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지키실 이는 오직 하나님 [창 32:1-21]
 – 2026년 04월 29일
– 2026년 04월 29일 –
생명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 라헬은 오래도록 임신하지 못한다. 아들을 무려 넷이나 낳은 언니 레아에 대한 질투심에 사로잡혀 야곱과 언쟁한다. 야곱과 라헬이 결혼식에서 사랑하는 모습 이후 처음 등장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부부싸움이었다. 라헬은 야곱에게 자신도 자식을 낳게 하라며 만일 자식을 낳지 못하면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후 야곱의 두 아내 사이에서는 본격적인 출산 경쟁이 시작된다. 라헬은 자신이 아기를 출산하지 못하자 여종 빌하를 남편에게 주어 두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을 얻게 된다. 마침내 라헬도 요셉을 낳음으로 두 자매의 출산 경쟁은 마무리된다. 이 과정에서 야곱은 열두 명의 자녀를 얻게 된다.

1. 라헬의 여종 빌하의 출산(1~8절)29장에서 아들을 넷이나 낳은 레아와 대조적으로 라헬은 야곱의 사랑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그녀의 태는 열지 않으셔서(29:31) 자녀를 출산하지 못했다. 라헬은 아들을 넷이나 낳은 언니 레아를 질투한다. 라헬은 남편 야곱의 사랑을 듬뿍 받았지만, 실상 행복하지 않았다. 급기야는 남편에게 아들을 낳게 하라고 요구한다. 낳게 하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협박까지 한다. 이런 라헬에게 야곱은 아이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겠냐며 반박한다. 야곱은 자녀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라고 분명히 알고 있었으나 딱 거기에서 멈춘다. 그의 아버지 이삭은 이 사실을 알고 리브가를 위해 무려 20년을 기도했었다. 그런데 야곱은 아브라함처럼 불임의 아내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다. 둘 사이의 갈등은 깊어져만 갔다. 이때 라헬이 생각한 방법은 예전에 사라가 한 것처럼 자기 여종 빌하를 통해 대신 아들을 낳게 하는 것이었다. ‘무릎에 둔다’라는 뜻은 그 아이를 양자로 받아들여 자신이 그 아이의 법적 보호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라헬은 양자를 얻어서라도 언니와의 경쟁에서 이기고 싶었다. 라헬은 이 결심을 곧바로 결행한다. 4절에서 라헬은 자기의 여종 빌하를 남편에게 아내로 주었고 야곱은 그녀에게 들어갔다. 그 결과 빌하는 아들을 낳았는데, 첫째 아들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편에 서서 변호해 주셨다는 의미로 ‘단’이라고 짓고, 둘째 아들은 언니와의 경쟁에서 이겼다면서 ‘납달리’로 짓는다. 이러한 모습에서 라헬이 모든 면에서 언니를 이기고 싶어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모습은 예전에 형의 장자권을 갖고 싶어 에서와 갈등하던 야곱의 모습과 닮았다. 그로 인해 가정에 갈등이 불거지고, 결국 집에서 도망 나오게 된 것처럼, 야곱의 가정에서 그런 불안이 재현되고 있다.

2. 레아의 여종 실바의 출산(9~13절)9절도 레아가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레아는 자신의 출산이 멈춘 것을 보았다. 둘 다 불임의 상태라는 것을 안 것이다. 자신의 출산이 멈춘 것을 알게 된 레아는 라헬이 했던 방법과 동일하게 자신의 여종 실바를 야곱에게 아내로 주어, 실바를 통해서도 ‘복되다’, ‘행운이다’라는 의미의 아들 ‘갓’과 ‘행복’이라는 의미의 아들 ‘아셀’을 얻게 된다. 레아는 실바를 통해 얻은 아들들을 하나님께서 여분으로 주신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기뻐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라헬뿐 아니라 레아 또한 동생과 경쟁하는 모습은 레아 또한 완전한 평안의 상태가 아님을 짐작하게 한다. 두 자매의 경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아들들을 많아지게 하셨다.

3. 레아의 출산(14~21절)이 단락은 레아와 라헬의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난다. 그동안 여종들을 통해 대리적으로 경쟁했다면 이제는 레아와 라헬이 직접적으로 충돌한다. 발단은 레아의 장남 르우벤이 추수하러 들로 나갔다가 우연히 합환채를 발견하여 어머니에게 가져오면서 시작되었다. 합환채는 당시에 성욕을 자극하며 임신을 돕는 역할을 하는 식물로 알려져 있었다. 르우벤은 출산이 멈춘 어머니를 위해 챙겨 온 것으로 보인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라헬은 레아를 찾아와 자신에게 합환채를 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레아는 겉으로 정중하게 보이지만, 단호하게 감정을 표현한다. 레아는 남편뿐 아니라 아기를 낳을 수 있게 하는 합환채까지 가져가려는 라헬에게 화를 낸다. 하지만 라헬은 화를 내는 레아에게 야곱과 동침할 기회를 주겠다며 거래를 제안한다. 매일 보는 남편보다 임신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합환채가 더 간절했기 때문이다. 레아는 라헬의 제안을 받아들이는데, 합환채보다 남편과 함께하는 기회가 더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날 밤 야곱을 자신의 처소로 불러들여 그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한편, 레아는 합환채가 임신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합환채를 양보한 레아에게 아들 잇사갈과 스불론, 딸 디나를 주시고, 합환채를 가져간 라헬에게는 아무 자식도 주지 않으신다. 태를 여닫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잘 드러낸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라헬의 모든 꾀를 무용지물로 만드셨다.

4. 라헬의 출산(22~24절)남편을 의지하고 자신의 지혜를 의지했던 라헬이 드디어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즉,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녀의 소리를 들으셨고, 마침내 아들을 주셨다. ‘부르짖었다’라는 단어 뒤에 ‘하나님이 기억하셨다’와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라는 단어들이 등장하는 것은 라헬이 하나님께 기도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태의 문을 열어주셨다. 하나님께서 태의 문을 열 수도, 닫을 수도 있음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아들을 얻은 라헬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부끄러움을 씻으셨다고 감사하며, 여호와께 아들을 더 달라는 의미로 그의 이름을 ‘요셉’으로 짓는다. 이제 라헬은 자식을 주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야곱의 결혼생활은 라반의 속임수로 시작하여 레아에 대한 박대와 라헬의 질투와 갈등으로 평탄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라반의 속임수로 야기된 불행을 불행으로 두지 않으시고 많은 자녀(12명)를 주시는 계기로 삼으신다. 인간은 악하게 행동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것이다. 나는?-레아와 라헬은 경쟁하듯 아이를 낳고 남편 쟁탈전을 벌인다. 레아는 아들이 있고 남편의 사랑은 없었으며, 라헬은 남편의 사랑은 있지만, 자식이 없었다. 둘은 빌하와 실바라는 여종들을 동원하고 합환채(최음제)까지 사용하여 자식 낳기 경쟁에 열을 올리지만, 정작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얻지 못한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야곱에게 약속하신 “많은 자식을 주시겠다”라는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었다. -남편의 사랑은 있지만 자식이 없는 라헬에게는 미래가 없었다. 그는 레아의 합환채를 넘겨받아 그 힘으로 자식을 낳아보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그 사이에 레아는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더 얻는다. 자식을 낳는 일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야곱의 말을 라헬은 새겨듣지 않았다. -평생 자기 힘과 지혜로만 원하던 것을 얻어 내던 야곱의 입에서 하나님만이 자식을 주실 수 있다는 고백이 흘러나온다. 라헬마저도 그 사실을 인정했을 때 하나님은 그녀의 소원을 들으시고 태를 여셨다. 요셉을 주셔서 아이 못 낳은 수치를 라헬에게서 거두신다. *라헬은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야곱은 레아를 미워했다. 이유는 라반의 사기행각과 관련 있다. 라반에 대한 분풀이 대상이 레아였다. 레아의 처지가 기구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처지를 잘 아셨다. 레아를 불쌍히 여기셨다. 이와 관련하여 야곱에게 그 원인을 둔다. 하나님께서는 결혼까지 한 이상 레아에 대한 책임을 라반에게 묻지 않으셨다. 야곱의 행동을 기억하셨다. *한편, 야곱은 레아를 미워했음에도(사랑받지 못함_29:31) 육체적인 관계는 맺었다. 때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레아가 네 명의 아들을 낳은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늘어날수록 레아가 붙인 아들들의 이름은 야곱의 자세가 조금씩 변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먼 훗날 조상의 묘실에 들어가는 부인은 레아다. 야곱이 그토록 사랑한 라헬은 이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베들레헴 근처 길에 장사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레아에 대한 야곱의 마음이 미움에서 사랑으로 변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본문은 레아와 라헬의 “출산 경주”를 보여준다. 한 남자 야곱의 사랑을 구하고 찾는 레아와 자신을 사랑하지만, 아이가 없는 라헬이 자신들의 몸종까지 아내로 주어 자녀 출산에 여념이 없다. 마치 부부간의 사랑 확인이 출산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어긋난 출산 경쟁을 통해서 하나님은 벧엘에서 야곱에게 약속하신 후손에 대한 약속을 성실하게 이루고 계신다. 야곱의 어긋난 라헬만을 향한 사랑과 이런 야곱에게 지아비의 사랑을 기다리는 레아의 마음과 출산을 통해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들을 이루게 하신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세우시는 지파들의 출발은 성스럽고 경건한 사람들에게서의 출발이 아니라 이렇게 아웅다웅하며 다투는 과정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었다. 순탄하고 평이하기보다 왜곡된 가정 상황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런 인간적인 환경과 조건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데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사람들을 세우셔서 이스라엘 민족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기막힌 인도하심이 더욱 발휘되고 드러날 것이다. *출산 경주의 결승선은 생명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 하나님의 주권에 임신과 출산이 달려 있음을 레아든 라헬이든 깨달은 것이었다. 남편 야곱의 사랑만을 추구했던 레아는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깨달았고, 합환채가 임신시켜 줄 것이라는 그릇된 신앙을 가졌던 라헬도 임신은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임을 깨달아 “호소”하는 여인으로 변화하였다. 길고 긴 출산 경주의 결말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발견한 것이다. 레아든 라헬이든 하나님을 깨달았다. *한편, 하란에서 자란 하란의 딸들이 이제 하나님의 딸들이 되는데 이리 오래 걸렸다. 결국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어 가신 것이다. 하나님이 하셨다. 출산 경주의 결과는 야곱에게 사랑받지 못한 레아는 하나님께 사랑받음을 깨달았고, 레아의 거듭된 출산에서 시기와 질투로 몸종을 통해서라도, 합환채를 사용하여서라도 자녀들을 원했던 라헬은 임신은 인간적이고 우상의 방법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있음을 철저히 깨닫고 결국 “호소”하는 여인으로 변한다. 하나님은 이런 비상식적인 상황 속에서도 후손에 대한 약속을 철저히 이루고 계셨고, 야곱의 부인들도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도록 역사하셨다.

-역시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시다.

+ 기도제목

* 주님, 생명을 주관하시고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겠습니다.
* 주님, 야곱의 가정이 북적북적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북적거림이 아니라 불안정한 부부관계로 인해 어지럽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통해 약속하신 대로 후손들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큽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라도 약속하신 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창 32:1-21 지키실 이는 오직 하나님
 
야곱은 멀리 세일 땅 에돔 들판에 사는 형 에서에게 전령들을 보내 자신의 귀향 소식을 알린다. 야곱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서자 에서에게 사람을 보내 허락을 받으려 한 것이다. 그런데 에서가 400명이나 되는 사람을 이끌고 자신에게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두려워하여 자신의 무리를 두 떼로 나누는 등 인간적으로 준비하면서 동시에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드린다. 그는 가축 550마리를 선별하여 다섯 떼로 나누고 각각의 떼를 에서에게 예물로 보낸다. 그는 이 예물을 통해 지난날의 자신의 잘못을 속죄하고 형 에서의 용서를 받기 원했다.
 
세일 산이 있는 세일 땅은 에돔 족속의 거점 지역을 일컫는 총칭으로 사해 남쪽 지역의 고산 지대를 말한다. 에돔이 그곳을 점유하기 전에 호리 족속이 살고 있었다. 에돔 지역에는 그 산지를 중심으로 인근에 아라바 광야라 일컫는 꽤 넓은 평원도 존재했다. 얍복 강 근처에서 세일 땅까지는 약 150km였다.
 
 
 
1. 하나님이 보낸 사자들(1~2절)
야곱이 길르앗 산에서 계속 남쪽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내 그의 귀향길에 힘을 주신다. 1절의 주어는 야곱이 아닌 ‘하나님의 사자들’이다. 그렇다면 이 만남은 우연한 조우가 아닌 하나님의 의도적인 계획임을 암시한다. 또한 천사들과의 만남은 벧엘 사건(28장)과 연결된다. 20년 전 야곱이 에서를 피해 하란으로 도망하던 막막한 밤, 하나님은 그의 꿈에 천사들과 자신을 나타내셨고, 임재와 보호를 약속하셨다.
 
이제 야곱이 다시 에서를 대면해야 하는 위기에 처하자 하나님은 다시 천서들을 보내 그 약속을 재확증하신다. 이는 하란에서 라반의 위협에 불안해하던 야곱에게 귀향을 명하시며 동행을 약속하신 것과도 같다(31:3). 야곱은 천사들을 보고 ‘하나님의 군대’라 불렀다. 그만큼 많은 수의 강력한 군대가 그를 호위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야곱은 군대를 만난 곳을 ‘마하나임’이라고 불렀다. 이는 ‘두 군대’ 또는 ‘두 진영’을 뜻하여, ‘천사의 두 무리’ 혹은 ‘천사 진영과 야곱 진영의 만남’을 상징한다. 마하나임은 요단 동편 얍복강 북쪽 약 10km에 있다. 한편 천사들의 등장은 과거 벧엘에서처럼 야곱이 하나님과 재회하게 될 것(24!29절; 35:1~5)을 내다보게 한다.
 
 
 
2. 야곱이 보낸 사자들(3~8절)
에서와의 대면에 앞서 야곱은 인간적 두려움과 계산에 사로 잡혔다. 하나님이 사자들을 보내 동행해주심에 대한 확신을 주셨지만, 야곱은 자기 사자들을 에서에게 보내 동태를 살핀다. 이런 행동은 에서의 반응에 따라 후속 대책을 마련하는 철저한 계산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에서는 이삭의 예언처럼(27:39~40) 황량한 세일 땅 에돔 들에 거주하고 있었다. 
 
야곱은 전갈에서 에서를 ‘내 주’로 부르고, 자신을 ‘당신의 종’이라 낮춘다. 이는 상대를 예우하는 일반적인 표현이지만, 야곱의 경우에는 에서와의 갈등과 그에게 행한 일(27:45)을 다분히 의식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장자권과 축복을 빼앗아 형제의 주인이 되는 축복을 받았지만, 지금은 에서의 종을 자처하고 자기 권리를 모두 내어준다. 야곱이 보낸 전갈의 내용은 먼저 귀향이 늦어진 점에 대한 해명(4절)과 둘째 재산에 대한 언급(5절), 셋째 사자를 보내 알리는 이유로 에서의 은혜가 절실함을 밝힌다.
 
한편 돌아온 전령들은 에서가 전갈을 받고 400명을 거느리고 오고 있음을 전한다(7절). 야곱은 심히 두려워하고 답답해했다(7절). 이에 야곱은 즉각적은 대응에 나선다. 그는 에서가 한 진영을 공격하면 다른 한 진영은 피할 수 있을 것을 계산하여 그의 일행들과 가축을 두 진영으로 나눈다(7~8절).
 
 
 
3. 야곱의 기도(9~12절)
야곱은 인간적인 방책을 마련한 채, 이제는 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이 기도도 벧엘 사건과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간구의 핵심은 에서의 손에서 자신과 가족을 건져 달라는 간청(11절)이며, 나머지 기도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내용이다.
 
첫째, 간구 대상은 벧엘에서 만난 언약의 하나님이다(9절). 야곱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을 부르며 조상들과 맺은 언약에 근거하여 개입하시기를 바란다. 둘째, 야곱은 하란에서 하나님이 “네 고향으로 돌아가라”라고 명하시며, 호의를 약속하셨음을 상기하면서 이제 하나님의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개입이 필요함을 표현한다. 셋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고백(10절)이다. 감당할 수 없는 인애와 신실하심을 하나님이 베푸셨음을 공손히 인정한다. 지팡이 하나만 들고 요단을 건넜던 그가 두 진영을 이룰 만큼 번창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한순간에 잃을 수 있는 위기다. 따라서 하나님은 다시 언약적 사랑과 신실하심을 나타내셔야 한다. 넷째,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하는 직접적인 간구다(11절). 야곱은 칼과 활에 능숙한 에서의 위협에 인간적인 방책을 세우면서도 이처럼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다. 야곱은 라반의 것을 하나님께서 낚아채 주셨듯이 이번에 에서의 손에서 그와 가족을 낚아채 건지시기를 구한다. 다셧째, 야곱은 하나님이 벧엘에서 주신 자손의 번성 약속을 붙든다(12절). 
 
 
 
4. 야곱의 전략(13~21절)
야곱은 기도 후에도 자신의 꾀를 내려놓지 못한다. 여전히 자기 대책을 시행한다. 그의 대응은 라반과의 품삯 협상이나 두주 때처럼 치밀하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 한마디로’ 라반의 계획을 좌절시킨 일(31:24)은 고려하지 않은 듯하다.
 
야곱은 먼저 소유의 일부를 에서에게 보낼 예물로 정한다(13~15절). 그 규모는 염소, 양, 낙타, 소, 나귀로 구성된 총 550마리였다. 이때 염소와 양의 암수 비율은 10:1로 맞춘 것은 번성과 생산성을 고려한 배려다. 이 예물은 야곱의 부의 규모를 보여 주는 동시에 에서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계산된 조치다. 또한 다수의 가축 떼를 나눠 앞세운 것을 혹시 모를 기슴이나 군사적 충돌 위험을 분산하거나 저지하려는 방책이기도 했다.
 
야곱은 이 예물을 네 떼 이상으로 나누고, 각 떼 사이에 간격을 두어 차례로 보냈다. 동시에 ㄱ가 떼를 맡은 종들에게 동일한 말을 에서에게 반복하도록 지시했다(16~20a절). 여러 선물과 아첨의 말을 단계적으로 보내는 전략은 에서의 분노를 점차로 가라앉히려는 목적이다. 야곱이 종들에게 지시한 말은 “이는 당신의 종 야곱의 것으로 내 주 에서에게 드리는 예물입니다”와 “야곱도 뒤에 있습니다”라는 내용이다.
 
예물로 에서의 ‘얼굴을 속죄하려는(덮으려는, 20b절) 방식은 과가 그가 붉은 죽으로 장자권을 뺏은 수법과 매한가지다. 그는 보상으로 달랜 후 에서를 만나면, 그가 자기를 용서하리라 기대한다. 33장의 에서와의 실제 대면을 고려하면, 이 모든 계획은 화해보다는 생존을 위한 방책에 가깝다.
 
이제 예물은 먼저 떠나고, 야곱은 진영에 남아 밤을 보낸다.
 
 
 
나는?
-하나님은 야곱이 에서를 만나기 전에 만나 주신다. 하나님의 군대 모습으로 만나신다. 그래서 야곱이 한 걸음도 제 힘으로 미래를 향햐 발을 내디딜 수 없게 하신다. 벧엘에서 나타난 그 하나님의 사자(28:12)는 이제 약속의 땅에 들어선 야곱을 맞아준다. 믿음은 선택이다. 야곱은 여호와의 군대와 에서의 군대 가운데 누구를 두려워할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와 군대를 보았으면서도 여전히 형의 보복이 두렵다. 속임수로 장자권을 빼앗았지만, 결국 형 에서를 ‘주(주인)’로 부르고 자신은 ‘종’으로 자처한다. 그에게 ‘사자’를 보내 은혜 받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한다. 그런데 에서의 호의를 확신할 수 없어 재산을 두 떼로 나눈다. 그는 ‘하나님의 군대’와 에서의 ‘400명의 군대’, 구 군대를 모두 믿지 못한 채 경계에 서 있다. 에서를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하나님의 군대를 신뢰하지 못한 것이 여실히 보인다.
 
-에서에게 동생이 아니라 종이라고(4절) 소개한 야곱이 하나님을 향해서도 자신을 종이라고 소개한다. 그런 자신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총과 진리를 회상하고 에서로부터 보호해주실 것을 구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에서에게서 은혜를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데서 조금씩 변하고 이쓴ㄴ 야곱의 모습이 보인다.
 
-야곱은 에서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예물을 준비한다. 그것을 여러 차례 나누어 보냄으로써 에서의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지도록 유도한다. 많은 짐승을 한 떼 씩 받다 보면 군대의 행렬도 흐트러지고 주위도 산만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이용했을 듯 하다. 하지만 그러고도 야곱의 두려움은 여전했다. 에서에로부터 도망치던 그 때, 돌베개 의지하여 자던 벧엘의 밤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그때 벧엘의 하나님의 약속도 떠올리지 않았을까?
 
*하란을 떠났으나 곧장 벧엘로 갈 수 없었다. 중간에 에서의 칼이 기다리고 있다. 이에 하나님은 가나안을 떠날 때 나타나셨던 하나님의 사자(28:12)를 보내어 야곱이 가나안에 들어서자 다시 나타나 맞이하게 하신다. 이제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와 함께 한 하나님의 군대를 보고 에서의 군대를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을 행사해야 한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의 군대를 보고도 형 에서의 군대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사자를 보내서 형에게 은혜를 구한다. 그러나 에서를 믿지 못해 재산을 두 떼로 나누어 만약의 공격에 대비한다. 야곱은 하나님의 군대도, 에서(의 군대)도 믿지 못하는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야곱은 에서를 ‘내 주’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야곱이 형의 주인 될 것이라고 하셨으나, 야곱은 자기 힘으로 장자가 되려다 결국 스스로 종으로 내려오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하나님께도 ‘내 주’라고 부르며 약속을 상기시키며 지켜달라고 요청한다. 에서도 의지하고 하나님도 의지한 꼴이다. 세상과 믿음의 경계선에서 세상과 믿음을 모두 의지한다.
 
*하나님께 기도했으나 점점 조여오는 군대로 인해 두려움은 잦아들지 않는다. 이에 예물 공세를 퍼붓는다. 봉신국이 주군에게 공물을 바치듯 한다. 장자권을 빼앗았고, 축복을 가로챘으며,. 라반에게서 재산을 얻어 가나안으로 돌아왔으나, 결국 형에게 다 바치고 있다. 음… 결국 무엇을 위한 고생이었고, 종살이었을까?
 
*에서에게 한꺼번에 예물을 보내지 않고 나누어 보낸다. 조금씩 마음을 누그러뜨리려는 속셈이다. 많은 짐승들로 군대의 행열을 산만하게 만들려는 의도도 있다. 아쉽게도 라반의 본노를 다스리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서도 에서의 분노를 다스릴 분도 하나님이심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는 모습이다.
 
*20절 한 구절에만 ‘얼굴’이라는 단어가 네 번 등장한다. 야곱의 예물 공세는 에서가 자기 얼굴을 봐주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의 감정을 풀어(얼굴을 속량하여)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얼굴과 대면하여(32:30) 근본적인 관계가 재정립되기 전에는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직은 모른다.
 
*하나님은 은혜를 맛보고(마하나임) 난 직후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 자기 계획, 자기 감정(두려움)에 얽매인다. 이것이 인생이다. 누가 야곱과 다를 수 있을까? 그럼에도 하나님은 약속하신 말씀을 따라 하란에서뿐 아니라 지금 에서를 만나는 과정에서도 함께 하시며 지키신다. 신앙의 수준이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약속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약속으로 인해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얼마나 큰 은혜인가!
 
*야곱은 마하나임(두 진영)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지 못해 마하노트(마하나임의 복수형, 떼들)로 행동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의 행동이 근거가 되어 행동하지 않으신다. 약속에 따라 불신앙의 행동임에도 굳건하게 지켜주신다. 하나님의 은례가 놀랍고 놀랍다.
 
 
 
 
*주님, 극심한 두려움으로 결국 기도의 자리로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더욱 깨닫습니다. 기도 무릎으로 주님께 나아가겠습니다.
*주님,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과 지혜를 구합니다. 끝까지 성실하게 믿음으로 구하며 살도록 이끄시옵소서.
*주님, 나의 신앙의 수준에 따라 역사하지 않고 약속을 따라 역사히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더욱 약속의 말씀을 붙잡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