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세례 요한의 출생과 사가랴의 찬가 [눅 1:57-80]
 – 2025년 02월 10일
– 2025년 02월 10일 –
눅 1:57-80 세례 요한의 출생과 사가랴의 찬가
 
본문은 요한의 탄생(57~66절)과 사가랴의 찬송(67-80)으로 구성된다. 요한의  탄생 이야기는 그의 이름을 짓는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들의 탄생에 대해 사가랴는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찬송한다. 하나님이 다윗의 뿔을 통해 행하실 일(67-75절), 하나님이 요한을 통해 행하실 일(76-80절)을 노래한다. 
 
 
 
1. 요한의 탄생(57-66절)
천사 가브리엘이 메시아의 전령인 요한에 대해 전해준 계시는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음으로써 성취된다(57절). 이웃과 친족은 나이 많은 엘리사벳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임한 것으로 크게 기뻐했다(58절). 이렇게 많은 사람이 요한의 탄생으로 인해 기뻐하는 모습은 가브리엘이 이미 예고한 그대로다(14절).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은 약속을 받은 사람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에게도 큰 기쁨이다. 기쁨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대한 반응이 될 것이다. 
 
요한이 태어난 지 8일째에 사람들은 아이에게 할례와 함께 부친의 이름을 따라 이름을 사가랴로 지어주려고 했다(59절). 그러자 아이의 어머니는 “요한”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60절). 흥미로운 것은 천사에게서 요한이라는 이름을 들은 사람은 사가랴였다. 그 사건은 매우 중요했기에 당연히 아내에게 아이의 이름을 전달했을 것이다. 사회적인 측면에서 당시 사회의 여성의 지위를 고려한다면 엘리사벳의 주장은 호소력이 낮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엘리사벳과 사가랴의 친족 중에 요한이라는 이름이 없으므로 사가랴에게 아들의 이름을 어떻게 지으려 하는지 물었다(61~62절). 
 
사가랴는 서판을 달라고 한 다음 이름을 요한이라고 적었다. 그 순간 사가랴의 입이 열렸다(64절). 입이 열린 사가랴는 먼저 하나님을 찬송한다. *불신에 대한 대가는 침묵이었지만, 순종의 결과는 찬송이다. 사람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영적인 현상을 보고 두려워했고 유대 산골에 이 소식이 전해진다(65절). 사가랴의 찬송을 마음에 두면서 이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한다(65절). 누가는 “주의 손이” 요한과 함께 하신다고 기록한다. 이 표현은 창조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행동을 묘사하는 것으로 구약에만 200회 이상 언급된다. 신약에서는 사도행전 11:21에서 하나님의 구원 행위와 관련하여 사용된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하나님의 손’이 함께하는 것은 하나님이 구원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분임을 의미한다. 사가랴의 찬송에 있는 내용대로, 하나님은 요한을 사용해서 구원의 드라마를 진행하실 것이다. 
 
요한의 탄생 이야기는 하나님의 긍휼로 때어난 아이의 이름을 짓는 내용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요한은 “여호와는 자비롭다.” 또는 “여호와는 긍휼을 베푸신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요한의 탄생은 하나님이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 긍휼을 베푸신 증거다. 엘리사벳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은 긍휼히 여기실 하나님이다. 요한은 하나님이 오랜 침묵을 깨고 보내신 선지자로, 그의 공적인 활동은 하나님의 긍휼을 대변한다. 이처럼 구원 역사는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주고 입증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2. 사가랴의 찬송(67-80절)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성령 충만으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한다(67절). 이 찬송은 그가 성령에 의해 받은 예언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관점을 전하는 통로다. 먼저 이스라엘의 역사에 나타난 구원과 약속을 근거로 하나님이 메시아를 통해 행하실 구원을 예언한다(68~75절). 67절은 사가랴가 성령 충만하여 예언했다고 밝힌다. 이는 성령에 의해 전적으로 압도된 상태를 나타낸다. 성령에 의해 온전히 사로잡히는 현상이다. 사가랴는 성령 충만하여 메시아의 구원과 요한의 예비 사역에 관하여 예언한다. 그런데 사가랴만 성령 충만한 것이 아니었다. 요한은 태중에서 메시아를 잉태한 마리아의 문안에 기쁨으로 뛰놀았다(1:15, 41, 44). 아내 엘리사벳은 주의 어머니 마리아를 축복하였다(41). 그리고 사가랴는 메시아의 구원을 예언하였다(67절). 이 모든 일이 성령 충만함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일이다. 그 성령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신다. 성령이 충만함으로 하나님의 세밀한 구원 역사를 내다보며 살아가도록 역사하신다. 선지자 요엘은 하나님의 영이 부어질 때 자녀들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라고 선포했다(욜 2:28).
 
68~75절은 찬송시 형식으로 이루어진 사가랴 예언의 전반부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심을 선포하며 시작한 예언은 70절까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를 밝힌다. 먼저 “돌아보다”로 번역된 동사를 통해 하나님의 방문하심이 찬양의 이유임을 밝힌다. 이 단어는 “방문하다”로 직역할 수 있는데, 특별히 아프고 고통 중에 있는 자를 방문한다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구약성경에서는 이 동사를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과 연관하여 나타낸다(출 4:31; 시 106:4; 렘 15:15). 하나님은 고통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기억하시고 방문하셨다.  두 번째 찬양의 이유는 하나님의 구속하심이다. “속량”은 속전을 받고 석방하는 것을 지칭하는데,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그 배경으로 한다. 하나님은 애굽의 종이었던 그의 백성을 구속하시고 계속해서 이방 민족의 압제로부터 그들을 구출하셨다. 세 번째는 하나님이 메시아를 다윗의 가문에서 일으키셨기 때문이다. 69절의 “구원의 뿔”은 메시아의 상징인데, 시편 132:17에서 다윗의 뿔은 기름부음 받은 자, 메시아로 동일시된다. 메시아의 탄생을 예고한 천사는 하나님이 태어날 아기에게 다윗의 보좌를 주실 것이라고 전했다. 그리하여 천사의 말대로 다윗의 혈통에서 메시아가 태어났다. 사가랴의 찬양은 하나님의 방문, 하나님의 구속, 메시아의 탄생으로 요약된다. 
 
70절은 메시아의 구원이 선지자를 통해 선포된 말씀의 성취임을 언급한다. 이어지는 71~75절의 구원과 언약의 주제로 연결된다.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에 근거하는 한편,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들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어 그들을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셨다. 그리고 경건과 의 가운데 두려움 없이 섬기도록 하셨다.   
 
76~79절은 요한의 사역(76~77절)과 메시아의 구원 사역의 결과(78~79절)를 서술한다. 사가랴의 예언에서 요한은 하나님의 선지자로 오실 메시아의 길을 예비할 자로 언급되었다. 이사야 40:3을 반영하여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자(말 3:1)로 예언한다. 사가랴는 요한의 이러한 예비적인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 지식을 알게 되리라고 선언한다. 메시아 구원의 내용은 72절에 이어 다시 하나님의 긍휼이 언급된다. 이 긍휼은 요한의 예비적인 사역과 “돋는 해”를 연결한다. 원문은 긍휼에 ‘내장’을 뜻하는 단어를 덧붙여 하나님의 긍휼하신 심정을 강조한다. “돋는 해”는 “어둠과 죽음의 그늘”과 대조되어 메시아의 구원의 강력함을 시사한다. 메시아는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고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러 오실 것을 예언한다. 주님은 죽음의 그늘에서 떨고 전쟁의 소문으로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러므로 주님의 오심은 모든 사람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2:10)이 분명하다. 
 
80절은 요한의 출생 이야기의 에필로그다. 요한의 성장 과정이 간략하게 소개된다. 2:40, 52절과 병행을 이루며 성장과정에 대한 서술조차 메시아를 예비하는 자로서 요한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며 서술했다. 광야에 거한 요한처럼 예수께서도 공적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역시 광야에 머무셨다(4:1). 
 
 
 
나는?
-요한의 출생은 하나님의 긍휼로 얻은 기쁨이었다. 다 죽은 듯 여겼던 엘리사벳의 태에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노산임에도 안전하게 아이를 낳게 하셨다. 친족들도 이것을 하나님의 긍휼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사건으로 알고 고백하며 즐거워했다. 친족들의 기쁨은 이 아이가 전하는 예수님을 통해 더 많은 사라들이 누릴 새 시대의 기쁨과 즐거움의 약속(1:14)의 시작일 뿐이다. 엘리사벳이 받은 하나님의 긍휼이 없다면, 우리 중 누구도 새 생명으로 새 창조되는 기쁨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엘리사벳과 사가랴는 아이의 이름을 믿음으로 “요한”이라고 짓는다. 통상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아이 이름을 짓자는 제안을 거절하고 천사가 이른 대로 “요한”이라 지은 것이다. 이는 좀 더 낯익고 통상적인 방식을 제치고 낯설기만한 하나님의 방식에 순종한 것이다. 아기의 이름을 짓는 이야기는 단순히 좋은 이름 짓는 이야기가 아닌, 이 아이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 나라 경륜에 순종하는 이야기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아이의 운명은 사람들, 통상적인 전통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이 결정하시리라는 믿음에서 내린 결정이다. 부모가 바라는 대로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뜻하신 대로 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도 될 것이다. 
 
-요한이라는 이름을 짓는 이야기는 우리 자녀의 인생 주도권도 부모나 세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귀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신다. 우리도 믿음으로 우리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인정하고 우리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뜻하신 삶을 살아내도록 믿음으로 도와야 할 것이다. 
 
-사가랴는 천사의 약속을 믿지 않음으로 언어가 끊어졌다. 그런데 믿음의 순종이 다시 그에게 언어가 돌아오게 하였다. 사가랴의 첫 마디가 찬양이었다는 것은, 그가 여태 자기 앞에서 벌어진 기적(불임 아내의 잉태와 출산)을 보면서 “침묵의 찬양”으로 하나님과 소통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입술이 열리든 닫히든 참된 찬양과 소통은 믿음의 순종과 마음의 찬양에서 나오는 것이다. 
 
-아이의 탄생과 기이한 이름 짓기, 그리고 사가랴의 치유를 지켜 본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온 유대 산중에 이 소식을 알린다. 그리고 “주의 손이 함께하는” 이 아이의 장래를 기대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사가랴의 찬양과 사람들의 전파는 이제 비로소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에 불통이 그치고 참다운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긴 침묵 끝에 성령이 충만하여 쏟아낸 사가랴의 예언은 사실상 긴 침묵 끝에 터진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예언이었다. 그의 아들 요한의 출생 역시 오래도록 갈망한 언약과 선지자들의 말씀이 성취되기 시작한 사건이었다. 말씀과 함께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의 말씀과 우리의 찬양과 순종을 통해 자신의 침묵을 끝내시고 죽음과 절망의 역사를 생명과 희망의 역사로 바꾸어 가실 것이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다윗의 혈통으로 보내심으로 자기 백성에게 찾아와주셨다. 무자비한 지배와 미움의 대상이었던 자기 백성을 속량하시고, 건져주러 오셨다.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행하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살렸다.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치르는 대가가 아무리 클지라도 그것은 그리스도보다 크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보다 귀하지 않다. 이것을 인정할 때 구원의 은총은 더욱 실제가 된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 요한과 그 요한이 길을 예비하는 주님이 여실 하나님 나라는 눈에 보이는 정치적인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의 긍휼로 죄를 용서받고,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이들을 빛과 생명으로 옮겨서 평강의 길을 걷게 하는, 더 온전한 구원이다. 세상의 어떤 세력이 권력을 잡든지 세상 권력만으로 주님의 참다운 의와 긍휼의 통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직 빛 가운데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와 순종을 통해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선 그곳에 하나님의 빛과 생명과 평강의 통치가 임하는 것이다. 
 
 
 
*주님, 천사를 통해 말씀하신대로 이루시며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시는 섭리를 봅니다. 이처럼 말씀하신대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우리를 붙잡고 있음을 믿습니다. 
*주님, 사가랴의 찬송이 얼마나 힘이 있었을까요?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침묵의 찬양이 쌓이소 쌓여 폭발한 그의 찬가가 경이롭습니다. 나의 삶에도 주님을 향한 찬양이 쌓이고 쌓여 힘 있게 선포하는 찬양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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