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시험을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 [야고보서 1:1-11]
 – 2026년 10월 15일
– 2026년 10월 15일 –
“매뉴얼”, “사용설명서”와 같은 책이 주는 도움은 확실하다. 야고보서는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여러 문제들을 겪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침과 권고를 해 준다. 신약 성경의 여러 책들 가운데 가장 실용적인 책이다.

야고보는 자기의 형 예수를 ‘주요 그리스도’로 부르고 자신을 그의 종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독자들을 영적인 새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이자, 광야를 사는 ‘흩어진 자’로 부른다(1절). 하나님의 백성은 고난과 시련 속에서 믿음을 지켜온 구약 열두 지파의 영적인 후손들이다. 그렇기에 참 본향을 소망하며 이 땅을 광야로 여기면서 나그네로 흩어져 사는 자들이다(벧전 1:1). 이 땅에 천착하여 오로지 땅의 자원으로 안전을 추구하려는 마음으로는 믿음도 지킬 수 없고 본향에 닿을 수도 없다.

야고보서는 이렇게 광야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시험을 당할 때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또 반응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본문은 특히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 이것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지 선명하게 권면한다.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시험(페이라스모스)”은 “test(시험)”과 “temptation(유혹)”의 의미가 함께 있다. 본문은 “시험(test)”의 의미가 더 적합하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음을 전제하고 그 “믿음의 수준”을 확인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차원에서 시험이 오면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담대한 선언이 나온 것이다.

학창 시절 시험 준비가 잘 된 날은(거의 없었지만) 시험아 빨리 내게 오라 하며 오히려 기다렸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날은 빨리 이 시험들이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시험을 치르고 나서 “어! 내 실력이 이 정도였구나!”라고 스스로 확인하고 놀라는 경우가 있었다. 본문은 이런 경우를 가리킨다.

내가 믿음이 있을까? 의심하고, 항상 난 믿음대로 살고 있나? 자문하는 이들이 “시험”을 통해 “아… 내가 믿음으로 살고 있었구나!”를 확인하는 것이다. 희한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더 강렬해진다. 좌절하고 낙망하여 삶의 의지가 꺾일 듯한 상황에서 도리어,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보는 희한한 경험들이 일어난다. 이런 믿음을 확인해 줄 ‘시험(test)’을 만날 때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



1. 기뻐하며 온전한 인내를 이루라(1-4절)

삶에서 시험이 반갑고 즐거운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럼에도 야고보는 한 가지도 아니라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 “기쁘게 여기라”고 말한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생각하십시오.(새번역_2절)” 가당키나 한가? 당장 시험이라는 상처에 더 생채기를 내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3절 말씀이 왜 기쁘게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분명하게 알려 준다.

“믿음의 시련을 받으면 인내력이 생긴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공동번역_3절)” ‘시련(도키미온)’은 시험(test)이라는 뜻이다. 좀 더 풀이하자면 “검증의 과정이나 결과, 상태”를 가리킨다. 시험을 성도의 믿음을 검증하는 과정으로 본 것이다. 믿음의 테스트를 통해 생겨난 “인내”가 웬만한 시련이나 어려움은 쉽게 이겨낼 힘을 길러준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인내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새번역_4절)”

야고보의 가르침에 따르면 시험은 가능한 한 빨리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시험은 누구에게나, 다양한 형태로 예외 없이 찾아온다. 그러나 그 시험이 검증된 믿음과 인내를 만들어내고, 결국엔 우리를 부족함 없는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한다.

지금 당하는 시험은 잠깐이다. 이 시험을 인내를 기르는 기회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너무너무 어렵더라도 말이다. 또 인내해야 할 상황이 기다린다. 그런데 때에 맞춰 주님께서 이 말씀으로 마음을 가다듬게 하신다. 믿음을 더 주시려고, 가려져 있던 믿음을 확인시켜 주시려고, 믿음밖에 없음을 확인하게 하시려고 나에게 “인내”를 주실 것이다.

여기서 ‘인내(휘포모네)’는 단순히 참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무거운 짐 아래 머물러 끝까지 견디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우리가 끝까지 견딜 수 있는 것은 우리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고 놓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성도가 시험 속에서 인내하는 그 자리에, 우리를 끝까지 붙드시는 하나님의 손이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의 길을 이끌어가시는 “견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시험의 과정에서 우리를 이끌어 가심을 확인할 때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에 있을까? 그러니 여러 시험을 당할 때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주님께서 이끄시는 것을 확인할 뿐더러 이를 확인할 때까지 우리의 마음을 지긋이 인내하도록 도와주셔서 인내의 레벨을 올려 주신다! 웬만한 시련이나 어려움을 쉽게 이겨낼 힘을 길러주는 “여러 가지 시험”… 힘들고 어렵더라도 부딪혀 봐야 하리라.



2. 참 믿음으로 지혜를 구하라(5-8절)

그런데 시험을 당하다 보면 자신의 한계가 분명히 느껴진다. 이 시험을 대처하는 나의 지혜가 왜 이리 부족한지 절감한다. 이렇게 부족함을 느끼고 지혜로움을 찾을 때 누구에게 이 지혜를 빌려야 하는지 구분을 못할 때가 많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인생은 가까운 사람, 의지할 만한 사람, 시험 당하는 분야의 전문가에게 지혜를 구한다. 또, 요즘은 인터넷을 뒤지면서 지혜를 구한다.

하지만 순서가 틀려도 한참 틀렸다.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시고 나무라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받을 것입니다.(새번역_5절)” 먼저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그런 다음 이런저런 것들을 살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란 시험을 하나님의 안목, 영원의 안목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하지만 하나님께 구하는 것에도 중요한 태도가 있다.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믿고 구해야 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마치 바람에 밀려서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께로부터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그는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이요, 그의 모든 행동에는 안정이 없습니다.(새번역_6-8절)”

의심하지 말고 구해야 한다(6절). 의심하며 구하는 것은 받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7절). 야고보 사도는 이런 사람의 특징을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이라고 단정한다. 늘 두 마음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기에 그의 삶에 “안정감”은 없다. 두 마음을 품는 것이란, 시험을 만난 상황을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보다 더 크게 여기는 것에서 비롯된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겠다면 차라리 자신의 믿음 없음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믿음을 구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

그러니 시험의 때에 구하는 ‘지혜로운’ 반응은 의심하지 말고, 두 마음을 품지 말고, 정한 마음으로 구하는 것이다. 모든 상황을 통제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구하고, 이 시험을 통해 나의 혼돈을 질서로 바꾸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구하라는 의미다.

시험을 만날 때 사람들의 지혜를 얻기 위해 인터넷을 뒤적이며 시간을 보내지 않는가? 그러느라고 정작 기도하는 시간을 내지 않는 것 아닌가? 지혜를 구하는 기도가 우선이다. 어려울수록 하나님께 기도부터 해보자! 후히 주시고 아끼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지혜가 임한다!



3. 성도가 자랑해야 할 것_물질에 대한 시험(9-11절)

이 단락에서 갑작스럽게 ‘부와 가난’이라는 주제로 바뀌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어지는 12절에서 다시 시험의 주제를 다루는 문맥으로 보아 이 부분도 역시 시험과 관련이 있다. 재물이 시험의 원인이 된 상황, 구체적으로는 부유한 불신자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가난한 성도의 상황으로 보인다.

살다 보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대부분 자신의 부함, 성공, 명예, 힘을 자랑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도 똑같은 것을 자랑해야 할까? 아니다. 야고보는 그리스도인이 자랑할 것은 세상에서의 처지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얻은 새로운 신분이라고 말하며 놀라운 반전을 선언한다.

“비천한 신도는 자기가 높아지게 된 것을 자랑하십시오.(새번역_9절)” 세상의 부요함을 가진 것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그 안에 계신 주 예수님의 부요함을 자랑해야 한다. 성도는 주 안에서 상속받은 하나님 나라의 부요함과 자유함이 있기에 마땅히 그의 나라와 의를 자랑해야 한다.

반대로 “부자는 자기가 낮아지게 된 것을 자랑하십시오. 부자는 풀의 꽃과 같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새번역_10절)” 야고보는 이사야 40:6-7의 풀과 꽃의 비유를 통해 부한 자의 삶이 유한함을 일깨운다. 세상의 부요함은 뜨거운 바람에 잠시 피었다 지는 꽃과 같기에, 부한 자는 그것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을 오히려 자랑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야고보의 실제 관심은 가난한 성도에게 있었다. 가난으로 인해 시험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미래의 영광을 바라보며 현재에 대한 관점을 바꾸고, 인내로 견디며 성도의 삶을 지속하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자랑하는 것이 무엇일까? 자랑하고픈 것이 무엇일까? 세상의 것들이 아니라고 확언할 수 있을까? 아니다. 나는 늘 세상적인 명예와 성공과 부함을 자랑하고 싶다. 그래서 성공하고 싶고, 명예를 얻고 싶으며, 부자가 되고 싶다. 목사의 길을 걷고 있어도 이런 유혹이 심심치 않게 찾아온다. 그 시험의 순간, 우쭐하며 자랑하고 싶은 것이 세상의 성취가 아니라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위대한 사랑, 그 깊이와 넓이를 측량할 수 없는 사랑으로 내가 누리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부요함이어야 한다.



나는?

*지금 내가 지나고 있는 시험은 무엇인가? 그 시험을 빨리 없어져야 할 장애물로만 보고 있지는 않은가? 이 시험이 내 믿음을 확인하고 인내를 길러 나를 온전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손길임을 믿고, 오늘 그것을 ‘기쁘게’ 여기는 연습을 해 보자.

*시험 앞에서 나는 누구에게 먼저 지혜를 구하는가? 사람과 인터넷을 찾기 전에 먼저 무릎을 꿇고 있는가? 의심과 두 마음이 있다면 그것부터 솔직히 고백하고 믿음을 구하자.

*돈은 많든 적든 시험이 될 수 있다. 재물은 없어서는 안 될 자원이지만, 자칫 사람보다 귀히 여기고 심지어 하나님을 대체할 우상이 될 수 있음을 간과하면 안 된다. 적다고 불평하고 많다고 안주해서도 안 된다. 가진 것이 없어도 주께 인정받아 높아진다면, 가진 것이 많아도 주를 향한 열망에 내 마음이 가난해진다면 그것으로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 백성 아니던가.

*가난해도 하나님 앞에서 받을 영광이 있으면 자랑거리가 되지만, 부자여도 하나님께 받을 영광이 없으면 수치가 될 것이다. 나는 유한한 돈의 영광과 쇠하지 않는 하늘의 영광 가운데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기도로 이 지혜를 얻는 것이 돈으로 영혼을 황폐하게 하는 이 시대를 이기는 길이다.

+ 기도제목

*주님, 시험을 만날 때 지혜를 구하며 인내하게 하소서.
*주님, 시험을 만날 때 가장 먼저 기도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하소서.
*주님, 나에게 베푸신 놀라운 사랑이 나의 자랑거리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