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에브라임의 교만과 입다의 내전 그리고 불안한 평화 [사사기 12:1-15]
 – 2026년 09월 27일
– 2026년 09월 27일 –
암몬과의 전쟁은 승리로 끝났지만, 동족과의 전쟁이 뜻하지 않게 일어난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또다시 교만하게 시기와 질투를 부린다. 입다가 암몬 자손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자, 전리품을 나누어 가질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억지를 부리며 요단강을 건너와 협박했다. “…. 너는 왜 암몬 자손을 치러 건너갈 때에 우리를 불러 같이 가지 않았느냐? 우리가 너와 네 집을 같이 불태워 버리겠다(새번역_1절).” 이 황당한 작태 앞에 입다는 단호하게 반응한다. 암몬과의 싸움을 준비하면서 도움을 요청했지만 응하지 않은 점(2절)을 지적하고, 자신과 길르앗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 이겼는데 어찌하여 전리품을 나누자고 하느냐고 반문한다(3절).

말로만 반박하지 않고, 위협하러 올라온 그들의 모습을 명분 삼아 길르앗 사람들과 함께 에브라임을 무찔러 버렸다. 평소에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에브라임에서 도망친 자들,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속한 자들”이라고 무시당했던(4절) 울분까지 터져서 파죽지세로 에브라임을 평정해 버렸다.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패한 에브라임 사람들의 퇴로인 요단강 나루터를 장악하고, 건너려는 자들에게 “쉽볼렛”을 발음하게 하여 “십볼렛”이라 발음하면 모조리 잡아 죽였다. 이렇게 죽은 사람이 4만 2천 명이나 되었다(6절). 에브라임 지파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스라엘은 길르앗의 입다 이후 베들레헴의 입산과 스불론의 엘론, 비라돈 사람 압돈이 차례로 뒤를 이어 사사가 되었다.



1. 에브라임 지파의 오만함(1절)
입다는 암몬과의 전투 전에 온 지파에 공문을 보내 원병을 요청했었다(2절). 하지만 에브라임 지파는 협조하지 않았다. 그런데 입다가 뜻밖의 승리를 거두고 이스라엘의 사사로 우뚝 서자 시기심이 발동했다. 이전에 기드온에게도 에브라임은 “네가 전쟁하러 갈 때 왜 우리를 부르지 않았느냐?(8:1-2)”라고 윽박질렀다. 기드온은 에브라임을 치켜세워 분노를 누그러뜨렸지만, 입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입다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매우 잘 꿰뚫고 있었기에 기드온의 전철을 따르지 않았다.

하지만 에브라임은 입다를 잘 파악하지 못했다. 파병도 하지 않았으면서 전리품을 달라고 억지를 부리며 “우리가 너와 네 집을 불태워 버리겠다(1절)”라고 협박까지 하고 말았다. 더구나 입다는 자신의 딸을 인신 제사로 바친 상황이었다! 에브라임 지파는 암몬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동족들 앞에서, 더구나 입다의 잘못된 서원에 따른 비극에 함께 공감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심보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에브라임 지파가 “어찌하여” 우리를 부르지 않았느냐며 부린 오만한 추태에 대하여, 입다는 “여호와께서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주셨는데 너희가 ‘어찌하여’ 오늘(에야) 내게(이곳에) 올라와서 나와 더불어 싸우고자 하느냐”며 분노한다.

외부의 위협이 사라지자 내부의 갈등이 시작된다. 암몬과의 전쟁이 끝난 후, 에브라임 사람들은 전쟁에서 자신들을 소외시킨 입다와 그 집을 불사르겠다고 협박했다. 딸의 죽음을 상기시키는 잔인한 발언(불)을 하며, 정치적 위상이 높아진 입다의 지도력을 위협한다. 암몬이 ‘땅’을 탐내어 공격한 것이라면, 에브라임은 ‘권력’에 눈이 멀어 질시하고 시비를 건 것이다. 시기가 죄로 자라나 화를 불러왔다.



2. 입다의 결행(2-7절)
입다는 기드온과 달랐다. 그는 “큰 용사(힘의 용사)”였다. 기드온처럼 상대를 치켜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분노하며 길르앗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길르앗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도 평소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에브라임에서 도망친 자들이요,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속한 자들”이라며 무시당했던 울분을 더해 싸워 그들을 무찔러 버렸다.

그리고 도망치는 에브라임 사람들의 유일한 퇴로인 “요단강 나루터”를 선점하여, 강을 건너려는 에브라임 사람들의 특유의 발음을 확인해 가려내고 그 자리에서 처형해 버린다. 그 수가 4만 2천 명에 달했다. 이로 인해 가장 기름진 땅을 분배받고 가장 부유하게 살았던 에브라임 지파는 괴멸되다시피 했다. 이 모든 것이 “우월감에서 오는 교만과 욕심에 눈이 먼 시기와 질투” 때문이었다. 입다는 에브라임의 항의와 위협에 비타협적인 자세를 취하며 주도권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는다(2~4절).

지혜롭게 대응한 기드온의 처신(8:2)이나, 일전에 평화롭게 해결하려던 협상가의 면모(11:12)와는 다른 모습이다. ‘용사’의 위용만 있을 뿐 ‘사사’의 위엄은 없다. 큰 용사인 그는 결국 인간이 세운 지도자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초라하게 퇴장한다. 그의 시대는 ‘짧았고’, ‘샬롬’도 없었다. 입다의 이런 모습을 통해, 주님께서는 우리가 탁월하지만 교만하여 어리석은 지도자가 되기보다 부족하나 겸손하여 지혜로운 신자가 되기를 더 원하심을 깨닫게 된다.

한편 과거의 영광(지위)에 취해 권력을 행사하는 에브라임 지파는 ‘본래 도망자였다’라는 말로 길르앗 사람들을 조롱하고, 동족에게서 쫓겨났던(11:3) 입다를 자극한다. 이 같은 지파 간의 뿌리 깊은 반목과 질시가 ‘십볼렛’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낳았다(4~7절). 시기와 분노는 모두 자기 욕심에 집착하는 어리석은 태도다. 오늘 내 자랑과 자부심의 근거가 하나님과 공동체를 무시하고 무너뜨리는 영적 어둠의 이유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3. 평화가 이어지지만(8-15절)
사사 입다의 시대를 포함하여 31년 동안 이스라엘에 평화가 지속된다. 암몬을 물리친 입다 이후 가나안 민족들의 침략이 없는 시대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때 세워진 사사들의 면면은 참담하다. 입산은 기드온의 전철을 따르기라도 한 듯 아들 30명과 딸 30명을 두었다. 그런데 특히 결혼에 있어 딸들을 “밖으로(개역개정)” 시집보냈고, 아들들을 위해 “밖에서(개역개정)” 여자 30명을 데려왔다고 기록한다(9절). 개역한글은 이 “밖에서(후츠)”를 “타국에서”로, 새번역은 “다른”으로 번역했다. 기본 의미는 “외부, 바깥쪽”이지만, 신 25:5와 삿 12:9에서는 “후츠”라는 단어를 친족이나 동족이 아닌 “타인”의 뜻으로 번역했다. 그렇다면 놀랍게도 사사 입산의 자녀들은 하나같이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이방 민족들과 결혼했다는 의미가 된다. 이런 일이 이스라엘에게 일어나고 있다.

엘론은 별다른 언급 없이 스불론 사람이라는 기록만 남긴다. 가장 연약한 지파 중에서 나온 사사였다. 그의 뒤를 이어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사사가 되었다. ‘비라돈’이라는 지명이 두 번 언급되는데, 이 지역은 아말렉 사람의 산지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그렇다면 압돈은 아말렉 남자와 에브라임 지파 여인 사이에서 난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압돈도 이방 결혼의 열매였다. 압돈에게는 아들이 40명, 손자가 30명이나 있었고, 그들은 어린 나귀 70마리를 탔다.

*평화가 이어지고 있지만, 도리어 사사들은 연약한 모습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다른 이방 민족의 왕들처럼 부인을 많이 두어 자녀를 많이 낳았다. 향락에 취했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방 결혼을 서슴지 않았다. 솔로몬보다 훨씬 먼저 결혼을 외교적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것으로 얻은 평화임에 틀림없다. 또한 사치도 문제다. 아들과 손자들에게 ‘어린 나귀’를 태울 정도로 재물이 넘쳐났다. 더구나 가나안 족속과의 사이에서 난 이도 사사가 되었다.

*지도자가 향락을 탐닉하고, 적극적인 이방 결혼을 통해 평화를 구걸하고, 아들들과 손자들에게까지 어린 나귀를 타게 하는 사치스러운 삶을 마다하지 않았다.

*입다는 인신 제사, 입산은 축첩과 이방 결혼, 압돈은 사치와 지나친 부를 지닌 사사였다. 이들이 다스린 이스라엘은 놀랍게도 “평화로웠다.” 그런데 이 평화가 진정한 평안일까? 그저 일시적인 “평온”이 아닐까?

*기드온은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고, 입다는 인신 제사 서원을 이행하여 딸을 죽였으며, 입산은 여러 부인에게서 자녀 60명을 낳았다. 그리고 이 자녀들을 하나같이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 민족과 결혼시켰다. 솔로몬의 외교 정책이 여기에서 힌트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압돈은 사치와 부를 누린 부자였다. 이들이 사사로 활동한 31년 동안 이스라엘의 평화는 지속되었지만, 오히려 영적으로는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게 되었다.

*추락하고 쇠망하고 있음에도 겉으로 평화롭다 하여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평화롭기에 음욕대로 살고, 부를 축재하여 사치하며, 이방 민족들과의 결혼을 평화의 수단으로 사용했을 수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 당혹스럽다. 평화로운 시대인데, 불안한 평화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평화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지도자가 이렇게 형편없음에도 평화는 지속되었다. 이럴 수도 있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전심으로 살아낼 때 누리는 평화와는 다른,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다.



나는?
*에브라임 지파는 므낫세 지파와 함께 요셉 지파에 속했다.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은 자신의 이름으로 지파를 형성하지 않고,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각각 지파를 이루었다. 에브라임은 아우였지만 형보다 나았고, 이스라엘 여러 지파 가운데 가장 유력한 지파였던 유다 지파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강한 지파였다. 이 두 지파는 모두 요단강 양쪽의 비옥한 지역을 기업으로 받았다. 당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마땅히 실천해야 할 힘이 있는 명문 지파였다.

*하지만 같은 민족끼리 쉽게 딴지를 거는 못된 습성이 있었다. 자신들이 가진 힘을 이용해 거들먹거리는 것이다. 교만하기 짝이 없다. 기드온은 에브라임의 힘을 알기에 자세를 낮추어 별일 없이 지나갔지만, 입다는 달랐다. 에브라임의 딴지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더 나아가 암몬 전투의 승리가 하나님의 은혜였고 자신이 사사가 된 것도 하나님에 의한 것이기에 자세를 굽히지 않았다. 에브라임이 잘못 건드린 것이다.

*한편으로는 감정이 앞선 입다의 결행이 아쉽기만 하다. 같은 민족 안에 내전이 일어난 것이다. 지금까지 사사로 세움 받은 이들 가운데 평화로운 이스라엘을 이루지 못한 유일한 사사가 되었다.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전으로 인해 그의 사사로서의 통치는 어수선하기만 했다. 조금만 참았더라면….

*입다의 분노를 보면서 에브라임의 교만한 모습에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순간을 참지 못한 그의 모습에서 성급함에서 오는 나의 분노를 읽게 된다. 나 역시 충분히 그럴 수 있기에 입다의 분노에 찬 내전은 아쉽기만 하다.

*입다를 묵상하면서 일상의 분노를 다스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 에브라임의 근거 없는 비방에 화가 났겠지만, 내전으로 비화되어 4만 2천 명의 장정을 죽인 것은 학살과 다름없다. 요단 나루터에서 지역 방언을 도구로 일일이 확인하며 처단한 것은 분명 용서받지 못할 학살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잔인한 학살이 이어진다. 순간의 분노를 절제하고 용서하는 마음이 일어날 수 있는 참혹한 비극을 막을 수 있다.

*사사 시대가 혼란의 시대였던 것은 확실하다. 말씀을 알아 가는 데 게을러 말씀을 멀리하고, 자신의 욕망에 붙들려 자기 이익만을 위해 살아가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에브라임의 모습이나 입다의 모습에 오늘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지금 우리도 영적으로뿐 아니라 육적으로도 사사 시대와 다를 바 없다. 적어도 말씀에 관심 없고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데 게으른 시대인 것만은 틀림없기에 무거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더구나 입다의 뒤를 이은 사사들은 반전을 만들지 못했다. 도리어 사사로서의 정체성마저 잃어버릴 정도로 삶이 혼탁해졌다. 여러 부인을 두는 것이나, 부를 축재하여 사치하며 사는 것이나, 이방 결혼을 통해 눈에 보이는 평화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나… 말씀에서 떠난 삶이 어떤 것인지 그 예를 보여 주는 것 같다.

*사사들이 말씀 안에 거하는 삶을 보여 주며 하나님 나라의 평화를 세워 나가야 함에도, 말씀을 떠난 삶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면서 사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 참담하다. 나의 사역의 자리가 이처럼 참담하게 되지 않도록 말씀 안에서 더욱 중심을 지켜야 하겠다!

*말씀에서 떠나 있지만 세상에 구현되는 평화, 겉으로는 평화이지만 이미 썩어 가는 소망 없는 평화여서 괴롭다. 썩은 평화를 누리면서도 삶을 말씀으로 정비하지 않는 지도자들이 안타깝다. 하기야 평화로울 때 자신을 돌아보기가 더 어렵다. 불안불안한 평화가 30여 년 동안 이어지면서 이스라엘은 또다시 우상 숭배의 길로 미끄러질 것이다.

*자기 소견대로 사는 시대다. 분노가 가득한 세상이다. 겉으로는 평화로운데 말씀을 지키는 평화가 아니다. 불안한 평화가 사람들의 영적 무장마저 해제시켜 버린다. 지도자들부터 하나님의 뜻에 노골적으로 불순종하며 분명히 금하신 명령을 어기면서 “불안한 평화”를 이어 간다.

+ 기도제목

*주님, 에브라임의 교만과 입다의 분노가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겼습니다. 매사에 분노로 반응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되새기며 사랑과 용서의 마음을 추구하고 순종하겠습니다.
*주님, 지도자로서 시대적 소명을 잊지 않겠습니다. 본이 되는 삶과 지도력을 추구하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