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는 교만할 수 없다! [이사야 10:5-19]
 – 2026년 07월 28일
– 2026년 07월 28일 –
이사야 10장은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향해 심판을 선언하시는 말씀이다. 당시 앗수르는 고대 근동을 지배하던 최강의 제국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와 불순종에 빠진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 위해 앗수르를 사용하셨다. 그러나 앗수르는 자신이 하나님의 도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의 군사력과 지혜로 모든 나라를 정복했다고 생각하며 하나님보다 자신을 높였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내 진노의 막대기”, “내 분노의 몽둥이”라고 부르신다. 막대기와 몽둥이는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는 사람의 손에 들려 쓰이는 도구이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통해 이스라엘을 징계하셨지만, 그 목적은 멸망이 아니라 돌이킴이었다. 하나님의 징계는 심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사랑의 징계였다.
그러나 앗수르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다. 그는 하나님의 계획보다 자신의 야망을 따라 수많은 나라를 멸망시키려 했고, 모든 승리를 자신의 힘과 지혜의 결과라고 자랑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교만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일을 마치신 후 오히려 교만한 앗수르를 심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도구를 사용하시지만, 도구가 주인이 되는 것은 허락하지 않으신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가진 직분과 은사, 재물과 건강, 사역의 열매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이다. 내가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앗수르의 길을 걷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사람을 끝까지 사용하신다.

1.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람과 나라를 도구로 사용하신다(5~7절)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내 진노의 막대기”와 “내 분노의 몽둥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징계하시기 위해 앗수르를 사용하셨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불순종과 우상숭배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 징계의 목적은 백성을 완전히 멸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른 길로 돌이키기 위한 것이다.
6절에서 하나님은 앗수르에게 이스라엘을 탈취하고 노략하며 짓밟게 하도록 허락하신다. 그러나 7절을 보면 앗수르의 마음은 하나님의 뜻과 전혀 달랐다. 그는 하나님의 계획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더 많은 나라를 정복하고 멸망시키려는 욕심만 가득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사람뿐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까지도 자신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하나님께 쓰임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의 능력으로 착각하면 교만에 빠진다(8~15절)

앗수르 왕은 “내 고관들은 다 왕들이 아니냐”고 말하며 자신의 권세를 자랑한다. 또한 자신이 정복한 여러 도시를 나열하며 모든 나라가 자신의 힘 앞에서는 동일한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전쟁의 승리를 하나님의 역사로 보지 않고 자신의 군사력과 지혜의 결과라고 여겼다.
특히 13~14절에서는 “내 손”, “내 지혜”, “내가”라는 표현을 반복하며 모든 공을 자신에게 돌린다. 그는 열국의 재물을 빼앗은 것도, 국경을 옮긴 것도, 아무도 자신을 막지 못한 것도 모두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고 자랑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15절에서 강력한 비유를 사용하신다. “도끼가 찍는 자에게 자랑하겠느냐? 톱이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하겠느냐?” 도구는 사용하는 사람보다 앞설 수 없다. 도끼가 나무를 베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도끼를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손에 들린 도구일 뿐이다. 가정도, 직장도, 교회도, 사역도, 건강도, 재물도 모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이다. “내가 했다”는 고백이 많아질수록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자신만 남게 된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3.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반드시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세우신다(16~19절)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일을 마치신 후 교만한 앗수르를 심판하신다. 하나님은 그들의 영화를 불태우시고, 살진 자를 쇠약하게 하시며, 숲과 기름진 밭을 모두 소멸시키신다. 한때 세상을 두렵게 만들었던 강대국도 하나님의 손 앞에서는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
19절은 심판의 결과를 보여준다. 숲에 남은 나무가 너무 적어서 어린아이도 셀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이것은 앗수르의 철저한 몰락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높아진 자를 낮추시고 자신의 영광을 가로채는 자를 결코 그대로 두지 않으신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남은 것을 허락하신다. 완전한 진멸이 아니라 남은 자를 통해 다시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긍휼도 함께 나타난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이며, 동시에 회복을 위한 사랑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을 사용하시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사람을 통해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나는?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루어진 일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고백하는가, 아니면 내 능력의 결과라고 생각하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실 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가, 아니면 내 계획과 욕심을 앞세우는가?
내 입술에는 “내가 했다”는 말이 많은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감사가 많은가?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분과 은사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 손에 들린 도구임을 기억하며 늘 겸손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묵상

*하나님은 때로는 믿지 않는 사람과 강대국까지도 자신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신다. 역사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다. 앗수르는 사용은 받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알지 못했다.
*”내가 했다”는 고백이 많아질수록 교만은 시작된다. 모든 은혜의 시작과 끝은 하나님이시다.
*도끼가 찍는 자를 자랑할 수 없듯이 우리도 하나님보다 앞설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들린 도구일 뿐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반드시 낮추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사람을 기뻐 사용하신다.

+ 기도제목

주님, 저를 사용하시는 분은 제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늘 기억하게 하옵소서. 제게 맡기신 직분과 은사, 건강과 재물, 사역의 열매가 모두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않게 하시고, “내가 했다”는 교만한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겸손한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먼저 구하게 하시며, 제 계획과 욕심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도끼가 찍는 자를 자랑할 수 없듯이 저 또한 하나님의 손에 들린 도구임을 기억하게 하시고, 모든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만 올려드리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며, 평생 겸손과 감사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