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삼손의 제멋대로인 삶과 하나님의 구원 역사 [사사기 14:1-20]
 – 2026년 09월 30일
– 2026년 09월 30일 –
삼손이 블레셋의 딤나에 사는 한 여인과 결혼하는 이야기이다. 하나님의 복을 받고 자란 삼손, 여호와의 영이 움직이시던(13:24-25) 삼손의 모습이 맞나 싶다. 참담한 것은 블레셋의 40년 통치 아래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에 그다지 가치를 두지 않는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1. 삼손에게서 보이는 이스라엘의 상태(1-4절)
삼손의 부모는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인을 아내로 삼겠다는 아들의 말에 낙담한다(2-3절). 삼손은 부모의 마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라고 조른다. 그러고서 부모와 함께 딤나로 내려가 ‘상견례’를 한다.

딤나의 포도원에서 어린 사자 한 마리가 달려들 때,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세차게 내리덮치자 그는 아무런 도구 없이 맨손으로 사자를 염소 새끼 찢듯이 찢어 죽인다. 하지만 이 일을 부모에게 말하지 않는다(5-6절). 삼손은 딤나의 여인을 무척이나 좋아했다(7절).

시간이 지나 결혼식을 하기 위해 다시 딤나로 내려가는 길에, 자신이 찢어 죽인 사자의 주검에 벌 떼가 있고 꿀이 고여 있었는데(8절), 삼손은 이를 떠먹는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부모에게도 가져다준다(9절).

*삼손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다. 하지만 삼손도 피 끓는 청춘이다. 이성에 대한 마음도 감출 수 없다. 문제는 블레셋 여인을 마음에 두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하려는 이방 결혼을 부모님께 끝까지 고집한다. 당시 세계관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인데도 부모의 반대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 충격적이다. 아버지의 권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삼손은 사사로 부름받은 과정이 앞의 11명과 다르다. 그들은 모두 성인이 되었을 때 세워졌지만, 삼손은 잉태되기도 전에 부모의 특별한 준비로 구별된 나실인으로 길러졌다. 그런데 실망스럽다.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따라 결정하고 움직였다. 나실인의 본분은 저버리고 정욕을 따라 행동한다. 딤나의 여인과 결혼하기 위해 그 지역으로 들어가 7일 동안 잔치까지 벌이며 그 지역 청년들과 어울렸다. 사사로서의 구별된 모습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삼손은 나실인으로 태어나 자랐지만, 경건의 모양은 몸에 배어 있지 않다. 나실인으로서의 가치와 철학을 따라 사는 삶이 아니라, “자기 눈에 좋아 보이는 대로” 기분과 생각에 따라 행동하는 즉흥적인 사람이었다.

*사사였지만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함께 연대하지 않았고, 그저 홀로 기분 따라 움직였다. 이런 이가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사라니…

*그런데 40년 동안 블레셋의 압제를 받고 있는 이스라엘의 상태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하나님 아버지의 권위는 온데간데없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산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구별됨은 찾아볼 수 없다.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결정하고 추구한다. 삼손이나 이스라엘이나 다를 바 없다.

*나는 과연 어떨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님께 떼쓰며 구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뜻과 방법은 상관하지 않고 그저 내 마음대로 행하는 것은, 블레셋 여인을 좋아해서 딤나까지 가서 결혼하는 삼손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유구무언이다… 삼손이나 이스라엘이나 나나…



2. 그런데…(4절)
그런데 성경은 삼손의 이런 행동에 대하여 “이 일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기록했다.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하기 위해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한 것”이라고 했다. 이 구절만 본다면 삼손은 블레셋을 치기 위해 결혼식을 가장하여 블레셋 땅 딤나로 내려간 것이다.

정말 그럴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삼손은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럭비공처럼 톡톡 튀는 삼손의 삶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역사를 진행하셨다는 의미다. 만약 삼손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결혼식을 이용해 틈을 만들었다면, 아내로 맞이한 여인을 이스라엘의 가족으로 데리고 왔어야 마땅하다. 그것이 옳다! 여리고의 기생 라합처럼 말이다. 이런 계획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면 당연히 그래야 했다. 하지만 삼손은 그렇지 않았다. 결국 자신과 결혼한 여인은 “…그의 친구에게”(20절) 주어지고 만다.

도대체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삼손의 됨됨이는 결코 경건하지 않다. *그렇다면 삼손의 이런 막무가내 됨됨이를 통해서라도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베푸시려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사사조차 이처럼 엉망인 하나님의 백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구원 역사의 도구로 사용하시려는 삼손이 엉망진창인 삶을 살고 있어도, 그러한 삶이 하나님의 역사를 가리거나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드러나지 않지만 흔들림 없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또 삼손은 철없이 딤나 여인과 결혼하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틈을 타서 블레셋을 치실 것이다.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의 작당에 이리저리 몰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여인에게 배신을 당하지만, 하나님은 그 “틈”을 타서 이스라엘을 학대하는 블레셋에게 보복하신다.

*무엇보다 심각하게 우려스러운 이스라엘의 블레셋화, 그 상징과도 같은 삼손의 이방 결혼이라는 제멋대로의 계획을 오히려 블레셋을 깨뜨리시는 “틈”으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 제멋대로인 삼손의 럭비공 같은 삶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진정한 통치자 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기 시작하셨다.



나는?
-삼손은 사사로서의 첫 사역을 딤나의 블레셋 여자와 결혼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결혼식에서 낸 수수께끼 때문에 잔치 내내 아내와 갈등하다가, 마침내 아내의 배신으로 내기에 지고 만다. 그는 사사로서, 그리고 나실인으로서 합당하지 않은 행동을 연달아 벌이고 있다.

-이방 블레셋 여인에게 사로잡힌 그는 자신이 언약 백성이라는 것도, 자신의 사명도, 이방인과의 통혼이 결국 이방인들의 삶의 방식을 수용하는 위태로운 일이라는 것도 모두 잊은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눈에 좋은 대로(3, 7절)’ 행동하는 삼손은 ‘자기 소견(소욕)에 옳은 대로(21:25)’ 살아가는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을 반영하고 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내 본분을 잊는 순간, 나도 이 세상에 쉽게 동화되고 말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자란 삼손, 여호와의 영이 임하여 살아간 삼손… 그런데 그 삶은 나실인으로서 거룩하게 구별된 것이 아니라 “제멋대로”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그분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아 애굽에서 탈출했다. 그렇게 거룩하게 구별된 백성으로 세워졌지만, 지금은 제멋대로다. 황당하기 그지없다.

-삼손이 포도원을 찾고, 사체를 만져서 꿀을 먹은 것은 ‘나실인’ 서약을 어기는 일이었다(5-9절). 그는 사자보다 강했지만, 꿀에는 약했다. 대적들은 물리쳤으나 이방 여인의 유혹은 이기지 못했다. 그들의 삶의 방식을 버리지 못했다. ‘꿀에 약한’ 삼손의 모습은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이방인처럼 살던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거룩한 성도이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도 삼손처럼 “제멋대로”다. 거룩하게 구별되는 데 마음을 쏟기보다, “내 마음대로, 내가 좋아하는” 것에 더 심취한다. 삼손과 다를 바 없는 삶이다. 어이가 없다. 하지만 이런 제멋대로의 삶을 사용해서라도 하나님의 백성을 블레셋에게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사랑이 놀랍다.

-삼손이 수수께끼를 내자, 블레셋 사람들은 내기에 질까 두려워 삼손의 아내를 협박하여 답을 알아낸다. 블레셋의 기만적인 행동에 분노한 삼손은 ‘그 틈을 타서(4절)’ 블레셋 사람 30명을 쳐 죽인다. 그는 힘을 과시하려다가 아내를 잃고, 블레셋은 손해를 두려워하다가 동족을 잃는다. 죄를 더하는 관계보다 거룩함을 추구하는 관계를 맺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황당하고 어이없기는 나의 삶도 매한가지 아니겠나… 한량없는 은혜로 부름받아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제멋대로 살아가니, 삼손을 뭐라 할 수 없다. 삼손처럼 “틈” 많은 인생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토록 황당하고 어이없는 “틈”을 놀라운 은혜로 메우시고,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드러내신다!

*삼손의 이야기는 그의 제멋대로인 삶을 감상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 제멋대로의 “틈”을 “기묘하게(신비스럽게)” 메우시면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역사를 드러내는 이야기이다.

*삼손이 태어나기 전부터 하신 약속(13:5)을 이제 하나하나 이루어 가신다. 적의 여인을 사랑한 삼손, 그 삼손을 통해 적을 궤멸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이제 앞으로 펼쳐질 삼손의 생애 한 장면 한 장면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각본과 연출이 될 것이다. 하지만 무대 위의 그 누구도 그 기이한 섭리를 깨닫지 못한다(4절). 하나님은 결국 신자의 궁극적인 구원을 위해 모든 일을 통제하고 경영하실 것이다. 신앙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를 담는 신비의 그릇을 마련하는 일이다.

+ 기도제목

*주님, 늘 제멋대로 “틈”을 벌리며 살아온 인생이었는데, 주님의 역사하심으로 그 틈이 메워졌습니다. 더는 “틈”을 벌리며 살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주님, 사사인가 의심스러운 삼손을 사용하셔서 구원의 여정을 이루셨습니다. 지금도 한없이 부족하고 연약하기만 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도 하나님을 끝까지 붙잡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