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눅 11:1-13]
 – 2025년 03월 12일
– 2025년 03월 12일 –
눅 11:1-13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기도를 가르쳐달라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주의 기도(1~4절)를 알려주신다. 기도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신뢰하는 데서 출발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버지로서 확실히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한밤중에 간청하러 온 친구의 비유와 끈질기게 기도하라는 말씀으로 강조하신다. 아버지로서 자녀의 요청에 응답하고 가장 좋은 선물을 주시는 분으로 하나님을 소개한다.
    
기도를 주제로 한 중요한 본문이다. 마태는 좀 더 긴 형태를 기록했지만, ‘누가’는 마태가 기록하지 않은 ‘비유’가 더해지면서 ‘주기도’의 의미가 풍성해진다. 당시 문화 코드 중 하나였던 “명예와 수치”가 비유를 푸는 열쇠로 작동한다. 기도하는 제자들과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 각자가 수치를 당하지 않고 명예를 위하여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제자들은 당당히 기도의 자리로 나갈 수 있고 아버지 하나님은 기꺼이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다.
    
    
    
1. 주의 기도(1~4절)
본문은 예수님이 한 곳에서 기도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1절). 기도는 예수님의 습관이고 생활이었다. 예수님이 기도를 마치자, 제자 중 한 명이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준 것과 같이 자신들에게도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한다(1절). 요한의 제자들이 배운 기도와 구별되는 기도를 부탁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으로 기도를 시작하도록 가르치신다. 제자들은 기도하는 대상인 하나님이 누구신지, 즉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나님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것은 계시에 의한 은혜와 선물이다(10:22). 아버지의 호칭은 하나님과 기도하는 제자들의 관계를 설정한다. 아버지는 자녀의 필요를 공급하여 주므로 제자들은 그들의 필요를 알고 도와줄 준비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해야 한다.
    
기도의 내용은 첫째,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도록(출 20:7; 신 5:11) 기도해야 한다. 이름은 그 사람의 본질을 가리키는 역할을 한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기를 바라는 기도는 구약에 근거한다(레 11:44; 21:8; 22:32; 왕상 9:7; 대하 7:20; 시 99:1~3; 사 6:3; 29:23; 겔 36:23). 하나님의 이름이 자기 백성에 의해 더럽혀졌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이름을 다시 거룩하게 하실 것을 예고하셨다. 이스라엘은 민족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다. 따라서 구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기를 갈망하는 것은 모욕을 당하고 오용되는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고 하나님이 통치하심이 드러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에스겔 36:16~32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돼야 하는 이유를 예고했다.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다. 하늘의 천사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양했던 것처럼(사 6:3), 기도자는 땅에서 하늘의 합창에 참여해 세상의 어떤 존재와도 “구별되는”(거룩하신) 하나님의 유일하심과 전능하심을 찬양해야 한다. 기도하면서도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그의 이름을 욕되게 만드는 행위이므로 기도하는 순간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간으로 생각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만이 사탄의 세력을 무너뜨릴 수 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통해 실현되기 시작했으므로 예수님의 통치가 확장되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 확장의 도구이므로 이 기도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그의 능력을 믿겠다는 결심이다.
    
셋째,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3절). 염려는 제자들의 마음에 심긴 숨통을 가로막아버리기에 먹고사는 문제를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해야 한다(9:1~6; 10:1~11). 또한 일용할 양식으로 만족하기로 결심해야 한다.
    
넷째, 죄 용서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빵이 있어야 생명이 살듯이, 용서가 있어야 생명이 산다. 그러나 신자는 용서를 받아야 할 대상일 뿐 아니라 용서해야 할 존재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용서를 전달해야 할 매체다. 이웃을 용서하는 신자는 하늘 아버지를 향해 자신의 죄를 고하면서 자비를 구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긍휼이 땅에서 순환된다.
    
다섯째, 시험에 들지 않게 해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자신의 약함과 한계를 인정하면서 인생의 위기에서 구해달라는 기도다. 시험에 걸려들지 않게 기도하고 위기 상황에서는 구출 받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2. 간청하는 친구의 비유(5~10절)
밤중에 찾아온 친구를 예로 비유를 전개하신다. 친구가 예고 없이 밤중에 찾아와서 떡 세 덩이를 빌려달라고 부탁한다. 그의 친구가 여행 중에 급히 찾아왔는데 제공할 음식이 없어서다(6절). 당시 서민들은 한 지붕 아래 한 방에서 온 가족이 잠을 잤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부탁하는 친구를 향해 문이 닫혔고 아이들이 자고 있으니, 떡을 줄 수 없다고 돌려보낼 사람은 없다(7절).
    
친구는 환대해야 하는 의무를 나누는 관계다. 한밤에 찾아와 어려운 부탁을 할 수밖에 없는 친구의 처지를 외면하는 것은 친구 관계나 환대의 문화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친구가 아니라 손님이라고 해도 그냥 돌려보내기 어렵다. 당시 유대의 농촌 가옥은 서로 가까이 붙어 있어서 손님을 환대하지 않은 사실이 온 동네에 알려질 수도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친구 관계 때문이 아니라 예의 없이 문을 두드리고 막무가내로 요구하는 태도 따라서 떡을 줄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신다(8절). “간청함(아나이데이아)”은 막무가내, 몰염치, 무례함의 뜻도 함께 있다. 비유에 등장하는 집주인은 성가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떡을 줘야 한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간청할 것을 가르치신다. 일어나기 귀찮아하는 집주인이 어쩔 수 없이 요구를 들어준 것과 달리 하나님은 한밤중에 간청하는 기도를 귀찮게 여기기보다 환영하고 기뻐하는 아버지로서 응답하신다. 하나님은 거룩한 이름의 명예를 위해 자녀의 요청에 귀를 기울이고 응답하신다.
    
    
    
3.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9~13절)
예수님은 비유를 근거로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과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소개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려야 한다(9절). 하나님은 주시고 찾게 하시고 열어주실 것이다. 10절은 9절을 반복하면서 하나님의 응답을 강조한다. 구하는 자마다 받을 것이며, 찾는 자는 찾아낼 것이며,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이다.
    
예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가정의 일상을 예로 설명하신다(11~13절). 아버지라면 아들이 생선을 달라는데 생선과 닮은 뱀을 줄 리 없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해를 끼치고 생명을 죽일 수도 있는 뱀이나 전갈을 주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간절히 기도하는 자녀에게 나쁜 것을 주시거나 무관심으로 대하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하여도 좋은 것을 자녀에게 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거룩하신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좋은 것(선물)은 바로 “성령”이다.
    
    
    
나는?
-기도를 가르쳐달라는 제자들의 요구에 참으로 파격적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시작하는 기도를 가르쳐주신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맏아들”로 부르셨던 하나님이 이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새 이스라엘)을 하나님 나라의 축복에 참여하는 자녀로 불러주신 것이다. 제자들은 그 나라에서 예수님의 통치에 복종하고,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손길에 의지하며, 먼저 용서받은 자로서 남을 용서하고, 주의 도움으로 시험을 이겨낼 수 있도록 구하는 자가 되라고 하신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요청한 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삶에서 기도가 가지는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늘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은 제자들에게 자연스럽게 각인되었고 자신들도 기도에 대한 갈망을 가지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래서 요한의 제자들처럼 기도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구하기 이르렀다. 기도는 단순한 종교적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가능하게 하는 필수적인 요소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기도의 모범(눅 3:21; 5:16; 6:12; 9:18, 28)은 제자들뿐 아니라 나와 우리 공동체가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기에 충분하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공동체적이고 하나님 중심의 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친밀함과 경외함을 동시에 고백하게 하고,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고 구하게 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영광이 드러나기를 간구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소서는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 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다. 일용한 양식을 주실 것을 기도하는 것과 용서를 구하는 기도는 기도가 개인의 차원을 넘어 공동체의 필요와 염려를 나누는 것임을 깨닫게 하신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는 가장 개인적이기도 하지만, 가장 공동체적인 기도이다.
    
-간청하여 끈기 있게 기도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응답받는 기도를 가르쳐 주신다. 이렇게 간청하여 끈기 있게 기도하라고 하시는 이유로 밤중에 찾아온 벗이 먹을 것이 없으니, 떡을 달라고 하면, 설령 친구 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수치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도와주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인 제자들이 간청하는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겠느냐고 하신다.
    
-하지만, 이 끈기 있는 기도는 고집을 부려서 내 뜻을 관철하는 기도가 아니다. 주님의 권능을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기도이자, 실제적인 필요를 주께서 책임져 주실 것을 믿고 드리는 기도다. 눈앞에 전개되는 상황이 내 기도와 다를지라도 주의 나라를 위해 포기하지 않는 열정의 기도를 의미한다.
    
-밤중에 친구를 깨워 떡을 요청하는 이야기는 기도할 때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단순히 끈질김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뢰하고 기도해야 함을 보여준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하신다. 그러면 받고 찾고 열릴 것이라고 믿으면서 구하라고 하신다. 그것은 기도의 열정 때문이 아니라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고 그분에게는 그 기도를 실현하실 능력뿐만 아니라 기도하는 우리를 향한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잘 알지 못하고 구해도 그분은 우리에게 필요하고 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아시기에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
    
-응답해 주실 것을 확신하고 기도하라고 하신다. 흠이 있고 능력의 한계가 있는 땅의 아버지들도 자식들에게 좋은 것으로 주려고 하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성령을 아낌없이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신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가장 좋은 것은 “성령님” 이시다. 성령님은 우리가 평생토록 주님과 온전한 교제 가운데 살게 하신다.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가장 큰 기도 응답이다.
    
-성령님을 주실 수 있다면 주실 수 없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뱀을 구하고 전갈을 구하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주시지 않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는 것이다.
    
    
    
*주님, 주님께서 기도를 중요하게 여기셨듯 제 삶의 대부분을 기도하는 삶이기를 추구하겠습니다.
*주님, 하나님과 깊은 교제가 우선순위이기에 기도를 통해 이 가치를 지켜나가겠습니다.
*주님, 늘 주님께 담대히, 간절히, 신뢰함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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