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복을 빼앗긴 에서의 절규[창 27:30-46]
 – 2026년 04월 20일
– 2026년 04월 20일 –
창 27:30-46 복을 빼앗긴 에서의 절규
    
에서가 사냥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아버지의 특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에서가 도착했을 때 이미 일을 마친 리브가가 야곱을 숨겼기에 집안 전체가 조용했을 것이다. 에서 입장에서도 이삭과 독대하여 독점적 축복을 받을 계획이었기 때문에 그는 이 요리를 리브가와 야곱 몰래 준비했을 것이다. 이삭의 집에 알지 못할 긴장감과 적막감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별미를 다 만들어 이삭에게 가지고 와서 축복해달라고 했을 때에야 야곱에게 속은 것을 안 이삭과, 야곱이 모든 축복을 가로채 간 것을 안 에서는 절망하고 괴뤄워하며 고통에 몸부림친다. 이삭은 축복을 달라고 울며 매달리는 에서에게 야곱을 섬기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 외에는 아무것도 줄 수 없었다. 
    
    
    
1. 마침내 드러난 속임수(30~38절)
리브가와 야곱은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직후, 야곱은 즉시 아버지의 숙소를 떠난다(30절). 원문을 직역하면 ‘그가 나가자 마자’인데,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잘 표현되고 있다. 야곱은 에서가 도착하기 직전에 아버지의 장막을 빠져나간 것이다. 31~33절은 이삭이 에서의 정체를 확인하는 장면으로, 앞서 야곱의 정체를 점검하는 장면(18~24절)과 대비를 이룬다.
    
에서도 별미를 가져와 아버지가 드시고 마음껏 축복해 달라고 청한다. 이삭은 에서의 목소리에 매우 당황하여 “너는 누구냐?”라고 묻는다. 에서는 의아해하며 ‘당신의 아들, 당신의 장남, 에서입니다’라고 답한다. 에서의 이 대답은 야곱이 ‘에서, 당신의 장남입니다(19절)’라며 자신의 정체를 감춘 장면과 대조된다. 왜냐하면 두 사람 모두 ‘장남’을 강조하며 이 축복이 장자권과 직결된 선언임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서의 대답을 들은 이삭은 ‘큰 떨림(33절)’으로 자신이 속았음을 직감한다. 하지만 이는 단지 야곱에게 속아서 넘어갔다는 것에 충격과 놀랐다는 의미와 함께 선포된 축복이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 아래 있었고, 이제 되돌릴 수 없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즉, 태중에서부터 하나님께서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라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나 속임 당한 것과 함께 극심한 충격을 감출 수 없었다. 이삭은 사냥 고기를 가져온 자가 이미 복을 받았으며 그 복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힌다.
    
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이 소식에 ‘심히 크고 쓴 울부짖음으로 울부짖었다(34절)’. 그는 자기도 축복해 달라고 이삭에게 간청한다. 하지만 이삭은 야곱이 속임수로 에서의 복을 빼앗았음을 밝히며, 이미 끝난 일임을 확인시킨다. 그러자 에서는 ‘야곱(야아코브, ‘발뒤꿈치를 잡은 자’, ‘사기꾼’)이란 이름이 그에게 딱 맞는다면서, 그가 자신을 두 번 ‘속였다’라고 토로한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내어준 사건(창 25:29~34)과 본문의 축복 사건을 함께 언급한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사건은 야곱이 간교하게 자기 유익을 취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본질은 같지 않다. 본문의 축복 사건은 에서가 명백한 피해자지만, 팥죽 장자권 사건은 그가 장자의 권리를 가볍게 여긴 것과 무분별하고 성급하게 그것을 포기한 책임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를 ‘망령된 행위(히 12:16)’라고 평가할 정도다. 그럼에도 에서는 자신을 돌아보기보다, 자기를 위해 남긴 복이 없느냐고 이삭에게 재차 묻는다.
    
이삭은 야곱에게 통치권과 땅의 소산의 복을 다 주었음(28~29절)을 밝히며, 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알린다. 그래도 에서는 막무가내로 울며불며 계속 축복을 요구한다. 에서의 이런 태도는 인간이 축복을 선포할 수 있으나, 그 복의 근원과 최종 결정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동시에 팥죽 장자권 사건 때와 달리 후회와 절망을 표출하며 끈질기게 축복을 구하는 모습은 에서가 이번 축복을 인생 전환의 마지막 기회로 여겼음을 짐작하게 한다.
    
    
    
2. 에서에게 선포된 축복(39~40절)
에서의 끈질긴 간청에 이삭은 그의 장래를 선언하지만, 그 내용은 결국 태중에서 하나님께서 예고하신 말씀(25:23)이 성취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 선언은 앞서 야곱에게 선포된 축복(28~29절)과 동일한 주제를 다루지만, 그 의미는 사뭇 대조적이다. 먼저, “땅의 기름짐과 하늘의 이슬에서 멀리 떨어져 산다’라는 것은 결핍과 제한 속에서 그의 삶이 이어진다는 뜻이다. 풍요로움의 중심지가 아니라 변두리에서 생존하는 삶이다. 이것은 에서와 그 후손의 삶이 불안정한 환경에 거하게 될 것을 암시한다. 실제로 그의 후손인 에돔 족속은 험준한 세일 산을 근거지로 삼아 척박한 삶을 이어 간다(옵 1:3~4).
    
다음으로 칼에 의존하는 삶이 될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침략과 약탈을 통한 생존 방식을 뜻한다.
    
그리고 아우를 섬기는 삶이 되리라는 것은 이미 태중에서 예고된 대로, 에서가 지배권에서 밀려나 종속적 관계에 머물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에돔은 오랜 기간 이스라엘의 통치 아래에 놓인다. 그러나 이 종속은 영원하지는 않으며, 때로는 저항을 통해 그 멍에를 벗고 자유를 누릴 가능성도 제시된다. 이 역시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 증명될 것이다.
    
    
    
3. 리브가의 야곱 피신 계획(41~46절)
분노한 에서는 야곱을 죽이기로 계획한다. 이를 알아챈 리브가는 야곱을 피신시킬 계획을 세운다. 에서는 축복 사건으로 야곱을 매우 미워하게 된다. 에서의 처지에서 충분히 그의 억울함과 분노 자체는 그럴 만하다. 그는 야곱과 리브가에게 속았고, 장자권에 이어 축복까지 야곱에게 빼앗겼다. 그리고 저주에 가까운 운명을 예고 받았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장자권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이 일 후 자신을 돌아보거나 회개하지 않는다(히12:16~17). 오히려 분노를 키워, 부친의 죽음이 가까웠으니 그 후에 야곱을 죽이려고 마음을 먹는다.
    
그러나 이 계획이 리브가에게 보고된다. 리브가는 앞서 이삭의 축복 계획을 듣고 즉각 야곱에게 할 일을 시켰듯이, 이번에도 에서의 계획을 듣자 곧바로 야곱에게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피하라고 명한다. 이때 리브가는 에서가 야곱을 죽여 그의 한을 풀려고 벼르는 중이라고 표현하는데, ‘그 한을 풀다(42절)’는 ‘자신을 위안하다’라는 의미로, 에서가 자신의 분노를 복수로 정당화하려는 심산임을 나타낸다.
    
리브가는 43~44절에서 네 가지 명령을 야곱에게 내린다. “내 말을 들으라, 일어나라, 도망하라, 거주하라”는 동사가 연달아 등장하며 이 상황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제 내 아들아, 내 말을 들어라(46절).’라고 표현하며 자기 주도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리브가는 위기의 순간이나 기회다 싶을 때 어김없이 같은 방식으로 상황을 통제하고 야곱을 조정하려 했다. 리브가는 ‘에서의 분노가 가라앉고 네가 한 일을 잊을 때까지 며칠간 하란의 외삼촌 집에서 머물라(44~45절)’고 지시한다. 참으로 충격적이게도 리브가는 ‘네가 행한 것(45절)’이라는 표현으로 뒤에서 이 모든 일을 진두지휘한 책임을 야곱에게 떠넘긴다.
    
그런데 리브가는 야곱의 축복 갈취를 구체화하지 않고 사태를 축소하며 그를 안심시키려 한다. 예정된 체류 기간을 “몇 날 동안(44절)”이라고 표현하며 야곱을 안심시키려는 의도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야곱에 대한 편애로 인해 에서 안에 쌓인 상처와 울분을 충분히 공감하지 못한 판단일 수도 있다. 리브가가 생각한 ‘며칠’은 실제로는 무려 20년이 되었고(31:41), 그 긴 세월 후에도 에서는 여전히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있어서 400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맞으러 나간다(32:6). 리브가는 야곱을 다시 데려올 것이라 약속하지만, 실제로는 이후 그를 다시 만나지 못한다. 한편,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45절)”라는 리브가의 한탄은 야곱의 죽음과 에서의 도피나 처벌 가능성을 가리킨다. 겉으로는 두 아들에 대한 모정으로 보이지만 문맥상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야곱을 잃게 될 두려움과 절박함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겠다.
    
이제 야곱의 안전한 도피를 위한 마지막 단계로, 리브가는 이삭이 결정을 주도하도록 명분을 마련한다(46절). 그녀는 에서의 헷 족속 아내들을 거론하면서, 그들 때문에 자기 삶이 끔찍하다고 운을 뗀다. 이어 야곱마저 이방 여자와 결혼한다면 삶의 의미를 잃는 것이라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이 불평은 단순한 핑계 이전에, 이방인과의 결혼으로 언약 가문이 훼손되는 현실에 대한 자각과 위기의식을 나타내기도 한다. 한편, 이 장면은 축복 사건에서 이삭과 리브가가 한 장면에 등장하는 유일한 장면인데, 놀랍게도 리브가의 말만 기록이 될 뿐, 이삭의 직접적인 응답이 없다. 섣부른 판단일 수 있겠지만, 부부간 자식 편애의 모습에서 드러나듯 둘의 관계에 생긴 균열이 오래되었음을 암시할 수도 있다.
    
    
    
나는?
-장자의 축복이 장자 에서가 아니라 야곱에게 주어진다.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에게, 야곱의 큰아들 르우벤이 아니라 요셉에게, 요셉의 큰아들 므낫세가 아니라 동생 에브라임이 장자의 명분을 얻듯, 이 세상이 정당한 권리라고 주장하는 굳건한 질서를 뒤엎고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자유롭게 정하신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의 복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와 권능에만 달려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9)”라고 알림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있다.
    
-야곱이 아비를 속여 자신의 축복을 가로챈 것을 안에서는 분노와 슬픔에 대성통곡한다. 아우의 간교함을 토로하며 이삭에게 고발도 한다. 장자의 명분을 빼앗은 이전의 일까지 거론하며 성토한다. 하지만 어디에도 장자의 권리를 하찮게 여긴 자신의 과오에 대한 반성을 찾아볼 수 없다.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것에 마음이 빼앗겨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내팽개친 것을 자책하는 말은 단 한 마디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욕망에만 충실한 ‘음행하는 자’요, ‘망령된 자’였지만(히 12:17), 야곱의 간교함만 탓한다. 눈물을 흘리며 구했지만, 그것은 회개의 눈물이 아닌 분노와 원망의 눈물일 뿐이었다.
    
-울며 축복을 구한 에서에게 돌아온 것은 거의 저주에 가까운 미래였다. 그가 살 곳은 이슬도 없는 황량한 곳이 될 것이고, 수확이 없으니, 칼을 의지하고 살 것이며, 동생 야곱을 섬기는 나라가 될 것이다. 다만 야곱이 목에 멘 멍에를 부술 날도 있을 것이라는 약속만이 복수심에 불타는 그에게 그나마 작은 위안거리였을 것이다. 실제로 에서의 후손이 이룬 나라 에돔은 남 왕국 유다의 여호람 왕 때에 가서야 이스라엘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내내 이스라엘에게 가시 같은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의도하신 축복이 이렇듯 다른 한쪽엔 원망과 눈물과 분노를 남기는 복은 아니지 않았을까? 인간의 계략과 음모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었지만, 인간은 그 쓰디쓴 열매를 스스로 취하게 될 것임을 보여준다.
    
-에서는 처음에는 자신의 영적 어둠으로 축복을 놓쳤고 이번에는 아버지의 영적 어둠으로 축복을 받지 못했다. 물질적인 축복은 야곱에게 돌아가겠지만, 영적인 축복, 하나님께서만 줄 수 있는 축복은 여전히 빌어줄 수 있었을 텐데, 이삭은 에서에게 황량한 곳에서 살며 칼을 의지하고 살게 될 뿐이라는 말만 남긴다.
    
-야곱의 속임수(엄밀히 이야기하면 리브가의 속임수), 부모의 편애, 이삭의 식탐, 에서의 영적 나태함, 아비의 영적 어둠 등 다양한 인간의 연약함이 야곱의 축복 기사에 버무려져 있다. 결국 야곱과 리브가의 속임수가 이삭과 에서의 영적 무지와 탐욕에 대하여 승리한 듯 보이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약속하신 대로 야곱이 에서의 주인이 될 것이라는 말씀은 성취되고 있었다.
    
-야곱은 속임수로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받아냈지만, 형 에서의 마음에는 살의를 심었다. 에서는 아버지가 죽으면 동생을 죽일 계획을 세우고, 이것을 안 리브가는 다시 야곱을 밧단아람으로 보내 사랑하는 아들을 살릴 계획을 세운다. 아이러니하게도 축복은 받았지만, 축복의 땅에서 도망쳐야 했다. 축복을 받았으나 심판이 함께 불려 왔다. 절반의 축복이었다.
    
-리브가는 아들 야곱을 살릴 생각으로 형 에서의 분노가 풀릴 때까지 몇 날 동안만 밧단아람에 피신해 있으라고 한다. 그러나 그 몇 날이 20년이 될 줄 몰랐을 것이다. 남편 이삭에게는 신붓감을 구하기 위해 보낸다고 둘러댔고, 이삭은 그 말을 믿고 축복하여 보내준다.
    
    
    
*주님, 제 경솔함으로 벌어진 일에 대해서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고 온전히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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