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기다림… [야고보서 5:7-12]
 – 2026년 10월 24일
– 2026년 10월 24일 –
시험이 가득한 세상에서 주님께서 강림하시기까지 마음을 굳건하게 하며 인내해야 한다. 그 인내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믿는다고 해서 그날로 인생이 확 바뀌는 것은 아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해도 인생의 문제가 순식간에 사라지지는 않는다. 고통과 번민은 여전히 삶을 쥐고 있다. 야고보의 편지는 바로 이런 그리스도인들에게 전달되었다. 승천하실 때 다시 오시겠다고 하신 주님(행 1:11)은 아직 오시지 않았고, 성도들은 삶의 중심이었던 예루살렘을 떠나 박해를 피해 흩어졌다(1:1; 행 8:1). 계속되는 흉년에 삶은 팍팍하기만 하다. 외부에서 위협하는 핍박도 여전하다. 공동체 내부에서는 서로 원망하는 일까지 생겨났다.

야고보는 이런 성도들의 삶에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그들을 어떻게 위로해 줄 수 있을까? 믿음의 삶을 응원해 주고 싶은데 무엇이 좋을까? 그 고민들이 야고보서에 담겨 있다. 그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말씀으로 권면한다. 무조건 믿고 기다리라 하지 않고 “믿음의 행동, 사랑의 실천”을 권면한다. “말씀”이라는 생명의 씨앗은 반드시 싹을 틔우기 마련이니 “기다리라”고 한다. 본문에서 “기다림”이라는 단어가 애잔하게 다가온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주님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어떻게 “기다리며” 살아가야 할까?



1. 열매를 바라보며 “길이 참아” 기다려라(7~8절)
주님의 강림을 기다리는 것은 나의 시간표에 따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아시는 그때를(마 24:36) 바라보며 기다려야 한다. 인내의 동기와 에너지는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약 5:7)”

교회 공동체 안팎에서 “여러 가지 시험”과 “시련”이 끊이지 않았다. 외부에서 오는 “핍박”뿐 아니라 내부의 “차별”로 인한 분열의 문제도 있었다. 이런 갑갑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을 바라보며 길이 참고 인내해야 한다. 마치 농부가 수확의 열매를 바라보며 인내로 농사를 짓는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의 백성도 이와 같이 다시 오실 주님과 함께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성실하게 인내해야 한다.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8절)” 두 절 안에서 “길이 참음”을 세 번이나 반복하는 것은 인내의 상황이 계속될 것을 암시한다.

*신앙은 길이 참음의 시간들로 채워지는 듯하다. 바라고 원하는 것이 재깍재깍 이루어지기보다, 믿음이 거듭 확인되고 나서야 누리게 되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한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현실감이 세상 속에서 점점 희미해지는 것이 두렵다.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마음이 희미해질수록 신앙이 메말라 가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세상 속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에너지가 된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길이 참고 기다리는” 신앙은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과 함께 간다. 나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사모하는 마음이 메말라 가지 않기를 소망한다.



2. 서로 원망하지 말라(9~10절)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서로 원망하고 책임을 묻는 일이 비일비재해질 것이다. 스스로 책임지기보다 할 수만 있다면 떠넘기고 외면하는 풍조가 거세질 것이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이런 세상 풍조를 따르지 않아야 한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9절)”

“원망하다(스테나조)”는 본래 “탄식하다, 신음하다”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다른 이들에게 책임을 돌리며 계속해서 불평과 불만을 쏟아낸다”는 의미로 쓰였다.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린다”는 뉘앙스도 함께 담겨 있다.

교회 안에 차별의 문제뿐 아니라 서로 책임을 전가하며 불평과 불만을 쏟아 내는 일이 있다는 것은, 교회가 그만큼 분열되어 가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교회는 믿음을 지키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 시작은 “서로 원망하지 않는 것”이다.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한 예언자들을 고난과 인내의 본보기로 삼으십시오.(새번역_5:10)” 선지자들은 자신들의 예언을 듣고 돌을 던지며 무시하고 외면하는 이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바라보았기에 백성들의 반응에 흔들리지 않았다. 이처럼 흔들리는 믿음의 위기 속에서 “주님의 다시 오심”을 굳게 바라보며, “원망(불평과 불만)”하지 않고 “길이 참아” 기다리자…



3. 주님의 자비와 긍휼을 바라보라(11절)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11절)”

끝까지 인내한 욥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알고 있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주님(빌 2:8)을 보고 믿었기에, 하나님 나라 백성도 주님의 자비와 긍휼을 의지해야 한다.

욥이 고난당할 때 외면하지 않으시고, 길이 참고 기다린 그에게 갑절로 회복시켜 주신(욥 42:10) 하나님의 은혜를 믿으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욥과 선지자들에게 앞서 이런 삶을 살게 하셨음을 상기시키면서, 이제 우리도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응원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살기 위해 고통의 시간을 먼저 살아간 선진들이 있다. 히브리서는 그들을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히 12:1)”이라고 말한다. 나에게 주어진 삶도 믿음의 후손들에게 남겨질 것이다. 그때 “증인”으로 남아야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믿고, 오늘을 “길이 참고 원망하지 않으며”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려야지… 인내하는 자가 복되다!



나는?
-“기다림”… 삶을 살다 보면 무수한 기다림을 경험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때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어땠을까?” 하고 후회하는 순간이 꽤 많다. 이런 이불킥할 만한 상황은 놀랍게도 대부분 “나의 성급함” 때문에 일어났다. 좋게 말하면 “결단력”이지만, 그 대가가 꽤 오래가는 경우도 있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기다림”은 어떨까? 오히려 너무 안이하다 싶을 정도로 의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의식하지 않으니 “기다림”의 믿음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더구나 이단들의 단골 메뉴가 “계시록, 재림” 같은 것이다 보니 되레 더 무감각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부끄럽게도 주님의 강림보다 이 세상에서 더 간절히 기다리는 것들이 많다. “성공, 명예, 재물, 취업, 승진, 성취…” 주님의 재림보다 이런 것들을 더 간절히 기다린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고 여겨 성취하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커질수록, 주님의 다시 오심을 망각하는 지수는 더 높아진다. 말씀이 경고하는 그대로다. “여러분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속에는 하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이 세상도 사라지고, 이 세상의 욕망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새번역_요일 2:15, 17)”

-기다릴 만한 것을 “길이 참으며” 제대로 기다려야지… 이 세상에서 잠깐 지나갈 욕망을 기다리다가 정작 기다려야 할 것을 잊어버리면 안 되지… 그럼, 그렇고말고…

-믿음의 길에서 곤고함에 지친 이들에게 진정한 위로는 사라질 세상의 허상이 아니라 “영원히 남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야 함을 다짐해 본다.

-한편으로는 성급함이 신앙을 망치는 경우도 있음이 생각난다. 나 자신부터 “지긋한 기다림”으로 주님의 다시 오심을 바라보는 삶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데… 실상 그렇지 못한 부분을 감출 수 없다. 성도들이 거쳐야 할 “성숙해 가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 섣불리 개입하고 어리석은 가르침을 앞세우다가, 되레 부담을 주어 믿음의 생명이 꺼져 버리게 한 경우가 왜 없었을까? 메주를 만들자마자 장을 담그는 격이다.

-나의 성급함이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생명의 호흡을 막고 있지는 않은지… 기다림이 없으면 성숙할 수 없음을 늘 기억해야 하겠다. 좋은 장맛을 내려면 충분한 발효에 꼭 필요한 시간을 느긋하게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이 좋은 장맛을 가져온다. 기다림이 성숙한 신앙을 영글게 한다.

-나의 성급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돌보심을 더 신뢰해야지…

+ 기도제목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길이 참고 기다리겠습니다.
*주님, 기다림 속에서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욥과 선지자들을 대하신 주님의 긍휼과 자비를 바라봅니다.
*주님, 나의 성급함이 하나님 나라를 망치지 않도록 분별과 기다림을 주십시오. 남에게 잘 익으라고 다그치는 제가 아직도 덜 익어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