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드보라의 노래와 여호와의 승리 [사사기 5:19-31]
 – 2026년 09월 11일
– 2026년 09월 11일 –
드보라의 노래 후반부다. 본문에서는 전쟁이 시작되고, 여호와께서 폭우를 내려 가나안 왕들을 단숨에 쓸어버리셨다고 노래한다. 그리고 야엘은 시스라를 죽인 일로 축복을 받는다. 시스라가 야엘에게 맞아 쓰러지는 장면은 반복을 통해 강조되며,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는 시스라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들의 운명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보여 준다.

승리의 노래가 이어진다. 그런데 이 승리는 단지 야빈 왕과의 싸움에서만 거둔 것이 아니었다. “여러 왕들이 와서 싸움을 돋우었다. 므깃도의 물가 다아낙에서 싸움을 돋우었으나, 그들은 탈취물이나 은을 가져가지 못했다”(새번역, 19절)라는 말씀을 보면, 야빈의 군대와 개전했다가 주변 가나안 족속들과의 싸움으로 확전된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확전된 전쟁에서도 역시 하나님께서 앞서 싸우셨다. “별들이 하늘에서…… 그 다니는 길에서”(새번역, 20절), “기손 강물이 그들을 휩쓸어 갔고……”(새번역, 21절)라는 표현들은 하나님의 천군 천사가 개입했음을 알게 한다. 하나님께서 대신, 그리고 적극적으로 싸우셨으니 승리는 당연하다. 하나님께서 앞서 싸우시니 그 뒤를 따라 “힘차게 진군하는”(새번역, 21절) 것은 당연하고도 당연하다! 하나님의 승리의 찬가가 울려 퍼진다! 그런데……



1. 므깃도 전투의 승리와 메로스를 향한 저주(19~23절)
본문은 여호와와 인간 주인공들이 전쟁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전쟁이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시(노래)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특이한 점은 이 전쟁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전혀 등장하지 않고, 오직 별들이 여호와의 시종으로서 전쟁을 수행하는 주체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이는 가나안과의 전쟁이 철저히 ‘여호와의 전쟁’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19절은 전쟁의 결과(가나안 왕들이 탈취물을 얻지 못했다)를 소개하고, 20~22절은 전쟁의 상황을 묘사한다. 별들이 시스라와 싸울 때 엄청난 폭우를 그의 군대 위에 퍼부었고, 그 결과 기손 강이 범람하여 그의 병거와 군대를 쓸어 갔다고 묘사한다. 이런 통쾌한 여호와의 역사하심에 드보라는 ‘나의 영혼아, 힘차게 짓밟아라’ 하면서 승리의 함성을 포효한다. 압도적인 하나님의 힘 앞에서는 인간이 가진 힘과 능력(철 병거)이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보잘것없음을 묘사한 것이다. 이 노래는 가나안과의 전쟁에서 ‘폭우와 기손 강의 범람’이 이스라엘의 승리 요인이었음을 분명하게 밝혀 준다. 이스라엘의 능력으로 이긴 전쟁이 아니라, 여호와의 역사로 이긴 전쟁이었다.

23절에서 갑자기 여호와의 사자(천사)가 등장한다. 그는 전장에 인접한 “메로스”라는 마을과 그 주민들을 저주한다. 메로스는 다볼산 북쪽, 이스르엘 평야의 끝자락 어딘가에 위치한 성읍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그 저주의 강도가 무척 강하다. “저주하라…… 거듭거듭 저주할 것은……”(23절)이라고 했다. “사정없이 철저히”로도 번역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은 주님을 도우러 나오지 않았다. 주님을 돕지 않았다. 적의 용사들과 싸우러 나오지 않았다.”(새번역, 23절) 전장 근처라면 납달리 지파의 땅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그곳 마을 주민들은 하나님께서 싸우시는 현장에 있었음에도 “나오지 않고, 돕지 않으며, 싸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드보라의 승리의 노래 가운데 불릴 정도라면, 메로스는 전장의 판도를 결정지을 만한 무언가가 있는 성읍이었을 수 있다. 또는 격렬한 전쟁 속에서도 지형지물이 어느 정도 안전을 보장해 주는 성이었을 수도 있겠다. 메로스는 “피난처”라는 뜻이다. 스스로 가장 안전한 피난처라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전장을 외면한 이들은, 오히려 그 피난처의 지위를 박탈당한다. 진정한 피난처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메로스(피난처)를 질책하셨기 때문이다.

*진정한 피난처는 싸움의 현장을 벗어나 안전하다고 여기는 장소가 아니다. 외면하여 편안하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리가 진정한 피난처다. 그곳이 아무리 창칼이 맞부딪치고 화살이 난무하는 전장 한가운데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계신 전장이 진정한 피난처이다. 하나님께서 피난처(안식처)가 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현장에 있고, 그것을 직접 보고 알고 있으면서도 “반응하지 않는” 지독한 보신주의를 간과하지 않으신다. 겸손하게 주님께서 일하시는 현장으로 나아와야 함에도, 그들은 그저 성문을 걸어 잠그고 이 폭풍이 지나가기만 바랐던 것이다.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치열한 순종의 현장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무관심하고 무반응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어쩌면 가장 지독한 교만일 수 있는, 하나님 앞에서의 무반응과 무관심을 강하게 질책하신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현장에서 비열하게 외면하고 거절하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일지라도 오히려 대적으로 여기신다는 것이다. 아무리 스스로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자부하여도, 무반응과 외면을 고수하는 그들을 대적으로 간주하셨다.

*나는 “메로스”와 같은 상황에 직면할 때 어떻게 할까? 바람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자세로, 그저 나만 평안하면 된다며 성문을 걸어 잠글 것인가? 하나님의 전쟁에 기꺼이 헌신할 것인가? 곰곰이 되씹을수록 그리 호기롭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인 비유를 통해 에둘러 일깨워 주신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이다. 이웃 사랑은 실제로 돕고 베푸는 사랑이어야 한다. 전쟁 중에 있는 민족과 함께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다운 행동이 아니다. 마땅히 질책받아야 한다.



2. 야엘을 축복하다(24~27절)
“메로스”를 거듭거듭 저주한 것과 선명하게 대비되게, 시스라를 죽인 여인 야엘을 축복한다. 그녀의 지혜와 담대함, 단호함을 칭송한다. 무엇보다 결국 하나님의 예언대로(말씀대로) 이루어졌음을 찬양한다. 동족의 전쟁에, 그것도 가까운 곳에서 벌어진 전투에 문을 걸어 잠그고 동참하지 않은 비겁한 메로스를 비롯하여, 참전하지 않은 지파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야엘은 이방인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어머니’ 드보라의 승리 찬가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로 기록되었다. 이는 전쟁에 동참하지 않은 지파들과 메로스를 에둘러 거듭거듭 비판하는 것이다. 특히 야엘이 시스라를 죽이는 장면을 4장에 비해 자세하게, 한 컷 한 컷 보여 주듯 설명한다. 연약한 여인 야엘의 발 앞에서 맞은 그의 죽음을 묘사하며, “꾸부러지며 엎드러져서”라는 표현을 세 번이나 반복한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는 반드시 꾸부러지며 엎드러져서 망한다. 지금 잘나간다고 영원히 잘나가는 것은 아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하는 것이 지혜롭다. 인생의 참 지혜는 하나님의 대적이 되지 않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 안에 야엘처럼 하나님의 축복의 대상이 되는 믿음의 결단과 행함이 있기를 사모해 본다. 하나님의 일에 마음으로 공감하고 몸으로 행동했으면 좋겠다. 메로스나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지파들처럼 자신의 삶에 안주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에 “안일해진다면”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3. 시스라 어미의 시선(28~30절)
아들 시스라의 패전과 죽음을 알 턱이 없던 시스라의 어미는, 지난 20년간 늘 그랬던 것처럼 아들이 승전하여 전리품을 나누느라 돌아오는 것이 지체되는 것으로 여겼다(30절). 그러면서 아들이 언제 돌아올지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본다.

시스라의 어미는 아들의 귀환이 늦어지는 것을 두고 “그들이 어찌 약탈물을 얻지 못하였으랴? 그것을 나누지 못하였으랴? 용사마다 한두 처녀를 차지하였을 것이다. 시스라가 약탈한 것은 채색한 옷감, 곧 수놓아 채색한 옷감이거나, 약탈한 사람의 목에 걸칠 수놓은 두 벌의 옷감일 것이다”(새번역, 30절)라고 이야기한다. 피로 흥건히 젖은 노략물에 대한 탐욕을 노골적으로, 또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스라엘의 눈물과 피를 쥐어짜서 자신들이 당연히 쟁취했으리라 생각하는 노략물에 대한 관심이, 아들 시스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보다 더 직접적이다.

승리하여 약탈물을 나누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패전한 민족의 여인들을 마치 짐승이나 물건처럼 취급하던 가나안의 폭력적인 문화에 매우 익숙한 모습이다. 같은 여인이면서도 그 여인들이 당할 수치와 모욕은 안중에도 없다. 오히려 그런 악한 행동을 하는 아들과 자기 민족이 자랑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이제 곧 자신과 자기 딸들이 그 꼴을 당해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하고 있다. 자신이 말한 대로 자신도 당하게 되리라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이미 일어난 아들과 자기 민족의 참담한 패배는 상상조차 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이 자행한 폭력과 억압은 당연한 듯 받아들인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의 이런 죄악을 좌시하지 않으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렇게 전혀 생각지도 못할 때 일어난다. 시스라의 어미에게 이 심판이 닥쳤다.



4.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31절)
하나님은 원수들을 결국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신다. 하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백성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앞서 싸워 주심으로 40년간의 평화가 시작되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결코 감정이나 입의 말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전장에 동참하는 것이다. 대적 앞에서 단호하고 담대하게 장막 말뚝을 내리치는 것이다. 하나님의 편에 선 이는 그분을 사랑하기에 기꺼이 이렇게 행동할 수 있다.

*아무리 밤이 깊어 흑암 가운데 있는 삶이라고 여겨져도, 그럴수록 “해를 힘 있게 돋게 하시는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분의 편에 서는 일을 계산해서는 안 된다. 세상 계산으로 따지면 유익할 일이 전혀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결정하고 살아가는 인생은 이미 하나님의 축복 안에 있는 인생이다.



나는?
-하나님께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무기(폭우)로 가나안 군대를 진멸하신다(19~22절). 갑작스러운 폭우로 기손 강이 불어나자 군대는 진퇴양난에 빠지고 철 병거는 무용지물이 된다. 첨단 무기를 앞세워 이스라엘을 격멸하고 전리품을 약탈하려던 그들의 야욕은 급류와 함께 사라진다. 시스라의 군대는 그들이 상대할 대상이 이스라엘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몰랐다.

-하나님께서 나서신 전쟁에서 가나안은 이길 수 없었다. 가나안 사람들이 비의 신 바알이 죽어 있다고(잠시 자리를 떠났다고) 여기는 건기에,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폭우를 내려 기손 강을 범람하게 하여 시스라의 병거와 군대를 쓸어버리셨다. 땅에서 승리하기 전에 하늘에서 별들 간의 싸움에서 승리하셨다. 땅에서 들리는 것은 승리의 함성과 패잔병들의 말발굽 소리뿐이었다.

-여호와의 전쟁을 외면하고 형제를 돕지 않은 자들(메로스)을 향해 저주를 선언하신다(23절). 그들의 참전 회피는 언약을 파기하는 행위였기 때문에 ‘언약적 저주’를 선고받은 것이다. 그들은 세상에서 성공하고 안정적인 삶을 누리지만, 영적인 일에는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자들을 대표한다. 우리는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끝나지 않은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소극적인 방관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참여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은 전혀 기대하지 못한 인물이었다. 야엘은 비록 이방인의 아내요 초야의 장막에 거주하는 평범한 여인이었지만, 적장의 목숨을 전리품으로 취하고 약속된 영광(4장 9절)을 받는다. 메로스 주민들은 저주를 받고, 야엘은 영광을 받은 것이다. 메로스는 여호와의 용사들을 도와 적들을 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마을은 두려워 물러섰지만, 한 여인은 담대하게 나섰다. 전력의 차이가 아니라 믿음의 차이였음을 분명하게 깨닫는다.

-하나님은 지금도 평범해 보이는 사람을 통해 위대한 일을 이루신다. 소소해 보이는 일상을 통해 큰 역사를 이루신다.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

-‘이스라엘의 어미(드보라)’가 승리의 노래를 부를 때, ‘가나안의 어미’는 개선장군이 아니라 노략물이 된 아들의 죽음을 모른 채, 어리석은 기대와 허망한 기다림 속에서 불안을 감추지 못한다(28~30절). 드보라는 시스라처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에게는 패망을, 야엘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영광을 주시기를 청원한다(31절). 이처럼 최후의 승리와 구원은 주님을 사랑하고 헌신하는 이들의 몫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편에 섰던 야엘, 에브라임, 베냐민, 마길(므낫세의 맏아들), 스불론, 잇사갈, 납달리는 하나님의 승리의 찬가를 마음껏 부르고 누렸다. 하나님의 전쟁에 참전하여 하나님께서 부리신 별들과 강을 직접 목격했다.

-하나님의 전쟁이기에, 하나님의 편에 섰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분명히 갈린다. 야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담대하게 붙잡았다. 철저히 하나님의 편에 서서 시스라의 관자놀이에 장막 말뚝을 박아 버린다. 그녀는 이방인이었다.

-결국 이방인이든 이스라엘 민족이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편”에 선 야엘에게는 축복을 받으리라는 칭송이 돌아오지만, 메로스처럼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하나님의 편에 동참하지 않는 자에게는 저주가 돌아온다.

-나의 일생이 늘 하나님 편에 서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적 전쟁터를 외면하지 않고, 최후 승리를 바라보며 나아가리라.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승리를 기억하고 찬양하며 힘을 얻는다.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처절하게 전투를 치러 내셨던 주님의 삶을 묵상하며, 지금 여기에서의 결전의 각오를 다진다. 나아가 다시 오실 주님께서 행하실 최후의 심판을 바라보며 최후의 승리를 소망한다. 지치고 힘겨운 하루하루를, 세상을 이기신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심을 믿고 인내해야 하리라.

+ 기도제목

*주님, 메로스처럼 보신주의, 기회주의에 빠지지 않겠습니다. 야엘처럼 하나님의 편에 서겠습니다.
*주님, 이미 십자가와 부활의 승리를 주신 주님을 기억하고 찬양하며, 최후 승리를 바라보며 인내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