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하나님이 주신 권력, 하나님의 뜻대로 [단 4:19-37]
 – 2022년 11월 10일
– 2022년 11월 10일 –
느부갓네살 왕의 질문에 다니엘이 막힘 없이 대답한다. 막힘없는 해몽대로 그대로 이루어진다.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해석대로 전달했기 때문이다. 느부갓네살 왕은 이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고 난 후에야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인정한다. 무한할 것 같았던 자신의 권력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 처절하게 깨닫고 난 뒤에야, 권력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했다. 오직 여호와만 높임을 받으셔야 한다는 그의 고백은 적어도 이 순간 만큼은 진실했다.
 
 
 
1.해석(19-27절)
왕의 꿈 이야기에 이번에는 다니엘이 “번민”한다(19절). 하지만 번민하지 말고 해석하라는 왕의 명령을 따라 해석하기 전 자신의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한다(19절). 그만큼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꿈의 해석은 매우 곤란스러운 내용이었다.  왕에 대한 심판의 선언이었기 때문이었다. 왕에게 권세를 준 이가 하늘의 하나님이신데, 왕이 사람의 마음을 잃고 짐승의 마음으로 살았으니 이제 하나님께서 그를 모든 것을 다스리는 영광의 자리에서 내려와 짐승의 자리로 가게 하실 것이라는 내용이다. 다니엘은 이 일이 왕을 미워하는 자에게서 일어나야 할 일이라고 안타까워 한다.
 
왕은 꿈을 통제 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다니엘의 해석도 통제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내가 원하는대로 듣고 싶어하는 시대이다. 하지만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나의 상황을 맞추어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주시는 말씀이다.
 
*내가 원하는 말씀으로 읽고 들으며 곱씹어 말씀을 왜곡 해서는 안 된다. 그저 들려 주시는 대로 깨닫고 그 말씀 안에 담긴 의미를 깨닫기를 추구하고 순종함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때로는 말씀이 선포 된 대로 댓가를 치뤄야 한다. 때로는 말씀 때문에 감당해야 할 삶의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2.해석이 가르치는 것_하나님이 주신 권력임을 아는 것(17, 25, 32절)
“이것은 감시자들이 명령한 것이며, 거룩한 이들이 말한 것이다. 이것은 가장 높으신 분이 인간의 나라를 지배하신다는 것과, 뜻에 맞는 사람에게  나라를 주신다는 것과, 가장 낮은 사람을 그 위에 세우신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도록 하려는 것이다.”(새번역_17절)
 
“임금님은 사람에게서 쫓겨나셔서, 들짐승과 함께 사시며, 소처럼 풀을 뜯고,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에 젖으실 것입니다. 이렇게 ⑥일곱 때가 지나간  뒤에, 임금님은 비로소, 가장 높으신 분이 인간의 나라를 다스리신다는 것과, 누구든지 그의 뜻에 맞는 사람에게 나라를 주신다는 것을 깨달으실  것입니다.” / ⑥또는 ‘일곱 해'(새번역_25절)
 
“너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뜯어먹을 것이다. 이와 같이 ⑧일곱 때를 지낸 다음에야, 너는 가장 높으신  분이 인간의 나라를 다스리신다는 것과, 그의 뜻에 맞는 사람에게 나라를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⑧또는 ‘일곱 해'(새번역_32절)
 
 
*해석이 가르치는 것은 분명하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 나라를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 아는 것”이다. 세상에는 자신이 하나님인양 행동하는 사람들이 넘쳐 난다. 자기에게 지금 누리고 행사하는 권한을 주신 “하늘의 왕”이 계신 줄 모르고 자기의 권한이라고 여기며 자기 욕심만 가득 채우는 이들이 넘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그 권한들을 빼앗고 그들을 한없이 낮추셔서, 하늘의 하나님이 그들을 다스리고 계심을 알게 하실 것이다.
 
 
 
3.해석이 가르치는 것_권력은 공의로움과 자비로움이 함께 있어야 한다(23-27절)
하나님께서 나무를 베어내기로 정하셨다. 왕은 왕궁에서 쫓겨나 야인으로 지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일은 실현된다. 그런데 이것이 왕의 최종 운명은 아니었다.
 
먼저 다니엘의 선언은 즉시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 열 두달이 지난 후에(29절) 응답 되었다. 그 전까지 다니엘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권면한다. 마누가 베이겠지만, 그루터기는 남을 것이라는 메세지를 전하면서 “혹시 왕이 깨닫고 공의를 행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면 왕의 나라가 다시 견고해 질 것이라고 권면한다(27절).
 
 
*먼저 하나님은 이 꿈과 해석을 통해 이 세상의 통치자들에게 “공의로움”을 원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니엘의 해석은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을 벌하시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가 가난한 자를 학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임금님은 저의 조언을 받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공의를 행하셔서 임금님의 죄를 속하시고, 가난한 백성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죄를 속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면 임금님의 영화가 지속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새번역_27절)
 
*그리고 다니엘이 왕에게 부탁한 것은 왕이 하나님께 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왕이 이웃에게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그의 회복은 그렇게 행할 때 확실하게 될 일이 아닌, “혹시” 있을 지 모르는 가능성이라고 말한다.
 
*다니엘은 조심스러웠고, 안타까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해석의 테두리 안에서 최선을 다해 왕이 하나님 앞에서 그의 주권을 인정할 때 나타나야 할 모습을 요청한다. 다니엘의 이와 같은 권면은 이후 해석이 예언이 되어 이루어진 심판 속에서 왕이 회개할 때 회복이 시작되었음을 알게 한다.
 
 
*결국 왕은 하나님께서 주신 왕이라는 권력을 공의와 자비로움으로 행사했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오늘날 이 땅의 지도자들이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권력은 군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의로움과 자비로움 조화로운 통치를 위한 도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다니엘의 해석은 예언이 되었다. 그리고 그 예언은 성취 되었다. 왕궁에서만 이루어진 대화가 아니었다. 오고 오는 세상에 대한 예언의 장이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그 삶을 간섭할 때, 그 순간만의 말씀이 아니라 왕궁을 넘어서 세상을 향한 공적 선포가 된 것이다.
 
-오늘 내가 믿는 복음의 말씀을 고백하고 선포하는 것은 단지 사적인 믿음의 고백에 멈추지 않는다. 나의 나지막한 목소리의 고백이라도 하나님의 주권이 드러나며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게 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공적 선언의 행동이다.
 
-우리의 고백과 선포, 선언이 예배당 안에서만 울려 퍼지는 소리가 아니라 일상의 삶의 현장에서 세상을 향해 들려지는 고백과 소리가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느부갓네살에게는 이미 하늘의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주어졌었다. 그를 깊은 번민으로 빠지게 하였던 꿈과 해몽에서, 두라 평지에 큰 신상을 세우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풀무불에 던졌지만, 멀쩡히 살아나온 그 때 이미 하나님은 자신의 하나님 되심을 다니엘을 통해, 그리고 세 친구들을 통해 드러내셨다. 하지만 여전히 교만했다.
 
*인생은 늘 기회를 놓친다. 그러면서 늘 기회를 찾거나 기다린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는 별 볼일 없이 보이는 듯 하고 내가 원하는 기회가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인 듯 보이게 한다. 아.. 이런 무지한 인생을 어찌할까?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했지만, 하나님의 주권은 관심 없었다. 그러나 이 일을 통해 확실하게 깨닫는다. 그리고 짐승처럼 살다 다시 회복된 후 주저 없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높인다. 그러므로 잊어서는 안된다. “…. 과연 그가 하시는 일은 모두 참되며, 그의 모든 길은 공의로우니, 그는 교만한 이를 낮추신다.”(새번역_37절)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에게 권력을 허락하신 목적은 분명했다. “자기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력”임을 아는 것(25, 26, 32절),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과 압제 받는 자들에게 “공의와 자비”를 베풀 힘의 도구로(27절),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고 드러내며,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행하라고(34, 37절) 주신 것이다.
 
*역사 속에서 강력한 권력을 행사한 이들의 공통점은 “교만”이다. 독일의 히틀러는 전체주의화 하려는 그의 정치철학에 대해 개신교 목사들이 경고하자, “하나님은 하늘이나 잘 다스리라고 하시오. 나 히틀러는 이 땅을 책임 지겠소!”라고 했다. 옛 소련의 스탈린이 카톨릭 교회의 수녀들을 학살하자 교황청이 항의하는 것에 대해, “교황 그 자에게 탱크 여단이 몇 개나 있다고 함부로 입을 놀리나?”고 했다.
 
*오늘날 중국, 미국의 제국화 … 러시아의 오판과 교만에 따른 우크라이나 전쟁… 모두가 지도자들의 오만과 무지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느부갓네살의 이야기가 반면교사가 되어야 한다.
 
 
*반면 예수님은 자신에게 절하면 천하 만국을 주겠다고 유혹하는 사탄을 꾸짖으셨다. “주 너의 하나님만 경배하라!”고 단언하신 주님은 자신을 낮춰 종의 모양으로 오셔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는 섬김의 종으로 본을 보이셨고,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구원의 문을 여셨다.
 
*그리스도인은 주님께서 이렇게 열어 주신 하나님 나라를 오늘 내 삶의 사리에서 살아가는 자들이다. 베드로는 이런 그리스도인들을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지칭했다. 왕의 존재는 가난한 자들, 압제받는 자들을 위해 하나니몍서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지팡이”와 같다. 의지하고 붙잡게 하여 삶의 의지와 소망을 놓지 않게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 안팎에서 “강한 자가 연약한 자를 당연히 돕고 섬기라(롬 15:1-3, 엡 4:28)”고 했다. 야고보 사도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차별에 대하여 강하게 질책하였다(약 2:5-9; 5:1-6).
 
 
 
 
*주님, 공의롭고, 겸손하게 살겠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겠습니다.
*주님, 늘 기회를 주지만 늘 기회를 놓치는 인생임을 깨닫습니다. 잘 분별하도록 자비를 베푸셔서 주시는 기회를 놓치지 않게 도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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