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베냐민 지파의 패배와 이스라엘의 비극 [사사기 20:29-48]
 – 2026년 10월 12일
– 2026년 10월 12일 –
베냐민 지파는 처음에는 잔뜩 긴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두 번의 전투를 거치며 긴장은 자신감으로, 자신감은 교만으로 비약했을 것이다. 그래서 세 번째 전투에 임하면서 이스라엘 군사들을 어차피 오합지졸로 여기고 자신들의 힘을 과신하기에 이른다. 결국 그날에만 베냐민 사람 25,100명(35절, 46절에는 어림수로 25,000명)이 죽었고, 이스라엘은 베냐민 지파의 “온 성읍과 가축과 만나는 자를 다 칼날로 치고 닥치는 성읍은 모두 불살랐다(48절)”. 이스라엘 연합군은 앞선 두 전투에서 4만 명, 세 번째 전투에서 삼십 명가량(31, 39절)을 잃은 끝에 베냐민 지파 용사 25,000명을 죽이고 그들의 성읍들을 모조리 불살랐다. 베냐민 지파에게나 이스라엘 연합군에게나 큰 상처를 남긴 전쟁이 되어 버렸다.

*같은 동족끼리의 싸움인데 이스라엘 연합군의 전쟁 방식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베냐민을 치신 분은 하나님이시지만(35절), 그 심판의 도구였던 이스라엘의 전쟁 방식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다 태운 격이다. 승리했으나 승리를 누리지 못한 전쟁이 되었다. 가장 막내 지파는 거의 괴멸되다시피 했고, 나머지 지파들도 상당한 내상을 입었다. 역시 전쟁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특히나 내전은 더더욱 그렇다.

*베냐민 지파는 전쟁의 최대 피해를 자초했다. 자신들 지파 안에서 일어난 악행을 마땅히 책임지고 해결했어야 했다. 악행을 척결하여 정의를 세웠어야 했다. 하지만 이를 정치화하여 전쟁으로 치닫게 만들었다. 심은 대로 거둔 것이다. 어떤 명분이든, 어떤 정치적 이유이든 죄와 악을 두둔한 대가는 반드시 치를 수밖에 없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했다. 베냐민은 자신들의 잘남과 능력, 두 번의 승리라는 경험으로 충분히 버틸 수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문제를 더욱 키워 버렸다. 그야말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다가 큰코다쳤다”. 나도 이를 잘 기억해야겠다.

*이스라엘 지파들도 잘한 것은 아니다. 레위인의 거짓 증언에 놀아났다. 좀 더 신중하게 문제에 접근했어야 했다. 분별없이 동족을 서둘러 응징했고, 또한 지나치게 응징했다. 과했다. 과해도 너무 과했다. 이런 치열한 전쟁 끝에 서로에게 남은 것은 슬픔과 고통뿐이었다. 어느 편에서도 시원함을 느낄 수 없었다.

*어느 누구도 승리하지 못한 전쟁이 막을 내렸다…



나는?
-‘가나안화’되어 버린 이스라엘을 심판하신다. 모든 이스라엘 지파가 패자였다. 하나님은 가나안 사람인지 하나님의 백성인지 알 수 없게 살아온 이스라엘 백성과, 고의적인 반항으로 회개할 줄 모르는 베냐민 지파에게 채찍을 드신다. 가나안 족속을 멸하는 방식으로 자기 백성을 심판하신다. 물론 심판 중에도 자비를 잃지 않으신다(47절). 앞선 두 사건(미가와 단 지파 이야기 17~18장, 레위인과 기브아 이야기 19~21장)이 교훈하듯이, 하나님은 언약이 요구하는 대로 다른 신을 곁에 두지 않고, 이웃에게 인자와 공의를 행하며, 약자와 나그네에게 관대할 때 비로소 자기 백성이라 인정해 주실 것이다.

-자만이 ‘화’를 불렀다. 두 번의 대승으로 기세등등한 베냐민 자손은 퇴각하는 상대를 보며 승기를 잡은 줄 알고 추격한다. 하지만 상대가 파 놓은 함정에 빠져 몰살당하고 존립 위기에 처한다(31~36절). 두 번의 승리가 그들에게는 독이 되었다. 이스라엘을 너무 얕잡아 본 것이다. 유인하는 줄도 모르고 거침없이 성 밖으로 나가 추격했고 무모하게 성을 비워 두었다. 이것은 ‘화'(악, 34, 41절)를 통해 베냐민 지파의 ‘악'(12~13절)을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징벌이다. 본문은 같은 단어로 베냐민이 두둔한 ‘악’과 그들에게 닥친 ‘화’를 함께 말한다. 내 안의 악을 제거하지 않는 한 심판의 복병을 피할 안전지대는 없다.

-오만하게 전면전을 펼치다가 성을 이용해 싸우는 베냐민에게 두 차례 패했던 이스라엘 연합군은, 이번에는 매복과 유인을 함께 쓰는 양동 작전을 펴서 승리한다. 수적 우세만 믿고 섣불리 공격하던 이전과 달리, 적군의 심리(자만)를 이용하여 적을 끌어내는 전술이다. 교만이 패배를 불러왔다면,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며 낮아진 뒤(26절) 얻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주리라”(28절)는 약속이 승리를 불러왔다.

-그럼에도 ‘여호와께서 베냐민을 치시매(35절)’라는 개입이 없었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만큼 싸움은 치열하고 맹렬했다(34절). 승리는 전술의 결과이기 전에 하나님의 손에서 왔다. 그런데 승리한 이스라엘도 패배한 베냐민 자손도 이 전쟁의 의미(심판)를 알지 못한다. 한결같은 순종과 충성이 가나안에서의 승리와 안전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과, 언약에 충실할 때 언약의 땅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더 비극적인 것은 그 이후다. 하나님 앞에 낮아져 승리를 얻은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지도 않으셨는데 거의 전멸 수준으로 베냐민의 성읍과 가축과 사람을 쳤다(48절). 이처럼 사사 시대는 가장 선한 일을 하는 와중에도 악한 짓이 사라지지 않던 비극의 시대였다.

-하나님은 심판하시되 진멸하지 않으신다. 이만 육천칠백 명 가운데 살아남은 자들은 고작 육백 명,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넉 달 동안 숨은 자들뿐이었다(47절). 그마저도 베냐민 지파 자체가 끊어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남겨 두신 수였다. 심판 중에도 살아남았다면, 자기 죄로 인해 당한 곤경을 불평하기보다 살려 주신 주권자의 섭리를 묻고 회개해야 했다.

-이스라엘에게 두 번의 패배를 주신 분도 여호와시고, 베냐민에게 최후의 패배를 안기신 분도 여호와시다. 둘 모두 하나님께 심판을 당했다. 레위인의 악행, 그의 말에 무분별하게 동조하여 동족을 향해 과도한 응징을 시도한 이스라엘, 자기 지파의 죄악에 눈감고 전투력만 믿었던 베냐민, 모두가 심판의 대상이다. 사사 시대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었다.

+ 기도제목

*주님, 이런 전쟁이 우리가 사는 한반도에서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주님, 호미로 막을 수 있을 때 죄에 대하여 단호하게 직면하겠습니다.
*주님, 제 안에 제거되어야 할 ‘가나안’은 무엇인지 깨닫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