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세상의 힘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한다 [이사야 21:1-17]
– 2026년 08월 08일
– 2026년 08월 08일 –
이사야 21장은 바벨론과 두마, 아라비아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다. 당시 바벨론은 앗수르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변 나라들과 연합하려 했고, 남유다의 히스기야 역시 바벨론과 손을 잡아 앗수르에 맞서는 것을 고민했다. 사람의 눈에는 여러 나라가 힘을 합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안전한 방법처럼 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이 결국 무너질 것임을 이사야에게 보여주신다.
이사야가 본 바벨론의 멸망은 너무나 처참하여 해산하는 여인과 같은 고통을 느끼게 했다. 특히 유다가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결국 무너질 바벨론을 의지하려 하는 현실을 바라보며 더욱 고통스러워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 결과를 보여주셨음에도 사람들은 눈앞의 형편과 자신의 판단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하나님보다 사람의 힘과 정치적인 계산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준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파수꾼을 세우신다. 파수꾼의 역할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숨기거나 자기 생각대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가 전하는 소식은 때로는 불편하고 두려운 내용이지만, 성읍과 백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전해야 한다. 결국 파수꾼은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라고 외치며 바벨론과 그 우상들의 몰락을 알린다.
우리 역시 하나님을 알고 말씀을 들은 사람으로서 이 시대의 파수꾼과 같은 사명을 가지고 살아간다. 세상은 하나님 없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생명의 길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증언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한 복음을 우리만 간직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의 반응이 두렵더라도 사랑과 진실함으로 생명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이다.
바벨론뿐 아니라 두마와 아라비아 역시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었다. 강한 군사력을 자랑했던 게달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자 그 영광과 힘을 잃게 된다. 이름난 제국에서부터 작은 부족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나는 나라는 없었다. 이 말씀은 모든 나라와 민족의 미래가 군사력과 재물, 정치적 권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의 크고 강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의지하는 사람과 재물과 능력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지만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신다. 또한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며 살아도 안전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경외하며 우리의 생각과 계획보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는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
나는?
– 나의 삶에서 하나님보다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의지하는 것은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찾는 것이 사람인지, 돈인지, 경험과 방법인지, 아니면 하나님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현실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순간 바벨론을 의지했던 유다와 같은 어리석음에 빠질 수 있다.
– 또한 하나님께서 나를 이 시대의 파수꾼으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말씀을 통해 보고 듣고 깨달은 복음과 하나님의 뜻을 누구에게 전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세상의 가치에 휩쓸리는 사람들을 정죄하기보다, 그들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랑으로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심을 믿는다면 내 삶의 결과를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내 생각과 계획을 내려놓고 말씀 앞에 겸손히 서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오늘 해야 할 순종을 성실히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람은 세상의 힘에 흔들리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며 살아간다.
이사야가 본 바벨론의 멸망은 너무나 처참하여 해산하는 여인과 같은 고통을 느끼게 했다. 특히 유다가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결국 무너질 바벨론을 의지하려 하는 현실을 바라보며 더욱 고통스러워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 결과를 보여주셨음에도 사람들은 눈앞의 형편과 자신의 판단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하나님보다 사람의 힘과 정치적인 계산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준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파수꾼을 세우신다. 파수꾼의 역할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숨기거나 자기 생각대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가 전하는 소식은 때로는 불편하고 두려운 내용이지만, 성읍과 백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전해야 한다. 결국 파수꾼은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라고 외치며 바벨론과 그 우상들의 몰락을 알린다.
우리 역시 하나님을 알고 말씀을 들은 사람으로서 이 시대의 파수꾼과 같은 사명을 가지고 살아간다. 세상은 하나님 없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생명의 길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증언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한 복음을 우리만 간직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의 반응이 두렵더라도 사랑과 진실함으로 생명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이다.
바벨론뿐 아니라 두마와 아라비아 역시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었다. 강한 군사력을 자랑했던 게달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자 그 영광과 힘을 잃게 된다. 이름난 제국에서부터 작은 부족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나는 나라는 없었다. 이 말씀은 모든 나라와 민족의 미래가 군사력과 재물, 정치적 권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의 크고 강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의지하는 사람과 재물과 능력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지만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신다. 또한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며 살아도 안전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경외하며 우리의 생각과 계획보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는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
나는?
– 나의 삶에서 하나님보다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의지하는 것은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찾는 것이 사람인지, 돈인지, 경험과 방법인지, 아니면 하나님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현실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순간 바벨론을 의지했던 유다와 같은 어리석음에 빠질 수 있다.
– 또한 하나님께서 나를 이 시대의 파수꾼으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말씀을 통해 보고 듣고 깨달은 복음과 하나님의 뜻을 누구에게 전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세상의 가치에 휩쓸리는 사람들을 정죄하기보다, 그들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랑으로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심을 믿는다면 내 삶의 결과를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내 생각과 계획을 내려놓고 말씀 앞에 겸손히 서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오늘 해야 할 순종을 성실히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람은 세상의 힘에 흔들리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며 살아간다.
+ 기도제목
* 하나님! 사람과 재물, 능력과 경험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지 않게 하시고, 모든 나라와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말씀에 순종하게 해주세요.
*시대의 파수꾼으로 복음을 충실히 전하는 우리 되게 해주세요.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보여주시고 깨닫게 하신 진리를 숨기지 않게 하시며,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랑과 진실함으로 전하는 우리 공동체가 되게 해주세요.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거나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앞세우지 않게 하시며, 날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을 살피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게 해주세요.
*시대의 파수꾼으로 복음을 충실히 전하는 우리 되게 해주세요.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보여주시고 깨닫게 하신 진리를 숨기지 않게 하시며,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랑과 진실함으로 전하는 우리 공동체가 되게 해주세요.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거나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앞세우지 않게 하시며, 날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을 살피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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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8월 08일
세상의 힘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한다
[이사야 21:1-17]
이사야 21장은 바벨론과 두마, 아라비아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다. 당시 바벨론은 앗수르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변 나라들과 연합하려 했고, 남유다의 히스기야 역시 바벨론과 손을 잡아 앗수르에 맞서는 것을 고민했다. 사람의 눈에는 여러 나라가 힘을 합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안전한 방법처럼 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이 결국 무너질 것임을 이사야에게 보여주신다.
이사야가 본 바벨론의 멸망은 너무나 처참하여 해산하는 여인과 같은 고통을 느끼게 했다. 특히 유다가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결국 무너질 바벨론을 의지하려 하는 현실을 바라보며 더욱 고통스러워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 결과를 보여주셨음에도 사람들은 눈앞의 형편과 자신의 판단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하나님보다 사람의 힘과 정치적인 계산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준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파수꾼을 세우신다. 파수꾼의 역할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숨기거나 자기 생각대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가 전하는 소식은 때로는 불편하고 두려운 내용이지만, 성읍과 백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전해야 한다. 결국 파수꾼은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라고 외치며 바벨론과 그 우상들의 몰락을 알린다.
우리 역시 하나님을 알고 말씀을 들은 사람으로서 이 시대의 파수꾼과 같은 사명을 가지고 살아간다. 세상은 하나님 없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생명의 길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증언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한 복음을 우리만 간직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의 반응이 두렵더라도 사랑과 진실함으로 생명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이다.
바벨론뿐 아니라 두마와 아라비아 역시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었다. 강한 군사력을 자랑했던 게달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자 그 영광과 힘을 잃게 된다. 이름난 제국에서부터 작은 부족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나는 나라는 없었다. 이 말씀은 모든 나라와 민족의 미래가 군사력과 재물, 정치적 권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의 크고 강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의지하는 사람과 재물과 능력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지만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신다. 또한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며 살아도 안전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경외하며 우리의 생각과 계획보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는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
나는?
– 나의 삶에서 하나님보다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의지하는 것은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찾는 것이 사람인지, 돈인지, 경험과 방법인지, 아니면 하나님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현실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순간 바벨론을 의지했던 유다와 같은 어리석음에 빠질 수 있다.
– 또한 하나님께서 나를 이 시대의 파수꾼으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말씀을 통해 보고 듣고 깨달은 복음과 하나님의 뜻을 누구에게 전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세상의 가치에 휩쓸리는 사람들을 정죄하기보다, 그들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랑으로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심을 믿는다면 내 삶의 결과를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내 생각과 계획을 내려놓고 말씀 앞에 겸손히 서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오늘 해야 할 순종을 성실히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람은 세상의 힘에 흔들리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며 살아간다.
이사야가 본 바벨론의 멸망은 너무나 처참하여 해산하는 여인과 같은 고통을 느끼게 했다. 특히 유다가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결국 무너질 바벨론을 의지하려 하는 현실을 바라보며 더욱 고통스러워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 결과를 보여주셨음에도 사람들은 눈앞의 형편과 자신의 판단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하나님보다 사람의 힘과 정치적인 계산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준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파수꾼을 세우신다. 파수꾼의 역할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숨기거나 자기 생각대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가 전하는 소식은 때로는 불편하고 두려운 내용이지만, 성읍과 백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전해야 한다. 결국 파수꾼은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라고 외치며 바벨론과 그 우상들의 몰락을 알린다.
우리 역시 하나님을 알고 말씀을 들은 사람으로서 이 시대의 파수꾼과 같은 사명을 가지고 살아간다. 세상은 하나님 없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생명의 길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증언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한 복음을 우리만 간직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의 반응이 두렵더라도 사랑과 진실함으로 생명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이다.
바벨론뿐 아니라 두마와 아라비아 역시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었다. 강한 군사력을 자랑했던 게달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자 그 영광과 힘을 잃게 된다. 이름난 제국에서부터 작은 부족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나는 나라는 없었다. 이 말씀은 모든 나라와 민족의 미래가 군사력과 재물, 정치적 권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의 크고 강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의지하는 사람과 재물과 능력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지만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신다. 또한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며 살아도 안전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경외하며 우리의 생각과 계획보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는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
나는?
– 나의 삶에서 하나님보다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의지하는 것은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찾는 것이 사람인지, 돈인지, 경험과 방법인지, 아니면 하나님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현실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순간 바벨론을 의지했던 유다와 같은 어리석음에 빠질 수 있다.
– 또한 하나님께서 나를 이 시대의 파수꾼으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말씀을 통해 보고 듣고 깨달은 복음과 하나님의 뜻을 누구에게 전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세상의 가치에 휩쓸리는 사람들을 정죄하기보다, 그들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랑으로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심을 믿는다면 내 삶의 결과를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내 생각과 계획을 내려놓고 말씀 앞에 겸손히 서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오늘 해야 할 순종을 성실히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람은 세상의 힘에 흔들리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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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8월 07일
세워질 제단과 기둥, 사라질 의지하던 모든 것
[이사야 19:16-20:6]
19:16-25 애굽의 변화와 장차 임할 구원
20:1-6 이사야의 벗은 몸과 벗은 발
사르곤 2세가 다스리던 시기의 앗수르는 중동의 패권국가였다. 블레셋의 성읍 중 하나였던 아스돗이 앗수르에 반란을 일으키고 이에 사르곤 2세는 타르탄이라는 군대장관을 보내 아스돗을 철저히 짓밟고 함락시켰다.
당시 애굽 왕조는 구스 출신이었고 그래서 애굽과 구스가 연합해서 앗수르의 남진을 막기 위해 가나안 지역의 작은 나라들을 부추겨 반앗수르 동맹을 맺게 했고 이것에 아스돗와 유다, 모압, 암몬 등이 동조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19장 후반부와 20장은 이런 배경에서 주어진 예언이었다.
먼저 19장 16절에서 25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고 이용만 하던 애굽이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하게 될 것에 대해 예언하고 있다.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예언이고 애굽은 이 예언을 듣는다면 코웃음을 칠 예언이지만 하나님께서 계획하셨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이사야는 알았다.
16 그 날에 애굽이 부녀와 같을 것이라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흔드시는 손이 그들 위에 흔들림으로 말미암아 떨며 두려워할 것이며
17 유다의 땅은 애굽의 두려움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계획으로 말미암음이라 그 소문을 듣는 자마다 떨리라
하나님은 유다 사람들에게 애굽으로 가지 말라, 애굽과 동맹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제 애굽이 유다를 두려워하게 될 것이라 말씀하신다.
출애굽 이후 애굽은 항상 이스라엘보다 우위에 있던 나라였다. 유일하게 애굽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했던 순간은 출애굽때였다. 애굽이 하나님께 돌아오기 시작할 것이라는 예언은 결국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자연스럽게 상황이 변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흘러가는 역사가 그렇게 만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시고 역사하실 것이라는 예언인 것이다. 애굽의 움직임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것이다. 애굽은 하나님을 찾아 유다로 나아오게 될 것이다.
내게 주시는 것
– 하나님은 일하실 것이다. 내가 마냥 두렵게만 보던 그것들이 하나님 앞에 굴복하고 엎드리며 나와 함께 하나님을 경배하게 되는 것이 어느 날 우연히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심으로 오는 결과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17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여호와의 정하신 계획으로 말미암아 모든 일이 일어나게 됨을 우리는 신뢰하며 사는 것이다.
19 그 날에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 그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
19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애굽에 여호와를 위한 제단이 세워지게 될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감사와 충성을 표시할 때 제단을 쌓았고 야곱도 그랬다. 애굽도 여호와 앞에 감사의 제단을 쌓게 될 것이다. 제단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한다.
22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시리라
애굽 대하시기를 이스라엘을 대하시는 것처럼 하신다. 이스라엘을 훈련하셨던 것처럼 애굽도 ‘치시고 고치시고 돌아오게 하시고 간구를 들으시고 고쳐주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치시는 것은 회복을 위해 하시는 일이다.
내게 주시는 것
– 혹시 내가 애굽과 같이 될 때, 내가 애굽처럼 하나님을 외면하고 내 힘만 의지하고 내가 가진 것만 의지하고 살 때, 그것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내가 하나님 앞에 구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제단과 기둥이 내 삶에 서는 것이다. 악함의 대명사 중 하나였던 애굽조차도 하나님께서 제단과 기둥을 세워 하나님께 나아오게 하신다. 하물며 내 삶은 어떻겠는가.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말씀하시고 깨닫게 하셨을 때 나는 말씀하시는 즉시 하나님을 향한 제단과 기둥을 세우기에 힘써야 함을 알게 하신다.
–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과 멀어질 때 절보다 회복을 먼저 생각하신다.
– 하나님께서 내게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며 제단을 쌓으라는 마음을 주실 때 바로 순종하자.
이제 20장은 앗수르를 향해 이사야가 3년간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상징적인 예언을 하는 장면이 나타난다. 앗수르를 향해 반란을 일으킨 아스돗은 BC 711년 앗수르왕 사르곤2세에 의해 파괴되었다.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니라
이사야는 여느 선지자들처럼 베옷을 입고 다녔다. 대부분의 선지자들이 심판에 집중된 예언으로 인해 슬픔을 표현하며 베옷을 입고 생활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예언하게 하셨다.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징조와 예표가 되었느니라
4 이와 같이 애굽의 포로와 구스의 사로잡힌 자가 앗수르 왕에게 끌려갈 때에 젊은 자나 늙은 자가 다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볼기까지 드러내어 애굽의 수치를 보이리니
이사야의 행위를 통한 예언은 포로민의 모습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애굽의 멸망을 행동으로 상징하는 행위였고 이렇게 3년을 살았다.
5 그들이 바라던 구스와 자랑하던 애굽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놀라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6 그 날에 이 해변 주민이 말하기를 우리가 믿던 나라 곧 우리가 앗수르 왕에게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달려가서 도움을 구하던 나라가 이같이 되었은즉 우리가 어찌 능히 피하리요 하리라
애굽과 구스를 의지했던 유다를 비롯한 해변 민족들은 큰 충격을 받는다. 자신들이 의지했던 ‘구세주들’이 발가벗겨져 포로로 끌려가기 때문이다.
내게 주시는 것
– 내가 의지하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은 결국 발가벗겨지고 포로로 끌려가는 비참함을 맛보게 될 것이다. 내가 진정 의지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눈에 보이는 강하고 좋은 것들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깊이 깨달아야 한다.
– 하나님께서 내가 다른 것들을 바라보고 그것을 의지할 때 이사야 같은 선지자를 통해 내게 말씀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버려두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 바로 순종하고 돌이킬 수 있도록 깨어 있어야겠다. 언제든 하나님의 음성이 누군가를 통해, 혹은 어떤 환경을 통해 들려지고 알게 될 때 바로 엎드려 경배하고 순종할 수 있어야겠다.
하나님은 분명히 내 삶 안에서 일하신다. 내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그 순간, 우리 삶의 매 순간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 그 하나님을 기억하고 살아야 한다. 그 모든 삶 안에서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실 때 바로 엎드려 경배하고 제단을 쌓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지자. 내가 의지하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은 결국 발가벗겨지고 없어질 것임을 기억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귀기울이는 삶을 살아가자.
20:1-6 이사야의 벗은 몸과 벗은 발
사르곤 2세가 다스리던 시기의 앗수르는 중동의 패권국가였다. 블레셋의 성읍 중 하나였던 아스돗이 앗수르에 반란을 일으키고 이에 사르곤 2세는 타르탄이라는 군대장관을 보내 아스돗을 철저히 짓밟고 함락시켰다.
당시 애굽 왕조는 구스 출신이었고 그래서 애굽과 구스가 연합해서 앗수르의 남진을 막기 위해 가나안 지역의 작은 나라들을 부추겨 반앗수르 동맹을 맺게 했고 이것에 아스돗와 유다, 모압, 암몬 등이 동조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19장 후반부와 20장은 이런 배경에서 주어진 예언이었다.
먼저 19장 16절에서 25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고 이용만 하던 애굽이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하게 될 것에 대해 예언하고 있다.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예언이고 애굽은 이 예언을 듣는다면 코웃음을 칠 예언이지만 하나님께서 계획하셨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이사야는 알았다.
16 그 날에 애굽이 부녀와 같을 것이라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흔드시는 손이 그들 위에 흔들림으로 말미암아 떨며 두려워할 것이며
17 유다의 땅은 애굽의 두려움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계획으로 말미암음이라 그 소문을 듣는 자마다 떨리라
하나님은 유다 사람들에게 애굽으로 가지 말라, 애굽과 동맹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제 애굽이 유다를 두려워하게 될 것이라 말씀하신다.
출애굽 이후 애굽은 항상 이스라엘보다 우위에 있던 나라였다. 유일하게 애굽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했던 순간은 출애굽때였다. 애굽이 하나님께 돌아오기 시작할 것이라는 예언은 결국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자연스럽게 상황이 변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흘러가는 역사가 그렇게 만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시고 역사하실 것이라는 예언인 것이다. 애굽의 움직임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것이다. 애굽은 하나님을 찾아 유다로 나아오게 될 것이다.
내게 주시는 것
– 하나님은 일하실 것이다. 내가 마냥 두렵게만 보던 그것들이 하나님 앞에 굴복하고 엎드리며 나와 함께 하나님을 경배하게 되는 것이 어느 날 우연히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심으로 오는 결과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17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여호와의 정하신 계획으로 말미암아 모든 일이 일어나게 됨을 우리는 신뢰하며 사는 것이다.
19 그 날에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 그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
19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애굽에 여호와를 위한 제단이 세워지게 될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감사와 충성을 표시할 때 제단을 쌓았고 야곱도 그랬다. 애굽도 여호와 앞에 감사의 제단을 쌓게 될 것이다. 제단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한다.
22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시리라
애굽 대하시기를 이스라엘을 대하시는 것처럼 하신다. 이스라엘을 훈련하셨던 것처럼 애굽도 ‘치시고 고치시고 돌아오게 하시고 간구를 들으시고 고쳐주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치시는 것은 회복을 위해 하시는 일이다.
내게 주시는 것
– 혹시 내가 애굽과 같이 될 때, 내가 애굽처럼 하나님을 외면하고 내 힘만 의지하고 내가 가진 것만 의지하고 살 때, 그것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내가 하나님 앞에 구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제단과 기둥이 내 삶에 서는 것이다. 악함의 대명사 중 하나였던 애굽조차도 하나님께서 제단과 기둥을 세워 하나님께 나아오게 하신다. 하물며 내 삶은 어떻겠는가.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말씀하시고 깨닫게 하셨을 때 나는 말씀하시는 즉시 하나님을 향한 제단과 기둥을 세우기에 힘써야 함을 알게 하신다.
–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과 멀어질 때 절보다 회복을 먼저 생각하신다.
– 하나님께서 내게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며 제단을 쌓으라는 마음을 주실 때 바로 순종하자.
이제 20장은 앗수르를 향해 이사야가 3년간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상징적인 예언을 하는 장면이 나타난다. 앗수르를 향해 반란을 일으킨 아스돗은 BC 711년 앗수르왕 사르곤2세에 의해 파괴되었다.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니라
이사야는 여느 선지자들처럼 베옷을 입고 다녔다. 대부분의 선지자들이 심판에 집중된 예언으로 인해 슬픔을 표현하며 베옷을 입고 생활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예언하게 하셨다.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징조와 예표가 되었느니라
4 이와 같이 애굽의 포로와 구스의 사로잡힌 자가 앗수르 왕에게 끌려갈 때에 젊은 자나 늙은 자가 다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볼기까지 드러내어 애굽의 수치를 보이리니
이사야의 행위를 통한 예언은 포로민의 모습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애굽의 멸망을 행동으로 상징하는 행위였고 이렇게 3년을 살았다.
5 그들이 바라던 구스와 자랑하던 애굽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놀라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6 그 날에 이 해변 주민이 말하기를 우리가 믿던 나라 곧 우리가 앗수르 왕에게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달려가서 도움을 구하던 나라가 이같이 되었은즉 우리가 어찌 능히 피하리요 하리라
애굽과 구스를 의지했던 유다를 비롯한 해변 민족들은 큰 충격을 받는다. 자신들이 의지했던 ‘구세주들’이 발가벗겨져 포로로 끌려가기 때문이다.
내게 주시는 것
– 내가 의지하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은 결국 발가벗겨지고 포로로 끌려가는 비참함을 맛보게 될 것이다. 내가 진정 의지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눈에 보이는 강하고 좋은 것들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깊이 깨달아야 한다.
– 하나님께서 내가 다른 것들을 바라보고 그것을 의지할 때 이사야 같은 선지자를 통해 내게 말씀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버려두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 바로 순종하고 돌이킬 수 있도록 깨어 있어야겠다. 언제든 하나님의 음성이 누군가를 통해, 혹은 어떤 환경을 통해 들려지고 알게 될 때 바로 엎드려 경배하고 순종할 수 있어야겠다.
하나님은 분명히 내 삶 안에서 일하신다. 내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그 순간, 우리 삶의 매 순간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 그 하나님을 기억하고 살아야 한다. 그 모든 삶 안에서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실 때 바로 엎드려 경배하고 제단을 쌓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지자. 내가 의지하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은 결국 발가벗겨지고 없어질 것임을 기억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귀기울이는 삶을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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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8월 06일
내 뜻과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생각으로
[이사야 18:1-19:15]
18:1-7 구스를 향한 예언
19:1-15 애굽을 향한 예언
1 슬프다 구스의 강 건너편 날개 치는 소리 나는 땅이여
2 갈대 배를 물에 띄우고 그 사자를 수로로 보내며 이르기를 민첩한 사절들아 너희는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로 가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로 가라 하는도다
18장은 사람의 때, 사람의 동맹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는 것을 구스에 대한 예언으로 말씀하신다. 단순히 구스라는 나라만을 향한 예언이 아니라 17장이 북쪽의 나라를 향한 예언이라면 구스를 향한 예언은 남쪽을 향한 예언이다. 모든 나라를 향해 하나님의 뜻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선포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 그에 대한 선포는 믿는 자들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도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알도록 선포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으로, 믿음을 따라가는 온전한 삶의 예배로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의 뜻이 선포되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앗수르라는 큰 적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반앗수르 정책을 가지고 있는 주변국들은 어느 나라든 뜻을 같이하고 힘을 모아 앗수르를 대적할 수 있는 나라들로, 조금이나마 의지할 수 있는 나라들로 보였을 것이다. 내 뜻과 같은 사람은 나의 친구다라는 것처럼.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오히려 그들을 향해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고 ‘나는 눈에 보이는 너희를 의지하지 않는다’라고 말하게 하신다.
내게 주시는 것
– 하나님의 뜻이 아닌 생각들이 내 안에 일어날 때가 있다. 아니, 그 생각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분별이 어려울 때가 있다. 그 때 주변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발견되고 그들과 함께 하면 좀더 이 생각이 구체화되고 실현될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일 때가 있다.
– 그 때가 기도해야 할 때다. 하나님의 뜻이 맞는지,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을 내게 붙여주신 것이 맞는지, 이들과 함께 뜻을 이루어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지 기도해야 한다.
19:1 애굽에 관한 경고라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 애굽인의 마음이 그 속에서 녹으리로다
애굽에 대한 내용이 19장에서 시작된다. 30-31장 내용으로 보면 8세기 후반 앗수르의 위협이 날로 커져감에 따라 유다의 지도자들이 애굽과 동맹을 맺으려 했던 것이 확실해 보인다. 북이스라엘과 시리아, 즉 아람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면서 반앗수르 정서가 강해졌고 결과적으로 애굽의 보호를 갈망하게 되었다.
[신17:16]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신명기 말씀에서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에게 애굽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그들에게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14 여호와께서 그 가운데 어지러운 마음을 섞으셨으므로 그들이 애굽을 매사에 잘못 가게 함이 취한 자가 토하면서 비틀거림 같게 하였으니
15 애굽에서 머리나 꼬리며 종려나무 가지나 갈대가 아무 할 일이 없으리라
이사야 선지자도 애굽은 무익한 존재라는 것을 20장 6절까지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애굽은 의지할만한 나라였다. 구스나 다메섹(아람)은 앗수르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지만 애굽은 그에 비하면 앗수르에 비벼볼 수 있는 강대국이었다. 역사적으로도 애굽은 제국 문턱까지는 어찌어찌 갔다가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제국으로 이어지는 근동 지역의 패권국가에게 계속해서 밀리면서 제국으로 확실한 한 걸음을 떼지 못했다. 그렇더라도 당시 앗수르를 제외한 근동 국가에서 애굽은 이스라엘이 확실히 소망을 두고 바라볼만한 나라였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미 애굽에게 기대지 말 것을 이야기 하셨음을 기억해야 했다.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마음이 기울어질 때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다시 한 번 확고하게 하나님의 뜻을 보이고 계신다.
내게 주시는 것
–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럴듯해 보이는 것들, 힘있어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말씀하신다.
–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초자연적인 역사를 보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보니 내 삶에 존재하는 것들 중 어느 것이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펼쳐놓으신 것이고 어느 것이 내 욕심으로 의지하려고 하는 것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 그래서 계속 깨어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기 힘쓰는 삶을 살아야 한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 주변에 이사야 같은 사람을 보내셔서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19:1-15 애굽을 향한 예언
1 슬프다 구스의 강 건너편 날개 치는 소리 나는 땅이여
2 갈대 배를 물에 띄우고 그 사자를 수로로 보내며 이르기를 민첩한 사절들아 너희는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로 가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로 가라 하는도다
18장은 사람의 때, 사람의 동맹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는 것을 구스에 대한 예언으로 말씀하신다. 단순히 구스라는 나라만을 향한 예언이 아니라 17장이 북쪽의 나라를 향한 예언이라면 구스를 향한 예언은 남쪽을 향한 예언이다. 모든 나라를 향해 하나님의 뜻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선포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 그에 대한 선포는 믿는 자들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도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알도록 선포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으로, 믿음을 따라가는 온전한 삶의 예배로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의 뜻이 선포되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앗수르라는 큰 적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반앗수르 정책을 가지고 있는 주변국들은 어느 나라든 뜻을 같이하고 힘을 모아 앗수르를 대적할 수 있는 나라들로, 조금이나마 의지할 수 있는 나라들로 보였을 것이다. 내 뜻과 같은 사람은 나의 친구다라는 것처럼.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오히려 그들을 향해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고 ‘나는 눈에 보이는 너희를 의지하지 않는다’라고 말하게 하신다.
내게 주시는 것
– 하나님의 뜻이 아닌 생각들이 내 안에 일어날 때가 있다. 아니, 그 생각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분별이 어려울 때가 있다. 그 때 주변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발견되고 그들과 함께 하면 좀더 이 생각이 구체화되고 실현될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일 때가 있다.
– 그 때가 기도해야 할 때다. 하나님의 뜻이 맞는지,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을 내게 붙여주신 것이 맞는지, 이들과 함께 뜻을 이루어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지 기도해야 한다.
19:1 애굽에 관한 경고라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 애굽인의 마음이 그 속에서 녹으리로다
애굽에 대한 내용이 19장에서 시작된다. 30-31장 내용으로 보면 8세기 후반 앗수르의 위협이 날로 커져감에 따라 유다의 지도자들이 애굽과 동맹을 맺으려 했던 것이 확실해 보인다. 북이스라엘과 시리아, 즉 아람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면서 반앗수르 정서가 강해졌고 결과적으로 애굽의 보호를 갈망하게 되었다.
[신17:16]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신명기 말씀에서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에게 애굽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그들에게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14 여호와께서 그 가운데 어지러운 마음을 섞으셨으므로 그들이 애굽을 매사에 잘못 가게 함이 취한 자가 토하면서 비틀거림 같게 하였으니
15 애굽에서 머리나 꼬리며 종려나무 가지나 갈대가 아무 할 일이 없으리라
이사야 선지자도 애굽은 무익한 존재라는 것을 20장 6절까지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애굽은 의지할만한 나라였다. 구스나 다메섹(아람)은 앗수르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지만 애굽은 그에 비하면 앗수르에 비벼볼 수 있는 강대국이었다. 역사적으로도 애굽은 제국 문턱까지는 어찌어찌 갔다가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제국으로 이어지는 근동 지역의 패권국가에게 계속해서 밀리면서 제국으로 확실한 한 걸음을 떼지 못했다. 그렇더라도 당시 앗수르를 제외한 근동 국가에서 애굽은 이스라엘이 확실히 소망을 두고 바라볼만한 나라였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미 애굽에게 기대지 말 것을 이야기 하셨음을 기억해야 했다.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마음이 기울어질 때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다시 한 번 확고하게 하나님의 뜻을 보이고 계신다.
내게 주시는 것
–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럴듯해 보이는 것들, 힘있어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말씀하신다.
–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초자연적인 역사를 보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보니 내 삶에 존재하는 것들 중 어느 것이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펼쳐놓으신 것이고 어느 것이 내 욕심으로 의지하려고 하는 것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 그래서 계속 깨어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기 힘쓰는 삶을 살아야 한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 주변에 이사야 같은 사람을 보내셔서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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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8월 05일
하나님을 잊으면 우리가 자랑하던 영광도 사라진다
[이사야 17:1-14]
이사야 17장은 다메섹과 북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다. 당시 아람과 북이스라엘은 동맹을 맺고 강대국 앗수르에 맞서려고 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군사력과 정치적 연합을 통해 자신들의 안전을 지키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견고한 성읍과 자랑하던 영광도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다메섹의 웅장한 성읍과 요새는 무너져 돌무더기가 되고, 북이스라엘의 영광도 쇠하여 사라진다. 한때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군사적으로 강했던 나라였지만,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계획과 힘을 의지했기 때문에 그 모든 수고가 허망하게 끝난다. 세상의 권세와 영광은 영원하지 않으며, 모든 나라와 역사를 다스리시는 참된 왕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배와 제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종교적 의무를 지키고 많은 제물을 드렸지만, 정작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는 무관심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기보다 약한 사람들을 억압했고, 뇌물과 외모에 따라 굽은 판결을 내렸다.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종교적인 모양만이 아니라, 삶의 자리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 중에도 남은 자를 보존하시고 회복의 은혜를 베푸신다. 그러나 구원의 약속만을 가볍게 붙들어서는 안 된다. 남은 이삭과 감람나무 끝에 남은 열매의 이미지는 구원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전에 임한 철저한 심판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불순종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며, 선택받은 백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다면 반드시 심판하신다.
심판을 경험한 백성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 우상에서 돌이켜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 과거에는 제단과 신상을 세심하게 바라보았지만, 그것들이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돌아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헛되이 의지하는 것들을 무너뜨리심으로써 다시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이끄신다.
열방이 바다의 파도처럼 몰려오고 천둥처럼 위협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꾸짖으시면 바람에 날리는 겨와 티끌처럼 흩어진다. 현실의 문제는 크고 두려워 보이지만,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순종을 심판하시는 분이시면서 동시에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백성을 보호하고 구원하시는 분이다.
나는?
– 나의 신앙이 예배와 헌금, 봉사와 같은 외적인 종교 활동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순히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는 삶이다.
– 또한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보다 사람과 재물, 경험과 계획을 더 의지하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의 능력과 판단에는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나라와 역사를 다스리시는 참된 왕이다. 눈앞의 상황이 아무리 거대하고 두려워 보여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해야 한다.
–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구원하시지만, 우리의 죄와 불순종을 가볍게 여기지는 않으신다. 그러므로 날마다 말씀 앞에서 마음과 삶을 점검하며, 잘못된 부분을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 백성다운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힘써야 한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진실하게 순종하는 삶을 이어가야 한다.
다메섹의 웅장한 성읍과 요새는 무너져 돌무더기가 되고, 북이스라엘의 영광도 쇠하여 사라진다. 한때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군사적으로 강했던 나라였지만,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계획과 힘을 의지했기 때문에 그 모든 수고가 허망하게 끝난다. 세상의 권세와 영광은 영원하지 않으며, 모든 나라와 역사를 다스리시는 참된 왕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배와 제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종교적 의무를 지키고 많은 제물을 드렸지만, 정작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는 무관심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기보다 약한 사람들을 억압했고, 뇌물과 외모에 따라 굽은 판결을 내렸다.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종교적인 모양만이 아니라, 삶의 자리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 중에도 남은 자를 보존하시고 회복의 은혜를 베푸신다. 그러나 구원의 약속만을 가볍게 붙들어서는 안 된다. 남은 이삭과 감람나무 끝에 남은 열매의 이미지는 구원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전에 임한 철저한 심판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불순종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며, 선택받은 백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다면 반드시 심판하신다.
심판을 경험한 백성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 우상에서 돌이켜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 과거에는 제단과 신상을 세심하게 바라보았지만, 그것들이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돌아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헛되이 의지하는 것들을 무너뜨리심으로써 다시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이끄신다.
열방이 바다의 파도처럼 몰려오고 천둥처럼 위협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꾸짖으시면 바람에 날리는 겨와 티끌처럼 흩어진다. 현실의 문제는 크고 두려워 보이지만,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순종을 심판하시는 분이시면서 동시에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백성을 보호하고 구원하시는 분이다.
나는?
– 나의 신앙이 예배와 헌금, 봉사와 같은 외적인 종교 활동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순히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는 삶이다.
– 또한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보다 사람과 재물, 경험과 계획을 더 의지하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의 능력과 판단에는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나라와 역사를 다스리시는 참된 왕이다. 눈앞의 상황이 아무리 거대하고 두려워 보여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해야 한다.
–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구원하시지만, 우리의 죄와 불순종을 가볍게 여기지는 않으신다. 그러므로 날마다 말씀 앞에서 마음과 삶을 점검하며, 잘못된 부분을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 백성다운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힘써야 한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진실하게 순종하는 삶을 이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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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8월 04일
모압을 향한 심판
[이사야 16:1-14]
위기의 상황 속에 있는 모압에 대해, 회복될 수 있는 길을 알려주며, 동시에 심판에 대해 말하고 있다. 모압은 교만함으로 자신들의 풍족함을 자랑하였고, 이에 대해 오직 시온으로 나아오는 길 외에는 회복이 없음을 선포한다. 또한 이 모든 것은 3년 내에 이루어질 것을 예고함을 통해, 심판이 임박하였음을 확실히 하고 있다.
1. 모압 회복의 길(1-5)
모압이 다시금 회복할 수 있는 길에 대해 말하고 있다. 본문의 문맥을 고려할 때에, 모압이 어린양을 바쳐야할 나라는 유다인데, 유다는 모압에 비해 약소국이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모압 입장에서는 자존심을 버리고 유다의 밑으로 나아가야함을 말하고 있다. 아르논강은 모압의 경계로, 모압의 위기 속에 여기까지 밀려왔음을 보여준다. (2절)
이후 3절에서 ‘너’는 곧 유다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곧, 모압 사람들이 시온으로 도망 왔을 때에, 도피처로서의 역할을 할 것을 촉구한다. 결국 이를 통해 이들이 피할 곳은 ‘다윗의 장막’이며, ‘그 위에 앉을 자’는 정의와 공의로 행할 것을 예언한다.(5절) 결국 모압은, ‘다윗의 장막’ 아래에 들어올 때에 그 안에서만 안전할 것을 예언한다.
2.모압의 교만함(6-12)
6-12절에서는 다시 모압을 향한 심판의 내용이 나온다. 모압은 심판이 선포되었음에도 죄를 돌이키지 않았고, 교만함을 버리지 않았다. 그들이 의지했던 모든 것들은 사라지고, 모압은 통곡할 것이다. 특히 당시 모압에서 생산된 포도는 경제적인 풍요를 가져왔었다. 이 모압의 자랑인 헤스본의 밭과 십마의 포도나무가 마른다. (8절)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철저히 무너지게 된다.(9절) 결국 에언자는, 풍요와 즐거움이 사라진 것을 바라보며 눈물 가운데 바라본다. 즐거움과 기쁨이 사라진 폐허 속에, 일을 함께할 사람들도 없다.(10절)
예언자는 이 상황을 바라보며 애통하는 마음이 있다. 그러나, 모압이 산당에서 봉사하며 성소에서 기도하더라도 지금의 이 싱황이 바꾸지 않을 것이다. (12절)
3_모압 심판의 확실성(13-14)
이 모든 것은 여호와께서 오랮 전부터 하신 말씀이다. 앞으로 3년 내에, 모압의 영화는 심판을 받아, 심히 적은 수가 남을 것을 에언한다. 기한과 상세한 내용까지 확정하여 선포하였다는 점에서, 확실함과 긴박함을 보여준다.
나는?
-모압을 향한 심판의 과정 속에서동, ‘다윗의 장막’이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모압이라는 나라를 심판하는 과정 중에서도 피할 길을 알려주신다. 그리고 모압이라할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나아가면 산다.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시는 그 나라로 나아가면, 살 길이 얼린다.
-예수님에 대해서, 이 본문에서도 명확하게 말하고 있음을 생각한다. 에수님께서 곧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셨고,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셨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 예수님의 오심을 알지 못한 채, 예언의 내용만을 들었겠지만, 이제 우리는 이미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이 모든 회복을 가져오시는 만왕의 왕이시다.
-모압의 멸망의 이유는 역시 교만이었다. 자신들의 힘을 의지하고, 포도나무의 소산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꼐서는 이 모든 것들을 제하시고, 멸망시키신다. 교만이란, 내가 높아지려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자리를 탐하고, 그 분이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다. 더욱 주님께 물으며, 겸손히 있어야겠다.
1. 모압 회복의 길(1-5)
모압이 다시금 회복할 수 있는 길에 대해 말하고 있다. 본문의 문맥을 고려할 때에, 모압이 어린양을 바쳐야할 나라는 유다인데, 유다는 모압에 비해 약소국이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모압 입장에서는 자존심을 버리고 유다의 밑으로 나아가야함을 말하고 있다. 아르논강은 모압의 경계로, 모압의 위기 속에 여기까지 밀려왔음을 보여준다. (2절)
이후 3절에서 ‘너’는 곧 유다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곧, 모압 사람들이 시온으로 도망 왔을 때에, 도피처로서의 역할을 할 것을 촉구한다. 결국 이를 통해 이들이 피할 곳은 ‘다윗의 장막’이며, ‘그 위에 앉을 자’는 정의와 공의로 행할 것을 예언한다.(5절) 결국 모압은, ‘다윗의 장막’ 아래에 들어올 때에 그 안에서만 안전할 것을 예언한다.
2.모압의 교만함(6-12)
6-12절에서는 다시 모압을 향한 심판의 내용이 나온다. 모압은 심판이 선포되었음에도 죄를 돌이키지 않았고, 교만함을 버리지 않았다. 그들이 의지했던 모든 것들은 사라지고, 모압은 통곡할 것이다. 특히 당시 모압에서 생산된 포도는 경제적인 풍요를 가져왔었다. 이 모압의 자랑인 헤스본의 밭과 십마의 포도나무가 마른다. (8절)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철저히 무너지게 된다.(9절) 결국 에언자는, 풍요와 즐거움이 사라진 것을 바라보며 눈물 가운데 바라본다. 즐거움과 기쁨이 사라진 폐허 속에, 일을 함께할 사람들도 없다.(10절)
예언자는 이 상황을 바라보며 애통하는 마음이 있다. 그러나, 모압이 산당에서 봉사하며 성소에서 기도하더라도 지금의 이 싱황이 바꾸지 않을 것이다. (12절)
3_모압 심판의 확실성(13-14)
이 모든 것은 여호와께서 오랮 전부터 하신 말씀이다. 앞으로 3년 내에, 모압의 영화는 심판을 받아, 심히 적은 수가 남을 것을 에언한다. 기한과 상세한 내용까지 확정하여 선포하였다는 점에서, 확실함과 긴박함을 보여준다.
나는?
-모압을 향한 심판의 과정 속에서동, ‘다윗의 장막’이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모압이라는 나라를 심판하는 과정 중에서도 피할 길을 알려주신다. 그리고 모압이라할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나아가면 산다.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시는 그 나라로 나아가면, 살 길이 얼린다.
-예수님에 대해서, 이 본문에서도 명확하게 말하고 있음을 생각한다. 에수님께서 곧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셨고,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셨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 예수님의 오심을 알지 못한 채, 예언의 내용만을 들었겠지만, 이제 우리는 이미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이 모든 회복을 가져오시는 만왕의 왕이시다.
-모압의 멸망의 이유는 역시 교만이었다. 자신들의 힘을 의지하고, 포도나무의 소산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꼐서는 이 모든 것들을 제하시고, 멸망시키신다. 교만이란, 내가 높아지려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자리를 탐하고, 그 분이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다. 더욱 주님께 물으며, 겸손히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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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8월 03일
하나님의 뜻과 계획으로 살아가는 삶
[이사야 14:24-15:9]
오늘의 본문은 앗수르와 바벨론, 모압에 관하여 심판하시는 구절입니다.
1. 앗수르의 심판 선언 (14:24-27)
당시 남유다를 가장 두렵게 하던 거대 제국인 북쪽의 앗수르는 두려운 존재였지만 하나님께서 두려워하던 남유다를 향하여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확증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것은 반드시 되며 경영 하시는 것을 반드시 이루신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신실한 하나님이심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멍에와 짐을 벗어주심으로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폐할 수 없으며 돌이킬 수 없음을 나타냅니다.
2. 블레셋의 착각 (28-32)
블레셋은 남유다의 아하스왕이 죽자 많이 기뻐했습니다.
그 이유는 남유다가 블레셋을 강력하게 견제하고 있었고 공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은 너희의 큰 착각 임을 밝히시면서 유다는 부러졌지만 더 강력한 북쪽에서 오는 연기가 너희를 집어삼킬 것임을 경고하십니다. 결국엔 블레셋은 앗수르의 침공으로 궤멸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3. 하룻밤만에 무너진 모압 (5장)
모압은 이스라엘과 가까운 사이였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모압의 특징은 산악지대에 둘러싸인 철옹성과 같은 요새가 있었는데 이사야 15장1절에서는 하룻밤 만에 모압이 황폐하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그들이 일평생 일궈낸 저 철옹성과 같은 요새가 하나님의 심판에 하룻밤만에 사라지게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압사람들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닌 우상을 찾는 모습을 보입니다.
나는?
이렇게 세 나라를 보면서 이 이방나라들의 특징은 하나님을 무시한다는것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으로 살아가며 하나님을 찾는 삶, 하나님을 의지하고 붙잡는 삶이 정말 바르고 귀한 삶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양대로 살아내는 삶이 되길 소망하게 되었다.
1. 앗수르의 심판 선언 (14:24-27)
당시 남유다를 가장 두렵게 하던 거대 제국인 북쪽의 앗수르는 두려운 존재였지만 하나님께서 두려워하던 남유다를 향하여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확증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것은 반드시 되며 경영 하시는 것을 반드시 이루신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신실한 하나님이심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멍에와 짐을 벗어주심으로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폐할 수 없으며 돌이킬 수 없음을 나타냅니다.
2. 블레셋의 착각 (28-32)
블레셋은 남유다의 아하스왕이 죽자 많이 기뻐했습니다.
그 이유는 남유다가 블레셋을 강력하게 견제하고 있었고 공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은 너희의 큰 착각 임을 밝히시면서 유다는 부러졌지만 더 강력한 북쪽에서 오는 연기가 너희를 집어삼킬 것임을 경고하십니다. 결국엔 블레셋은 앗수르의 침공으로 궤멸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3. 하룻밤만에 무너진 모압 (5장)
모압은 이스라엘과 가까운 사이였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모압의 특징은 산악지대에 둘러싸인 철옹성과 같은 요새가 있었는데 이사야 15장1절에서는 하룻밤 만에 모압이 황폐하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그들이 일평생 일궈낸 저 철옹성과 같은 요새가 하나님의 심판에 하룻밤만에 사라지게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압사람들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닌 우상을 찾는 모습을 보입니다.
나는?
이렇게 세 나라를 보면서 이 이방나라들의 특징은 하나님을 무시한다는것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으로 살아가며 하나님을 찾는 삶, 하나님을 의지하고 붙잡는 삶이 정말 바르고 귀한 삶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양대로 살아내는 삶이 되길 소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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