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날 때 [야고보서 5:13-20]
 – 2026년 10월 25일
– 2026년 10월 25일 –
야고보의 마지막 권면이다. “기도”와 “진리를 떠난 형제를 돌아오게 하는 것”을 다룬다. 기도는 야고보서를 시작하면서 언급한 “여러 가지 시험”(1:2)을 마주할 때 취해야 할 구체적인 믿음의 행동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야고보는 기도를 언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상황을 들어 구체적으로 권면한다.



1. 고난당할 때, 즐거워할 때(13절)
“여러분 가운데 고난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송하십시오.(새번역_5:13)”

고난과 즐거움은 삶의 어떤 순간에든 찾아온다. 극심한 고난도, 최고의 기쁨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이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 ‘살다 보면’ 누구나 직면하게 되는 고통과 기쁨이다. 야고보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일상의 모든 순간에 세상에 속한 이들과 달리, 고통과 기쁨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기도와 찬송을 하라고 권면한다.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의식하며 살라는 의미겠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능력 밖에 있는 일들을 만날 때 의지할 분은 하나님밖에 없음을 말과 행동으로 보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고난과 기쁨의 상황에서 세상처럼 사람이나 제도에 하소연하거나 환호성을 지르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내어놓아야 한다. 삶의 모든 정황을 하나님의 주권 앞에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기도는 자신의 능력 밖에 있는 고난에 맞설 힘을 구하는 겸손이고, 찬송은 기쁨이 넘치고 넘칠 때 기쁨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구체적인 행동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 백성에게는 기도와 찬송이 늘 먼저여야 한다.



2. 병들었을 때(14~18절)
육신의 병이 찾아올 때 절망과 외로움, 당혹감 같은 마음의 불청객도 함께 찾아온다. 사실 이런 마음이 육신의 질병보다 더 큰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육신의 질병과 함께 어느새 마음을 잠식한 불안과 염려, 절망과 외로움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먼저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라고 권면한다(14절). ‘장로’로 번역된 단어(프레스뷔테로스)에는 “연장자, 연륜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다. 직분상의 ‘장로’라기보다 공동체 안에서 영육 간에 연륜이 있는 “어른”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더 낫다. 15절의 “믿음의 기도”와 16절의 “간절히 비는 기도”가 지닌 능력을 언급하는 것을 보면, 이들을 “기도의 용사”, “믿음의 용사”로 이해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 주목되는 것은 “청하라(부르라)”는 말이다. 믿음의 방법, 믿음의 시도를 먼저 하라는 것이다. 용한 의원을 찾도록 도와주라거나 신박한 약재를 구해 주라는 식의 권면이 아니라, “믿음으로 함께 기도해 줄 공동체의 어른”을 찾으라는 것이다. 당시에 기름은 상처와 병을 다스리는 일반적인 치료제였다(눅 10:34). 그런 일반적인 의술과 약재를 사용하는 것(기름을 바르고, 14절)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주의 이름으로… 그를 위하여 기도할” 사람을 찾으라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고 믿으라는 의미다. 세상의 방법보다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는 믿음의 행동을 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할 구체적인 근거로 “엘리야의 기도”를 예로 든다.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인 엘리야가 “간절히 기도”하자 삼 년 육 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고, 다시 기도하자 하늘이 해갈의 단비를 내렸음을 상기시킨다(17~18절; 왕상 17:1, 18:42~45).

그렇다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그러므로 여러분은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낫게 될 것입니다. 의인이 간절히 비는 기도는 큰 효력을 냅니다.(새번역_5:16)” “서로” 공감하고 이해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다. “서로”… 한국 교회에는 이와 관련해 매우 부적절한 모습이 있다. 병이 나면 “죄의 결과”로 생긴 것이라며 당사자에게 과도하게 “회개”를 촉구하는 모습이다. 발병의 원인을 그의 죄로 단정하고 “회개하면” 치유해 주실 것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결코 그렇지 않다. 병이 낫는 은혜는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통해 임하는 것이지 “회개의 기도”를 조건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권능이 아니면 결코 치유될 수 없음을 고백하는 믿음의 기도에는, 혹시 죄를 범하였더라도 사죄의 은혜가 베풀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15절). 이를 보면 무조건 회개의 기도만이 치유의 열쇠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의 기도”다.

하나님의 치유하심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공동체의 장로들을 청할 수 있고, “간절히 비는” 기도를 드릴 수 있다. 여기에 그 병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마음을 “서로” 공감하고 어루만지며 “서로를 위하여” 기도할 때 낫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병들었을 때는 어떤 기도보다 “믿음의 기도”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믿음의 기도는 기도의 도움을 청하는 기도이고, 간절히 매달리는 기도이다. 또한 서로 마음을 나누고 소통하며 함께 드리는 기도이기도 하다.



3. 공동체(지체)를 포기하지 않는(19~20절)
공동체 안에서 “진리”를 떠난 지체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도 구체적인 믿음의 행동이다. 하나님은 지체를 포기하지 않는 그를 극찬하신다. “…누구든지 그를 돌아서게 하는 사람은, 이 사실을 알아두십시오. 죄인을 그릇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사람은 그 죄인의 영혼을 죽음에서 구할 것이고, 또 많은 죄를 덮어 줄 것입니다.(새번역_5:19하~20)”

두말해서 무엇하겠나…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 고난 중에 혹 신앙을 저버릴 수 있다. 끝까지 인내하지 못하는 연약함이 그를 잠시 떠나게 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연약해진 이들이 다시 용기를 내어 주의 진리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는 것이다. 스스로 그 길을 찾고 용기를 내어 다시 문을 두드리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힘든 일이다. 먼저 문을 열어 주고, 들어오도록 손을 잡아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그 어떤 믿음의 행동에도 뒤처지지 않는 가치 있는 행동이다.



나는?
-무조건 기도하라는 명령인 듯하지만, 곱씹어 볼수록 소통과 공감, 자비와 긍휼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행하라는 명령이다.

-고난을 만날 때나 즐거워할 인생의 순간에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라는 것이다. 자신에게 일어난 하나님의 역사를 드러내라는 것이다.

-병듦에 지친 영혼과 고통을 나누고 공감하는 최고의 방법은 함께 듣고 함께 기도하는 것이다. 최고, 최선의 소통과 공감은 나눔과 기도이다.

-1세기 성도들의 삶은 곤고하기 짝이 없었다. 여러 해 이어진 흉년(행 11:28)으로 늘 배고팠고, 유대인들의 핍박은 사그라들지 않았으며, 로마 제국 아래에서 신생 종교로서 늘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핍박은 점점 노골화되어 갔다.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빼앗겨도 사회와 제도, 정부가 그 억울함을 지켜 주지 않았다. 세상의 눈에 그리스도인들은 이단아였기에 당해도 싸다고 여겨졌다.

-세상은 그렇게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을 조리돌림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셨다. 끝까지 함께하셨다. 친히 함께 조리돌림당하셨다. 그 하나님의 함께하심에 기대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전적 의지”였다. 기도와 찬송은 전적 의지의 구체적인 표현이었다.

-나의 일상에서도 이런 “전적 의지”의 열매가 사그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 기도제목

*주님, 고난과 기쁨의 순간에 기도와 찬송이 가장 먼저 표현되게 해 주십시오.
*주님, 나눔과 기도라는 최고의 소통과 공감으로 살게 하소서.
*주님, 한 지체라도 잃어버리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