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보김과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의 등장 [사사기 2:1-10]
 – 2026년 09월 04일
– 2026년 09월 04일 –
가나안 정복 전쟁 말기에 하나님을 떠나 있던 이스라엘의 모습은, 급기야 “여호와의 사자”가 등장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여호와의 사자의 선언은 가나안 땅에 적응해 가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청천벽력과 같았다. 쫓아내야 할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았으니,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쫓아내지 않으시고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가시가 되고 올무가 되도록 내버려 두시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백성이 큰 소리로 울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출애굽 1세대는 광야에서 끝이 났고, 출애굽 2세대는 가나안 정복의 선두에 서서 활약했지만 그들도 역시 조상의 길로 갔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을 직접 경험한 세대”였다는 것이다. 홍해, 광야의 메추라기와 만나, 시내 산 언약식, 구름 기둥과 불 기둥……. 이렇게 하나님을 직접 경험한 공통의 체험에서 오는 일체감이 있었다. 그런데 그 경험이 없는(여호와도,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일어났다. 여호수아가 110세에 죽은 후의 일이었다.

이처럼 본문은 1~5절의 보김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하여 여호와의 사자가 질책하는 내용을 전한다. 이어 6~10절은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던 여호수아와 그 세대의 죽음, 그리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보고한다.



1. 통곡의 땅(1~5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은 몇 가지 표현으로 불렸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등이다. 그런데 그 땅에 큰 울음소리가 터졌다. 이제껏 승리의 환호성이 더 많이 울려 퍼지던 백성에게서 깊은 통곡이 터져 나왔다. 왜 그랬을까?

길갈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올라왔다(1절). 길갈은 여호수아 세대가 요단 강을 건넌 후,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오게 하셨음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열두 돌기둥을 세운 장소이다. 즉, 하나님의 언약을 자녀들에게 상기시켜 주기 위해 세운 기념비가 있는 성읍이며,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으로 진을 친 곳이었다. 성막도 가나안 땅에서 처음 세워진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 길갈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올라왔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상기시키시려는 분명한 의도가 있었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온전히 정복하지 못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온 힘을 쏟아부어 정복 전쟁에 임하지 않았다. 적당히 현실적인 여건과 타협하며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았다.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한 순종으로 답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남김없이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라 하셨지만 이에 부응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길갈에서 올려 보내신 사자를 통해 이런 불순종을 꾸짖으신다. 동시에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순종했던, 여호수아가 이끌던 시대를 회상하게 하신다.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던 것”(6~7절)을 돌아보게 하신다.

그만큼 이스라엘의 배신은 순식간이었다. 이에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 보김(벧엘)으로 올라와 이렇게 외쳤다. “……나는 그들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않겠다. 그들은 결국 너희를 찌르는 가시가 되고, 그들의 신들은 너희에게, 우상을 숭배할 수밖에 없도록 옭아매는 올무가 될 것이다.”(새번역_3절) 이에 백성이 큰 소리로 울었다! 언뜻 보기에는 진실한 회개의 모습인 듯하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진실한 회개에는 몇 가지 증표가 따른다. 먼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전인격적인 변화의 표현이 나타난다. 단순히 감정적으로 격한 표현에서 멈추지 않는다. 분명한 변화의 행동이 나타나는 것이다.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이 단지 큰 소리로 울기만 하였다는 점이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와 기도의 진정성은 반드시 그 후의 삶에서 드러난다. 기도와 예배 후의 모습에서 변화된 행동을 찾아볼 수 없고, 통곡 후에 의지에 찬 변화의 행동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 “보김(우는 자들)”일 뿐이다. “보김”은 회복이 완성된 곳이 아니다. 회복의 시작이어야 했다.



2. 여호수아의 죽음에 대한 회상(6~10절)
이 단락은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여호수아 24:28~31의 내용을 반복하고 있다. 여호수아는 나이가 많아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할 수 없게 되자 각 지파에게 기업을 분배하였고, 각 지파는 분배받은 기업으로 돌아가 그곳을 차지하는 전쟁을 수행한다. 백성들은 여호수아가 살아 있는 동안과, 그 후 여호수아와 함께한 1세대 장로들이 살아 있는 동안 여호와를 섬겼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큰일, 즉 요단 강을 건너고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을 정복한 일과 같이 하나님과 함께한 전투들을 통해 하나님을 알았고, 그래서 하나님을 온전히 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호와의 종으로 존경받던 여호수아가 110세에 죽는다. 본문은 여호수아를 ‘여호와의 종’으로 호칭하는데, 이는 그 이전에는 오직 모세에게만 붙여졌던 최고의 명예를 나타내는 표현이었다. 즉, 여호수아는 죽은 후에 모세와 같은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또한 이것은 여호수아가 모세처럼 여호와의 명령을 충실히 따랐다는 사실을 인정해 주는 호칭이었다.

여호수아는 죽은 후 그의 기업인 에브라임 산지의 ‘딤낫 헤레스’, 혹은 ‘딤낫 세라’로 불리는 곳에 묻힌다. 이 성읍은 그가 속한 에브라임 지파의 땅에서 자신의 성읍으로 선택하여 받은 곳이었다. 이런 모습을 통해, 그가 비록 온 이스라엘의 지도자였지만 왕처럼 이스라엘 땅 전체를 자기 소유로 삼은 것이 아니라 일반 백성과 동일하게 자기 몫을 받는 데 그쳤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신실한 지도자 여호수아가 죽고, 그와 함께한 사람들도 죽었다.

그런데 이렇게 한 세대가 죽은 후, 뒤를 이은 세대는 이전 세대와 ‘다른 세대’였다. 가장 큰 차이점은 이들이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는 7절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본 자들’이라는 표현과 선명하게 대조된다.



3. 다음 세대가 아니라 다른 세대(10절)
“보김(우는 자들)”의 땅이 되어 버릴 원인을, 여호수아 세대의 모습을 회상하게 하시면서 알려 주신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 그리고 그와 함께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경험한 장로들(그 세대의 사람들)이 죽은 후에 일어난 세대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세대였다. “……그들이 죽은 뒤에 새로운 세대가 일어났는데, 그들은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돌보신 일도 알지 못하였다.”(새번역_10절)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돌보아 주신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였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새로운 세대가 여호와와 그분이 하신 일을 알지 못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 면에서 살필 수 있다. 첫째, 선조들이 다음 세대에게 여호와에 대해 제대로 교육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여호수아는 죽기 전에 다음 세대를 모아 놓고 여호와께서 하신 일을 언급하면서, 새로운 세대와 언약을 갱신하며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하였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과 하신 일을 대대로 자손에게 잘 전달해야 하는 의무가 부모 세대에게 있다. 하지만 세대가 지나면서 이런 교육은 점점 퇴색하기 마련이고, 그 결과 자식 세대는 하나님을 잘 모르게 될 수 있다. 둘째, 각 세대는 전해 들은 이야기뿐 아니라 자신이 직접 하나님을 경험해야 한다. 자식 세대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단지 지식이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식은 있어도 하나님을 삶 속에서 체험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신앙은 지식으로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각 세대와 각 개인이 하나님을 체험할 때 형성되기에 세대마다 새로운 하나님 체험이 필요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겼던 이전 세대와 달리 하나님을 모르는 세대가 등장한 것은 앞으로 일어날 이스라엘의 배교를 예고한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어김없이 주셨다. 그렇게 받은 땅을 이스라엘 백성도 어김없이 그들의 후손에게 물려주었다. 그런데 땅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물려주지 못했다. 바로 하나님을 따르는 신앙이다.

*신앙을 물려주지 못한(않은) 채 땅만 물려준 그들의 다음 세대는, 하나님의 백성과 다른 세대가 되어 버렸다.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는” 이 다른 세대가 물려받은 것은 그저 땅뿐이었다. 출애굽의 위대하신 하나님의 이야기는 물려받지 못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대에게, 가나안 땅의 풍요로움을 가져다준다는 신들을 섬기는 우상 숭배는 고민할 필요조차 없는 기본 선택이었다. 여호수아 세대는 이 땅의 풍요함을 물려주기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이야기를 물려주었어야 했다.

*결국 땅(물질)만 물려주면 안 된다. 부모와 공통분모가 있어야 한다. 특히 하나님에 대하여 갖는 공통된 경험은, 우리 자녀 세대가 우리와 다른 세대가 되지 않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안식일과 세 절기, 곧 유월절(무교절)과 맥추절(오순절)과 수장절(초막절)을 모든 이스라엘이 지키라 하셨다. 특히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은 “우리의 하나님”이라는 신앙 정서를 갖게 하는 중요한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가 과연 자녀와 함께 이를 잘 지키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기도의 자리를 함께하고, 찬양의 자리에서 함께 목청껏 마음을 다해 찬양하는지, 가정에서 혹은 교회의 공적 예배에서 이와 같은 심정으로 함께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이미 한국 교회 안에서 다음 세대가 모이는 주일학교의 70퍼센트가 넘게 사라졌다는 보고가 절망하게 한다.

*부모가 자녀와 함께 하나님에 대한 귀한 신앙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부터가, 다음 세대를 세우는 기초를 쌓는 일이다. 부모가 들려주는 하나님 이야기가 가랑비에 옷 젖듯 마음에 스며들어 있어야 “다음 세대”가 된다.

*모세의 세대가 여호수아의 세대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광야”라는 공통분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광야에서 함께 만나고 누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역사가 오롯이 그 세대들을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묶어 주었다. 하지만 여호수아 세대는 그토록 소망하던 가나안 땅을 분배받는 은혜가 성취되었음에도, 여호수아를 알고 따르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일을 본 자들”이 죽자 다른 세대가 되어 버렸다.



나는?
-하나님은 신실하시나, 이스라엘은 변절하고 만다(1~3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과 언약을 맺고 신실하게 언약을 지키시지만, 이스라엘은 약속을 어긴 채 가나안 민족을 용납한다. 하나님은 그들이 쫓아내지 않은 가나안 주민이 도리어 그들에게 가시가 되고 올무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크지만, 그 사랑은 우리의 반응을 기대하지 않는 맹목적이고 일방적인 사랑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며 하나님만 사랑하고 있을까?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서도 가나안 주민과 또 다른 언약을 맺는다. 가나안 주민을 쫓아내지 않고 우상의 단도 헐지 않는다. 그들을 노역자로 삼아 함께 사는 길을 택한다(2~3절). 공존을 도모한 평화로운 해결책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는 불순종이요 그릇된 타협이다.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시면 아무리 좋게 보이는 것이라도 언제든 득이 아니라 독이 되고, 친구가 아니라 원수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말씀의 실천보다 실용을 택한 이스라엘에게 심판이 선고되자, 이스라엘 자손은 소리 높여 운다(4~5절). 안식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통곡의 땅’으로 변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그 자체로 안전하고 기쁨 가득한 땅은 없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간절히 요청하고 실현하는 곳에 안식과 평강과 희락이 있음을 늘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 이스라엘의 잘못을 정죄하시고 심판을 선고하셨다. 최후통첩이었다.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셨다. 영원히 그 언약을 지킬 태세셨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자 딴살림을 차려 버렸다. 우상을 용인했다. 가나안을 수용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자초한 선택의 결과를 그대로 취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은 심판 선고를 듣고 보김에서 대성통곡한다. 축복의 땅, 안식의 땅, 번영의 땅 가나안이 슬픔과 통곡의 땅이 된다. 그 자체로 안전한 땅이 있을까? 어떤 곳도 없다. 안식과 기쁨은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로부터만 나온다. 가나안은 가능성의 땅이다. 선택의 땅이다. 후회의 눈물을 흘리기 전에, 지금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이중적인 삶의 방식을 청산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의 죽음 이전과 이후가 달랐다. 하나님의 위대한 정복 역사를 경험한 세대와 그다음 세대가 달랐다. 여호수아가 죽고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여호와와 그분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출현한다. 땅은 전수되었으나 신앙은 계승되지 못한 것이다.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전수하고 계승해 주어야 할까? 다음 세대에게 신앙을 물려주기 위해 오늘 우리는 몸부림치고 있을까?

-여호수아를 비롯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역사를 기억하던 사람들의 죽음은, 여호와를 알지도 못하고 여호와의 행적도 모르는 새로운 세대를 낳았다. 다음 세대는 자신들이 사는 땅이 자격 없는 자들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러니 하나님만을 섬겨야 할 이유도 희미해졌다. 다음 세대가 전혀 다른 세대가 되고 말았다.

-여호수아를 알았던 세대는 통곡은 무성한데, 하나님을 붙잡지 않는 땅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말았다. 종교적인 형식은 무성한데, 말씀대로 살아 내는 삶은 없는 자세를 물려주고 말았다. 종교적인 형식은 물려주었지만, 살아 내는 삶은 공유하지 못했다. 자신들도 보기만 했기 때문이다. 경험하지 못했다.

-하나님과 함께한 경험이 공유되지 않고 지식의 말만 무성한 계승은 전혀 다른 세대를 낳고 말았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맞은 위기의 진정한 핵심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기존 세대, 이들은 부모의 신앙을 보고 들으며 자라 왔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그런 “경험”이 없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학문적인 지식뿐 아니라 경험의 지식, 정서의 지식을 포함한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마음과 뜻과 정성”이 모두 버무려진 “삶의 경험”에서 오는 지식이다.

-다른 세대의 출현은 기록이 전수되지 않아서가 아니다. 땅이 전수되지 않아서가 아니다. 하나님이 전수되지 않아서 출현한다. 복음을 심으면 복음의 열매가 맺히기 마련이다. 하나님을 아는 세대가 하나님을 심지 않았으니, 전혀 다른 세대가 출현한 것이다.

-사실 나도 부모님에게는 다른 세대다. 그런데 지금 나의 자녀들을 바라보며, 정말 다른 세대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부모님에게 내가 다른 세대이듯, 나의 자녀도 이미 다른 세대일 수밖에 없다. 삶의 철학이나 가치, 태도는 그래도 된다. 아니, 그래야 한다. 하지만 중심은 다르면 안 된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만큼은 다른 세대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했다.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는 그래서 가족이 함께 공유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공통된 경험은 하나님을 알아 가는 매우 중요한 동기가 된다. 기록된 말씀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일주일에 한 번씩 가정 예배로 자연스럽게 말씀을 읽고 묵상을 나누는 시간을 티타임과 곁들여 갖거나, 한창 아이들을 키울 때 잠재우기 전에 기도해 주거나, 함께 교회에 나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거나……. 지금 우리가 충분히 할 수 있는 “공통 경험의 장”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주일을 잘 지키는 일을 아이들과 함께 꿋꿋이 감당해 보는 것”이다.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라면 부모가 삶으로 보여 주고, 그 현장에 아이들과 함께하면 된다. 함께 경험한 신앙의 추억이 “다른 세대”가 되지 않게 한다.


*”보김(우는 자들)”은 나의 세대에서 멈춰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게 하여 “보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부모 세대의 책임이자 의무이다. 하지만 사사 시대의 특징은 “보김”이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는 “보김의 세대”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오늘은 보김이었더라도 내일은 그렇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여, “함께하시며 앞장서시며” 광야 길을 인도하셨던 그 은혜 안에 거해야 한다. 그렇기에 “보김”의 세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호세아 선지자가 외쳤던 말씀에 순종의 걸음을 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호 6:3)

+ 기도제목

*주님, 보김(우는 자들)이 되지 않겠습니다. 주님을 더욱 알아 가며 그 안에 거하겠습니다.
*주님, 다음 세대가 다른 세대가 되지 않도록 교회가 앞장서겠습니다. 땅보다 하나님을 물려주겠습니다.
*주님, 나의 자녀들에게 땅 이야기가 아니라 주님의 이야기를 들려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