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부르짖음 없는 절망 속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구원 [사사기 13:1-14]
 – 2026년 09월 28일
– 2026년 09월 28일 –
13-16장까지는 삼손 이야기이다. 8번째 사사 입다에 이어 입산, 엘론, 압돈이 다스린 31년 동안 평화가 지속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또다시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다. 이번에는 하나님의 마음도 몹시 상하셨다. 무려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손에 넘기셨다. 사사기의 압제 기간 중 가장 긴 시간 동안 이스라엘은 고통을 당했다.

삼손의 이야기에는 “부르짖음”이 없다. 이는 이스라엘이 부르짖지조차 않을 정도로 상태가 약해져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구원하신다. 고질병이다. 입다와 입산, 엘론과 압돈이 사사로 통치하던 31년간의 평화는 속으로 하나님을 떠날 대로 떠난 “썩은 평화”였다. 사사들부터 많은 부인을 두고, 사치를 누리며, 이방 결혼에 익숙했던 이스라엘에는 소망이 없었다. 블레셋이 압제하기 전에 이미 평화 속에서 하나님을 떠나 ‘죄의 지배’를 철저하게 받고 있었다.

죄의 지배를 받으니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거룩함은 사라졌고, 블레셋의 압제를 받는 동안에도 하나님을 찾을 줄 몰랐다. 죄에 대한 내성이 가져온 심각한 위기였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 이것이 진정한 위기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잊었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잊지 않으셨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찾을 생각조차 못 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아직 잉태되지도 않은 이를 사사로 준비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런 사랑이다.



1. 마노아와 아내에게서 삼손이 태어날 것(1~14절)
1절은 삼손 서사의 프롤로그다. 이스라엘이 다시 악을 행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40년간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기셨다. 40년은 한 세대를 꽉 채운 기간으로, 다른 사사 시대에 비해 상당히 긴 시간이다. 그런데 삼손의 프롤로그가 다른 사사들의 경우와 다른 점은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압제로 고통받는 중에도 부르짖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직접적으로 괴롭히지만 않으면 블레셋의 통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순응하며 살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하나님을 찾지 않고 블레셋에 순종하며 그들의 신을 섬기고 그들에게 동화되어 갔기에, 더 이상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게 된 것이다.

2~14절은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마노아의 아내에게 삼손이 태어날 것을 예고하는 부분으로, 삼손 서사의 서론이다. 사사기에서는 기드온부터 사사에 대한 인물 설명이 길어지는데, 그중 삼손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중요한 특징은 이스라엘이 부르짖지 않았는데도 하나님께서 먼저 사사를 선택하신다는 점이다. 이 단락은 ‘마노아’가 삼손 서사의 시작인 13:2에 등장하고 16:31에 다시 등장함으로써 인클루지오 구조를 보여 준다.

삼손의 고향은 단 지파의 소라 땅으로, 블레셋 지역 바로 옆에 있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은 ‘마노아의 아내’였다. 그녀는 임신하지 못하는 여인이었다(2절). “임신하지 못하는”이라는 단어는 “임신할 수 없어서, 임신하지 않아서”로도 번역된다. 이는 블레셋이 지배했던 40년의 삶이 얼마나 소망 없는 절망의 시간이었는지를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불임의 원인이 몸에 있을 수도 있고, 외부 환경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아이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것을 포기할 정도로 소망 없는 절망적인 사회였다. 3포 세대를 지나 7포 세대라고 스스로 칭하는 이 땅의 젊은이들의 마음도 이와 같을 수 있다. 장래의 꿈을 품고 현재를 살아 내기가 너무도 벅찬 환경이기에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조차 포기하는 세대라는 의미다. 마노아의 때가 그런 때였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났다. 그리고 이른바 수태고지(출생과 사명을 고지함)를 행한다(3-4절). 놀란 아내는 마노아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알린다. 마노아는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기도했다(8절).” 놀랍게도 그의 기도는 이 수태고지의 진위를 알려 달라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고지받아 태어날 아이를 어떻게 기를 것인지 알려 달라는 기도였다(8절). 주님께서는 마노아의 기도에 즉각 응답하셔서 다시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 주셨다(9-11절). 마노아는 동일하게 “지난번에 한 그 말이 이루어질 때에 그 아이가 지켜야 할 규칙은 무엇이며, 또 그 아이가 할 일은 무엇이냐”고 물었다(12절).

마노아와 그 아내의 태도가 놀랍다. 하나님의 사자의 고지를 믿는 것을 전제로 행동하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 이르신 대로 아들을 잉태하여 낳게 될 때까지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을 두지 않고, “태어난 아이를 어떻게 기를 것인가?”에 초점을 둔다. 천사의 말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지 않는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언행이다.



2.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여호와의 사자는 하나님의 사람을 잉태할 마노아의 아내에게 어떻게 출산을 준비하고, 아이가 태어난 이후 어떻게 행할 것인지를 분명하게 밝힌다(4-5절). 임신 기간에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고,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고 한다. 아이를 잉태한 임산부라면 지극히 당연한 행동 아닐까? 평소 음주와 흡연을 즐겼더라도 적어도 임신 중에는 삼가려고 신경을 쓰는 것이 당연하다.

또 출산 후에는 아이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고 하신다. 분명히 마노아의 아내에게 이렇게 일렀다. 그런데 아내는 이를 마노아에게 전하면서, 어떤 이유에서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는 말을 쏘옥 뺀다(7절). 그리고 마노아는 임신 중에 어떻게 준비할지는 알겠는데, 출산한 이후에 아이를 어떻게 길러야 할지를 여호와의 사자에게 물어보겠다고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다(8절).

주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 주셔서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셨고, 마노아는 태어날 아이를 어떻게 길러야 할지를 묻는다. 그러자 여호와의 사자는 “마노아의 아내”가 임신 중에 지키라고 한 것을 “잘 지키고”, 태어난 아이도 “마노아의 아내에게 일러 준 모든 것을 지켜야 한다”고 알려 주었다. 중요한 것은 마노아가 하나님께 재차 물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아이를 어떻게 길러야 할지 가르쳐 달라고 기도했다. 자녀를 주님께 물어 가며 양육하고자 하는 그 마음은 꼭 기억해야 할 가치이다.



나는?
*블레셋의 지배를 받는 40년 동안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완전히 메마른 것은 아니었다. 드러나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이름 모를 민초들이 분명 존재했다. 사람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이들은 하나님을 구하고 의지하는 삶을 살았다. 아무리 악한 세상이어도 하나님을 성실하게 믿고 따르는 백성들은 늘 존재하는 법이다.

*이전보다 더 길어진 압제 기간(40년)은 이스라엘의 패역과 하나님의 진노가 극에 달했음을 보여 준다(1절). 죄악에 언제까지나 눈감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은 아니다. 진심으로 돌아오지 않고도 무탈한 죄나 역사는 없다. 어쩌다 잘 넘어간 죄악이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묵인이나 방관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불임의 태를 여시듯, 곤경에 처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구원자를 보내리라 약속하신다(2~5절). 마노아 아내의 불임은 미래도 희망도 없고, 제 힘으로는 대적의 압제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암울한 이스라엘의 상황을 대변한다. 나아가 ‘삼손의 출생’은 압제받던 이스라엘의 미래를 여는 구원의 시작을 예고한다. 이처럼 하나님은 가장 절망적인 시간에 희망의 미래를 열어 주신다. 이제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소망을 주신다. 오늘 우리가 기댈 것도 오로지 이스라엘을 배반과 망각에서 건져 내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성품과 약속이 아닐까?

*사자의 고지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그렇다면 우리는 이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를 묻는 믿음은 평소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없으면 결코 보일 수 없는 행동이다. “마노아가 이르되 이제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12절)”

*태어날 이 아이를 위해 독주와 포도주와 모든 부정한 것을 먹지 말고,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게 함으로써 아이가 ‘태중에서부터 죽는 날’까지 나실인으로서 자신의 신분과 사명을 늘 기억하게 하신다. 앞으로 살게 될 가나안의 우상 숭배 문화와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삶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선민으로 자부하기 전에 먼저 성민으로 자라 가기를 바라셨다. 지금도 하나님은 나와 우리 자녀가 세상에서 ‘힘 있는 자’가 되기보다 ‘하나님을 아는 자’로, 세상을 닮지 않고 세상과 다르게 살기를 바라신다.

*마노아는 아내를 통해 아이의 출생과 사명을 들었지만, 직접 들려 달라고 구했다. 그만큼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열망이 있었다는 것이다. 마노아의 열정이 새삼 그립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일방적인 구원 계획을 실행하시면서도, 재차 묻는 자녀의 간구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처럼 놀랍다.

*더구나 블레셋에게 40년간 압제를 받으면서도 이것이 압제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그래서 하나님께 부르짖지도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준비하심이라는 것이 더욱 놀랍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런 사랑이다.

*하지만 본문의 안타까운 점은, 이제 이스라엘이 이방의 압제를 압제로 여기지 않을 만큼(15:11) ‘가나안화’되어 더 이상 ‘부르짖음’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누구에게’ 부르짖어야 할지 잊었는지도 모른다. 은혜에 대한 망각, 가나안이 주는 풍요와 오랜 압제가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영적 감수성’을 무디게 하고, 거듭 악을 자행할 만큼 영적인 만용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 기도제목

*주님, 이스라엘이 부르짖지 않아도 구원하시기 위해 준비하시는 사랑이 감동입니다. 그 사랑에 감사합니다.
*주님, 구원하시기 위해 아기를 보내 주시는 모습이 예수님을 생각나게 합니다. 예수님을 보내 주셔서 구원의 문을 열어 주신 사랑을 기억하겠습니다. 그 사랑을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