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라반과 평화조약을 맺다 [창 31:36-55]
 – 2026년 04월 28일
– 2026년 04월 28일 –
생명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 라헬은 오래도록 임신하지 못한다. 아들을 무려 넷이나 낳은 언니 레아에 대한 질투심에 사로잡혀 야곱과 언쟁한다. 야곱과 라헬이 결혼식에서 사랑하는 모습 이후 처음 등장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부부싸움이었다. 라헬은 야곱에게 자신도 자식을 낳게 하라며 만일 자식을 낳지 못하면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후 야곱의 두 아내 사이에서는 본격적인 출산 경쟁이 시작된다. 라헬은 자신이 아기를 출산하지 못하자 여종 빌하를 남편에게 주어 두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을 얻게 된다. 마침내 라헬도 요셉을 낳음으로 두 자매의 출산 경쟁은 마무리된다. 이 과정에서 야곱은 열두 명의 자녀를 얻게 된다.

1. 라헬의 여종 빌하의 출산(1~8절)29장에서 아들을 넷이나 낳은 레아와 대조적으로 라헬은 야곱의 사랑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그녀의 태는 열지 않으셔서(29:31) 자녀를 출산하지 못했다. 라헬은 아들을 넷이나 낳은 언니 레아를 질투한다. 라헬은 남편 야곱의 사랑을 듬뿍 받았지만, 실상 행복하지 않았다. 급기야는 남편에게 아들을 낳게 하라고 요구한다. 낳게 하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협박까지 한다. 이런 라헬에게 야곱은 아이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겠냐며 반박한다. 야곱은 자녀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라고 분명히 알고 있었으나 딱 거기에서 멈춘다. 그의 아버지 이삭은 이 사실을 알고 리브가를 위해 무려 20년을 기도했었다. 그런데 야곱은 아브라함처럼 불임의 아내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다. 둘 사이의 갈등은 깊어져만 갔다. 이때 라헬이 생각한 방법은 예전에 사라가 한 것처럼 자기 여종 빌하를 통해 대신 아들을 낳게 하는 것이었다. ‘무릎에 둔다’라는 뜻은 그 아이를 양자로 받아들여 자신이 그 아이의 법적 보호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라헬은 양자를 얻어서라도 언니와의 경쟁에서 이기고 싶었다. 라헬은 이 결심을 곧바로 결행한다. 4절에서 라헬은 자기의 여종 빌하를 남편에게 아내로 주었고 야곱은 그녀에게 들어갔다. 그 결과 빌하는 아들을 낳았는데, 첫째 아들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편에 서서 변호해 주셨다는 의미로 ‘단’이라고 짓고, 둘째 아들은 언니와의 경쟁에서 이겼다면서 ‘납달리’로 짓는다. 이러한 모습에서 라헬이 모든 면에서 언니를 이기고 싶어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모습은 예전에 형의 장자권을 갖고 싶어 에서와 갈등하던 야곱의 모습과 닮았다. 그로 인해 가정에 갈등이 불거지고, 결국 집에서 도망 나오게 된 것처럼, 야곱의 가정에서 그런 불안이 재현되고 있다.

2. 레아의 여종 실바의 출산(9~13절)9절도 레아가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레아는 자신의 출산이 멈춘 것을 보았다. 둘 다 불임의 상태라는 것을 안 것이다. 자신의 출산이 멈춘 것을 알게 된 레아는 라헬이 했던 방법과 동일하게 자신의 여종 실바를 야곱에게 아내로 주어, 실바를 통해서도 ‘복되다’, ‘행운이다’라는 의미의 아들 ‘갓’과 ‘행복’이라는 의미의 아들 ‘아셀’을 얻게 된다. 레아는 실바를 통해 얻은 아들들을 하나님께서 여분으로 주신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기뻐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라헬뿐 아니라 레아 또한 동생과 경쟁하는 모습은 레아 또한 완전한 평안의 상태가 아님을 짐작하게 한다. 두 자매의 경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아들들을 많아지게 하셨다.

3. 레아의 출산(14~21절)이 단락은 레아와 라헬의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난다. 그동안 여종들을 통해 대리적으로 경쟁했다면 이제는 레아와 라헬이 직접적으로 충돌한다. 발단은 레아의 장남 르우벤이 추수하러 들로 나갔다가 우연히 합환채를 발견하여 어머니에게 가져오면서 시작되었다. 합환채는 당시에 성욕을 자극하며 임신을 돕는 역할을 하는 식물로 알려져 있었다. 르우벤은 출산이 멈춘 어머니를 위해 챙겨 온 것으로 보인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라헬은 레아를 찾아와 자신에게 합환채를 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레아는 겉으로 정중하게 보이지만, 단호하게 감정을 표현한다. 레아는 남편뿐 아니라 아기를 낳을 수 있게 하는 합환채까지 가져가려는 라헬에게 화를 낸다. 하지만 라헬은 화를 내는 레아에게 야곱과 동침할 기회를 주겠다며 거래를 제안한다. 매일 보는 남편보다 임신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합환채가 더 간절했기 때문이다. 레아는 라헬의 제안을 받아들이는데, 합환채보다 남편과 함께하는 기회가 더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날 밤 야곱을 자신의 처소로 불러들여 그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한편, 레아는 합환채가 임신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합환채를 양보한 레아에게 아들 잇사갈과 스불론, 딸 디나를 주시고, 합환채를 가져간 라헬에게는 아무 자식도 주지 않으신다. 태를 여닫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잘 드러낸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라헬의 모든 꾀를 무용지물로 만드셨다.

4. 라헬의 출산(22~24절)남편을 의지하고 자신의 지혜를 의지했던 라헬이 드디어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즉,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녀의 소리를 들으셨고, 마침내 아들을 주셨다. ‘부르짖었다’라는 단어 뒤에 ‘하나님이 기억하셨다’와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라는 단어들이 등장하는 것은 라헬이 하나님께 기도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태의 문을 열어주셨다. 하나님께서 태의 문을 열 수도, 닫을 수도 있음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아들을 얻은 라헬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부끄러움을 씻으셨다고 감사하며, 여호와께 아들을 더 달라는 의미로 그의 이름을 ‘요셉’으로 짓는다. 이제 라헬은 자식을 주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야곱의 결혼생활은 라반의 속임수로 시작하여 레아에 대한 박대와 라헬의 질투와 갈등으로 평탄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라반의 속임수로 야기된 불행을 불행으로 두지 않으시고 많은 자녀(12명)를 주시는 계기로 삼으신다. 인간은 악하게 행동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것이다. 나는?-레아와 라헬은 경쟁하듯 아이를 낳고 남편 쟁탈전을 벌인다. 레아는 아들이 있고 남편의 사랑은 없었으며, 라헬은 남편의 사랑은 있지만, 자식이 없었다. 둘은 빌하와 실바라는 여종들을 동원하고 합환채(최음제)까지 사용하여 자식 낳기 경쟁에 열을 올리지만, 정작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얻지 못한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야곱에게 약속하신 “많은 자식을 주시겠다”라는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었다. -남편의 사랑은 있지만 자식이 없는 라헬에게는 미래가 없었다. 그는 레아의 합환채를 넘겨받아 그 힘으로 자식을 낳아보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그 사이에 레아는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더 얻는다. 자식을 낳는 일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야곱의 말을 라헬은 새겨듣지 않았다. -평생 자기 힘과 지혜로만 원하던 것을 얻어 내던 야곱의 입에서 하나님만이 자식을 주실 수 있다는 고백이 흘러나온다. 라헬마저도 그 사실을 인정했을 때 하나님은 그녀의 소원을 들으시고 태를 여셨다. 요셉을 주셔서 아이 못 낳은 수치를 라헬에게서 거두신다. *라헬은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야곱은 레아를 미워했다. 이유는 라반의 사기행각과 관련 있다. 라반에 대한 분풀이 대상이 레아였다. 레아의 처지가 기구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처지를 잘 아셨다. 레아를 불쌍히 여기셨다. 이와 관련하여 야곱에게 그 원인을 둔다. 하나님께서는 결혼까지 한 이상 레아에 대한 책임을 라반에게 묻지 않으셨다. 야곱의 행동을 기억하셨다. *한편, 야곱은 레아를 미워했음에도(사랑받지 못함_29:31) 육체적인 관계는 맺었다. 때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레아가 네 명의 아들을 낳은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늘어날수록 레아가 붙인 아들들의 이름은 야곱의 자세가 조금씩 변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먼 훗날 조상의 묘실에 들어가는 부인은 레아다. 야곱이 그토록 사랑한 라헬은 이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베들레헴 근처 길에 장사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레아에 대한 야곱의 마음이 미움에서 사랑으로 변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본문은 레아와 라헬의 “출산 경주”를 보여준다. 한 남자 야곱의 사랑을 구하고 찾는 레아와 자신을 사랑하지만, 아이가 없는 라헬이 자신들의 몸종까지 아내로 주어 자녀 출산에 여념이 없다. 마치 부부간의 사랑 확인이 출산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어긋난 출산 경쟁을 통해서 하나님은 벧엘에서 야곱에게 약속하신 후손에 대한 약속을 성실하게 이루고 계신다. 야곱의 어긋난 라헬만을 향한 사랑과 이런 야곱에게 지아비의 사랑을 기다리는 레아의 마음과 출산을 통해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들을 이루게 하신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세우시는 지파들의 출발은 성스럽고 경건한 사람들에게서의 출발이 아니라 이렇게 아웅다웅하며 다투는 과정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었다. 순탄하고 평이하기보다 왜곡된 가정 상황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런 인간적인 환경과 조건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데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사람들을 세우셔서 이스라엘 민족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기막힌 인도하심이 더욱 발휘되고 드러날 것이다. *출산 경주의 결승선은 생명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 하나님의 주권에 임신과 출산이 달려 있음을 레아든 라헬이든 깨달은 것이었다. 남편 야곱의 사랑만을 추구했던 레아는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깨달았고, 합환채가 임신시켜 줄 것이라는 그릇된 신앙을 가졌던 라헬도 임신은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임을 깨달아 “호소”하는 여인으로 변화하였다. 길고 긴 출산 경주의 결말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발견한 것이다. 레아든 라헬이든 하나님을 깨달았다. *한편, 하란에서 자란 하란의 딸들이 이제 하나님의 딸들이 되는데 이리 오래 걸렸다. 결국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어 가신 것이다. 하나님이 하셨다. 출산 경주의 결과는 야곱에게 사랑받지 못한 레아는 하나님께 사랑받음을 깨달았고, 레아의 거듭된 출산에서 시기와 질투로 몸종을 통해서라도, 합환채를 사용하여서라도 자녀들을 원했던 라헬은 임신은 인간적이고 우상의 방법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있음을 철저히 깨닫고 결국 “호소”하는 여인으로 변한다. 하나님은 이런 비상식적인 상황 속에서도 후손에 대한 약속을 철저히 이루고 계셨고, 야곱의 부인들도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도록 역사하셨다.

-역시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시다.

+ 기도제목

* 주님, 생명을 주관하시고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겠습니다.
* 주님, 야곱의 가정이 북적북적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북적거림이 아니라 불안정한 부부관계로 인해 어지럽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통해 약속하신 대로 후손들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큽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라도 약속하신 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창 31:36-55 라반과 평화조약
    
야곱은 라반이 드라빔을 찾지 못하자 그동안 참았던 불만을 한꺼번에 토로한다. 야곱은 상식에 어긋날 정도로 라반을 섬겼고, 라반은 그런 야곱을 착취했다. 이런 야곱에게 라반은 불안감을 느끼고 언약을 맺자고 제안한다. 이에 야곱과 라반은 야곱이 다른 부인을 두지 않을 것과 서로 침범하지 말자는 내용으로 언약을 체결하고 평화적으로 헤어진다.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20년 세월을 섬겼다. 7년간 레아를 위한 기간, 추가적인 7년의 라헬을 위한 기간, 그리고 이후 라반을 위한 6년의 섬김 기간의 합산이다(41절). 그러나 야곱은 이 20년 동안 라반이 품삯을 무려 열 차례나 변경했다고 비난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열 번은 실제적인 수라기보다는 꽉 채움을 의미하는 완전수의 개념일 것이다. 말하자면 라반의 계약 위반이 수도 없이 반복되었다는 의미다. 이제 이러한 상황이 극적으로 뒤집힌다.
    
    
    
1. 야곱의 울분에 찬 항의(36~42절)
야곱은 라반에게 분노하며 그동안 참아왔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쏟아낸다. 그가 라헬에게 크게 분노한 이후(창 30:2) 다시 여기서 분을 내는 모습이 나타난다. 그는 라반과 법정 소송에서 싸우는 것처럼 자신을 변론하며 라반의 죄를 나열하기 시작한다. 야곱은 라반에게 내가 무슨 반역질과 죄를 저질렀기에 그에게 항명한 적도 없는 나에게 왜 이렇게 맹렬히 추격까지 하면서 나를 쫓아왔는지 항의한(36절) 것이다. 특히 드라빔의 분실을 야곱 일행에게 뒤집어씌운 것이 오히려 라반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야곱은 라반을 계속 몰아붙였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확인시키기 위해 자신의 헌신적인 목축 원칙을 나열한다.
    
라반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야곱의 섬김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38~39절). 첫째, 나는 임신한 양과 염소를 잘 돌보아 유산이 되지 않았다. 둘째, 나는 외삼촌의 숫양 고기를 일절 먹지 않았다. 셋째, 맹수에게 물려 찢긴 가축은 내가 배상했다. 넷째, 도둑맞은 가축도 내가 배상했다. 이러한 야곱의 목축 원칙은 큰 손해를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이것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이후 야곱이 얼마나 놀라운 인물로 변화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것이 허풍이 아닌 이유는 라반이 아무런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 여러 국가의 법에 따르면 천재지변이나 짐승에 의해 가축이 죽었을 때, 그리고 가축을 도둑맞았을 때 목자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었다. 이것은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율법에서도 동일한 원리가 되었다(출 22:9~13).
    
결국 야곱은 이 모든 손실을 자신이 메울 필요가 없었음에도 그는 외삼촌에게 가축의 손실분을 일절 청구하지 않고 자신의 몫을 떼어 그것을 채웠다. 암양은 새끼를 치고 우유를 짜는 이유로 비싸서 숫양을 흔히 식용으로 잡았다. 목자가 자신의 재량으로 가끔 잡아먹어도 되었지만, 야곱은 그 어떤 숫양도 일절 손대지 않음으로써 외삼촌에게 아무런 손해를 끼치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원칙을 따라 목축함으로써 외삼촌의 가축을 크게 늘려 놓았으며 낮에는 더위와 싸우고 밤에는 추위를 견디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을 했다고 항변한다(40절). 가혹한 환경 속에서 야곱은 오랜 세월 인내하며 라반의 목축업을 도맡아 최선을 다해 크게 번성시켜 놓았다. 그 혜택은 모두 라반에게 돌아갔다.
    
야곱은 그렇게 20년을 인내하며 라반을 섬겼다. 그의 희생적이고 성실한 목축으로, 또한 그와 함께하며 그가 가는 곳마다 큰 복을 받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라반의 가축 떼는 해마다 크게 번성했을 것이다. 야곱은 소나기 펀치 끝에 마지막 결정타를 날려 라반을 무릎 꿇게 했다. 라반이 결국 빈손으로 밧단아람에 온 자신을 빈손으로, 고향으로 돌려보내려 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수고와 고통을 아시고 어젯밤에 직접 외삼촌에게 나타나 꾸짖지 않았느(42절)냐고 일침을 날린다. 야곱은 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자신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며, 또한 자신의 아버지 이삭이 두려워하는 하나님이심을 강조한다.
    
    
    
2. 야곱과 라반의 조약 체결(43~55절)
라반이 야곱에게 굴복한다. 라반은 야곱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에 야곱에게 조약 협정을 제의한다(43절). 그런데 그의 허세는 여전하다. 야곱의 아내와 손주들, 그리고 야곱의 모든 소유가 자신의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조약을 제의한 순간 이 모든 허풍은 자신의 패배와 열세를 인정한 것에서 나오는 치기일 뿐이다. 이제 야곱과 라반의 관계는 더 이상 주종관계나 상하관계가 아니다.
    
두 사람은 엄중한 조약을 맺은 후 그들은 기념석으로 세운 돌무더기에 각자의 이름을 붙였다. 이것은 증거석과 더불어 그들의 조약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제 두 사람은 이 기념석을 중심으로 서로 존중하며 평화로운 동맹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 두 사람은 각각 자신의 언어로 돌무더기에 이름을 붙였는데, 라반은 아람어로 ‘여갈사하두다’라고 불렀고, 야곱은 가나안어(이 당시는 히브리어라고 부르지 않았다) 로 그것을 ‘갈르엣’이라 불렀다. 두 단어 모두 ‘증거의 무더기’라는 뜻이다. 라반은 그 돌무더기가 오늘 자신과 야곱 사이에 증거가 될 것이라고 공포한다. 라반은 이 돌무더기와 함께 별도의 돌기둥을 세우고 ‘미스바’라는 이름을 추가한다(49절). 미스바는 망을 보는 탑인 ‘망대‘라는 뜻이다. 라반은 그 기둥의 이름에 여호와께서 서로 멀리 떠나는 자신과 야곱을 그 망대에서 살피시고 지켜달라는 소망을 담았다(49절).
    
그리고 난 후 라반은 이 조약의 조건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준수해야 할 것을 마지막으로 상기시킨다. 그것은 자신의 두 딸과 관련이 있다. 라반은 야곱이 자기 딸들을 학대하거나 다른 아내들을 맞아 그들의 위치를 위협한다면 하나님이 둘 사이에 증인 될 것이라고 말한다(50절). 그가 다른 아내들을 경계하는 이유는 아내들의 증가로 인해 자기 딸들의 상속권이 위협받고 손주들 유산의 몫이 축소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그는 딸들을 타인 취급하고 딸들을 팔아 큰 이득을 얻었던 비정한 아버지였다.
    
51~55절은 야곱과 라반의 송별식이다. 라반은 조약 예식의 마지막 절차로 상호 간의 철저한 조약 준수를 맹세한다. 조약의 기념물로 세운 돌무더기와 기둥이 증거물이 될 것이다(52절). 동시에, 이 기념물은 양측의 경계선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이 조약은 일종의 상호 불가침 조약이었다. 만일 그 돌무더기 경계선을 넘어와 계약 위반한다면, 이제 아브라함의 ‘신들’과 나홀의 ‘신들'(개역 개정은 둘 다 ‘하나님’으로 번역됨), 그들의 조상의 신들이 둘 사이를 판단해달라고 기원한다. 한편, 복수의 신들을 부른 라반과 달리 야곱은 하나님을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자신의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분’으로 호칭하며 맹세한다.
    
이후 야곱은 그 산에서 화목제를 드린 후 라반 측의 사람들(‘형제들’)을 모두 불러 함께 풍성한 식탁을 나눈다(54절). 그들은 그 밤을 거기서 지낸 뒤, 아침 일찍 일어나 길을 떠날 채비를 갖추었다. 라반은 자신의 딸들과 손주들과 더불어 송별 인사를 나누며 축복한 뒤 고향으로 돌아갔다.
    
    
    
나는?
-야곱은 드라빔을 찾지 못한 삼촌 라반을 책망한다. 쩔쩔매며 도망하던 야곱이 아니었다. 훔쳐 달아나지 않았다는 확신, 노동의 대가라는 판단, 게다가 벧엘의 하나님의 임재 의식이 또렷했기 때문일 것이다. 라반의 집에서 야곱은 성실하며 인내하였다.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 속에서도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자기에게 맡겨진 짐승들을 잘 키워냈고, 자기 실수로 상한 짐승은 자기 것으로 보상했으며, 그럴 필요가 없을 때조차도(천재지변) 자기 것으로 손실을 만회하였다. 야곱은 라반의 번영만 생각한 충성된 종이었다. 이런 삶에서 나오는 당당함이 있었다.
    
-라반은 두 딸을 이용하여 야곱을 속인다. 무려 20년 동안 사위의 품삯을 열 번이나 바꿔치기하여 착취하였다. 그러고도 빈털터리로 만들어 보내려고 한다. 야곱이 가지고 간 모든 소유가 본래는 자기 것이었다며 하나 마나 한 허풍을 늘어놓는다. 지독한 욕심과 집착의 노예가 된 가련한 모습이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하시고 야곱의 수고를 감찰하셔서 일시불로 품삯을 얻도록 복 주셨다. 당하고만 산 것 같은 20년이 하나님 앞에서는 한날도 허사가 아니었으며, 더욱이 눈에 뵈는 부보다 야곱이 자기 한계와 하나님을 알아가기 시작한 것이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더 큰 보상이었다.
    
*20년 동안 라반은 야곱을 이용하기만 했고 빈털터리로 쫓아내려 했지만,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이 야곱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다. 그와 함께하시고 밀린 품삯도 다 받아 나오게 하셨다. 당하고만 산 것 같은 그 세월이 사실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의미를 만들어내신 하나님 덕분이다.
    
*불의한 일에서 보호하시고 수골르 갚아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야곱은 죄인을 쫓듯 자신을 뒤쫓아온 라반에게 20년 동안 당한 설움과 불만을 쏟아낸다. 야곱의 성실한 수고에도 불구하고 라반은 정당한 대가를 주기는커녕 열 번이나 품삯을 바꿨고, 맹수나 도둑에 의해 손해 본 것까지 야곱에게 배상하도록 하였다. 만약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하지 않으셨다면 야곱의 삶이 어땠을까? 더러 부당하고 불의한 일을 당할 때가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자초지종을 아신다. 우리의 걸음을 보호하시며 모든 수고한 것을 갚아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라반이 야곱과 조약을 맺은 것은 라반이 야곱을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휴전선처럼 돌무더기를 쌓아 서로 넘어가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라반과 야곱이 맺은 조약은 상대방의 적대 행위나 학대에서 서로를 보호하려는 일종의 평화조약이다. 가능하다면 모든 사람과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고(롬 12:18), 그럴 수 없는 사람과는 관계를 좋게 마무리하는 것도 지혜다.
    
    
    
*주님, 라반의 속임에도 성실과 인내로 살아온 야곱의 삶과 동행하시며 그 진가를 인정하신 하나님의 역전하시는 은혜가 통쾌합니다. 이것을 기억하여 세상의 속임 속에서 분노보다 더 탄탄한 성실로 세상의 기만을 무색하게 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