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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김 종 홍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교회를 다니다가 중학교 3학년 여름성경학교 보조교사로 참여하여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했습니다. 그 후, 고등학교 2학년때 목회자의 길을 걷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했었지요. 특별히 마음에 붙잡고 있는 목회 소명 말씀은 이사야 50장 4절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라는 말씀과 마태복음 13장 52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입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곤고한 자를 말로 도울 수 있는 지혜의 사람, 주님의 말씀을 학자처럼 알아들을 수 있는 지식과 안목이 겸비된 사람,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되어 옛 것(구약)과 새 것(신약)의 말씀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능수능란하게 전할 수 있는 사람, 이를 통해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추수하는 날의 얼음 냉수와 같은(잠 25:13) 사람으로 살아내는 것을 소명으로 붙잡고 있지요.

 

  광신대학교 신학대학원과 숭실대학교 대학원(Th.M_기독교 문화),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Th.M_성경학)을 거쳤습니다. 2002년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에서 안수를 받았구요. 1995년 나주제일교회 교육전도사를 시작으로 광주풍암전원교회, 서울 장암교회와 전주영생교회를 거쳐 2005년 12월 부터 전주온누리교회에 청년공동체 담당목사로 사역했습니다. 2020년 1월 전주온누리교회에서 분립된 더온누리교회 동사담임목사로 섬기다가 2023년 1월부터 담임목사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전해주기를 원하는 말씀”을 전하는 것을 목회가치로 붙잡고, 날마다 말씀으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붙잡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기를 꿈꿉니다. 매일성경 주일 본문으로 주일낮예배 말씀을 선포하구요. 또한 말씀에서 보여주신 “바로 그 교회”의 꿈을 붙잡고 진실한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꿈을 가지고 있지요. 이를 위해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이루어 가기를 간절히 바란답니다.

 

  가족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어여쁜 아내 유은영과 가장 멋진 세 아들 유성, 유진, 유민이 있어요.

목사

김 지 훈

  김지훈 목사는 중학교 3학년 여름 수련회 때에 예수님께서 자신같이 죄와 문제가 많은 사람도 사랑해주신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20대를 보내며, 진로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었고 다양한 시도와 좌절도 함께 경험하며 목회자로서의 부르심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삶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교회 공동체를 세움에 자신의 삶을 드리기로 결단하였습니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M.Div.) 과정을, 에스라 성경대학원대학교에서 신학 석사(Th.M) 과정을 졸업하였습니다. 2018년 전주온누리교회에 부임하여 여호수아 1청년공동체를 담당하다, 2020년 더온누리 분립때부터 함께 사역하였고, 지금 현재는 행정 디렉터와 더원 청년 공동체를 섬기는 사역을 전담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9절 말씀에 바울의 고백인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를 평생의 비전으로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람들을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품고 있습니다. 가족으로는 하나님께서 짝지워주신 아내 최은애와 선물로 주신 사랑하는 아들 김강현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목사

김 지 훈

목사

김 성 연

  김성연 목사는 전북 익산에서 오남매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믿음의 가정에서 모태신앙으로 자라났지만, 사춘기 시절부터 생긴 수많은 믿음의 질문들에 답을 찾지 못하여, 문화적 그리스도인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대학 입시에 떨어져서 재수를 하는 가운데, 불현듯 신학교 진학을 결정하게 되어 총신대학교 신학과에 진학하였습니다. 준비없이 진학한 신학과 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중 주변 학우들의 도움으로 1년을 버티다가 2학년 수업을 듣는 가운데, 오랜 시간 나를 기다려주신 하나님을 고백하게 되면서부터 하나님을 믿음의 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있었으면서도 의심했던 도마와 같이, 늘 의심하고 묻고 따지는 어리석은 자를 포기치 않으시고 끝까지 기다려주신 하나님의 인자한 모습이 인격적으로 만난 하나님의 첫 모습이었습니다.

 
  그 후로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들을 연속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학교와 군대와 다양한 현장들에서 하나님이 만나게 해주신 믿음의 사람들 덕택에, 갓 생긴 미숙한 믿음의 신학생이 사역자로써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진학하며 사랑의교회에서 중등부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 곳에서 평생의 동역자인 아내 김혜원을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등부 사역 이후 유아부 사역까지 4년여 간의 사역을 마치고, 개척한 지 1년 된 빛트인교회로 사역지를 옮기며 그 곳에서 행정과 주일학교 담당 사역으로 4년을 섬겼습니다. 이후에 잠실남현교회에서 행정과 청소년부를 섬기며 다양한 규모와 배경의 교회들에서 사역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배우게 하셨습니다. 이후 더온누리교회로 자리를 옮기며 교구와 고등부를 맡아 섬기고 있습니다.

 
  김성연 목사에게 사역의 의미는 ‘함께 함’입니다. 하나님께서 긴 시간 불신과 의심으로 살아온 자신을 기다려주시고 받아주신 것처럼, 서로 함께 해야 할 이유나 서로 맞아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자신을 깎고 비우고 다듬으며 서로 하나의 교회가 되어가게 하는 것이 사역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존재만으로 서로를 귀하게 여길 때, 그래서 함께 함 그 자체가 기쁨이 될 때 그 곳이 하나님의 나라임을 믿으며 그런 사역을 위해 오늘도 헌신하고자 합니다.
 

  김성연 목사에게 주신 가장 소중한 선물로, 아내 김혜원, 딸 김채원, 아들 김정민이 있습니다.

목사

윤 찬 영

  윤찬영 목사는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태어났고, 대구에서 자랐습니다. 친 조모님부터 3대째 내려오는 단단한 신앙을 물려받았습니다.

 

  10대 후반, 고등학교 내 기독동아리 <복음의 씨>를 통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으며, 소명을 받았습니다.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 영향력을 끼치는 자로 꿈꾸게 하셨습니다.

 

  전투경찰로 군복무 만기 전역 후, 어? 성경이 읽어지네! (생터성경사역원) 대구지부 청년 회장을 거쳐, 전문강사 과정(전문강사 2기)을 수료하고, 청년들과 말씀 세미나(pearl)를 계획하여 진행하였고 대학교별 소그룹을 조직하고 인도하며 한 지체를 품고 말씀 사역에 대한 꿈을 키워나가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후 필리핀 iloilo city에서 선교훈련(오진한 선교사)을 받고, 총신신학대학원에 입학한 뒤 2015년 12월부터 대구 경운교회(청소년 사역), 동행교회(청소년 사역, 병원교회), 군산드림교회(주일학교, 교구)를 거쳐 2021년 12월부터는 더온누리교회에서 전임사역 중입니다.

 

  현재 더온누리교회에서 교구 사역(더사랑 지역), 중등부, 장년성장을 담당하고 있고, 가족으로는 김은미 사모와 슬하에 딸 서윤, 아들 서준이 있습니다.

목사

윤 찬 영

목사

정 갑 주

  정갑주 목사는 청년 시절 가까운 지인의 죽음 앞에서 이 땅의 불완전함 그리고 장차 오게 될 영원한 나라에 대한 소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말씀으로 이 전의 나는 죽고 예수그리스도로 살아갈 나라를 꿈꿨습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전심으로 이 땅에서의 삶을 살아낼 것을 결단하고 케냐 선교사로 헌신하였습니다. 이후 침례신학대학원과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에서 공부하였습니다.

 

  불신자였던 제가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소그룹이었습니다. 불완전하고 상처입은자들이 모인 아둘람 공동체를 통해 은혜 아니면 설명될 수 없는 “상처입은 치유자”(The Wounded Healer)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며 더온누리 공동체가 더욱 사랑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함께 사랑하겠습니다.

 

  또한 사람마다 시대마다 돌변하는 가정의 모습이 아니라 성경적 가치로 살아가는 가정의 원리를 배우고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음껏 웃고 누리고 슬퍼하며 증거하는 순례자들이 모인 하나님 나라가 바로 우리 가정이라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막연한 꿈이 아니라 이 꿈이 실제가 되어 모든 가정에 이뤄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가족으로는 최고의 친구 아내 박나영과 소중한 선물 유니, 유민과 함께 작은 천국을 이뤄가고 있습니다.

목사

정 갑 주

목사

김 승 호

  김승호 목사는 전라남도 구례에서 태어났고, 전주에서 자랐습니다. 모태신앙으로 어려서부터 온 가족이 함께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20대 중반, 하나님과 교회에 대한 깊은 고민과 믿음에 대한 방황을 하던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입어 하나님에 대한 깊은 확신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세주이심을 다시 한번 뜨겁게 확인하게 됩니다. 평생 동안 전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또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을 일으키고, 세우는 일에 헌신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후, 국제선교단체 예수전도단 열방대학(U of N)에서 제자훈련학교(D.T.S)과 태국 치앙마이 예수전도단에서 가정사역학교(F.M.S)를 수료하고, 2010년에 위 단체에 전임간사로 위탁하여 6년동안 예배사역에서 섬겼습니다. 2018년 한일장신대학교 신학부에 입학했고, 2020년 동대학원(M.Div)에 입학하여 공부했습니다. 2020년 1월, 더온누리교회가 전주온누리교회에서 분립되었을 때부터 교육전도사로 사역하였고, 2023년 1월부터 더온누리교회에서 전임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김승호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몸된 공동체인 교회를 건강하고, 든든하게 세우는 일에 비전을 가지고, 교회를 세워 가는 일에 사용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현재 더온누리교회에서 목양사역(더소망 지역), 교육부서, 어와나를 담당하고 있고, 가족으로는, 이진아 사모와 딸 소리, 보리가 있습니다.

강도사

이 학 엽

  이학엽 강도사는, 대학 1학년때인 2001년 봄에 대학선교단체를 통하여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회심하게 됩니다. 그 후, 대학선교단체에서 학생으로 8년동안 제자훈련을 받습니다. 이후 동 단체의 캠퍼스 간사로 부르심을 받아 인천과 전주에서 개척사역과 제자훈련 사역을 14년간 했습니다. 대학선교단체 간사로 사역하던 중 신학에 대한 갈급함이 있어 2018년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M.Div)에 입학합니다.

 

  대학선교단체(DSM) 간사로 14년을 사역하였고, 지역 교회 교육전도사로는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사역하였습니다. 더온리교회에서는 2020년 12월부터 2022년 11월까지 교육전도사로 초등3부를 사역하였습니다. 2022년 12월부터 더온누리교회 전임교역자로 현재까지 사역하고 있습니다.

 

  이학엽 강도사는 예수님을 만나면 자유케 된다는 비전을 가지고 사역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 예수님을 만나고 개인적으로 세가지를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되겠다’, ‘하겠다’, ‘가지겠다’는 마음을 내려놓으려 지금도 자신과 싸우고 있습니다.

 

  현재, 더온누리교회에서, 더믿음지역, 더함공동체, 사역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강도사

이 학 엽

전도사

고 영 숙

  고영숙 전도사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격언을 좌우명으로 열심히 땅만 바라보며 살아가던 중, 인생에 찾아 온 불가항력적인 고통을 경험하며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이 세상에 있음을 깨닫게 되고 땅만 보며 달리던 발을 멈추어 비로소 눈을 들어 진짜 하늘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길을 묻게 됩니다. 그때 창조주가 되신 하나님을 만났고 버림받은 인생인 줄로만 알고 살아가던 자에게 ‘내가 너를 사랑하고 내가 너를 기뻐한다’라는 말씀이 레마(Rhema ῥῆμα)의 말씀으로 임하였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회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처음과 끝이요 영원에서 영원 되신 하나님의 대서사시(Meta-narrative)안에 이처럼 깨어진 것만 같은 인생도 목적이 있고 의미가 있으며 결국은 오고 오는 모든 인생은 자신의 삶을 다하고 난 후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후 목회자로서의 부르심을 받고 로마서 12장 15절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의 말씀을 붙잡고 남은 여정 ‘한 영혼’에 대한 회복을 비전 삼아 총회 인준 전북신학교 입학하게 됩니다. 2003년 정읍시민교회에서 중고등부와 청년부 사역을 시작으로 2005년에 전주온누리교회 고등부 교육전도사로 부임하였고 이듬해부터 전임사역자로서 사역 하다가 2020년 더온누리 분립에 함께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사역의 현장에서 신.구약 파노라마, 어?성경이 읽어지네! 성경 일독 학교 강사 자격을 취득하여 말씀 가르치는 사역을 하게 되었고, 오랫동안 성도들을 만나며 영혼을 돌보다 보니 실제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상담의 필요성을 느껴 상담 과정을 공부하기 시작하였고 지금도 그 과정 중에 있습니다.

 

  현재, 더온누리 교회에서 목양 디렉터와 마더와이즈 가정사역과 새 가족 사역을 담당하고 있으며 가족으로는 딸 유다현과 아들 승현이 있습니다.

전도사

이 여 진

  이여진 전도사는 마태복음 16장 24절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에 확신을 갖게 되었고 나의 어떠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아래 나를 빚어가실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가고자 하는 소망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자격없는 나를 부르심에 감격과 감사함으로 나아갈 수 있게 인도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어린이 전도협회 동역으로 시작하여 어린이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을 확인하며 기뻐할 수 있었고 신학교로 부르심을 받으며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사역자로서의 부르심에는 두려움이 앞서 선뜻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사야6장8절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라는 말씀으로 내가 나아가야 할 비전에 대해 응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응답할 수 있는 사역자가 되고자 기도하였고, 보내심과 부르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부르신 곳에서의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과정 속에 하나님과의 동행이 은혜고 축복임을 매 순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향한 헌신의 과정 속에 비전을 보게 하시고 또 전임 사역자로서의 부르심 속에서도 장년 사역에 관한 소망을 품게 하시니 나를 통하여 일하시고 흘려보내실 은혜를 예배하신 하니님께 감사의 영광을 돌립니다.

 

  맡겨 주신 곳에서의 사명을 기도함으로 감당해 나가기를 원하며 또 앞으로의 사역도 복음을 전하는 전달자로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모습으로 영혼을 사랑하며 제자된 삶을 살아감에 나의 가치를 삼고 나아가고자 합니다.

전도사

이 여 진

선교사

안 웅 현

  안웅현 선교사는, 86년 고등학교 1학년 여름 수련회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전격적으로 회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에 성악가냐 목회자냐의 갈림길에서 방황을 하다가 끝내 전남 광주에 있는 호남신학대학교(89학번)와 신학대학원(M.Div)에 입학해서 열공을 하게 됩니다. 신학대학원 3학년 시절, 선교에 대한 관심이 있던 차에 감동을 주시는 말씀에 집중하게 되었지요. 히브리서 10장 39절 말씀입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그 후, 선교학 교수님의 권유와 기도 응답을 통해 2000년에 남미 칠레에서 첫 단기선교사로 섬기게 되었고, 2002년 목사 안수를 위해 귀국 후 잠깐 국내에서 사역을 하게 됩니다. 전주 동신교회와 서울 영은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기며 벧엘 성경공부 강사와 전도폭발 1, 2, 3단계 강사과정을 이수하며 성경공부와 전도의 실제에 대해 배우게 되었지요. 2007년 다시 남미에 있는 수리남에 장기 선교사로 파송되어 사역을 하다 5년 임기를 채우고 특별한 사유(?)로 인해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또 2013년에 중국 대련에 파송되어 한인사역과 현지인 문화사역을 하다 현지인 학교에서 성탄절 시즌에 카드를 만들다 예수님에 대해 설명했다는 이유로 비자 거절을 당해 2년여 만에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젊은이들을 사랑하고 잘 이끄는 달란트에 맡게 2016년부터 전주대에서 객원교수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불신 대학생 2명으로 시작된 목장을 12명이 넘는 목장으로 인도해 주시는 은혜도 전주대 사역을 하며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안웅현 선교사는, 현재 굿윌센타에서 유학생들과 선생님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외국에 나가서 살아온 자는 압니다. 그들의 마음을, 그리고 그들의 상황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를요! 중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 외에 다른 동남아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집안 친적들의 돈까지 끌어 모아서 한국에 온 친구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신앙이 있는 친구들이어도 끊임없이 돈을 벌어야 합니다. 아파도 벌어야 하고 주일이어도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런 유학생 친구들을 바라보는 제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전주대 캠퍼스에서 저는 저들 유학생 모두를 열심히 만나고 끊임없이 섬기려 합니다. 세워주신 선생님들께도 이 한 마음만을 끊임없이 요청드리고 있습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섬기자! 섬기자! 섬기자!

 

  앞으로 굿윌센타는 좀 더 체계적인 섬김을 시행하려고 준비 중에 있습니다. 각국의 학생 리더를 훈련시켜서 그 나라에서 유학 온 학생들의 섬김이 역할을 리더 중심으로 진행해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풍삶 시리즈 공부와 이끄미 공부까지 마친 후 이들을 통해 각국 유학생들의 영혼구원을 직접 실행하게 하고, 학업을 마친 후에는 고국으로 돌아가 현지 선교사가 되어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 삶의 선교사가 되도록 양육할 계획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향해 이런 작은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가족으로는, 전수용 사모와 아들 안요한과 딸 안유니아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