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하늘로부터 오는 참된 지혜와 땅의 지혜 [야고보서 3:13-18]
 – 2026년 10월 21일
– 2026년 10월 21일 –
선생과 관련된 두 번째 권면으로, 참 지혜에 관한 말씀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참 지혜와 총명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까? 본 단락은 땅의 지혜와 대조되는 위로부터 난 지혜를 설명한다. 독한 시기와 다툼은 땅의 지혜에서 나오며, 땅의 지혜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다. 참 지혜는 위로부터 난 것으로 성결, 화평, 관용, 양순, 긍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다. 참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는 온유함으로 선행을 나타내야 한다.

아무나 선생 되려 하지 말고, 선생이 되려는 자는 말과 혀를 잘 다스려야 한다고 강조한 야고보는 이제 ‘지혜’에 대하여 말한다. 큰 틀에서 보면 선생은 ‘지혜로운 자’여야 한다. 본질과 정체를 꿰뚫어 보는 혜안과 분별력, 그리고 그에 따른 바른 결정은 공동체를 올바른 길로 이끄는 데 꼭 필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야고보가 일깨워 주는, 선생 된 자(그리스도인 된 자)가 반드시 가져야 할 지혜란 무엇인가? 그 지혜가 가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1. 행함으로 드러나야 할 지혜(13절)
야고보는 먼저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고 묻는다.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는 누구일까? 우선 지도자들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사람들도 그렇게 여기고, 스스로도 지혜와 총명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3:1은 말에 대한 경고를 ‘선생 된 우리’에게 먼저 적용했다. 같은 맥락이라면, 지혜와 총명을 가진 자에게 주는 야고보의 교훈은 교회 공동체 지도자들에게 먼저 해당된다. 이어지는 교훈과 가르침을 지도자들이 먼저 유념하여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가르침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스스로 지혜와 총명이 있다고 생각하며 이런저런 말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모든 성도가 들어야 할 말씀이다.

지혜와 총명이 있다고 여기는 지도자를 비롯한 모든 성도에게 야고보가 주는 교훈은 첫째, ‘합당한 행함’이다. 지혜와 총명은 행함, 특히 선행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 경고는 어쩌면 지혜와 총명이 있다고 여기는 자들이 행함의 열매는 없이 말만 만들어 내고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날에도 지혜와 총명이 있다고 여기는 이들이 오히려 문제를 더 일으키고 있지는 않은가? 야고보가 특히 ‘선행’을 강조하는 이유는, 선한 행위로 나타나지 않는 지혜와 총명은 유익이 없고, 본질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지혜와 총명인지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총명이라면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하나님의 일을 이루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행위, 즉 선행으로 자신을 입증한다.

둘째, ‘지혜의 온유함으로’를 주목해야 한다. 지혜와 총명을 가진 자가 공동체 안에서 이를 드러낼 때는 “온유함 또는 겸손함”이 특징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참 지혜와 총명은 교만이나 독단적 행동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행동은 공동체의 분열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행동을 하는 자에게 참 지혜가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다. 야고보는 ‘지혜의 온유함으로’라는 말에서 ‘지혜의’라는 소유격을 사용함으로써 온유함과 겸손함의 기원을 암시한다. 지혜가 온유함을 낳는다.

기억해야 한다. 지혜와 총명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교만과 악행으로 인해 공동체는 언제든지 분열되고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을…



2. 땅의 지혜(14-16절)
“여러분의 마음 속에 지독한 시기심과 경쟁심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고, 진리를 거슬러 속이지 마십시오.(표준새번역_14절)” 세상 사람들이 ‘지혜’라고 부르는 것은 인생을 곤란하고 피곤하게 만든다. 결국 멸망으로 끌고 가는 지혜다. 시기와 경쟁, 자기 자랑, 진리를 거스르는(왜곡하는) 지혜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을 실천하기 위한 지혜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내 안의 욕심과 허영, 명예와 부를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세상은 이런 모습을 지혜롭다고 여긴다. 야고보는 이런 지혜를 “이러한 지혜는 위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땅에 속한 것이고, 육신에 속한 것이고, 악마에게 속한 것입니다.(표준새번역_15절)”라고 정의한다.

땅에 속하고 육신에 속하며 악마(귀신)에게 속한 지혜이기에, “시기심과 경쟁심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악한 행위가 있습니다.(표준새번역_16절)” 시기심과 경쟁심(질투)이 있는 세상에는 “혼란과 온갖 악한 행위”가 있을 뿐이다. 지혜로 여겼던 것들이 세상을 더욱 혼란스럽고 악한 행동이 난무하는 곳으로 이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다 삶을 멸망으로 이끄는 세상적인 지혜를 분별하여 배척해야 하겠다.

그렇다면 이런 세상적 지혜가 가지는 특징은 무엇일까? 어떤 것이 세상적인 지혜일까? 14절과 16절에서 반복되는 단어가 “시기와 다툼”이다.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내 생각과 다른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다툼에 빠지도록 이끄는 것이 바로 세상적인 지혜다.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와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부와 명예와 이익을 구하는 것, 마음에 일어나는 이기적인 욕망을 고상한 표현으로 적절히 포장하는 것, 겉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결국 끝까지 내 욕심을 놓지 않기 위해 불사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이 바로 세상의 지혜다. 이런 세상의 지혜는 결국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을 불러온다(16절). 이기적인 욕심을 실현하기 위해 지식을 이기적으로 사용하면 혼란은 가중되고, 각자의 이기적인 방어가 맞물려 멈추지 않는 혼란이 양산될 뿐이다… 아…

*자신만을 위한 지혜는 (독한) 시기와 다툼(경쟁심)을 가져오고, 그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일어난다.

*지금 한국의 교육이 이런 지혜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듯하여 마음이 답답하다. 아이들이 모인 곳에서 “성적” 때문에 ‘시기와 경쟁심’만 몸에 익히고 나온 사회는, 배려와 관용이 사라진 채 자신의 성공을 위해 타인의 고통을 당연하게 여기는 완고함이 크고 작은 인간관계의 혼란을 만연하게 한다. 자칫 분별력을 놓치면 악한 일의 한가운데 빠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아… 세상은 그래서 혼란스럽다. 늘 다툰다.

*공동체를 지키는 길은 자신의 생각과 방법뿐인 것처럼, 이 나라의 지도자들은 싸우기에 여념이 없다. 아무리 교육 체계를 개혁하고 선진화한들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까? 세상의 지혜는 늘 이렇다… 오늘 최선이며 최고라고 여겼던 지식이 내일은 철저히 무시당하고 버려진다. 이 세상에 평화는 없다.

*세상의 지혜가 가꾸는 삶에는 시기와 경쟁(다툼), 혼란과 악한 행동의 열매가 맺힌다.



3. 하늘로부터 온 지혜(13, 17-18절)
“여러분 가운데서 지혜 있고 이해력이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러한 사람은 착한 행동을 하여 그의 행실을 나타내 보이십시오. 그 일은 지혜에서 오는 온유함으로 행하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표준새번역_13절)” 먼저,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는 착한 행실로 증명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온유함으로 행하는 것”이다. 온유함으로 잘 받들기로 결심하고 행동으로 증명해 나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우선 순결하고, 다음으로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새번역_17절)” 위로부터 난 지혜는 세상에서 난 지혜와 확연히 구별된다. 혼란, 다툼, 악함이 아니라 평화, 친절, 온순, 자비, 선함이 있고, 편견과 위선이 없다.

마치 성령의 열매를 읽는 듯하다. 맞다!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는 성령님과 함께할 때 나타나는 것이다. 이를 마음으로 순종하고 행하면, 주님께서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 화평을 가져오신 것처럼 공동체에도 평화가 찾아온다. 가정과 공동체에 평화를 세우는 지혜가 하늘로부터 온 지혜다. 잠언이 가르치는 것처럼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혜다.

야고보는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요청한다. 바로 “그 지혜로 행하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선행(13절)”이라 번역된 말은 “선한 삶의 양식에 근거하여 행하라”는 가르침이다. 선한 삶의 양식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맺어야 할 “성령의 열매”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삶을 얻었으니, 우리는 성령이 인도해 주심을 따라 살아갑시다. 우리는 잘난 체하거나 서로 노엽게 하거나 질투하거나 하지 않도록 합시다.(새번역_갈 5:22-23, 25-26)”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는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태도이다. 이런 삶의 태도가 평화와 친절과 온순함과 자비로 삶을 채운다. 이런 모습이 “선한 삶의 양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늘의 지혜로 사는 사람은 주님처럼 사람을 세우는 삶을 살게 된다. 나와 함께 부대끼며 사는 이들은 시기와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평화와 친절의 대상이 된다. 경쟁자가 아니라 함께 가야 할 동료가 된다.

*하늘의 지혜가 가꾸는 삶은 나의 온유함에서 오는 평화다!



나는?
-하나님 나라 백성, 그리스도인은 행함으로 지혜를 보이는 사람이다. ‘말’로만 지혜와 총명을 자랑하는 이들을 향해 야고보는 선행으로 보이되, 지혜의 온유함으로 보이라고 한다. 참 지혜는 말로만 자랑하지 않는다. 참 지혜는 환경이 어떠하든 성내지 않고 마음을 지키며, 유약하고 소심해 보일지라도 참된 실체를 볼 수 있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시류에 휩쓸리는 처세술과는 다르다. 혀가 아니라 실천하는 삶으로 지혜를 드러낸다. 무법하고 혼란하고 뒤틀린 삶 속에서 사랑과 자유의 질서를 만들어 낸다. 지혜는 단순한 원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다.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지혜는 우리 마음에 온유함 대신 독한 시기심과 이기적인 경쟁심(다툼)을 심는다. 그런 자들의 지혜 자랑은 진리를 가로막고 조롱하는 속임수이자 자기기만이다. 그런 말은 세우기보다 무너뜨리고, 모으기보다 흩고, 치유하기보다 상처를 낸다. 말로만 그런 지혜를 떠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요란함과 악한 일만 무성할 것이다. 으뜸 되려는 사람들만 많고 섬기는 사람들은 없기 때문이다. 빼앗고 죽이고 넘어뜨려서라도 하나라도 더 차지하고, 일 초라도 더 빨리 오르려는 사람들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승자는 없고 패자만 즐비한 그곳은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성결하다. 요란과 다툼을 일으키기보다 화평하게 한다. 시기하거나 고집 부리는 대신 관용하고 양순하게 대한다. 성령의 마음을 가졌으니 긍휼과 선한 열매를 한아름 맺는다. 속이고 차별하는 세상 지혜와 달리 치우침도 위선도 없이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따뜻하다. 이 지혜가 속에 가득할 때 성도의 입은 사람을 살리고 고치고 세우는 요긴한 도구가 될 것이다.

-따라서 정욕적인 욕심이 지배하는 곳에는 시기와 다툼과 갈등이 있지만, 위로부터 난 하늘 지혜를 따라 자기를 부인하는 곳에는 화평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곳에는 의의 열매가 맺힌다. 행동하는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받듯이, 하늘의 지혜를 실천하는 의인들이 있는 곳에서는 ‘의의 열매’를 거둔다.

-나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과 화평하며 살아가도록 하늘의 지혜를 구해야지… 성령님과 함께하는 삶을 추구해야지…

-나를 알고 나와 관계 맺는 이들이 나와 함께하기에 행복하다고 느끼도록 섬겨야지… 그들은 시기와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평화를 누리는” 복된 존재들임을 잊지 말아야지…

+ 기도제목

*주님, 저를 온유하게 해 주십시오. 이로 인해 제게 맡겨 주신 공동체 안에 평화가 넘치게 해 주십시오.
*주님, 결국 성령님과 함께, 성령의 열매로만 가능함을 깨닫습니다. 하늘 성품, 하늘 태도, 하늘 행함에 늘 순종하겠습니다.
*주님, 하늘 지혜로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