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삼손의 출생과 기묘하신 하나님 [사사기 13:15-25]
 – 2026년 09월 29일
– 2026년 09월 29일 –
마노아는 하나님의 사자에게 음식을 준비하지만, 사자는 이를 거절한다. 마노아는 또 그의 이름을 묻지만, 사자는 ‘어찌하여’ 이름을 묻느냐며 ‘기묘자’라고 대답한다. 여호와의 사자는 마노아가 준비한 음식은 거절하고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라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번제물을 드리자, 불꽃이 제단에서부터 일어나 하늘로 올라가고 여호와의 사자는 그 불꽃에 휩싸여 올라간다. 이를 본 부부는 그제야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깨닫는다. 마노아는 하나님을 보았으니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이지만, 아내는 오히려 담대하게 하나님을 신뢰한다. 그렇게 삼손을 출산하고,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의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임하였다.



1. 기묘자(신비로우신) 하나님
고대인들은 인간이 신의 이름을 알면 그 신을 자유자재로 부르면서 그가 가진 힘을 이용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는 당시 가나안 종교들에서 흔한 사고방식이었다. 블레셋의 40년 압제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고방식을 이방인과 다름없이 변모시켜 놓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사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하나로 특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렸다. 본문에서 여호와의 사자는 하나님의 이름을 “기묘자”라고 표현한다. 이는 실제 이름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속성”을 표현한 것이 틀림없다. “비밀, 신비”라는 뜻을 가진 기묘자(필리)는 “비밀스럽고 놀라운 것”을 뜻한다. 이 단어는 오직 하나님께만 쓰인 것으로,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표현이기도 하다(사 9:6). 결국 하나님의 이름은 알려 주지 않았지만, 인간의 이해로는 결코 납득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지금 일어나는 일을 계획하신 대로 이루어 가시는 분이심을 보여 주신다.

블레셋의 압제를 받는 40년 동안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조차 잊어버린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구원을 준비하시는 신비로운 하나님이시다. 당장 상황을 반전시킬 기적을 행하시거나 인물을 세우시는 것이 아니라, 이제 잉태될 아기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고 감추어져 있어 반응할 수 없지만, 구원의 계획을 착착 진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인간의 이해 능력으로 모두 받아들이기가 벅찬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묘자”이시다. 인간의 상식과 이해를 넘어서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그렇다. 인간의 상식과 이해로는 도무지 수용할 수 없는 구원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이루셨다.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셔서 인류를 구원하신 위대한 역사가 바로 그것이다.

*본문은 마노아의 신앙보다 그의 아내의 신앙을 도드라지게, 자세히 묘사한다. 자신이 구하여 만난 이가 하나님의 천사였음을 깨달은 마노아는 죽음의 공포로 두려워하지만, 정작 그의 아내는 “만약 하나님께서 죽이려 하셨다면 벌써 죽었을 것”이라며 오히려 더욱 담대해진다(23절). 마노아보다 아내가 훨씬 성숙하다.



2. 아이의 이름은 삼손(빛나는!)
삼손이라는 이름의 뜻은 “작은 태양”이다. 직역하면 “빛나는”이라는 의미도 있다. 여호와의 천사가 나타나 수태고지까지 했지만, 이름을 어떻게 지으라고 하지는 않았다. 이름은 마노아가 지었을 것이다. 아마도 제단의 제물에서 불꽃이 일어나고 그 불꽃을 타고 올라간 천사의 모습을 본 경험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 천사가 알려 준 이 아이의 사명, 곧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5절)”는 말씀을 기억하고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 블레셋의 압제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과 소망의 빛을 비추는 사람이 되라는 마음을 담았을 것이다. 이름의 의미가 “작은 태양”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죄의 영향 아래 묶여 있고 이로 인해 블레셋의 압제를 받으면서도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조차 잊어버린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빛이 비추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마노아 부부는 소라 땅에 살았다(2절). 삼손은 구원의 하나님의 이름을 “빛나게” 하도록 “주님께서 내리시는 복을 받으면서 잘 자랐다(새번역 24절).” 그리고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여 그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이다”라는 말은 “휘젓다, 소란케 하다”라는 뜻이다. 삼손이 자라면서 블레셋의 압제에 눌려 굳어진 이스라엘의 마음을 휘젓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도록 소란케 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원은 겉으로 보기에 평탄한(?) 삶을 흔드는 격동에서부터 시작된다. 죄에 무감각해진 마음을 흔들고, 하나님에 대한 무지를 깨뜨려 생동하는 말씀을 집어넣으신다. “여호와의 영”이 움직이기 시작하여 구원의 여명을 비추실 때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다. 그렇다면 편안하다고 여기는 일상에서 마음이 격동되고 삶이 소란해지더라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는 그 “소동”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나아가야 한다.



나는?
-여호와의 사자는 의심과 두려움 속에서 이름을 묻는 마노아에게 자신의 이름을 ‘기묘’라고 밝힌다. 이를 통해 이제부터 일어날 모든 일(이적, 출생, 구원)이 이해하기 어려운 놀라운 사건이 될 것을 예고하신다(15~18절). 그의 무지를 일깨우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기대하게 하신다. 믿음은 모든 것이 다 해명되어야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23절). 신비와 여백을 품고 신뢰 속에서 주의 역사를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이 믿음의 시작이다.

-마노아가 드린 제물을 제단에서 나온 불로 태우는 이적을 통해 자신이 ‘기묘(18절)’임을 증명하시고, 그분이 주신 약속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알게 하신다(19~23절). 이를 통해 흔들리는 그의 믿음을 세워 주신다. 그러니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낙망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이다. 자기 백성을 돌이키고 새롭게 하실 그분의 지혜를 아무도 헤아릴 수 없고, 그분의 결심을 아무도 꺾지 못할 것이다.

-약속대로 아들을 주시고, 하나님의 영으로 그를 움직이셔서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자라게 하신다(24~25절). 이름(작은 태양, 빛나는)처럼, 태어날 아이는 암울한 한 가정과 이스라엘 역사를 새롭게 펼칠 ‘희망의 빛’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으로 이 땅에 오신 ‘참 빛’ 예수님으로 인해, 죄와 흑암과 사망 가운데 살던 우리도 생명의 빛으로 나아와 참 자유와 안식을 누리게 되었다. 이 은혜를 망각한 채 옛 삶을 넘나들기도 하지만, 오늘도 말씀 앞에 이렇게 머리를 조아릴 수 있는 것도 이 자비로운 은총의 빛 때문이다.

-아이에게 ‘복을’ 더하셨다는 것은 이 아이의 인생 주도권이 부모나 세상이 아닌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한 삼손은 부모와 이스라엘의 기대 속에서 성장한다. 우리 자녀들에게도 주의 복과 영이 임하여, 그들을 통해 교회와 세상에 이루실 주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기도해야 하지 않겠는가!

*불임인 아내가 자식을 낳을 것이라고 하였고, 그 아이가 나실인으로 부름받았다고 했는데도 마노아는 그렇게 말한 이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몰라본다. 그만큼 하나님 신앙이 약화된 시대였음을 보여 준다. 마노아는 그를 대접하고 그의 이름을 존귀하게 해 드리고 싶은 좋은 마음으로 그의 정체를 알려고 했으나 좀처럼 깨닫지 못했다. 그만큼 어둡고 어두운 시대였다.

*여호와의 사자가 제단 불꽃에 휩싸여 올라가고 다시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나타나지 않자, 비로소 마노아는 그가 여호와의 사자였음을 깨닫는다. 동시에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기드온 시대가 떠오른다. 하지만 마노아의 아내는 침착한 말로 남편을 안정시킨다. 죽이실 것이었다면 번제와 소제도 받지 않으셨을 것이며, 이 모든 일을 보이지도 않으셨을 것이고, 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한다. 마노아의 아내는 어둠의 시대에 ‘작은 태양’ 삼손을 낳을 만한 믿음의 여인이었지 싶다.

+ 기도제목

*주님,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기묘한 부분까지 주님의 뜻 아래 섭리되고 있음을 믿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직면할 때 더욱 주님만 의지하겠습니다.
*주님, 마노아의 아내의 신앙이 탁월합니다. 저에게도 슬기로운 아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일어나는 소란을 기다립니다. 지금 더온누리공동체가 이 소란을 통해 다시 복음으로 회복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방주로 서 있겠습니다. 여호와께 더욱 돌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