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요단강 언덕에 세워진 제단이 불러온 소동 [수 22:10-20]
 – 2025년 02월 03일
– 2025년 02월 03일 –
수 22:10-20 요단강 언덕에 세워진 제단이 불러온 소동
 
두 지파 반은 요단 동편으로 복귀하자마자 이스라엘 공동체에 큰 파문을 일으킨다. 요단강 언저리에 대형 제단을 축조한 것이다. 이것은 요단 서편 지파들의 분노를 자아내 순식간에 이스라엘을 분열의 위기로 몰아갔다. 서편 지파들이 보기에 동편 지파들이 쌓은 제단은 실로의 성막 제단과 별개의 제단으로 불법적 제단인 것이 틀림없었다. 서편 지파들은 즉각 항의하며 심지어 전쟁을 불사할 태세였다. 
 
 
 
1. 동편 지파들이 요단강에 세운 제단(10~14절)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동편으로 복귀한 뒤 요단강 언저리에 제단을 축조한다. 이들이 쌓은 제단은 “보기에 큰 제단”이었다. 다른 번역본들은 “압도적인 제단”으로 번역한다. 이는 성막의 번제단보다 훨씬 큰 제단이 세워졌음을 의미한다. 참고로 성막의 번제단은 가로세로 각 5규빗(약 2.5m), 높이 3규빗(약 1.5m)이었다. 적어도 요단강 언저리에 세워진 제단은 이보다는 훨씬 컸을 것이다. 
 
요단 동편에서 독자적인 대형 제단이 축조되었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서편 이스라엘의 온 지파들이 실로에 모여 즉각 전쟁을 준비한다(11절). 요단 서편 지파들이 전쟁을 불사한 이유는 동편의 독자적인 제단 설립을 이스라엘로부터 정치적, 종교적 분립의 시도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서 이탈한 행위로 간주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추측하는 근거는 신명기 율법이 우상을 섬기고 배교한 성읍과 지역은 칼로 응징하여 진멸(헤렘)할 것을 명령(신 13:12~18)했기 때문이다. 서편 지파들의 반응은 매우 신속하고 진지했다. 
 
일단 싸울 태세를 갖춘 뒤 진상 조사를 위해 대표단을 선발하여 요단 동편으로 보낸다. 이 조사단의 책임자는 대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였다. 비느하스는 후에 제3대 대제사장으로 위임된다(24:33; 삿 20:28). 또 민수기 25장의 바알브올 사건에서 음행 사건의 주동자를 처단하는 결정적인 활약으로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건져 낸 바 있다. 이렇게 제사장이 책임자가 되어 진상 조사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의 눈에는 이 일이 이스라엘의 신앙, 곧 여호와 예배에 도전하는 시급하고 중요한 일로 보였기 때문이다. 
 
 
 
2. 항의하는 서편 지파들(15~18절)
진상조사와 항의를 위한 서편의 대표단은 동편의 두 지파 반에게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다. 이 행위는 하나님께 대한 “범죄 행위”라고 규탄한다. “범죄(마알)”라고 번역된 단어는 “신실치 못하여 저지르는 죄” 곧 신의의 약속을 깨뜨리고 믿음을 위반하는 범죄를 가리킨다. 아간의 범죄에도 “마알”을 사용했다. 서편 지파들이 보기에 동편의 독자적인 제단 축조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배교 행위였다(16절). 비느하스와 조사단은 “브올의 죄악”, 즉 수년 전 모압 광야에서 발생한 바알브올 사건과 연ㄷ결하면서 그 음행 사건과 견줄만한 배교행위라고 주장한다(17절). 바알브올 사건은 가나안 전쟁이 7~8년 소요 되었기에 요단강 도하 직전 일어난 사건이므로 7~8년 전에 일어난 사건에 불과했다. 그래서인지 서편 조사단은 “오늘까지 우리가 그 죄에서 정결함을 받지 못했다”(17절)라고 표현하며 그 일이 아직 기억 속에 생생하고 후유증이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민수기 25장에서 상세하게 보고되는 이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뼈아픈 경험이었다. 민수기 22~24장에서 이스라엘을 향한 발람의 저주 시도가 무산되고 오히려 발람을 통한 축복의 선언으로 반전되어 큰 위기를 넘긴 바 있었다. 그러나 그 직후 바알브올 사건이 터진다. 이스라엘 남자들이 싯딤에서 모압과 미디안 여인들과 브올의 신(모압의 신)과 연루된 제의적 성관계를 맺었다. 이것은 발람이 꾀를 내어 주동한 사건이었고(민 31:8, 16). 이 범죄로 불과 하루 동안 24,000명이 죽었다. 실은 더 많은 사망자가 나올 뻔 했지만, 조사단의 대표인 제사장 비느하스가 핵심 주동자를 현장에서 처형함으로써 그날 염병이 그쳤다(민 25:7~8). 
 
바로 그 사건이 아직도 생생한데, 현재 요단 동편 지파들이 정체불명의 제단을 쌓아 또다시 심각한 반역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오늘 여호와를 따르는 데서 돌아서서 너희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려 한다(16절)”라는 표현을 통해 요단 서편 지파들은 이 큼지막한 제단을 여호와의 제단이 아닌 우상의 제단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이 제단은 여호와를 거역하는 행위였고 그 배역의 대가는 재앙이다. 이 사악한 제단은 다시 한 번 여호와의 두려운 재앙을 초래할 것이 분명했다(16, 18절). 요단 서편의 이스라엘은 요단 동편의 형제들이 쌓은 압도적이고 독립적인 제단은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기 위한 것이라고 단정 짓는다. 
 
 
 
3. 다른 제단을 쌓지 말라(19~20절)
요단 동편 지파들을 질책한 비느하스와 조사단은 실제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그것은 요단 동편 두 지파 반이 그들의 기업을 포기하고 성소가 있는 요단 서편 가나안 땅으로 옮겨 오는 것이다(19a절). 이와 같은 제안은 요단 동편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업이 부정하다는 생각에서 제단을 쌓았을 것이라고 여기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다. ‘너희의 소유가 만일 깨끗하지 아니하거든’이라는 표현 속에도 이런 생각이 깃들어 있다. 즉, 부정한 요단 동편 지역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는 속죄의 제단이 필요하고 이에 축조했다고 본 것이다. 이는 비느하스와 조사단이 바라보는 제단 축조의 동기가 제사를 드리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이해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비느하스와 조사단은 자신들의 기업 중에 일부를 희생할 의향이 있음을 밝힌다(19b절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여호와의 소유지로 건너와 우리 중에서 소유지를 나누어 가질 것이니라”). 지금이라도 원한다면 동편의 두 지파 반이 요단 서편 지역에서 기업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느하스의 제안은 땅 분배와 관련된 민수기 32:30을 배경으로 한다. 모세는 엘르아살과 여호수아에게 요단 동편 지파들이 그들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할지라도 요단 서편 지역에서 살 수 있도록 해줄 것을 명령했었다. 
 
이렇게 대안을 제시한 후 이 제단이 축조되므로 두 가지의 문제가 발생함을 제시한다(19c절). 그것은 바로 “여호와를 거역(배반)하는 것”과 “정치적인 독립(우리에게도 거역)”을 선언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나는?
-가나안 동편에 정착한 두 지파 반이 요단 가에 큰 제단을 쌓았다는 소식을 듣자, 서편의 지파들은 비록 동족이지만 전쟁을 준비한다. 그만큼 요단강 제단 축조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해치는 일일 뿐 아니라 다른 제단에서 다른 신에게 예배하는 우상숭배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의 예배에서 중요한 것은 열정도 아니고 많은 제물도 아니고 큰 제단도 아니다. 오직 한분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그분이 요구하신 방식으로 예배하는 것이다. 즉, 순종이 예배의 핵심이다. 온전한 순종이 아니면 내가 만든 하나님을 향한 우상숭배가 되고 만다. 
 
-서편 지파들은 동편 지파들의 제단 축조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매우 심각한 배도 행위로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광야에서 큰 심판을 불러왔던 바알브올의 범죄를 재현하는 것이었고, 아간이 진멸 명령을 거부하여 한 가문의 몰락을 가져왔던 것과 비견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유불문하고 당장 중단하지 않으면 요단 동편 지파뿐 아니라 서편 지파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심각한 시도였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서편 지파들의 전쟁 결의는 거룩한 순종을 위한 선하고 의로운 분노였다. 
 
-죄에 있어 가볍고 무거운 것을 가리는 것은 의미없다. 아무리 사소한 죄라도 공동체를 뒤흔드는데는 충분하다. 그만큼 심각한 영향력을 끼친다.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나부터 죄에 대하여 분별하고 단호해야지….
 
-비느하스를 중심으로 조사단이 꾸려졌다. 전쟁을 즉시 실행하지 않고 요단 동편 지파들에게 자초지종을 들어보려 한 것이다. 그리고 먼저 다른 제단을 따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영적으로 심각한 일인지를 잘 설명해 준다. 당장 응징하기 전에 그들이 돌이킬 기회를 주는 것이다. 간절한 바람은 어쩌면 이 일이 응징이나 회개 자체가 필요 없는 일일 수 있겠다 싶은 바람도 있었을 것이다. 
 
-온전한 관계를 위해서는 판단을 유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눈에 보이는 것과 듣는 것의 한계가 분명할 때 한계를 인정하고 오해와 섣부른 판단을 유보할 때 관계의 파탄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비느하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방적인 강요만을 하지 않는다. 요단 서편 지파들도 함께 해결을 위한 무게를 감당하겠다고 제안했다. 하나님 나라 공동체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공동체가 아니다. 문제가 일어났을 때 함께 해결하고자 하는 희생이 살아있는 공동체다. 어떤 문제라도 함께 해결하려고 기꺼이 서로 희생하려하면 해결되지 못할 문제는 없다. 비느하스는 함께 살기 위해 희생을 주저하지 않는다.
 
-형제를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실수를 만회하게 하고 다시 회복하도록 돕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이런 관용이 하나님 나라를 더욱 든든하게 세워나간다. 우리 공동체도 이런 순종이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주님, 단정하는 정죄보다 진상조사와 우려와 대안(희생)을 제시하는 공동체를 꿈꾸게 합니다. 비느하스와 조사단의 지혜롭고 따뜻한 마음을 기억하겠습니다. 
*주님, 잘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다면 섣불리 판단하는 것을 신중할수록 유의미한 것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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