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내 뜻과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생각으로 [이사야 18:1-19:15]
– 2026년 08월 06일
– 2026년 08월 06일 –
18:1-7 구스를 향한 예언
19:1-15 애굽을 향한 예언
1 슬프다 구스의 강 건너편 날개 치는 소리 나는 땅이여
2 갈대 배를 물에 띄우고 그 사자를 수로로 보내며 이르기를 민첩한 사절들아 너희는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로 가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로 가라 하는도다
18장은 사람의 때, 사람의 동맹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는 것을 구스에 대한 예언으로 말씀하신다. 단순히 구스라는 나라만을 향한 예언이 아니라 17장이 북쪽의 나라를 향한 예언이라면 구스를 향한 예언은 남쪽을 향한 예언이다. 모든 나라를 향해 하나님의 뜻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선포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 그에 대한 선포는 믿는 자들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도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알도록 선포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으로, 믿음을 따라가는 온전한 삶의 예배로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의 뜻이 선포되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앗수르라는 큰 적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반앗수르 정책을 가지고 있는 주변국들은 어느 나라든 뜻을 같이하고 힘을 모아 앗수르를 대적할 수 있는 나라들로, 조금이나마 의지할 수 있는 나라들로 보였을 것이다. 내 뜻과 같은 사람은 나의 친구다라는 것처럼.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오히려 그들을 향해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고 ‘나는 눈에 보이는 너희를 의지하지 않는다’라고 말하게 하신다.
내게 주시는 것
– 하나님의 뜻이 아닌 생각들이 내 안에 일어날 때가 있다. 아니, 그 생각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분별이 어려울 때가 있다. 그 때 주변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발견되고 그들과 함께 하면 좀더 이 생각이 구체화되고 실현될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일 때가 있다.
– 그 때가 기도해야 할 때다. 하나님의 뜻이 맞는지,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을 내게 붙여주신 것이 맞는지, 이들과 함께 뜻을 이루어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지 기도해야 한다.
19:1 애굽에 관한 경고라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 애굽인의 마음이 그 속에서 녹으리로다
애굽에 대한 내용이 19장에서 시작된다. 30-31장 내용으로 보면 8세기 후반 앗수르의 위협이 날로 커져감에 따라 유다의 지도자들이 애굽과 동맹을 맺으려 했던 것이 확실해 보인다. 북이스라엘과 시리아, 즉 아람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면서 반앗수르 정서가 강해졌고 결과적으로 애굽의 보호를 갈망하게 되었다.
[신17:16]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신명기 말씀에서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에게 애굽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그들에게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14 여호와께서 그 가운데 어지러운 마음을 섞으셨으므로 그들이 애굽을 매사에 잘못 가게 함이 취한 자가 토하면서 비틀거림 같게 하였으니
15 애굽에서 머리나 꼬리며 종려나무 가지나 갈대가 아무 할 일이 없으리라
이사야 선지자도 애굽은 무익한 존재라는 것을 20장 6절까지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애굽은 의지할만한 나라였다. 구스나 다메섹(아람)은 앗수르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지만 애굽은 그에 비하면 앗수르에 비벼볼 수 있는 강대국이었다. 역사적으로도 애굽은 제국 문턱까지는 어찌어찌 갔다가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제국으로 이어지는 근동 지역의 패권국가에게 계속해서 밀리면서 제국으로 확실한 한 걸음을 떼지 못했다. 그렇더라도 당시 앗수르를 제외한 근동 국가에서 애굽은 이스라엘이 확실히 소망을 두고 바라볼만한 나라였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미 애굽에게 기대지 말 것을 이야기 하셨음을 기억해야 했다.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마음이 기울어질 때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다시 한 번 확고하게 하나님의 뜻을 보이고 계신다.
내게 주시는 것
–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럴듯해 보이는 것들, 힘있어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말씀하신다.
–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초자연적인 역사를 보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보니 내 삶에 존재하는 것들 중 어느 것이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펼쳐놓으신 것이고 어느 것이 내 욕심으로 의지하려고 하는 것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 그래서 계속 깨어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기 힘쓰는 삶을 살아야 한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 주변에 이사야 같은 사람을 보내셔서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19:1-15 애굽을 향한 예언
1 슬프다 구스의 강 건너편 날개 치는 소리 나는 땅이여
2 갈대 배를 물에 띄우고 그 사자를 수로로 보내며 이르기를 민첩한 사절들아 너희는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로 가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로 가라 하는도다
18장은 사람의 때, 사람의 동맹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는 것을 구스에 대한 예언으로 말씀하신다. 단순히 구스라는 나라만을 향한 예언이 아니라 17장이 북쪽의 나라를 향한 예언이라면 구스를 향한 예언은 남쪽을 향한 예언이다. 모든 나라를 향해 하나님의 뜻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선포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 그에 대한 선포는 믿는 자들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도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알도록 선포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으로, 믿음을 따라가는 온전한 삶의 예배로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의 뜻이 선포되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앗수르라는 큰 적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반앗수르 정책을 가지고 있는 주변국들은 어느 나라든 뜻을 같이하고 힘을 모아 앗수르를 대적할 수 있는 나라들로, 조금이나마 의지할 수 있는 나라들로 보였을 것이다. 내 뜻과 같은 사람은 나의 친구다라는 것처럼.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오히려 그들을 향해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고 ‘나는 눈에 보이는 너희를 의지하지 않는다’라고 말하게 하신다.
내게 주시는 것
– 하나님의 뜻이 아닌 생각들이 내 안에 일어날 때가 있다. 아니, 그 생각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분별이 어려울 때가 있다. 그 때 주변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발견되고 그들과 함께 하면 좀더 이 생각이 구체화되고 실현될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일 때가 있다.
– 그 때가 기도해야 할 때다. 하나님의 뜻이 맞는지,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을 내게 붙여주신 것이 맞는지, 이들과 함께 뜻을 이루어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지 기도해야 한다.
19:1 애굽에 관한 경고라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 애굽인의 마음이 그 속에서 녹으리로다
애굽에 대한 내용이 19장에서 시작된다. 30-31장 내용으로 보면 8세기 후반 앗수르의 위협이 날로 커져감에 따라 유다의 지도자들이 애굽과 동맹을 맺으려 했던 것이 확실해 보인다. 북이스라엘과 시리아, 즉 아람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면서 반앗수르 정서가 강해졌고 결과적으로 애굽의 보호를 갈망하게 되었다.
[신17:16]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신명기 말씀에서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에게 애굽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그들에게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14 여호와께서 그 가운데 어지러운 마음을 섞으셨으므로 그들이 애굽을 매사에 잘못 가게 함이 취한 자가 토하면서 비틀거림 같게 하였으니
15 애굽에서 머리나 꼬리며 종려나무 가지나 갈대가 아무 할 일이 없으리라
이사야 선지자도 애굽은 무익한 존재라는 것을 20장 6절까지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애굽은 의지할만한 나라였다. 구스나 다메섹(아람)은 앗수르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지만 애굽은 그에 비하면 앗수르에 비벼볼 수 있는 강대국이었다. 역사적으로도 애굽은 제국 문턱까지는 어찌어찌 갔다가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제국으로 이어지는 근동 지역의 패권국가에게 계속해서 밀리면서 제국으로 확실한 한 걸음을 떼지 못했다. 그렇더라도 당시 앗수르를 제외한 근동 국가에서 애굽은 이스라엘이 확실히 소망을 두고 바라볼만한 나라였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미 애굽에게 기대지 말 것을 이야기 하셨음을 기억해야 했다.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마음이 기울어질 때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다시 한 번 확고하게 하나님의 뜻을 보이고 계신다.
내게 주시는 것
–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럴듯해 보이는 것들, 힘있어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말씀하신다.
–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초자연적인 역사를 보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보니 내 삶에 존재하는 것들 중 어느 것이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펼쳐놓으신 것이고 어느 것이 내 욕심으로 의지하려고 하는 것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 그래서 계속 깨어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기 힘쓰는 삶을 살아야 한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 주변에 이사야 같은 사람을 보내셔서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 기도제목
내 뜻에 함께 하는 것이 모두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고 늘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이며 살게 사소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않도록 깨어있게 해 주소서. 의지가 되고 힘이 되는 세상의 모든 것들보다 하나님이 더 위대하심을 기억하며 살게 하소서.
우리 교회,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공동체로 서게 하소서.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않도록 깨어있게 해 주소서. 의지가 되고 힘이 되는 세상의 모든 것들보다 하나님이 더 위대하심을 기억하며 살게 하소서.
우리 교회,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공동체로 서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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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8월 06일
내 뜻과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생각으로
[이사야 18:1-19:15]
18:1-7 구스를 향한 예언
19:1-15 애굽을 향한 예언
1 슬프다 구스의 강 건너편 날개 치는 소리 나는 땅이여
2 갈대 배를 물에 띄우고 그 사자를 수로로 보내며 이르기를 민첩한 사절들아 너희는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로 가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로 가라 하는도다
18장은 사람의 때, 사람의 동맹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는 것을 구스에 대한 예언으로 말씀하신다. 단순히 구스라는 나라만을 향한 예언이 아니라 17장이 북쪽의 나라를 향한 예언이라면 구스를 향한 예언은 남쪽을 향한 예언이다. 모든 나라를 향해 하나님의 뜻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선포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 그에 대한 선포는 믿는 자들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도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알도록 선포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으로, 믿음을 따라가는 온전한 삶의 예배로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의 뜻이 선포되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앗수르라는 큰 적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반앗수르 정책을 가지고 있는 주변국들은 어느 나라든 뜻을 같이하고 힘을 모아 앗수르를 대적할 수 있는 나라들로, 조금이나마 의지할 수 있는 나라들로 보였을 것이다. 내 뜻과 같은 사람은 나의 친구다라는 것처럼.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오히려 그들을 향해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고 ‘나는 눈에 보이는 너희를 의지하지 않는다’라고 말하게 하신다.
내게 주시는 것
– 하나님의 뜻이 아닌 생각들이 내 안에 일어날 때가 있다. 아니, 그 생각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분별이 어려울 때가 있다. 그 때 주변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발견되고 그들과 함께 하면 좀더 이 생각이 구체화되고 실현될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일 때가 있다.
– 그 때가 기도해야 할 때다. 하나님의 뜻이 맞는지,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을 내게 붙여주신 것이 맞는지, 이들과 함께 뜻을 이루어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지 기도해야 한다.
19:1 애굽에 관한 경고라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 애굽인의 마음이 그 속에서 녹으리로다
애굽에 대한 내용이 19장에서 시작된다. 30-31장 내용으로 보면 8세기 후반 앗수르의 위협이 날로 커져감에 따라 유다의 지도자들이 애굽과 동맹을 맺으려 했던 것이 확실해 보인다. 북이스라엘과 시리아, 즉 아람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면서 반앗수르 정서가 강해졌고 결과적으로 애굽의 보호를 갈망하게 되었다.
[신17:16]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신명기 말씀에서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에게 애굽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그들에게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14 여호와께서 그 가운데 어지러운 마음을 섞으셨으므로 그들이 애굽을 매사에 잘못 가게 함이 취한 자가 토하면서 비틀거림 같게 하였으니
15 애굽에서 머리나 꼬리며 종려나무 가지나 갈대가 아무 할 일이 없으리라
이사야 선지자도 애굽은 무익한 존재라는 것을 20장 6절까지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애굽은 의지할만한 나라였다. 구스나 다메섹(아람)은 앗수르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지만 애굽은 그에 비하면 앗수르에 비벼볼 수 있는 강대국이었다. 역사적으로도 애굽은 제국 문턱까지는 어찌어찌 갔다가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제국으로 이어지는 근동 지역의 패권국가에게 계속해서 밀리면서 제국으로 확실한 한 걸음을 떼지 못했다. 그렇더라도 당시 앗수르를 제외한 근동 국가에서 애굽은 이스라엘이 확실히 소망을 두고 바라볼만한 나라였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미 애굽에게 기대지 말 것을 이야기 하셨음을 기억해야 했다.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마음이 기울어질 때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다시 한 번 확고하게 하나님의 뜻을 보이고 계신다.
내게 주시는 것
–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럴듯해 보이는 것들, 힘있어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말씀하신다.
–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초자연적인 역사를 보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보니 내 삶에 존재하는 것들 중 어느 것이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펼쳐놓으신 것이고 어느 것이 내 욕심으로 의지하려고 하는 것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 그래서 계속 깨어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기 힘쓰는 삶을 살아야 한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 주변에 이사야 같은 사람을 보내셔서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19:1-15 애굽을 향한 예언
1 슬프다 구스의 강 건너편 날개 치는 소리 나는 땅이여
2 갈대 배를 물에 띄우고 그 사자를 수로로 보내며 이르기를 민첩한 사절들아 너희는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로 가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로 가라 하는도다
18장은 사람의 때, 사람의 동맹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는 것을 구스에 대한 예언으로 말씀하신다. 단순히 구스라는 나라만을 향한 예언이 아니라 17장이 북쪽의 나라를 향한 예언이라면 구스를 향한 예언은 남쪽을 향한 예언이다. 모든 나라를 향해 하나님의 뜻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선포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 그에 대한 선포는 믿는 자들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도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알도록 선포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으로, 믿음을 따라가는 온전한 삶의 예배로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의 뜻이 선포되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앗수르라는 큰 적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반앗수르 정책을 가지고 있는 주변국들은 어느 나라든 뜻을 같이하고 힘을 모아 앗수르를 대적할 수 있는 나라들로, 조금이나마 의지할 수 있는 나라들로 보였을 것이다. 내 뜻과 같은 사람은 나의 친구다라는 것처럼.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오히려 그들을 향해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고 ‘나는 눈에 보이는 너희를 의지하지 않는다’라고 말하게 하신다.
내게 주시는 것
– 하나님의 뜻이 아닌 생각들이 내 안에 일어날 때가 있다. 아니, 그 생각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분별이 어려울 때가 있다. 그 때 주변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발견되고 그들과 함께 하면 좀더 이 생각이 구체화되고 실현될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일 때가 있다.
– 그 때가 기도해야 할 때다. 하나님의 뜻이 맞는지,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을 내게 붙여주신 것이 맞는지, 이들과 함께 뜻을 이루어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지 기도해야 한다.
19:1 애굽에 관한 경고라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 애굽인의 마음이 그 속에서 녹으리로다
애굽에 대한 내용이 19장에서 시작된다. 30-31장 내용으로 보면 8세기 후반 앗수르의 위협이 날로 커져감에 따라 유다의 지도자들이 애굽과 동맹을 맺으려 했던 것이 확실해 보인다. 북이스라엘과 시리아, 즉 아람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면서 반앗수르 정서가 강해졌고 결과적으로 애굽의 보호를 갈망하게 되었다.
[신17:16]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신명기 말씀에서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에게 애굽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그들에게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14 여호와께서 그 가운데 어지러운 마음을 섞으셨으므로 그들이 애굽을 매사에 잘못 가게 함이 취한 자가 토하면서 비틀거림 같게 하였으니
15 애굽에서 머리나 꼬리며 종려나무 가지나 갈대가 아무 할 일이 없으리라
이사야 선지자도 애굽은 무익한 존재라는 것을 20장 6절까지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애굽은 의지할만한 나라였다. 구스나 다메섹(아람)은 앗수르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지만 애굽은 그에 비하면 앗수르에 비벼볼 수 있는 강대국이었다. 역사적으로도 애굽은 제국 문턱까지는 어찌어찌 갔다가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제국으로 이어지는 근동 지역의 패권국가에게 계속해서 밀리면서 제국으로 확실한 한 걸음을 떼지 못했다. 그렇더라도 당시 앗수르를 제외한 근동 국가에서 애굽은 이스라엘이 확실히 소망을 두고 바라볼만한 나라였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미 애굽에게 기대지 말 것을 이야기 하셨음을 기억해야 했다.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마음이 기울어질 때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다시 한 번 확고하게 하나님의 뜻을 보이고 계신다.
내게 주시는 것
–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럴듯해 보이는 것들, 힘있어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말씀하신다.
–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초자연적인 역사를 보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보니 내 삶에 존재하는 것들 중 어느 것이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펼쳐놓으신 것이고 어느 것이 내 욕심으로 의지하려고 하는 것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 그래서 계속 깨어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기 힘쓰는 삶을 살아야 한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 주변에 이사야 같은 사람을 보내셔서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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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8월 06일
하나님을 잊으면 우리가 자랑하던 영광도 사라진다
[이사야 17:1-14]
이사야 17장은 다메섹과 북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다. 당시 아람과 북이스라엘은 동맹을 맺고 강대국 앗수르에 맞서려고 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군사력과 정치적 연합을 통해 자신들의 안전을 지키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견고한 성읍과 자랑하던 영광도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다메섹의 웅장한 성읍과 요새는 무너져 돌무더기가 되고, 북이스라엘의 영광도 쇠하여 사라진다. 한때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군사적으로 강했던 나라였지만,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계획과 힘을 의지했기 때문에 그 모든 수고가 허망하게 끝난다. 세상의 권세와 영광은 영원하지 않으며, 모든 나라와 역사를 다스리시는 참된 왕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배와 제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종교적 의무를 지키고 많은 제물을 드렸지만, 정작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는 무관심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기보다 약한 사람들을 억압했고, 뇌물과 외모에 따라 굽은 판결을 내렸다.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종교적인 모양만이 아니라, 삶의 자리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 중에도 남은 자를 보존하시고 회복의 은혜를 베푸신다. 그러나 구원의 약속만을 가볍게 붙들어서는 안 된다. 남은 이삭과 감람나무 끝에 남은 열매의 이미지는 구원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전에 임한 철저한 심판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불순종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며, 선택받은 백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다면 반드시 심판하신다.
심판을 경험한 백성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 우상에서 돌이켜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 과거에는 제단과 신상을 세심하게 바라보았지만, 그것들이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돌아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헛되이 의지하는 것들을 무너뜨리심으로써 다시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이끄신다.
열방이 바다의 파도처럼 몰려오고 천둥처럼 위협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꾸짖으시면 바람에 날리는 겨와 티끌처럼 흩어진다. 현실의 문제는 크고 두려워 보이지만,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순종을 심판하시는 분이시면서 동시에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백성을 보호하고 구원하시는 분이다.
나는?
– 나의 신앙이 예배와 헌금, 봉사와 같은 외적인 종교 활동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순히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는 삶이다.
– 또한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보다 사람과 재물, 경험과 계획을 더 의지하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의 능력과 판단에는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나라와 역사를 다스리시는 참된 왕이다. 눈앞의 상황이 아무리 거대하고 두려워 보여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해야 한다.
–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구원하시지만, 우리의 죄와 불순종을 가볍게 여기지는 않으신다. 그러므로 날마다 말씀 앞에서 마음과 삶을 점검하며, 잘못된 부분을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 백성다운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힘써야 한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진실하게 순종하는 삶을 이어가야 한다.
다메섹의 웅장한 성읍과 요새는 무너져 돌무더기가 되고, 북이스라엘의 영광도 쇠하여 사라진다. 한때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군사적으로 강했던 나라였지만,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계획과 힘을 의지했기 때문에 그 모든 수고가 허망하게 끝난다. 세상의 권세와 영광은 영원하지 않으며, 모든 나라와 역사를 다스리시는 참된 왕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배와 제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종교적 의무를 지키고 많은 제물을 드렸지만, 정작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는 무관심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기보다 약한 사람들을 억압했고, 뇌물과 외모에 따라 굽은 판결을 내렸다.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종교적인 모양만이 아니라, 삶의 자리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 중에도 남은 자를 보존하시고 회복의 은혜를 베푸신다. 그러나 구원의 약속만을 가볍게 붙들어서는 안 된다. 남은 이삭과 감람나무 끝에 남은 열매의 이미지는 구원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전에 임한 철저한 심판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불순종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며, 선택받은 백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다면 반드시 심판하신다.
심판을 경험한 백성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 우상에서 돌이켜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 과거에는 제단과 신상을 세심하게 바라보았지만, 그것들이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돌아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헛되이 의지하는 것들을 무너뜨리심으로써 다시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이끄신다.
열방이 바다의 파도처럼 몰려오고 천둥처럼 위협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꾸짖으시면 바람에 날리는 겨와 티끌처럼 흩어진다. 현실의 문제는 크고 두려워 보이지만,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순종을 심판하시는 분이시면서 동시에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백성을 보호하고 구원하시는 분이다.
나는?
– 나의 신앙이 예배와 헌금, 봉사와 같은 외적인 종교 활동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순히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는 삶이다.
– 또한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보다 사람과 재물, 경험과 계획을 더 의지하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의 능력과 판단에는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나라와 역사를 다스리시는 참된 왕이다. 눈앞의 상황이 아무리 거대하고 두려워 보여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해야 한다.
–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구원하시지만, 우리의 죄와 불순종을 가볍게 여기지는 않으신다. 그러므로 날마다 말씀 앞에서 마음과 삶을 점검하며, 잘못된 부분을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 백성다운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힘써야 한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진실하게 순종하는 삶을 이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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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8월 04일
모압을 향한 심판
[이사야 16:1-14]
위기의 상황 속에 있는 모압에 대해, 회복될 수 있는 길을 알려주며, 동시에 심판에 대해 말하고 있다. 모압은 교만함으로 자신들의 풍족함을 자랑하였고, 이에 대해 오직 시온으로 나아오는 길 외에는 회복이 없음을 선포한다. 또한 이 모든 것은 3년 내에 이루어질 것을 예고함을 통해, 심판이 임박하였음을 확실히 하고 있다.
1. 모압 회복의 길(1-5)
모압이 다시금 회복할 수 있는 길에 대해 말하고 있다. 본문의 문맥을 고려할 때에, 모압이 어린양을 바쳐야할 나라는 유다인데, 유다는 모압에 비해 약소국이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모압 입장에서는 자존심을 버리고 유다의 밑으로 나아가야함을 말하고 있다. 아르논강은 모압의 경계로, 모압의 위기 속에 여기까지 밀려왔음을 보여준다. (2절)
이후 3절에서 ‘너’는 곧 유다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곧, 모압 사람들이 시온으로 도망 왔을 때에, 도피처로서의 역할을 할 것을 촉구한다. 결국 이를 통해 이들이 피할 곳은 ‘다윗의 장막’이며, ‘그 위에 앉을 자’는 정의와 공의로 행할 것을 예언한다.(5절) 결국 모압은, ‘다윗의 장막’ 아래에 들어올 때에 그 안에서만 안전할 것을 예언한다.
2.모압의 교만함(6-12)
6-12절에서는 다시 모압을 향한 심판의 내용이 나온다. 모압은 심판이 선포되었음에도 죄를 돌이키지 않았고, 교만함을 버리지 않았다. 그들이 의지했던 모든 것들은 사라지고, 모압은 통곡할 것이다. 특히 당시 모압에서 생산된 포도는 경제적인 풍요를 가져왔었다. 이 모압의 자랑인 헤스본의 밭과 십마의 포도나무가 마른다. (8절)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철저히 무너지게 된다.(9절) 결국 에언자는, 풍요와 즐거움이 사라진 것을 바라보며 눈물 가운데 바라본다. 즐거움과 기쁨이 사라진 폐허 속에, 일을 함께할 사람들도 없다.(10절)
예언자는 이 상황을 바라보며 애통하는 마음이 있다. 그러나, 모압이 산당에서 봉사하며 성소에서 기도하더라도 지금의 이 싱황이 바꾸지 않을 것이다. (12절)
3_모압 심판의 확실성(13-14)
이 모든 것은 여호와께서 오랮 전부터 하신 말씀이다. 앞으로 3년 내에, 모압의 영화는 심판을 받아, 심히 적은 수가 남을 것을 에언한다. 기한과 상세한 내용까지 확정하여 선포하였다는 점에서, 확실함과 긴박함을 보여준다.
나는?
-모압을 향한 심판의 과정 속에서동, ‘다윗의 장막’이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모압이라는 나라를 심판하는 과정 중에서도 피할 길을 알려주신다. 그리고 모압이라할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나아가면 산다.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시는 그 나라로 나아가면, 살 길이 얼린다.
-예수님에 대해서, 이 본문에서도 명확하게 말하고 있음을 생각한다. 에수님께서 곧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셨고,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셨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 예수님의 오심을 알지 못한 채, 예언의 내용만을 들었겠지만, 이제 우리는 이미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이 모든 회복을 가져오시는 만왕의 왕이시다.
-모압의 멸망의 이유는 역시 교만이었다. 자신들의 힘을 의지하고, 포도나무의 소산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꼐서는 이 모든 것들을 제하시고, 멸망시키신다. 교만이란, 내가 높아지려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자리를 탐하고, 그 분이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다. 더욱 주님께 물으며, 겸손히 있어야겠다.
1. 모압 회복의 길(1-5)
모압이 다시금 회복할 수 있는 길에 대해 말하고 있다. 본문의 문맥을 고려할 때에, 모압이 어린양을 바쳐야할 나라는 유다인데, 유다는 모압에 비해 약소국이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모압 입장에서는 자존심을 버리고 유다의 밑으로 나아가야함을 말하고 있다. 아르논강은 모압의 경계로, 모압의 위기 속에 여기까지 밀려왔음을 보여준다. (2절)
이후 3절에서 ‘너’는 곧 유다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곧, 모압 사람들이 시온으로 도망 왔을 때에, 도피처로서의 역할을 할 것을 촉구한다. 결국 이를 통해 이들이 피할 곳은 ‘다윗의 장막’이며, ‘그 위에 앉을 자’는 정의와 공의로 행할 것을 예언한다.(5절) 결국 모압은, ‘다윗의 장막’ 아래에 들어올 때에 그 안에서만 안전할 것을 예언한다.
2.모압의 교만함(6-12)
6-12절에서는 다시 모압을 향한 심판의 내용이 나온다. 모압은 심판이 선포되었음에도 죄를 돌이키지 않았고, 교만함을 버리지 않았다. 그들이 의지했던 모든 것들은 사라지고, 모압은 통곡할 것이다. 특히 당시 모압에서 생산된 포도는 경제적인 풍요를 가져왔었다. 이 모압의 자랑인 헤스본의 밭과 십마의 포도나무가 마른다. (8절)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철저히 무너지게 된다.(9절) 결국 에언자는, 풍요와 즐거움이 사라진 것을 바라보며 눈물 가운데 바라본다. 즐거움과 기쁨이 사라진 폐허 속에, 일을 함께할 사람들도 없다.(10절)
예언자는 이 상황을 바라보며 애통하는 마음이 있다. 그러나, 모압이 산당에서 봉사하며 성소에서 기도하더라도 지금의 이 싱황이 바꾸지 않을 것이다. (12절)
3_모압 심판의 확실성(13-14)
이 모든 것은 여호와께서 오랮 전부터 하신 말씀이다. 앞으로 3년 내에, 모압의 영화는 심판을 받아, 심히 적은 수가 남을 것을 에언한다. 기한과 상세한 내용까지 확정하여 선포하였다는 점에서, 확실함과 긴박함을 보여준다.
나는?
-모압을 향한 심판의 과정 속에서동, ‘다윗의 장막’이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모압이라는 나라를 심판하는 과정 중에서도 피할 길을 알려주신다. 그리고 모압이라할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나아가면 산다.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시는 그 나라로 나아가면, 살 길이 얼린다.
-예수님에 대해서, 이 본문에서도 명확하게 말하고 있음을 생각한다. 에수님께서 곧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셨고,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셨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 예수님의 오심을 알지 못한 채, 예언의 내용만을 들었겠지만, 이제 우리는 이미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이 모든 회복을 가져오시는 만왕의 왕이시다.
-모압의 멸망의 이유는 역시 교만이었다. 자신들의 힘을 의지하고, 포도나무의 소산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꼐서는 이 모든 것들을 제하시고, 멸망시키신다. 교만이란, 내가 높아지려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자리를 탐하고, 그 분이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다. 더욱 주님께 물으며, 겸손히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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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8월 03일
하나님의 뜻과 계획으로 살아가는 삶
[이사야 14:24-15:9]
오늘의 본문은 앗수르와 바벨론, 모압에 관하여 심판하시는 구절입니다.
1. 앗수르의 심판 선언 (14:24-27)
당시 남유다를 가장 두렵게 하던 거대 제국인 북쪽의 앗수르는 두려운 존재였지만 하나님께서 두려워하던 남유다를 향하여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확증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것은 반드시 되며 경영 하시는 것을 반드시 이루신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신실한 하나님이심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멍에와 짐을 벗어주심으로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폐할 수 없으며 돌이킬 수 없음을 나타냅니다.
2. 블레셋의 착각 (28-32)
블레셋은 남유다의 아하스왕이 죽자 많이 기뻐했습니다.
그 이유는 남유다가 블레셋을 강력하게 견제하고 있었고 공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은 너희의 큰 착각 임을 밝히시면서 유다는 부러졌지만 더 강력한 북쪽에서 오는 연기가 너희를 집어삼킬 것임을 경고하십니다. 결국엔 블레셋은 앗수르의 침공으로 궤멸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3. 하룻밤만에 무너진 모압 (5장)
모압은 이스라엘과 가까운 사이였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모압의 특징은 산악지대에 둘러싸인 철옹성과 같은 요새가 있었는데 이사야 15장1절에서는 하룻밤 만에 모압이 황폐하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그들이 일평생 일궈낸 저 철옹성과 같은 요새가 하나님의 심판에 하룻밤만에 사라지게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압사람들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닌 우상을 찾는 모습을 보입니다.
나는?
이렇게 세 나라를 보면서 이 이방나라들의 특징은 하나님을 무시한다는것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으로 살아가며 하나님을 찾는 삶, 하나님을 의지하고 붙잡는 삶이 정말 바르고 귀한 삶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양대로 살아내는 삶이 되길 소망하게 되었다.
1. 앗수르의 심판 선언 (14:24-27)
당시 남유다를 가장 두렵게 하던 거대 제국인 북쪽의 앗수르는 두려운 존재였지만 하나님께서 두려워하던 남유다를 향하여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확증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것은 반드시 되며 경영 하시는 것을 반드시 이루신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신실한 하나님이심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멍에와 짐을 벗어주심으로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폐할 수 없으며 돌이킬 수 없음을 나타냅니다.
2. 블레셋의 착각 (28-32)
블레셋은 남유다의 아하스왕이 죽자 많이 기뻐했습니다.
그 이유는 남유다가 블레셋을 강력하게 견제하고 있었고 공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은 너희의 큰 착각 임을 밝히시면서 유다는 부러졌지만 더 강력한 북쪽에서 오는 연기가 너희를 집어삼킬 것임을 경고하십니다. 결국엔 블레셋은 앗수르의 침공으로 궤멸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3. 하룻밤만에 무너진 모압 (5장)
모압은 이스라엘과 가까운 사이였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모압의 특징은 산악지대에 둘러싸인 철옹성과 같은 요새가 있었는데 이사야 15장1절에서는 하룻밤 만에 모압이 황폐하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그들이 일평생 일궈낸 저 철옹성과 같은 요새가 하나님의 심판에 하룻밤만에 사라지게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압사람들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닌 우상을 찾는 모습을 보입니다.
나는?
이렇게 세 나라를 보면서 이 이방나라들의 특징은 하나님을 무시한다는것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으로 살아가며 하나님을 찾는 삶, 하나님을 의지하고 붙잡는 삶이 정말 바르고 귀한 삶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양대로 살아내는 삶이 되길 소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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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8월 02일
안식을 주시는 날
[이사야 14:1-23]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은 회복하신다. 이스라엘은 다시금 회복되어 땅을 얻게 되며, 이전에 주인으로 섬겼던 자들이 노예의 위치로 바뀔 것이다. 바벨론은, 온 세상을 짓밟고 두렵게 했지만, 그 교만의 끝에 깊은 곳에 떨어져 멸망한다.
1. 이스라엘의 회복(1-2)
본문은 이스라엘의 회복의 시작을 긍휼과 택함에 두고 있다.(1절)
1) 긍휼 –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신다. 여기서 긍휼은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보여주는 표현으로, 자녀에게 대가 없이 베푸는 어머니의 사랑을 표현한다.이는 곧 어머니가 대가를 바라지 않고, 갓난 아이를 품는 사랑을 의미한다. 야곱 스스로의 노력으로 회복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긍휼이 이 공동체의 회복의 시작이다. 이스라엘은 주님 앞에 끝없이 범죄하고, 불순종하였으나 하나님은 끝까지 이들을 사랑하시며, 긍휼히 여기신다.
2) 다시 택하심 –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다윗 왕조가 무너질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때에도 이들을 버린 적이 없으셨고,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택하심이 다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고향으로 귀환한다.(2절) 자신들을 압제하였던 자들을 이제는 종으로 부리게 되며, 불볍과 폭력으로 억압하던 자들이 피지배자의 신분으로 떨어진다. 관계의 역전이 일어난다.
2.조롱의 노래(3-11)
여호와께서 주시는 안식은, 적들로부터 가나안 땅을 지켜주시는 보호를 의미한다. ‘슬픔, 곤고, 고역’에서부터 해방시켜주시며 쉬도록 하시는 날을 허락하신다. (3절)
이어지는 4절부터는, 바벨론에 대한 멸망을 선포한다.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던 여러 사람들의 환호와 반응이 나타난다. 전쟁과 폭력, 압제가 사라지며 환호하는 모습이 향나무와 백향목의 환성을 통해 나타난다. 폭군에 대한 심판은 모든 사람들 뿐만 아니라, 자연 만물에도 기쁨으로 이어진다.
본문은 스올(보이지 않는 지하의 세계)까지도 이어진다. 스올에 있던 민족들의 왕들이 바벨론이 스올로 내려오는 것을 보고 ‘너도 우리 같이 연약하게 되었느냐’라고 묻는다. 세상의 모든 권력들의 말로이다. 여호와의 진노 아래에, 스올에서 가장 밑바닥에 처하게 된다. (11절)
3.바벨론의 추락(12-23)
세상을 정복한 폭군은 교만하여 하늘까지 오르려 한다. 이 폭군은 가장 높은 구름에 우르려 하였지만(14절) 스올 맨 밑에 결국 떨어지게 된다. 열방의 모든 왕들은 편안하게 무덤으로 들어가지만, 이 폭군은 망하게 되었고 백성을 죽임에 대한 대가로 함께 안장되지 못한다. 폭군에게는 무덤조차 허락되지 않으며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에 처하게 된다.
여호와께서는 바벨론을 멸망시키신다.(21절) 세상의 악함에 대해 하나님은 그 죄악을 징계하신다. 멸망의 빗자루로, 바벨론을 멸절하시며, 바벨론을 끊을 것을 말씀하신다.
나는?
-회복, 긍휼 : 열국의 심판에 앞서서, 하나님께서는 먼저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의 지나온 걸음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 앞에 구원과 회복을 받을 이유가 본인들에게는 전혀 없다.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하심 가운데 선택하시고, 이들을 받아주셨을 뿐이다. 특히, 하나님은 ‘긍휼’과 ‘택하심’으로 변함없이 이스라엘을 바라보신다. 때로, 나와 공동체의 모습을 바라볼 때에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실까?’ 질문을 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 말씀과 같이, 이는 늘 확실하고 분명하다. 그 긍휼하심을 다시 한 번 구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겠다.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다시 돌아오도록 하신다. 이전의 상황은 역전이 되며,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 위에서 회복된다. 다시 그 땅을 밟을 때의 환희와 기쁨이 얼마나 컸을지를 생각한다. 그들은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을 하나님은 보여주시고, 이끌어주신다. 오늘도 하나님은 이 일을 하고 계시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 이 모든 본문의 예언들은, 약 150-200년 후의 상황들을 내다보고 있다. 오늘 우리가 눈에 보이는 열국의 흥망성쇠 앞에서,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전 우주를 다스리시는 그 하나님, 나는 어떻게 고백하고 있는가?
-교만의 무서움 : 바벨론이 심판을 당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없는 분 취급했던 것. 하나님을 무시함이 얼마나 두려운 죄인지에 대해서 바벨론은 몰랐다. 오늘 나는 어떠한가? 하나님과 함께 모든 결정을 함께하고, 그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가? 너무나 쉽게 마음에 교만이 올라오며,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따르며 구할 때가 있다. 다시금 모든 일에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있기를 구한다.
1. 이스라엘의 회복(1-2)
본문은 이스라엘의 회복의 시작을 긍휼과 택함에 두고 있다.(1절)
1) 긍휼 –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신다. 여기서 긍휼은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보여주는 표현으로, 자녀에게 대가 없이 베푸는 어머니의 사랑을 표현한다.이는 곧 어머니가 대가를 바라지 않고, 갓난 아이를 품는 사랑을 의미한다. 야곱 스스로의 노력으로 회복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긍휼이 이 공동체의 회복의 시작이다. 이스라엘은 주님 앞에 끝없이 범죄하고, 불순종하였으나 하나님은 끝까지 이들을 사랑하시며, 긍휼히 여기신다.
2) 다시 택하심 –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다윗 왕조가 무너질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때에도 이들을 버린 적이 없으셨고,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택하심이 다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고향으로 귀환한다.(2절) 자신들을 압제하였던 자들을 이제는 종으로 부리게 되며, 불볍과 폭력으로 억압하던 자들이 피지배자의 신분으로 떨어진다. 관계의 역전이 일어난다.
2.조롱의 노래(3-11)
여호와께서 주시는 안식은, 적들로부터 가나안 땅을 지켜주시는 보호를 의미한다. ‘슬픔, 곤고, 고역’에서부터 해방시켜주시며 쉬도록 하시는 날을 허락하신다. (3절)
이어지는 4절부터는, 바벨론에 대한 멸망을 선포한다.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던 여러 사람들의 환호와 반응이 나타난다. 전쟁과 폭력, 압제가 사라지며 환호하는 모습이 향나무와 백향목의 환성을 통해 나타난다. 폭군에 대한 심판은 모든 사람들 뿐만 아니라, 자연 만물에도 기쁨으로 이어진다.
본문은 스올(보이지 않는 지하의 세계)까지도 이어진다. 스올에 있던 민족들의 왕들이 바벨론이 스올로 내려오는 것을 보고 ‘너도 우리 같이 연약하게 되었느냐’라고 묻는다. 세상의 모든 권력들의 말로이다. 여호와의 진노 아래에, 스올에서 가장 밑바닥에 처하게 된다. (11절)
3.바벨론의 추락(12-23)
세상을 정복한 폭군은 교만하여 하늘까지 오르려 한다. 이 폭군은 가장 높은 구름에 우르려 하였지만(14절) 스올 맨 밑에 결국 떨어지게 된다. 열방의 모든 왕들은 편안하게 무덤으로 들어가지만, 이 폭군은 망하게 되었고 백성을 죽임에 대한 대가로 함께 안장되지 못한다. 폭군에게는 무덤조차 허락되지 않으며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에 처하게 된다.
여호와께서는 바벨론을 멸망시키신다.(21절) 세상의 악함에 대해 하나님은 그 죄악을 징계하신다. 멸망의 빗자루로, 바벨론을 멸절하시며, 바벨론을 끊을 것을 말씀하신다.
나는?
-회복, 긍휼 : 열국의 심판에 앞서서, 하나님께서는 먼저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의 지나온 걸음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 앞에 구원과 회복을 받을 이유가 본인들에게는 전혀 없다.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하심 가운데 선택하시고, 이들을 받아주셨을 뿐이다. 특히, 하나님은 ‘긍휼’과 ‘택하심’으로 변함없이 이스라엘을 바라보신다. 때로, 나와 공동체의 모습을 바라볼 때에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실까?’ 질문을 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 말씀과 같이, 이는 늘 확실하고 분명하다. 그 긍휼하심을 다시 한 번 구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겠다.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다시 돌아오도록 하신다. 이전의 상황은 역전이 되며,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 위에서 회복된다. 다시 그 땅을 밟을 때의 환희와 기쁨이 얼마나 컸을지를 생각한다. 그들은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을 하나님은 보여주시고, 이끌어주신다. 오늘도 하나님은 이 일을 하고 계시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 이 모든 본문의 예언들은, 약 150-200년 후의 상황들을 내다보고 있다. 오늘 우리가 눈에 보이는 열국의 흥망성쇠 앞에서,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전 우주를 다스리시는 그 하나님, 나는 어떻게 고백하고 있는가?
-교만의 무서움 : 바벨론이 심판을 당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없는 분 취급했던 것. 하나님을 무시함이 얼마나 두려운 죄인지에 대해서 바벨론은 몰랐다. 오늘 나는 어떠한가? 하나님과 함께 모든 결정을 함께하고, 그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가? 너무나 쉽게 마음에 교만이 올라오며,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따르며 구할 때가 있다. 다시금 모든 일에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있기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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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8월 01일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이사야 13:1-22]
이사야 13장부터는 민족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내용이다. 아마도 이 심판의 내용들은, 당시 그 나라들이 들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졌을 것으로 보여지며, 나아가 온 열방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이스라엘 공동체가 의지해야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 뿐이며, 강대국 의존정치의 어리석음을 말하고 있다. 13장에서는 바벨론의 멸망을, 14:1-23에서는 바벨론 왕에 대한 애가의 내용을 통해,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심판하시는 내용을 말하고 있다.
1. 하나님의 군대의 소집 (1-5)
1절에 ‘경고’는 곧 이제부터 나올 내용이, 하나님의 심판임을 의미한다. 2-3절은 하나님이, 4-5절은 예언자가 화자로 등장한다. 군대가 점차 다가오는 모습과 소환되는 과정을 묘사한다.(2절) 여호와의 전쟁에서 그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함께하는 하나님의 용사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님의 노여움을 전할 것이다.(3절) 예언자는 화자로 등장하여, 도착한 수많은 군대의 소리를 묘사한다.(4절) 하나님의 징집 명령에 응답하여, ‘진노의 병기’로 하나님의 노여움을 전하는 도구이다.
2.놀람과 애곡 (6-8)
예언자는 사람들에게 탄식을 말한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다는 것은, 곧 그 대적자들에게는 멸망이 임하였음을 의미한다.(6절) 그 날에 모든 사람들은 힘이 풀리고, 놀라며, 해산이 임박한 것처럼 고통을 느끼게 된다.(7-8절)
3.여호와의 날 선포(9-16) 여호와의 날이 선포됨에 따라, 그 땅이 황폐해진다.(9절) 별과 해와 달이 빛을 잃으며(10절) 세상의 악과 교만한 자의 오만,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추신다.(11절) 누구도 여호와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극히 일부가 살아남을 묘사한다. (12절) 13-16에서는 여호와의 날을 더욱 상세히 묘사한다. 그 분의 진노 속에 하늘은 진동하며, 심판의 대상은 본향으로 도망하지만, 만나는 자마다 창과 칼에 엎드려진다. 아이들, 집, 아내까지 모두가 진멸됨을 말한다. (16절)
4.심판의 도구, 메대 사람들(17-22)
하나님께서는 메대 사람들을 불러 일으키셔서, 바벨론을 멸망시키신다. 페르시아의 고레스2세는 원래 메대 제국의 속국이었던 페르시아의 왕이었으나, 반란을 일으켜 메대의 수도를 정복한다. 이후 메대, 페르시아의 연합군은, B.C.539년 바벨론을 정복하였다. 바벨론은, 소돔과 고모라에 비유되며, 그 죄악의 심각함을 말하고 있다. 화려했던 모든 자리들은, 야생동물의 거처로 전락하며, 이처럼 단기간에 멸망하게될 것이다.
나는?
-당시 바벨론이 멸망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초강대국을 향하여 이같은 예언을 하는 것 자체가, 바벨론 입장에서는 우스웠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아무리 크고, 강력해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있다. 오늘의 삶속에 우리가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말씀이 진정 이루어지는 것을 믿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해 돌아본다. 그 날이 온다는 것을 진정 믿는 사람에게는 오늘을 살아갈 소망과 힘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의 날을 바라보며 오늘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1. 하나님의 군대의 소집 (1-5)
1절에 ‘경고’는 곧 이제부터 나올 내용이, 하나님의 심판임을 의미한다. 2-3절은 하나님이, 4-5절은 예언자가 화자로 등장한다. 군대가 점차 다가오는 모습과 소환되는 과정을 묘사한다.(2절) 여호와의 전쟁에서 그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함께하는 하나님의 용사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님의 노여움을 전할 것이다.(3절) 예언자는 화자로 등장하여, 도착한 수많은 군대의 소리를 묘사한다.(4절) 하나님의 징집 명령에 응답하여, ‘진노의 병기’로 하나님의 노여움을 전하는 도구이다.
2.놀람과 애곡 (6-8)
예언자는 사람들에게 탄식을 말한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다는 것은, 곧 그 대적자들에게는 멸망이 임하였음을 의미한다.(6절) 그 날에 모든 사람들은 힘이 풀리고, 놀라며, 해산이 임박한 것처럼 고통을 느끼게 된다.(7-8절)
3.여호와의 날 선포(9-16) 여호와의 날이 선포됨에 따라, 그 땅이 황폐해진다.(9절) 별과 해와 달이 빛을 잃으며(10절) 세상의 악과 교만한 자의 오만,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추신다.(11절) 누구도 여호와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극히 일부가 살아남을 묘사한다. (12절) 13-16에서는 여호와의 날을 더욱 상세히 묘사한다. 그 분의 진노 속에 하늘은 진동하며, 심판의 대상은 본향으로 도망하지만, 만나는 자마다 창과 칼에 엎드려진다. 아이들, 집, 아내까지 모두가 진멸됨을 말한다. (16절)
4.심판의 도구, 메대 사람들(17-22)
하나님께서는 메대 사람들을 불러 일으키셔서, 바벨론을 멸망시키신다. 페르시아의 고레스2세는 원래 메대 제국의 속국이었던 페르시아의 왕이었으나, 반란을 일으켜 메대의 수도를 정복한다. 이후 메대, 페르시아의 연합군은, B.C.539년 바벨론을 정복하였다. 바벨론은, 소돔과 고모라에 비유되며, 그 죄악의 심각함을 말하고 있다. 화려했던 모든 자리들은, 야생동물의 거처로 전락하며, 이처럼 단기간에 멸망하게될 것이다.
나는?
-당시 바벨론이 멸망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초강대국을 향하여 이같은 예언을 하는 것 자체가, 바벨론 입장에서는 우스웠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아무리 크고, 강력해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있다. 오늘의 삶속에 우리가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말씀이 진정 이루어지는 것을 믿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해 돌아본다. 그 날이 온다는 것을 진정 믿는 사람에게는 오늘을 살아갈 소망과 힘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의 날을 바라보며 오늘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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