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입다와 암몬 왕과의 설전 [사사기 11:12-28]
 – 2026년 09월 25일
– 2026년 09월 25일 –
입다와 암몬 왕은 전쟁을 하기 전에 ‘설전’을 벌인다. 암몬 왕이 길르앗은 원래 암몬 족속의 땅이어서 되찾으러 왔다고 말하자, 입다는 이 땅이 암몬의 땅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땅이며, 전에는 아모리 족속이 살았던 땅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입다는 이 땅에 대한 분명한 소유권을 주장한다. 길르앗의 지도자가 된 입다는 곧바로 암몬과의 전투에 임하지 않는다. 먼저 그들의 도발을 단념시키려고,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암몬 족속에게 정확한 역사 지식에 근거하여 반박하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그들을 하나님께서 판단해 주실 것을 선언한다.



1. 땅을 돌려 달라는 암몬 왕(12~13절)
고대 전쟁에서는 개전 전에 서로 사자들을 보내어 먼저 말싸움을 한다. 이는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여 자신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상대방의 사기를 꺾기 위해서다. 입다는 전쟁을 하기 전에 암몬 왕에게 사자를 보내, 무슨 원한이 있어서 쳐들어왔느냐고 묻는다. 입다는 암몬 왕에게 사자를 보내면서 ‘내 땅’이라는 표현을 써서 왕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입다는 사자를 먼저 보내 암몬 왕의 행동이 정당하지 않음을 지적하였다. 전쟁의 원인이 암몬에게 있음을 밝힌 것이다.

이에 암몬 왕은 길르앗, 즉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는 원래 암몬 땅이었는데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후에 점령하였으니, 이제 평화롭게 돌려 달라고 요구한다. 이곳이 원래 자기 땅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서로가 자기 땅이라고 고수하는 상황이다.



2. 길르앗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입다(14~27절)
14~18절은 암몬 땅을 점령하지 않았다는 입다의 항변이다. 입다는 암몬 왕의 주장 가운데 왜곡된 부분을 지적하며,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이스라엘의 길르앗 소유권을 주장한다.

이 단락이 첫 번째 이유인데, 입다는 암몬 왕에게 이스라엘은 암몬과 모압의 땅을 점령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설명은 출애굽 여정을 통해 제시한다. 자신들은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지나 홍해까지 왔고, 거기서 다시 가데스까지 왔다고 진술한다. 그리고 에돔과 모압 땅으로 지나가려고 사자를 보냈으나 그들이 허락하지 않아, 가데스 광야에 머물다가 모압 동편 경계인 아르논에 진을 치게 되었다고 말한다. 입다는 아르논을 모압의 경계라고 분명하게 표현하며, 자신들의 조상이 모압 땅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한편, 신명기나 민수기는 이 여정에서 암몬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데, 이 길은 에돔과 모압을 통과하지만 암몬은 통과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신명기 2:37은 암몬 땅에는 가지 않았음을 특별히 언급하며 이를 증명한다. 이와 같은 역사를 근거로 입다는 암몬뿐만 아니라 에돔, 모압과도 싸운 일이 없다고 주장했다.

둘째로 19~22절은 이스라엘이 차지한 길르앗이 원래 아모리 족속의 땅이었다는 점을 확인해 주며, 이 땅을 얻게 된 경위를 설명한다. 이스라엘 자손은 모압이나 에돔에게 한 것처럼 아모리에도 사자를 보내 땅을 지나가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아모리는 모압, 에돔과 달리 지나가지 못하게 했을 뿐 아니라 군사를 모아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였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아모리 왕 시혼과 그의 백성을 이스라엘 백성의 손에 넘겨주셨다. 이스라엘은 그들을 이겨 아모리 사람들의 땅을 점령하게 된다. 이와 같은 전쟁의 결과로 이스라엘은 아르논(아모리 땅의 최남단)에서 얍복(최북단 경계)까지, 광야(동편 경계)에서 요단(서편 경계)까지의 땅을 얻게 된다.

23~27절은 아모리 땅 점령의 정당성을 기술한다. 입다는 길르앗이 암몬 자손의 땅이 아니라는 것을 논증한 후, 아모리 땅을 계속 점유하는 것의 정당성을 세 가지로 이야기한다. 먼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아모리 족속을 쫓아내고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셨다고 한다. 둘째, 당신(암몬 자손)이 모압 왕 발락보다 더 잘났느냐고 묻는다. 발락은 이스라엘이 아모리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그 땅을 차지하자 이스라엘을 두려워하여, 그들을 저주하기 위해 당시 매우 유명한 선지자로 알려진 미디안 사람 발람을 부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발람에게 나타나셔서 저주 대신 축복을 하게 하셨다. 이로 인해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과 전쟁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현재의 암몬 왕보다 훌륭한 발락도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못하고 전쟁도 하지 못하였는데, 암몬 왕이 감히 할 수 있겠느냐는 논리다. 셋째, 이스라엘 백성이 이 성읍들에 거주한 지 이미 300년이 지났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들의 주장대로 이곳이 암몬 사람들의 땅이었다면, 그동안 왜 이 땅을 다시 차지하지 않았는지 묻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입다는 이런 암몬 자손의 악행을 하나님께서 판결해 달라고 기도한다. 이때 입다는 여호와를 ‘사사’로 부른다. 여호와만이 이스라엘과 세상의 사사라고 말하는 것이다.



3. 암몬 왕의 거부(28절)
이런 입다의 주장을 들은 암몬 왕은 받아들이지 않고 전쟁을 시작한다. 처음부터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말싸움(설전)에서는 일단 입다가 승리했다. 암몬 왕이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28절에서 암몬 왕은 막무가내로 입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반면 입다는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어떤 단어를 사용하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아는, 부드러운 화술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언제 입을 다물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기도 했기에, 다음 단락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가 일어난다.



나는?
*입다에게 이런 모습이라니… “큰 용사”인 입다는 싸움만 잘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큰 용사”됨이 무력에 의지한 것이 아님이 본문을 통해 밝혀진다. 길르앗의 머리가 되어 암몬의 침입에 맞서기 위한 입다의 첫걸음은 “외교”였다. 전쟁은 싸우지 않고 해결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외교를 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담판”을 지을 자질이 있었다. 한낱 “돕” 땅의 비류들을 이끈 입다에게 이런 놀라운 모습이라니…

*먼저,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분명한 지식이 있었다. 억지에 가까운 암몬 왕의 길르앗 땅 반환 요구를 정확한 역사적 사실로 반박한다. 원래 자신들의 땅이라는 그들의 주장에, 이 땅은 오히려 아모리 족속의 땅이었음을 분명하게 반박한다(15~22절). 당시 이스라엘은 시내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이동할 때 하나님의 특별한 지시에 따라 에돔과 모압과 암몬 땅을 우회했다. 처음에는 그 땅의 통과를 부탁했지만 그들이 승인하지 않아, 이스라엘은 더 먼 길로 “돌아서” 진행했다. 그들의 땅에는 결코 들어가지 않았다. 에돔, 모압, 암몬이 이스라엘의 먼 친족이기 때문이었다. 아모리 족속에게도 동일한 제안을 했지만, 그 왕 시혼은 도리어 거절하고 백성들을 모아 이스라엘을 쳤다(민 21:23). 그리하여 아모리 족속의 침공에 맞서 그들을 정복하게 된 것이다. 암몬이 주장하는 그들의 땅을 점령한 일은 없다. 길르앗 사람들에게 쫓겨나 암몬 족속의 땅 “돕” 땅에 정착하며 살았던 입다에게 이런 정확하고 해박한 지식이라니…

*그리고 이런 역사적 지식에 근거하여 분명한 신학적 근거도 제시한다. “여호와께서 아모리 족속을 쫓아내신 땅(23절)”이라는 것이다. 아모리 족속을 정복한 것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시고 인도하신 것이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암몬이 자기들이 섬기는 신 ‘그모스’를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하고 이야기한다.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임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입다는 매우 상식적으로 말한다. 만약 이 땅이 암몬 자손의 땅이었다면, “이스라엘이 헤스본과 그 주변 마을들과, 아로엘과 그 주변 마을들과, 아르논 강변의 모든 성읍에 삼백 년 동안이나 살았는데, 왜 당신은 그 동안에 이 지역들을 되찾지 않았습니까?(새번역_26절)”라고 했다. 거짓된 역사에 기대어 살아왔더라도, 지난 300년 동안 도대체 뭘 한 거냐는 의미다. 이렇게 비상식적인 도발이 어디에 있는가! 그러므로 “나로서는 당신에게 잘못한 것이 전혀 없는데도 당신이 나를 해치려고 쳐들어왔으니, 심판자이신 주님께서 오늘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 사이를 판가름해 주실 것입니다(새번역_27절).” 이것이 결론이다.

*입다는 “큰 용사”가 맞다. 단지 힘만 쓰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백성으로서의 정체성, 역사적 지식, 믿음, 상식에 근거한 판단… 이런 모습이 있다니…

*하나님을 믿는 확고한 정체성이 없다면 결국 자기주장에 함몰된다. 정확한 역사적 지식이 없으면 감정 대립과 억지가 심해진다. 건강한 상식이 없으면 광신 집단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암몬 왕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이었다. 반면 입다는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 확고하게 행하는 사람이었다. 암몬 왕은 역사적 사실 앞에서도 굽히지 않고 자기 고집만 부린다. 상식도 통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암몬의 땅이었다면 300년 동안 무얼 했느냐는 질문에 “… 말을 듣지 않는다(28절).” 약탈이 목적인 이들에게 “전쟁의 명분”은 중요하지 않았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런 이들이 하나님의 백성과 공동체에 도발한다. 그저 막무가내로 억지를 부리며 난동을 부릴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똑같이 하면 안 된다. 오히려 하나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지혜를 따라 온전히 순종하며 살아내어, 그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더욱더 선명한 하나님의 백성임을 말이다.

+ 기도제목

*주님, 하나님을 아는 지식, 성령께서 일깨워 주시는 지혜, 건강한 상식을 가지고 살겠습니다.
*주님, 세상에서 오는 비상식적이고 몰상식한 도발을 “주님이 판단해 주실 것을 믿고” 믿음 안에서 담대히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