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현실인가 약속인가 [이사야 7:1-25]
 – 2026년 07월 24일
– 2026년 07월 24일 –
B.C. 733년경 남유다 왕 ‘아하스’ 가 제위하였을 때에, 앗수르(앗시리아)는 서진 정책을 펴면서, 주변 국가들은 위기감을 느낀다. 북이스라엘과 아람(시리아)는 반앗수르 동맹을 맺었고, 남유다에도 이를 요구한다. 아하스가 이를 거절하면서, 연합군은 도리어 북이스라엘을 향하여 칼날을 향하였고, 이에 아하스와 모든 이들은 흔들린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을 것을 말씀하시며, 앗수르를 의지하면 심판의 날이 있을 것을 경고하신다.

1. 첫번째 선포 (1~9절)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동맹 소식을 듣고, 아하스와 백성들은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린다.(2절) 남유다에 비해, 북이스라엘과 아람은 대군이었기 때문에 현실적인 모든 상황에 있어 수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모두 열세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상황 속에, 이사야를 스알야숩과 함께 보내신다. 아들과 함께 보내셨다는 것에는 이미 그 의미가 담겨져 있는데, 이사야(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와 스알야숩(남은 자가 돌아오리라)의 이름 뜻을 생각해보면, 그들의 선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을 이미 담고 있다.

곧 이 상황 속에서, 아하스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여호와께서 구원하실 것’이지만, 끝까지 앗수르와 애굽을 의지하고 인간의 여러 방법을 최우선순위로 고집할 때에, 이들은 패망하고 ‘남은 자만 돌아오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모든 생각과 계획의 근원이, 그저 인간의 모든 욕망과 술수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서지 못할 것을 말씀하신다.(7절) 그러나, 만약 유다도 이 말씀을 굳게 믿지 않는다면, 그들도 동일하게 서지 못한다.(9절) 그들 역시도, 북이스라엘과 아람과 다를 바 없이 오직 자신들의 방법만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2_ 두번째 선포(10-17절)
하나님은 아하스에게 다시 말씀하신다. 이번에는,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한 징조를 구하라’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제안을 하신 상황은 성경 전체에서 매우 적을 정도로, 파격적인 제안을 하신 것이다. 그러나 아하스는 ‘구하지 않을 것이며, 여호와를 시험하지 않겠다’라고 말한다. 겉으로는 매우 하나님을 생각하며 세련된 대답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에 대한 무시와 교만, 불신앙이다. 이사야는 그의 대답을 듣고, 구하는 것을 ‘작은 일’로 치부함을 경고하며 ‘하나님을 괴롭히는 것’임을 책망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주실 ‘임마누엘의 징조’를 선포하신다. 그는 구하지도 않았지만, 하나님의 진실한 징조를 보여주시며 이는 당시의 시점에도 성취되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까지 이어진다.

3_ 여호와의 날(18-25절)
이사야는 결국 심판의 날을 선포한다. 그들이 의지했었던 앗수르는 오히려 남유다를 침략할 것이며 그 가운데 황폐하게될 것이다. 더 이상 사람이 없어서 동물들만 남아 있으며, 굳어버린 꿀만 먹게 되는 상황을 예언한다. 앗수르를 끝까지 의지한다면, 남유다는 이와 같은 위기에 다다를 것이다.

나는?
-‘현실과 약속 사이에서 나는 어디에 서있는가?’ 나는 너무 쉽게 보이는 현실에 함몰되고 흔들린다. 꼭 아하스와 같고, 숲이 흔들림 같았다는 표현은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두려움, 낙담, 절망, 혼란.. 인생의 위기나 심리적 어려움 등에 이렇게 반응할 때가 참 많았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하나님은 ‘굳게 믿으면, 굳게 세우신다.’라고 약속하신다. 현실을 크게 보기보다, 주님을 크게 보겠다. 때때로 잘 모르고, 답답한 순간 속에도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역사하고 계심을 바라보아야겠다. 그저 나중에 그렇게 해야지가 아니라, 오늘 그 믿음의 걸음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 ‘믿는 자만 구한다.’ 아하스의 말은 매우 겸손해 보였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속지 않으신다. 번지르르한 말에 속지 않으시고 그 중심을 명확히 보고 계시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곧 ‘구함’으로 살아가는 것임을 더욱 배운다. 오늘 나의 앗수르는 무엇인가..? 불안 시대인마큼, 이를 해소할 온갖 것들을 찾는 것 같다. 동시에 나 역시도, 무언가 해소할 대상을, 의지하고 즐기고 두려워할 대상을 찾는다.
주님은 나의 중심을 오늘도 꿰뚫어 보신다. 더 이상 앗수르 따위를 의지하지 않고 오늘의 삶 속에, 모든 순간에 더욱 구해야함을 배운다. 모든 문제의 상황 속에도 이미 앞서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님께로 아뢰야겠다. 진정한 축복은, 심령의 가난함이다.

+ 기도제목

*예수님, 오늘도 믿음으로 걸어가는 한 사람을 찾으심을 바라봅니다. 현실을 더 이상 크게 보지 않고,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바라봅니다. 주님께서 앞서가심을 바라보며, 약속을 붙잡습니다.
*오늘의 삶의 자리에 더욱 구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주님이 아니시면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으며, 아무 소망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시라면, 오늘의 삶을 회복하시고 이끄심을 믿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나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