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시험(temptation)에 속지 말라 [야고보서 1:12-18]
 – 2026년 10월 16일
– 2026년 10월 16일 –
야고보서는 신약의 지혜서다. 잠언과 비슷하게 보편적인 지혜를 언급한다.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난 이들의 곤고함을 하늘의 지혜로 권고한다. ‘시험에 대하여 온전한 인내를 이루라’는 권면은 마치 주님의 격려를 듣는 듯 하다. 주님께서도 산상수훈을 시작하는 팔복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 5:10)”

또, 야고보 뿐 아니라 베드로도 주님의 이 말씀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라(벧전 3:14)” 야고보나 베드로나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그들의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동일한 말씀으로 “여러 가지 시험”속에 있는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 변화를 낳고 변화된 이들이 또 다른 이들을 말씀으로 권면하고 있다. 말씀이 사람을 변화 시키고, 세상을 변화 시킨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을 듣는 모든 이들이 이렇게 변화 된 것은 아니었다.



1. 오해….(12-15절)
야고보서가 기록될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은 유례없는 가뭄과 기근이 지속되고 있었다. 오죽하면 바울도 기근과 박해의 위험에 처해 있는 예루살렘교회를 돕기 위해 복음이 전해져 세워진 교회들마다 구제 헌금을 요청하고 있었다.

야고보서의 수신자들은 여러 주장들이 있지만, 예루살렘의 박해를 피해 팔레스타인 주변으로 흩어진 유대인그리스도인들이었다. 그들의 삶의 곤고함, 궁핍함은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들은 가뭄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치열한 몸부림이 계속 되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부한 자들에게 대한 부러움과 부자가 되려는 갈망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9-11절의 부에 대한 자랑을 하지 말라는 권면은 이런 배경하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야고보는 “시험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의 참됨이 입증되어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약속된 것입니다.(새번역_12절)”이라고 먼저 격려하고 본문을 이어간다.

*시험은 생명의 면류관을 주기 위해 허락된 것인데, ‘여러 가지 시험’에 처해 있는 이들 가운데 ‘우리를 죽이려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헛된 마음을 품는 이들이 있었다.

*오죽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한편으로 당시 세상이 섬기던 우상들은 하나같이 엄격하고 무서운 신으로 여기고 이런 신들의 노여움을 푸는 것을 신앙행위임을 강조하였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하나님도 노여움에 시험을 주는 것이라는 오해를 쉽게 할 수 있었다. “시험을 당할 때에, 아무도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당하고 있다” 하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않으시고, 또 시험하지도 않으십니다.(새번역_13절)”

*가뭄과 기근이라는 자연현상에다, 당시 종교문화의 인식이 더해져 “하나님도 세상 신과 다름 없는 “무서운” 하나님으로 여긴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의 발현이 가뭄과 기근이며, 여기에 “여러 가지 시험”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나라도 이런 유혹이 없을까….얼마나 힘들었으면….

*야고보는 이런 왜곡된 하나님에 대한 시선을 먼저 바로 잡는다. 외부적인 삶의 환경이 악화 되는 상황이 지속되면 마음에서부터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나올 수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바른 지식이 없어서라고 여긴 것이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르친다. “하나님은 악에게도, 악으로 시험받거나 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시험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성도가 시험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이 시험을 당하는 것은 각각 자기의 욕심에 이끌려서, 꾐에 빠지기 때문입니다.(새번역_14절)”라고 말한다. “욕심”은 분수에 넘치게 무엇을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다. 어떤 학자들은 욕심을 일종의 “자기애(自己愛)”라고 했다. 자기 욕심대로 되지 않음을 하나님께서 시험 주신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야고보의 권면은 더 직접적이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새번역_15절)” 욕심을 분별하지 못하고 죄에 이르면 죄로 인해 죽는다는 것이다.



2. 속지 말라(16-18절)
자기애, 욕심에 이끌리면 하나님을 얼마든지 오해하고 그것 때문에 시험(temptation_유혹)에 빠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먼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 ”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에서, 곧 빛들을 지으신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옵니다. 아버지께는 이러저러한 변함이나 회전하는 그림자가 없으십니다.(새번역_17절)” 이 말씀을 믿어야 한다. 예레미야는 절망적인 예루살렘의 패망을 선포하면서 그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이렇게 소개한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하나님은 평안과 미래, 희망의 하나님이시다. 이것을 오고 오는 세대에 펼치시려고 분명한 증거를 보여 주셨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죄로 인해 영원한 형벌의 저주 아래 있는 인생들을 구원하시려 오신 예수님은 “누구든지 그를 (구원자로) 믿기만 하면” 사망, 저주, 고통이 아닌 생명, 평안의 자리로 옮겨 주신다. 지금 야고보의 편지를 받고 있는 성도들이 증거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은 성도들이 살아가는 지역, 환경, 상황등에 의해 누릴 때와 누리지 못하는 때가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야고보는 분명히 말한다. “그는 뜻을 정하셔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아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우리를 피조물 가운데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새번역_18절)”

*뜻을 정하셔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의와 평강과 미래와 희망을 주신 것이다.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구원하여 주셨다. 그런데 이 구원의 은혜가 어찌 자연현상이나, 사회적인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을까?



나는?
-믿음은 “견디는 것”이다. 또한 믿음은 삶과 나뉠 수 없어서 믿음이 곧 삶이고, 삶이 곧 믿음이다. 삶이 믿음이라 할 때 그 삶은 신실한 삶, 견디는 삶을 뜻한다. 믿음이 견디는 믿음인 것처럼 인생도 견디는 인생이다. 교회를 오래 다니다 보면 교회도 역시 견디는 교회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사역을 맡든,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견디는 힘’이다. 일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일 자체로도 지치고 때로는 사람 때문에 지치기도 한다. 그래서 교회는 그 자체로 견디는 교회다. 견디는 믿음이 이기는 믿음이 된다(약 1:12).

-또한 믿음은 시험받는 일이다. 시험이 견딤으로 통과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그 면류관을 준비해 두신다. 그런데 시험이 다 하나님께로 난 것은 아니다. 더 많은 시험이 ‘자기/나’로부터 온다. 나로부터 난 시험은 욕심의 시험이다. 욕심은 함정이고 수렁이다.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렵다. 욕심의 수렁이다. 자기가 수렁을 만들고 그 수렁에 자기가 빠진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왜 나를 시험하느냐고 따져 묻는다. 하나님의 시험은 수렁이 아니다. 샘물과 같아서 견디는 자들을 살아나게 하는 시험이다. 욕심의 시험은 견딜 수가 없다. 견딜 힘이 없다. 견뎌도 면류관이 없다. 외려 죄를 낳고 결국 사망에 이른다.

-끝까지 시험을 참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이라는 복이 주어진다. 그것은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으로서(4절) 주와 교제하며 영생을 누리는 상태를 의미한다. 모든 시험은 사랑의 시험이다. 시험을 참게 하는 힘은 사랑에서 나오며, 동시에 시험을 참았을 때 형성되는 성품이 사랑이다. 끝까지 인내하는 믿음과 소망은 하나님 이외에 모든 것을 상대화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진심으로 사랑할 때 가능하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시험에서 승리하는 비결이라면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욕심이 시험에 빠지게 하는 원인이다. 그는 심지어 하나님이 악에게 시험을 받아 자신을 유혹한 것이라고 핑계하겠지만, 실상은 자기 욕심의 노예가 되어 죄를 짓고,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여 결국 제 발로 사망에 이르는 길을 간 것이다. 자기 속을 들여다보지 않고 밖에서 이유와 핑계거리를 찾으려는 시도는 자기 기만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시험을 만날 때 찾아가 지혜를 구할 분이다. 그에게 핑계할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을 뿐 아니라 자녀들에게 하늘에 속한 은사와 선물을 지금도 공급하고 계신다. 어둠에서 빛을 이끌어주시는 분이다. 상황과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신실하게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그 은혜와 보살핌으로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첫 열매가 되게 하신 분이 어찌 우리를 유혹하여 악에 빠지게 하겠는가?

-시험(test)은 내게 주신 믿음으로 인내하며 이기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욕심이 반응하는 시험(temptation)은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temptation)을 이기신 주님의 방법으로 이겨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이었다(마 4:1-11). 말씀으로 시험(temptation)을 이길 수 있다.

-어려울수록 하나님을 오해하며 스스로 시험에 든다. 지나고 보면 나의 욕심 때문에 일어난 서운함의 마음이었다. 그러니 시험(temptation)은 깨어 있어 분별하여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

-요즘 나의 욕심과 하나님의 마음 사이에 갈등이 내 마음에 있다. 여러 상황 속에서 나의 욕심대로 되어지지 않음에서 오는 서운함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오늘 말씀이 내게 은혜가 된다.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에서, 곧 빛들을 지으신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옵니다. 아버지께는 이러저러한 변함이나 회전하는 그림자가 없으십니다.(새번역_17절)”

-온갖 좋은, 완전한 선물을 주시는 빛의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그 빛을 비추어 주실 것을 갈망한다. 변함없는 아버지의 사랑을 믿기에 눈 앞으로 다가온 일들이 어두움이 아니라 빛 안에 있음을 믿음으로 선포한다.

-과정과 순간에 따라 마음이 좌불안석하는 나의 연약하기 그지 없는 마음이 주님의 변함없는 빛 안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은혜가 된다. 감사가 된다.

-앞으로 나에게 올 시험이 temptation(유혹)이 되지 않고 검증(test)이 되도록 “욕심”을 버려야 한다. “자기애”를 버려야 한다. 쑤욱 쑤욱 올라오는 욕심과 자기애의 싹들을 늘 벌초 해야 한다. 그래야 한다.

+ 기도제목

*주님, 욕심이, 자기애가 문제입니다. 도와 주십시오. 오늘도 싹둑 잘라낼 수 있는 용기를 주십시오.
*주님, 말씀으로 이 용기를 발휘할 수 있게 깊이와 넓이를 가득하게 깨닫게 해 주십시오.
*주님, 주님의 밝은 빛 안에 거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빛 가운데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