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말씀에 충실하고 성령에 민감하여 _ 시므온이 아기 예수님을 축복하고, 안나가 그의 삶을 선포하다 [눅 2:21-40]
 – 2025년 02월 12일
– 2025년 02월 12일 –
눅 2:21-40 말씀에 충실하고 성령에 민감하여 _ 시므온이 아기 예수님을 축복하고, 안나가 그의 삶을 선포하다
    
예수의 부모는 율법에 따라 아기 예수를 성전에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21~24절). 시므온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전에 들어가 주의 그리스도를 만나 찬송한다(25~35절). 선지자 안나는 성전에서 밤낮 기도하던 중에 예수님을 만나 찬송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이 그를 통해 실현될 것을 말한다(36~40절).
    
    
    
1. 거룩한 자로 드려지는 아기 예수(21~24절)
예수님은 태어난 지 8일째, 산모의 부정 기간(7일)이 지난 다음 날 할례를 받는다(1절; 레12:2~8). 천사가 일러준 대로 아기의 이름은 예수가 된다(1:31). ‘누가’는 아기 예수의 부모가 율법이 요구하는 두 가지 규례를 준수하는 모습을 묘사한다(21~24절). 하나는 산모의 정결 예식이고, 다른 하나는 장자를 드리는 것이다. “그들의 정결의 날들”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산모와 예수님 모두의 정결 예식이었기 때문이다. 요셉과 마리아는 모세의 법대로 정결 예식(레 12장)의 날을 위해 아기 예수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간다(2절; 레 13장). 율법에 따르면 장자는 “주의 거룩한 자”가 되기 위해 주께 드려졌다(3절). 율법은 가난한 백성에게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정결 예식을 위한 제물을 바치도록 배려했다(4절). 이런 묘사는 예수님의 부모는 가난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누가’는 경건한 부모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아기 예수를 구별하여 드리는 장면을 “주께 거룩한 자로 불릴 것이다(1:35)”의 성취로 이해한다. 이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아기의 이름을 언급하고 나서 전했던 말이다(1:31). 예수님은 하나님께 구별된, 거룩한 자다. 그는 낮은 가정에서 낮은 자로 태어나 자랐지만, “주께 거룩한 자로 불릴 것이다.” 매우 흥미롭게도 훗날 회당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귀신들이 두려움에 떨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4:43)”, “하나님의 아들(4:41)”로 부를 것이다. 귀신의 입을 통해 증언되는 것을 통해 사탄의 통치에 맞서 싸우는 점에서 예수님은 거룩한 자다.
    
거룩한 자이신 예수님의 활동으로 세상에는 거대한 충돌이 일어날 것이며, 예수님은 하나님께 구별된 분으로 온전히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성전에 예수님이 거룩한 자로 드려지는 장면은 악이 득세하는 사탄의 통치에 대한 선전포고와 같다.
    
    
    
2. 시므온의 노래와 부모의 반응(25~35절)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였다(25절). ‘누가’는 성령이 시므온 위에 임하여(25절), 시므온이 성령의 지시를 받고(26절), 성령의 감동(27절)을 받은 점을 부각시킨다. 시므온은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님의 활동을 예언한다. 그의 예언 내용은 이스라엘을 위한 “위로(파라클레시스)”는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이방인의 압제에서 해방하는 것이다. 시므온은 자신의 위로가 아니라 민족의 위로를 소망했다. 시므온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이 보내시는 종을 통해 실현되기 때문에 메시아를 기다렸고 성령은 시므온에게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알리셨다(26절). 성령의 감동으로 시므온은 “주의 그리스도,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보러 성전에 들어갔고, 예수의 부모는 율법에 따라 “아기 예수”를 데리고 성전에 들어왔다(27절). 
    
시므온은 아기를 안고 이스라엘을 위로하기 시작하신 하나님을 찬송한다(28절). 시므온의 노래(29~32절)는 탄생 이야기에 기록된 세 번째이자 마지막 찬송이다(1:46~55, 68~79). 시므온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보내신 그리스도를 목격했기 때문에 평안히 죽을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한다(29절). 시므온의 평생 사명은 만민을 구원할 그리스도를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그리스도를 보기 원했던 시므온은 “주의 구원”을 보았다고 노래한다(30절). 그가 기다린 하나님의 구원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구원이 아니라 만민을 위한 선물로 예고된 것이다(31절). 시므온이 고대했던 “이스라엘의 위로”는 처음부터 “만민”을 위한 구원이었으며, ‘만민’은 32절의 ‘이방인들’과 ‘이스라엘’ 둘 다를 포괄한다. 만민이 경험할 구원은 “이방을 비추는 빛(사 42:6; 49:6)”이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다(32절). 선지자들이 예고한 구원은 처음부터 이스라엘에서 시작되고 만민을 회복하는 것이다.
    
부모가 시므온이 노래한 예수의 역할에 대한 찬송을 듣고 놀라자, 시므온은 예수님으로 인해 이스라엘에 분리가 일어날 것을 예고한다(34절). 예수님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걸려 넘어질 것이고(사 8:14~15) 예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절대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사 28:13~16). 마리아는 예수님이 겪을 일 때문에, 칼에 찔리는 것처럼 고통스러울 것이다(35절). 이렇게 예언된 대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들은 구원의 감격을 경험하겠지만, 예수님 때문에 마음의 죄가 발각되는 자들은 그를 죽음으로 내몰 것이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구원의 길을 거부한 동족에게서 극심한 반대를 겪을 것이다.
    
    
    
3. 안나의 예언(36~40절)
안나는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면서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고 기도했다(36~37절). 안나가 밤낮 성전에서 기도한 것은 매일 드려지는 제사에 참여했음을 암시한다. ‘누가’는 38절에서 미완료 동사를 사용하여 예수님을 목격한 안나가 계속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해 계속 말한 것을 강조한다. 안나는 선지자로서 예루살렘의 속량(이스라엘의 위로와 동일한 뜻)을 소망하는 모든 사람의 열망을 대변했다. 안나는 평생을 하나님 앞에 나가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실현되기를 기도했다. 주의 율법에 따라 성전에 올라간 예수님의 부모는 율법을 따라 모든 것을 마치고 나사렛으로 돌아온다(39절).
    
예수님의 오심은 안나의 기도가 응답받았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바라는 사람들의 소망에 응답하셨다.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원했던 시므온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안나와 시므온처럼 평생 경건하게 살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한 사람들의 기도를 기억하셨다.
    
하나님은 율법에 따라 경건하게 사는 요셉과 마리아의 헌신을 사용하신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과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고, 은혜는 헌신 되고 경건한 자들의 삶과 기도에 대한 응답이다.
    
    
    
나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시므온은 타락한 시대에도 여전히 율법을 따라 의롭고 경건하게 살았으며 주께서 구원자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겠다는 약속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령께서 그런 시므온에게 죽기 전에 그 메시아를 보게 하겠다는 약속을 이뤄주셨다. 오늘도 주 안에 거하고 주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자에게 그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지는 현장으로 초대하시고 그 영광을 같이 누리게 하실 것이다.
    
-시므온의 바람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보는 것이었는데, 그 위로(구원)를 가져올 예수님을 만난 후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고백한다. 그는 잘 먹고 잘살다가 후손까지 세속적으로 잘 되는 것을 보기를 기대하지 않았다. 세상이 주는 위로가 아닌 그리스도께서 주는 위로를 얻기까지 그의 영혼은 매여 있었다. 84년 동안 한결같이 하나님만을 향하던 안나 역시 예수님을 만난 후 자기처럼 예루살렘의 구속을 바라던 자들에게 예수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소망이라고 생각했고,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이루실 것을 믿었고, 그것이 그들이 사는 이유였기에 그들의 눈에 메시아 예수가 보인 것이다. 시므온처럼 주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한다면, 주께서 우리 가운데 행하시는 일을 알아볼 안목을 얻을 것이다.
    
-예수님은 천하 만민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창 18:18)을 성취하기 위해, 이방의 빛으로,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으로 오셨다. 그 빛 아래에서 자신의 어둠을 인정하고, 그 영광 앞에 세상의 모든 영광을 상대화할 때, 우리는 이 예수님의 백성으로 오늘 생명의 복을 누릴 것이다.
    
-빛으로 와서 어둠을 드러낼 때 세상은 예수님을 거세게 반대하고 저항할 것이다. 패하거나 응하게 하는 예수님의 주권 앞에서 자신들의 주권을 좀처럼 내놓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마리아는 이 아기가 받을 영광과 함께 자신이 당할 거절과 고난도 보게 될 것이다. 우리 인생을 꽃길로만 소망하지 말고 십자가의 도를 잘 붙들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성전에서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고 섬기던 안나 선지자도 예수님을 알아보고 주께 감사한다. 이 예수가 장차 예루살렘을 속량할 분이라고 전한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영의 눈이 맑고 밝고 선명해진 여인이었다. 그가 바란 것은 하나님 나라였고, 그가 자랑한 것은 예수였고, 그가 기다린 것은 메시아였다.
    
-하나님 나라에서 저마다 역할이 다르다. 시므온은 성령에 충만하여 성전에 나아가서 공적으로 활동했지만, 안나는 84년 동안 성전에만 머물며 사적으로 금식하고 기도했다. 하지만 그들은 둘 다 메시아를 고대하다 만났고, 그 후에 시므온은 축복과 예언으로, 안나는 아기 예수에 대해 선포함으로 각각 달리 반응하였다. 우리 역시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소망을 품고, 또 각자가 만난 예수님을 각각 달리 소개하고 찬양한다. 서로의 역할과 표현 방식의 차이를 존중하고 귀 기울여줄 때 더욱 풍성하게 주의 나라를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유대인만의 구주가 아니라, 온 백성에게 기쁨이 되시는(2:10) 만민의 구주시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는 충돌할 것이고, 그는 비방을 당할 것이다. 그가 당한 고난에 마리아는 칼에 찔린 듯 그 마음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예수에 대한 태도에 따라 패하고 흥한 자가 결정될 것이다. 영광의 주를 뵙기 전에 고난의 주를 영접하고 그 뒤를 따라야 한다. 십자가를 환대하는 믿음이 없이는 영광도 없다.
    
    
*시므온, 안나, 요셉과 마리아의 공통점은 “성실한 믿음”이다. 특히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굳게 믿고 바라는 믿음이며, 이것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신 율법대로” 실천하는 삶을 통해 드러낸다는 점이다.
    
*호적 조사에 맞춰 방문한 베들레헴에서 아기를 낳고 그 와중에 율법에 정한 규례를 착실하게 지키는 젊은 부부의 모습에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어떻게 성실하게 감당해야 하는지를 보게 된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마구간에서의 출산, 제대로 몸을 돌보지도 못하는 환경 속에서 출산으로 인해 지켜야 할 모세의 율법을 성실하게 지키는 모습에서 오늘날 “편리하게” 주님을 믿는 모습과 분명한 비교가 된다.
    
*또,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이 사람들이 이토록 민감하고 순전하게 반응하는 모습이 큰 도전이 된다. 늘 알고 있는 자연스러운 흐름에서 새롭게 각오를 다져야 할 수도 있는 성령의 나타나심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모습에서 단지 형식적인 신앙이 아니라 무척이나 성령의 인도하심에 유연한 모습을 보게 된다. 내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지식이 때로 완고한 고집이 되어 하나님의 감동조차 분별하지 못하고 거부하는 시대에 분명 붙잡아야 할 영적 균형이 아니겠나!
    
*또, 얼핏 율법 중심, 제사 중심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그렇게 바리새인 같고, 사두개인 같게 오해할 수 있지만, 이 시대에서 하나님과 깊은 기도의 소통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시므온이나 안나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이스라엘의 구원”을 대망하고 늘 기도 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을 통해 성령은 하나님의 약속에 따른 이루심을 먼저 깨닫게 하고 보게 하셨다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점점 지식의 말씀을 추구하고, 지식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는 분명한 추세 속에서 절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신비한 영역, 그것은 “약속하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 가운데”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지른 것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새로운 흐름이 아니라 이미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던 은혜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로 누린 이들이 소수여서 문제였다. 시므온과 안나는 말씀과 기도라는 가장 단순한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삶의 체계를 깊게 갈고 닦아 하나님의 신비한 이루심의 역사를 알아채고 먼저 누리게 되는 은혜와 영광을 맛보았다.
    
*나도 그리해야 하겠다. “주님 다시 오심”이라는 대망 약속의 말씀을 믿고 “기도 가운데서” 하나님과 깊은 은혜 안에 거하여, 주님이 이루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소망 삼고 살아야 하겠다!
    
*사도행전 성령의 역사에만 초점을 맞추며 보았던 성경이었는데, 이미 예수님의 오심 속에서도 성령께서 역사하신 일이 얼마나 막중한지 보게 하신다. 성령은 드러나지 않지만 늘 계신다. 심지어 나의 마음속에 함께 거하신다고 했다. 그렇다면 늘 성령의 함께 하심을 인식하고 동행하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지…. 순간순간 성령의 도우심을 민감하게 순종해야지…. 그 과정에서 “주님 다시 오심”의 대망을 늘 소망하며 그날을 기다려야지….
    
**예수님의 출생을 다루는 누가의 초점은 예수(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어떻게 증거되었는지에 두고 기록한 것을 보게 된다. 아무리 영적으로 쇠락한 시대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 따라 살아내는 영적인 거장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됨을 증거 받게 하신다.
    
**나를 이 시대에 목사로 세우신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이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는 목사로서 더욱 선명하고 분명한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의롭고 경건한” 삶을 지켜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다.
    
**성도들이 성경의 지식에만 파묻히지 않도록, 성령의 민감함에도 균형을 맞추도록 나 자신부터 그렇게 순종해야겠다. 내가 아는 지식과 경험에 근거한 판단과 행동 이전에 더욱 기도 가운데 성령께서 이끄시는 것을 따라 살아내야지….
    
    
    
*주님, 시므온과 안나를 통해 아기 예수님의 삶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를 듣는 부모의 반응도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우리의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 때문에 위로받고, 감사하며, 기뻐하겠습니다.
*주님, 아무리 혼탁한 시대라도 말씀에 충실하고, 성령에 민감하게 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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