 추대하던 자들을 향한 잔혹한 보복이다. 이처럼 누군가를 이용하는 관계의 끝에는 비극적인 피의 보복과 파멸만이 남을 뿐이다.

-아비멜렉의 시대에도 이미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백성들의 천태만상이 펼쳐진다. 아비멜렉이 불의하고 교묘하게 왕이 된 지 3년 만에 세겜 사람들이 배신한다. 세겜 사람들이 산에 숨어 있다가 지나는 사람들을 공격한 것이다. 아비멜렉을 속이며 자기 마음대로 불법을 행했다는 것이다. 당시 사회에 공의가 무너졌다는 의미다. 또 세겜 사람들은 ‘가알’이라는 사람에게 마음을 주고 있었다. 그는 세겜 정통주의를 들먹이며 아비멜렉이 세겜과 관련이 없는 존재임을 부각하려 했다. 배반이 배반을 싹틔우고 또 다른 배반을 맺는다.

-하나님은 아비멜렉에 의해 죽임당한 형제들의 피를 기억하신다. 그의 폭력을 또렷하게 기억하신다. 그와 공모했던 세겜 사람들도 벌하시기로 작정하셨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악령은 지체하지 않고” 목적을 이루어 간다. 악한 영은 머뭇거림 없이 세겜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갔고, 그들은 이내 산을 차지하고 지나는 백성들을 노략한다. 삼 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리신 것은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아비멜렉의 돌이킴을 기다리는 시간이었을 수 있다. 아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미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참 어렵다. 쉽게 얻은 마음은 쉽게 떠날 수 있음을 각성하게 된다. 돈으로, 힘으로 살 수 있는 마음의 유통기한은 짧다. 진짜 마음은 꾸준하게 마음을 줄 때 얻을 수 있다.

-혼란한 시대의 특징은 혼탁한 인물들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아비멜렉을 이어 등장한 가알은 아비멜렉 반역의 근거지였던 세겜의 신뢰를 얻고 아비멜렉을 배반하도록 충동질했다. 이 과정에서 순수한 혈통을 내세웠고, 귀가 얇은 세겜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 결국 세겜의 친아비멜렉계 사람들이 가알에게로 돌아선다. 어쩌면 세겜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지도자를 세웠으니 지도자를 교체하는 것도 자기 손에 달렸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들에게 왕(지도자)은 하나님께 권한을 위임받아 하나님의 뜻을 대행하는 자가 아니었다. 자기들의 이기적인 관심사에 부합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교체할 수 있는 소모품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아무리 끈끈하다 해도 하나님이 배제된 연합은 영원하지 않다. 세겜도, 가알도, 스불도, 아비멜렉도 자신을 위해 하나님 없는 자기 길을 걸었다.

-사람들은 이용당할 줄 알면서 손을 잡고, 책임질 수 없으면서도 호언장담을 일삼는다. 이런 관계는 언제든지 틀어질 수 있다.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탄탄하게 하고, 그것을 기초로 끝까지 믿고 따르는 공동체를 소망하는 아침이다. 얄팍하고 얕은 인간관계보다 깊고 넓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가리라.

+ 기도제목

*주님, 아비멜렉의 죄악을 기억하여 그와 같은 죄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주님, 배신이 배신을 낳는 세상 속에서 사랑과 긍휼의 공동체를 굳게 지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