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사사 에훗과 삼갈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사사기 3:12-31]
 – 2026년 09월 07일
– 2026년 09월 07일 –
이스라엘이 또다시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서는 모압 왕 에글론의 손에 그들을 넘기셨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에 왼손잡이 사사 에훗을 세우시고, 그가 단독으로 왕궁에 있는 에글론 왕을 암살한다.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들을 모아 모압과 전쟁을 하여 크게 승리하며 이스라엘을 구원한다. 삼갈은 소 모는 막대기로 이스라엘을 구원한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측량할 수 없다. 이스라엘은 “또(다시)”(12절)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다. 40년간의 평안이 지나고 또다시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다. 이번에는 모압 왕 에글론을 사용하셔서 18년 동안 이스라엘이 그를 섬기게 하셨다. 그 깊은 탄식의 시대를 끝낸 사사는 왼손잡이(오른손에 제약이 있는) 에훗이었다. 그는 모압 왕 에글론에게 조공을 바치는 척 접근하여 그를 해치웠다. 그러고는 에브라임 산지에서 거병하여 요단강 나루를 점령하고, 여리고에서 도망치는 모압 군사 만 명을 죽인다. 모압 땅으로 건너간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 후 80년 동안 이스라엘이 평안하였다. 사사 삼갈은 소 모는 막대기만으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쳐 죽이며 이스라엘을 구원한다.



1. 사사기 사이클 _ 에훗(12~30절)
12~14절은 에훗 서사의 프롤로그다. 이스라엘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한다. 이스라엘의 범죄는 이제 습관이 되었다. 서사에 등장하는 모압 왕 에글론의 이름은 그 뜻이 ‘송아지’다. 12절의 주어는 하나님이시다. 모압 왕 에글론이 이스라엘을 치기 위한 하나님의 심판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분명하게 밝힌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시험하시기 위해 에글론을 강성하게 만드신다. 이런 서사에 담긴 분명한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만 다스리시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나라를 통치하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종려나무 성읍은 여리고성을 의미하는데, 요단 동편과 서편 가나안 지역을 잇는 관문으로 예루살렘, 벧엘 등 이스라엘의 주요 도시와 매우 가깝게 연결된다. 이곳을 모압과 암몬과 아말렉 동맹군에게 빼앗겼다는 것은 가나안 전체를 다시 잃을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임을 전제한다.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 위해 여리고성을 먼저 점령한 것과 같은 이치다. 이렇게 강성해진 모압에게 이스라엘 백성은 무려 18년 동안이나 조공을 바친다. 하나님께 악을 행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아닌 에글론을 섬기며 고난받게 하신 것이다. 이는 징벌의 의미도 있으나,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이나 왕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15~23절은 에훗이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치러 가서 그를 죽이는 이야기다. 모압 왕 에글론의 억압과 착취로 고통을 당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결국 하나님께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다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에훗을 사사로 세우신다. 그는 ‘왼손잡이’였다. 여러 의견이 있지만, 이것은 오른손보다 왼손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왼손잡이를 뜻한다. 이렇게 묘사한 것은, 그가 공물을 바치는 사절단의 대표라는 점과 그 기회를 이용하여 하나님의 사사로서 사명을 감당하였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그는 왼손잡이만이 가능한 은폐(오른쪽 허벅지에 1규빗(약 45cm) 정도의 양날 검을 숨김)로 에글론을 제거한다. 즉, 에훗이 왼손잡이임을 밝힌 것은 장애나 부족함을 나타내기 위한 표현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에훗은 공물을 바친 후에 다른 사람들은 다 돌아가게 한 뒤, 돌 뜨는 곳 곧 우상이 있는 곳에서 다시 돌아와 은밀한 일을 왕에게 아뢰겠다고 한다. 에훗은 서늘한 다락방에 홀로 있는 에글론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에게 있다고 말하고, 에글론은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일어났다. 이때 준비해 간 칼을 왼손으로 빼어, 망설임 없이 단번에 힘 있게 에글론의 몸을 찔러 죽인다. 이렇게 적의 심장부인 왕궁에서 적의 왕을 죽인 에훗은 유유히 방을 빠져나와 문을 걸어 잠근다. 22절에서 칼이 잠겼다고 번역된 ‘기름’은 ‘대변이나 대장의 찌꺼기’를 나타낸다. 그렇기 때문에 24절에서 신하들이 ‘왕이 발을 가린다’, 즉 볼일을 보고 있다고 여긴 것이다. 신하들이 기다리는 사이 에훗은 스이라로 도망친다. 결국 죽은 왕을 발견하는 것이 신하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왕의 수많은 신하들은 왕궁 한가운데서 자신들의 주인을 지키지 못하였고, 그를 죽인 에훗은 이미 멀리 도망간 상태였다.

24~29절은 모압과의 전쟁 서사다. 에훗은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어 이스라엘 자손을 모았고, 이스라엘은 그 명령을 따라 에훗에게로 모였다. 에훗은 모인 자들에게 모압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앞장선다. 여호와께서 모압을 자신들의 손에 넘겨주셨다는 승리 선언을 통해, 이 전쟁이 거룩한 여호와의 전쟁임을 선포한다. 에훗과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 나루를 점령하고, 요단 동편으로 건너가려는 용사들을 한 사람도 남겨 두지 않고 죽인다. 이는 여호와 전쟁의 특징 중 하나인 진멸 모티브를 드러낸다. 이렇게 에훗은 충실하게 여호와의 명령을 수행하여 이스라엘을 모압 왕 에글론의 손에서 구원하였다. 에훗은 사사요 구원자로서 단독으로 적의 왕을 죽이고 성공적으로 여호와의 전쟁을 수행한 영웅이었다.

30절은 에훗이 이끄는 이스라엘이 모압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의 에필로그다. 모압이 이스라엘 땅에 복속되었고 80년간 평안하였다고 한 것을 볼 때, 두 세대 동안 이 위대한 여호와의 전쟁 이야기가 전해지며 여호와를 따랐던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평안의 보고는 그들이 적어도 이 기간만큼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음을 나타내는 표시다. 사사기의 다른 사사보다 평안의 기간이 긴 것은, 에훗의 사건을 통해 백성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오래도록 기억하였음을 보여 준다. 그만큼 에훗의 서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우 크고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2. 삼갈(31절)
삼갈과 같이 사사로서 기록의 분량이 매우 적은 이들을 ‘소사사’로, 사사로서의 서사가 풍성하게 기록된 이들을 ‘대사사’로 구분하여 이해하면 된다. 소사사들은 대사사들 사이에 간단하게 소개된다. 하지만 이전 사사들의 특징은 그대로 이어받는다. 삼갈은 이스라엘의 영웅적 구원자인 에훗의 특징을 따라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사로 소개된다.

‘아낫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이전에는 갈릴리에 있는 벧아낫 지역 사람으로 해석하였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아낫을 섬기기 위해 헌신된 자’로 주로 해석한다. 삼갈은 이방인으로서 소 모는 막대기로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사로 소개되는데, 소 모는 막대기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그의 직업이 목동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즉, 하나님의 구원에 사용되는 사람은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는지, 혹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겠다고 하실 때 헌신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3. 뼈아픈 배신…… 그럼에도
옷니엘이 죽은 이후 40년간 누린 평안이 이스라엘의 배신으로 끝나 버렸다. 이제 다시 고통의 시대가 도래했다. 모압 왕 에글론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서 가장 먼저 점령한 ‘종려나무 성읍(여리고)’을 빼앗고 억압했다. 그리고 이전 압제 기간보다 더 긴 18년 동안 압제한다. 이스라엘의 이런 배신을 저자는 “또(야사프)”라는 단어로 요약한다. 야사프는 ‘반복하다, 추가하다, 다시 하다’라는 의미다. 에훗이 등장하게 된 배경, 곧 하나님을 배반한 그들의 모습이 “반복되고” 있음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같은 배신을 반복하는 이스라엘은 점점 형식적인 회개의 덫에 빠져드는 듯하다. 40년 전 바알과 아세라에 빠져 구산 리사다임에게 고통을 받았던 것을 “잊어버리고” 또(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다”(12절). 이번에는 모압 왕 에글론을 사용하셔서 종려나무 성읍을 차지하고 이스라엘을 억압하게 하셨다. 그 후 하나님께서 에훗을 들어 이들을 구원하시고 80년 동안 평안하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사사 삼갈의 짤막한 기록은, “역시” “또”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셨고, 또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어 삼갈을 세워 구원하셨다는 사실이 압축된 것이다.

*결국 “형식적인 회개”가 반복된 “또”의 덫에 걸리게 만들었다. 완전한 변화의 회개가 아니라 그저 형식만 갖춘 회개였던 것이다. 오늘날도 형식적인 회개가 가져오는 신앙의 매너리즘은 심각하다. 주일마다 형식적인 회개의 기도는 드리지만, 삶의 변화가 없다. 진실한 회개는 확연한 변화를 가져온다. 형식적 회개는 문제를 가릴 뿐이다.



4. 어? 이런 사람으로도?!
에훗과 삼갈은 옷니엘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옷니엘은 갈렙과 함께 아낙 자손을 물리친 역전의 용사다! 갈렙의 사위이기도 하다. 소위 모범생이다. 옷니엘의 활약은 당연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에훗과 삼갈은 조금 생각해 봐야 한다.

일단 에훗은 베냐민 지파 출신이다. 한참 후의 일이지만,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 안에서 정치적 대립 관계가 된다. 유다 지파의 후손 다윗과 베냐민 지파 출신인 사울 왕의 대립이다. 다윗이 왕이 된 이후에도 베냐민 지파는 다윗에게 비협조적이었다. 또 ‘왼손잡이’는 원문을 직역하면 ‘오른손에 제약이 있는(오른손이 묶인)’으로 번역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베냐민 사람'(15절)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가 문자적으로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이라는 점이다. 히브리어에 ‘왼손’을 표현하는 단어가 있음에도 그 단어를 직접 사용하지 않고 ‘오른손에 제약이 있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에훗이 평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삿 20:15~16절에 등장하는 ‘왼손잡이’를 군사적인 목적에 따라 왼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에훗이 군사적인 능력이 특출한 특수부대원(?)일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그럼에도 그는 이 특출한 재능을 공물을 갖다 바치는 사소한 일에 활용했다. 훈련받은 대로 살지 못한 사람이었다. 물론 하나님의 쓰임을 받기는 했지만….

또 삼갈은 아낫의 아들이라고 소개한다. ‘아낫’이 가나안 땅에서 섬기던 전쟁의 여신을 가리킨다면, 그는 이방 신을 섬기던 자다. 그렇다면 그는 심판의 대상이지 하나님의 심판자가 될 수 없다. 이런 추측을 뒷받침하는 표현이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31절)에서 “그도”이다. 즉,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가” 이스라엘을 구원했다는 것이다. 이는 “소 모는 막대기”로 행한 일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고, “전쟁의 여신 아낫”을 섬기는 자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튼 에훗이나 삼갈이나, 전혀 의외의 인물이 이스라엘을 모압과 블레셋에게서 구원하였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내 안에 있는 선입견을 깨뜨리시는 하나님을 자주 경험했다. 나 역시 ‘어떻게 그런 사람이……’라는 상황에 수없이 직면했다. 하나님의 주권을 제한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역시 그럴 수 있다. 훈련받은 대로 살지 못하는 에훗을 들어 모압 왕 에글론을 해결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아니라 전쟁의 여신 아낫을 섬긴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삼갈이, 그것도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에게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도록 사용하신 것이다. 사람의 생각과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하나님의 창의성이 놀랍다.

*”어? 이런 사람으로도” 하나님의 구원은 막힘이 없다. 하나님은 역시 대단하시다. 이스라엘은 이런 하나님을 왜 그리 배반하기만 할까? 그럼에도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의 언약이 부르짖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주셨다.



나는?
-사사 옷니엘 시대가 준 40년의 평화는 이스라엘의 악행으로 깨진다. 하나님은 모압의 에글론을 강성케 하셔서, 그가 암몬과 아말렉 연합군을 결성하여 종려나무 성읍(여리고)을 점령하도록 허락하신다. 그로부터 18년의 종살이가 시작된다(12~14절). 이스라엘이 자기 욕망의 편에 설 때, 하나님은 모압의 편을 들어 이스라엘을 심판하신 것이다. 세상만큼 강해지려 하기보다, 강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는지 늘 돌아보아야 한다.

-18년의 고난으로 인해 이스라엘 자손이 부르짖자,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세우신 지도자는 베냐민(오른손의 아들) 지파의 왼손잡이 에훗이었다(15~20절). 그는 구원자가 될 만한 사람이 아니었고, 에글론도 조공을 바치러 온 그를 위협적으로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부족하고 연약한 자를 통하여 강한 자를 심판하신다. 그러니 이스라엘이 추구해야 할 것은 세상보다 더 강한 힘이 아니라, 약자를 통해서도 역사를 열어 가실 수 있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아닐까?

-이스라엘을 18년이나 다스린 모압 왕 에글론은 굉장히 비둔한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를 보좌하는 자들도 아둔하기 짝이 없었다(21~25절). 이처럼 그들이 크고 강한 자들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압제당한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언약의 하나님을 떠나 언약 백성의 삶을 버리면서 비둔해지고 아둔해졌기 때문에, 무력하고 탐욕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를 당하게 된 것이다. 영적으로 비둔한 것은 그들이 아니라 바로 이스라엘이었다.

-에훗이 사사가 되어 모압을 이기고 18년의 압제에서 벗어났다. 왼손잡이 사사가 이끌었지만, 하나님이 도우시고 그가 믿음으로 앞장섰을 때, 힘센 장사요 용사인 모압 군사 만 명을 죽이는 대승을 거두고 80년의 평화 시대를 열 수 있었다. 나는 하나님의 역사에 어떻게 참여하는가? 나로 인해 내 주변이 샬롬을 누리고 있는가?

-“또” 악을 행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찾기란 쉬울 것이다. 그럼에도 그 깊은 사랑의 언약을 따라 오늘도 나를 구원하여 주신다. 그 사랑 안에 내가 거하고 있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의외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도구가 되었다. 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던 사람이기도 하고 몸에 장애가 있을 수도 있는 에훗, 그를 통한 구원 이야기는 통쾌하기 그지없다. 일제 36년을 책으로만 배웠지만, 해방의 기쁨의 현장에 마치 나도 있는 듯 흥분하고 열광할 수밖에 없는 영락없는 한국인인 나도 십분 공감되는 통쾌함이다. 그런데 그 놀라운 일을 ‘에훗’을 통해 이루셨다. 삼갈은 어떤가? 사사기 저자조차도 “그도”라는 표현으로 기록할 만큼 의외성을 가진 인물이었고, 의외성의 도구로 이루어 낸 구원이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면 이리 된다. 아무리 스스로 엉망이라고 생각하고 제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루저처럼 여겨지는 이라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면 18년의 고통을 끝내게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된다. 아무리 하나님과 상관없이 내 마음에 끌리는 대로 다른 우상을 함께 섬기는 듯한 흐물흐물한 신앙을 가졌더라도, 그가 손에 쥔 것이 겨우 ‘소 모는 막대기’라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면 블레셋을 물리치게 된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면…… 어떤 것으로도, 무엇으로도 역사를 이루신다.

+ 기도제목

*주님, “또”의 덫에 걸리지 않게 해 주십시오.
*주님, “그도”와 같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의 역사하심으로 오늘 제가 구원의 자리에 있음을 믿습니다.
*주님, ‘장애, 약한 능력(소 모는 막대기)’이 제약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음을 믿지 못하는 믿음이 “내 삶의 제약”임을 깨닫습니다. 믿음을 굳게 하여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