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31:1-16 이제 벧엘로 돌아가라
결국 야곱은 복을 받았다. 놀라운 것은 그가 신붓감을 찾는다는 명분으로, 사실상 맨몸으로, 이국땅으로 도피한 텅 빈 야곱이었으나, 이제는 채워진 야곱이 되었다. 그동안 라헬 때문에 라반에게 착취를 당한 야곱은 라반과의 협상을 통해 자신의 정당한 몫을 받기로 했다. 라반은 야곱이 온 후로 매우 번창하였기 때문에 야곱을 놓치고 싶지 않으며 그래서 야곱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야곱이 부유하게 되자 라반과 그의 아들들은 야곱에 대해 적대적으로 변한다. 이를 눈치챈 야곱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라반의 집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아내들을 설득한다. 설득의 핵심은 라반의 악행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대조하여 자신이 부자가 된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강조하는 데 있다.
1. 거부가 된 야곱을 위협하는 라반의 아들들(1~3절)
야곱의 성공은 곧 라반의 실패였다. 라반의 아들들은 야곱이 라반의 재산을 가져가 거부가 되었다고 소문을 퍼트리고 다녔던 것 같다. 야곱의 귀에까지 이 소문이 들렸다. 본문에서 라반의 법적 상속자인 아들들이 처음 등장한다. 그들은 야곱의 부를 ‘모든 재물을 모았다’라고 표현하는데, 그만큼 야곱이 받은 복이 크다는 표현일 것이다. 야곱은 라반의 달라진 안색을 살피고서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한다. 라반 집안 남자들의 야곱에 대한 공동 대응으로 인해 야곱과 라반 사이에 불길한 기운이 감돌며 파국이 감지된다. 이와 같은 상황은 사실상 홀로 가족을 거느린 가장인 야곱에게 매우 불리한 상황이며 위협적이다.
서사의 흐름은 바로 이 순간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신다. 서사의 흐름은 10~13절에서 설명되고 있는 하나님의 현몽, 곧 라반과 가축 분할 협약을 마치고 야곱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육종법을 적용해서 새끼를 늘려나가는 시점에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신 것이 분명하다. 즉, 야곱은 이미 조만간 라반에게서 떠나야 한다는 지시를 받은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때라는 것을 확증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하신 말씀이 본문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란(밧단아람) 땅을 떠나 고향 땅 가나안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은 아브라함에게 처음 주셨던 명령에 상응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우르를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한번 떠나야 하는 결정의 시점을 정확하게 알려 주셨다. 한편, 야곱이 도망자의 여정에서 벧엘에서 나타나셔서 맹세하셨던 약속, 특히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는 약속이 이제 이루어진다(창 28:15). 섭리의 시간에 하나님께서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그 약속을 재확증하신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2. 두 아내와 긴급 비밀 가족회의(4~9절)
야곱은 두 아내를 자신의 목초지로 불러 긴급 비상 가족회의를 연다. 야곱과 두 아내와의 대화는 4~16절까지 진행된다. 이 대화를 통해 사실상 라반의 모든 추악하고 비열한 행각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일종의 가정 법정이 열린 셈이다. 야곱의 긴 변론에 이어 라반의 두 딸이 아버지에 대한 규탄을 쏟아내며 사실상 중벌의 유죄 판결에 이른다.
5~9절은 야곱이 라반의 세 가지 죄목과 그에 따른 결과를 재판관 격인 두 아내에게 조목조목 설명한다. 먼저 라반의 태도가 바뀌었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셨다(5절). 또 라반이 열 번이나 속였으나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셨다(6~7절). 세 번째는 임금은 공정했으나 다만 하나님이 양 떼를 자신에게 몰아주셨다(8~9절)고 증언한다.
먼저 라반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비난은 재물 때문에 자신을 더 이상 가족이 아닌 제거 대상으로 보는 라반에 대한 고발이다.
둘째로 라반은 야곱의 품삯을 열 번이나 속였다. ‘열 차례’라는 표기는 문자적 횟수보다는 꽉 채움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이는 에서를 속인 야곱의 속임수가 결국에는 열 배의 보응으로 돌아왔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야곱은 신적 인과응보의 형벌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라반의 죄가 면피 될 수는 없다. 임금을 변경했다는 것이 급여의 체불과 미지급 또는 삭감을 의미할 것이다. 한편, 라반의 이러한 범죄 사실은 그의 두 딸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야곱이 ‘그대들도 알거니와'(6절) 라고 발언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야곱은 라반이 저지른 사기 결혼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셋째 죄목은 공정한 협상을 통해 야곱 자신이 큰 손해를 보고 시작한 위탁 사업이었는데,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정당하게 모든 부를 거머쥐었음에도 지금 라반이 그것을 빼앗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 설명 중 야곱은 라반과의 가축 분할을 위한 방법과 협상 내용을 공개한다. 그는 자신이 불리했던 조건, 즉 드물게 돌연변이 색을 띠고 출산하는 양과 염소만을 가져가기로 했던 조건임을 강조한다. 이렇듯 라반은 크게 유리한 조건을 거머쥐었음에도 결국 그것이 그에게 불리한 결과로 이어진다. 야곱은 그것은 결국 하나님이 라반의 양들을 빼앗아 자신에게 주신 일이었다고 고백한다(9절).
이 고백은 앞서 야곱이 자신에게 불리한 조건을 내걸 때 그의 목축 경험에서 온 확신에 근거했을 것으로 추론했지만, 야곱의 지혜에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함께하셨기에 라반의 모든 것이 그의 수중에 들어온 것이다.
3. 야곱의 귀향을 지시하시는 하나님(10~13절)
야곱은 두 아내에게 라반에 대한 고발을 마치면서 특별한 영적 체험이었던 하나님의 현몽을 간증한다. 이 현몽은 라반에게서 떼어 온 양을 치기 시작할 때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은 야곱의 전략에 복을 주시어 얼루기들이 대거 태어나도록 가축들의 선택적 교배가 이루어질 때 더욱 좋은 결과가 나오도록 친히 간섭하셨다는 것이다.
예컨대 야곱이 양 떼를 교배시킬 즈음 이상한 꿈을 꾸었다. 얼룩진 숫염소들이(개역 개정은 ‘숫양’으로 오역) 다른 염소들 위에 올라타고 있었다. 이는 가축들의 짝짓기 행위가 분명해 보인다. 이 꿈의 의미는 선명하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육종 전략에 복을 주셔서 얼룩진 가축들이 우세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야곱은 이러한 염소 떼 환상에 이어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지시한 말씀을 두 아내에게 들려준다. 그 사자는 야곱의 탁월한 육종 기술을 넘어서 하나님이 직접 양 떼의 유전자를 통제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로 인하여 얼룩진 양들이 양 떼를 지배할 것이다. 이어 그 사자는 야곱에게 이곳을 떠나 출생지로 돌아가라고 지시한다. 하나님의 사자는 벧엘에서의 야곱과의 만남과 그에게 맹세한 약속, 그리고 그의 서원을 상시 시켰다.
4. 아버지 라반을 떠나기로 결심한 두 딸(14~16절)
재판장 격인 두 딸의 최종 선고다. 재판관인 라헬과 레아는 동시에 증인이기도 하다. 그녀들은 자신들도 아버지의 피해자라고 합세한다. 자신들도 아버지에게서 아무런 몫을 받지 못했다. 두 딸이 말하는 자신들의 몫은 유산이라기보다는 신부 지참금이나 혼수품을 말할 것이다. 15절의 ‘우리의 돈(은전)’이 바로 그것을 지시한다. 그녀들은 아버지에게서 두 여종 외에는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두 딸은 자신들이 물건처럼 취급되어 팔린 것이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자신들을 ‘딴 식구(직역하면 외국인)’로 취급했다. 이로써 라반은 두 딸에게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녀들은 야곱에게 하나님이 빼앗아 간 아버지의 재산은 이제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라고 판결한다.
그리고 야곱에게 하나님의 지시대로 즉시 도주를 실행할 것을 요청한다.
나는?
-아브라함에게, 그리고 리브가에게 하란을 떠나게 하셨던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야곱에게도 하란을 떠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벧엘의 약속대로(28:15), 돌아올 때를 정하여 하란을 떠나게 하시고, 동행을 약속해 주신다. 아브라함에게 하란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하셨던 하나님이 이번에도 약속의 땅 벧엘을 향해 떠나게 하신 것이다. 야곱은 이 하나님의 명령과 더는 호의적이지 않은 주변 상황을 잘 고려하여 두 아내에게 하란을 떠나야 할 이유를 설명하고 설득한다.
-하나님은 라반의 거듭되는 악행 속에서도 야곱과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을 잘 지켜주셨다. 비록 열 번이나 라반에게 속았고 해치려는 위협도 받았지만, 그때마다 건져 주셨다. 최근에 야곱이 얼룩무늬와 점 있는 양들, 아롱진 양들을 많이 얻은 것도 야곱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자가 꿈속에서 들려주신 전략을 따랐을 뿐이었다. 자기 백성이 고난받는 동안 하나님은 쉬지 않고 그 백성을 위해서 복을 이루어가고 계셨다.
-라반의 아들들은 야곱을 대적했지만(1~2절), 라반의 딸들은 결혼 지참금도 주지 않고 자신과 남편을 종으로 대한 아비 라반을 대적한다. 야곱의 설명을 듣고 레아와 라헬은 육신의 아버지 대신 벧엘의 하나님을 믿기로 한다. 야곱의 재물은 라반에게서 빼앗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인정하였다. 그녀들은 소문만으로 속단하지 않고 설명을 들은 후 사리와 이치에 맞는 생각을 따른 것이다.
*라반은 야곱의 수고를 기억하여 그가 정하는 만큼 품삯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진심이 아니었다. 자기가 한 말을 다 망각하고 야곱이 부유해지자 안색을 바꾼다. 열 번이나 약속을 바꾼 그가 한 번 더 약속을 어기는 일은 어렵지 않았으리라.
*먼저 벧엘의 약속을 기억하고 계신 하나님이셨다. 야곱이 벧엘의 서약을 까맣게 잊고 있을 때 꿈에 나타나 그동안 밀린 품삯을 회복하는 방법을 알려주시고 벧엘로 돌아가도록 명령하신다. 우리가 먹고 살 일에만 몰두할 때 주님은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하고 향해야 할 곳을 보게 하신다. 그분의 기억이 내 기억을 되살린다.
*야곱은 라반의 변한 안색과 하나님의 등장,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상기시키면서 이제 적극적으로 아내들에게 라반의 집을 떠나 벧엘로 향하자고 제안하기에 이른다. 자기가 한 업적을 셈하지 않고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할 때, 비로소 고정된 체제를 깨뜨리고 모험 가득한 삶으로 발을 옮길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 그가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을까? 때로 하나님은 상황의 변화를 통해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심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밧단아람을 떠나기로 결심한 야곱은 두 아내를 불러 지금까지 자신이 라반에게 성실했음에도 불구하고 라반이 불성실하게 자신을 대한 것, 그럼에도 하나님이 자신을 지키시고 복 주신 것을 설명하여 자기의 결심을 밝힌다. 레아와 라헬은 누구보다도 라반을 잘 알았기에 흔쾌히 야곱의 결심에 동의한다. 혹시 둘이 사이가 좋지 않았기에 한 사람이라도 반대했으면 떠나는 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고 우리에게 약속을 이행하게 하신다. 자신을 ‘벧엘의 하나님’으로 밝히시며 야곱에게 서원을 이행할 수 있도록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다. 내게 이와 같은 벧엘은 어디인가? 하나님과의 만남, 약속을 받은 곳, 그리고 서원을 드린 것이 무엇인가?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다시 나를 ‘벧엘’로 이끄신다.
*밧단아람(하란)은 야곱이 20년을 지낸 이미 고향과도 같은 곳일 수 있겠다. 이곳에서 야곱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자녀들을 낳았으며, 빈손으로 왔다가 거대한 부도 축적하였다. 하란은 이런 시각으로 보면 기회와 성공의 땅이다. 하지만, 이 땅은 야곱이 거할 땅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은 가나안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환경, 안정된 기반이 구축되었을지라도 이곳은 떠나야 할 땅이지 거할 땅이 아니다.
*인생이라는 땅이 그런 것 아닐까? 인생은 영원히 거할 곳이 아니다. 주님께서 친히 마련해 놓으신 영원한 처소는 따로 있다. 그러니 이 인생에 안정을 두면 안 된다. 늘 가야 할 처소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억울한 일들 속에 스스로 마음을 무너뜨려서는 안 됨을 깨닫는다. 야곱은 품삯을 열 번이나 일방적으로 변경 당하며 억울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분명히 야곱에게 말씀하셨다. “라반이 지금까지 네게 어떻게 해왔는지를 내가 다 알고 있다(12절).” 아! 얼마나 속 시원할까! 하나님이 다 알고 계셨다. 이것만큼 속 시원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하란으로 도망 올 때 답답함의 길이었다면, 이제 속 시원함으로 탁 뜨인 개운함의 마음으로 가나안으로 향한다. 하나님이 다 아신다!!
*또한 하나님은 말씀해 주시는 분이시다. 꿈을 통해서 깨우쳐주신다. 환상을 보여주시기도 하고 직접 들려주셨다. 야곱은 이를 신뢰하였다. 그리고 담대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행동을 취한다. 버드나무, 아몬드 나무, 플라타너스 가지를 중간중간 껍질을 벗겨 얼룩지게 만든 울타리를 교배하는 우물가에 설치했다 철거했다 한 것도 이런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서 취한 믿음의 행동들이었다는 것이 오늘 본문을 통해 밝혀진다. 야곱의 믿음이 대단하지 않는가? 너무나 주술적인 것 같아도 그 일을 행할 때 절박함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으면 감히 시도 할 수 없는 행동들이었다. 야곱이 이렇게 변화되다니. 하나님은 정말 놀라우신 분이다.
*또 어느새 가장으로서 결단력과 융화력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가장 중요한 결정을 가족회의로 동의를 끌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스스럼없이 간증한다. 야곱의 변화가 참 놀랍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다.
-야곱은 많은 자녀들, 막대한 부만 그의 삶에 채워진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생생하게 채웠다. 그 은혜 가득 채워 다시 집으로. 귀향을 결심한다.
*주님, 속임 당한 삶 속에 하나님이 함께하여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는 그 한마디가 야곱에게 얼마나 벅찼을까요. 그 하나님을 기억하며 어떤 순간과 상황에서도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해 믿음으로 살아내겠습니다.
*주님, 가족이 하나 되었습니다. 편애와 질투와 시기심이 가득한 가정이 이 일에는 마음과 뜻을 모읍니다. 위기가 하나 되게 하였습니다. 함께 하니 귀향을 결정하며 나아가는 걸음이 얼마나 가벼웠을까요. 저에게도 이처럼 가정과 교회가 더욱 하나 되어 가볍게 주님과 동행하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