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29:21-35 속였던 그가 속임 당하다. 편애받았던 그가 편애하다
7년의 세월이 지났다. 야곱은 라반에게 찾아가 기간을 채웠으니, 라헬을 달라고 요구한다. 여기서 야곱은 이미 라헬을 “내 아내”라고 칭한다. 이는 당시 관례로 약혼 관계는 이미 실질적인 부부관계로 인정되어 다른 남자가 그 여자를 데려갈 수 없었다. 라반의 대답은 언급되지 않고 단순히 그가 곧바로 결혼식을 진행시키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결국 야곱은 사기 결혼을 당한다.
1. 사기 결혼을 당한 야곱(21~27절)
7년 기간을 채운 뒤 야곱은 라반에게 라헬을 요구했다. ‘주소서(야하브)’로 번역된 동사는 구약에서 아주 절박한 요구를 할 때만 나타난다. 그가 얼마나 라헬을 갈망하는지 엿볼 수 있다. 본문은 이 당시 혼전순결을 철저하게 지켰음을 볼 수 있다. 라반은 결혼식을 열고 사람들을 초청하여 결혼 잔치를 벌였다. 결혼식 축하연은 1주일간 계속되었다(27절; 삿 14:17).
결혼식 당일 저녁 라반은 라헬이 아닌 큰딸 레아를 얼굴을 가린 채 데려갔으며 야곱은 그녀를 데리고 신방에 들어갔다(23절). 라반은 레아를 사기극으로 시집보내면서 관례대로 여종 실바를 일종이 혼수품으로 딸려 보낸다(24절). 라반은 야곱을 의도적으로 포도주에 취하게 했을 것이며 신부의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고 심야의 어둠을 이용하여 그를 속이는 데 성공한다. 이것은 라반의 누이 리브가가 털가죽 피부와 에서의 옷, 그리고 맛있는 죽으로 이삭을 속인 것에 비견된다.
흥미로운 것은 여러 정황으로 보아 라반은 레아를 편애한 것으로 보인다. 단지 레아가 큰딸이어서만이 아닌 다른 이유가 있었을 듯하다. 앞서 야곱이 라헬을 만나는 장면에서 라헬은 당시 여성으로서는 상당히 버거웠을 주로 물 긷는 역할을 했던 목자로 일하고 있었다. 이는 라반의 집안에 노동력이 부족하여 라헬의 비중이 상당히 컸었음을 방증하는 것일 수 있다. 통상적으로 목축은 신뢰하기 어려운 종이나 삯꾼에게 맡기지 않았다. 집안 가족들이 직접 감당했다. 반면 언니 레아는 집안에서 주로 일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묘하게도 에서와 야곱의 생활상이 기시감이 든다. 여러 정황 속에서 확실한 것은 라반이 큰딸 레아를 편애한 것이다. 그런데 야곱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한편, 야곱이 라헬에게 첫눈에 반한 것도 아닌 듯하다. 라헬이 우물가의 첫 만남에서 리브가와 같은 친절을 베푼 것도 아니고 오히려 야곱이 라헬에게 친절을 베풀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오히려 라헬이 야곱에게 호감이 갔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라반의 집에서 한 달을 머무는 동안 야곱의 눈에 라헬의 여성성이 재발견되었을 것이다.
야곱은 라반에게 왜 자신을 속였냐고 따진다(25절). ‘속이다’라는 동사는 에서가 야곱의 행위를 표현한 명사 ‘속임수’의 동사형이다. 동일한 속임수에 야곱이 당했다는 거다. 위장술을 사용했던 야곱이 동일한 위장술로 당한다. 장남 에서는 차남 야곱에게 사기극과 위장술로 지위를 빼앗겼으나, 이번에는 장녀 레아가 차녀 라헬에게서 사기극과 위장술로 지위를 지킨다.
한편, 라반은 위선적이고 교활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우리 지방에서는’ 둘째를 첫째보다 먼저 주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받아친다(26절). 하지만 그가 정직한 인물이었다면 처음부터 야곱과 계약할 때 이런 관례를 말해주었어야 했다. 과민한 해석이지만, 라반은 야곱의 사기극 전말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 마치 너희 집안에서는 둘째가 첫째 자리를 차지했을지 모르지만, 여기서는 턱도 없는 일이라는 뜻으로 들린다. 라반은 허를 찔러 야곱의 약점을 공략함으로써 그가 대응할 수 없게 만들었다. 야곱은 라반의 말에 지난날의 속임수가 떠올랐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야곱은 더 이상 항변하지 못한다. 반면 라반은 큰소리치며 말한다. ‘레아를 위해 7일을 채우라(27절)’ 이는 당시에 결혼식이 7일간 계속 진행되었음을 뜻한다. (‘7’은 완전수로 인식하며 결혼식의 경우 결혼의 완성을 뜻하는 기간일 것이다. 또, 태어난 지 7일이 지나서 8일째에 남자 신생아가 할례를 받는 이유도 동일한 숫자의 신학이 담겨 있을 것이다) 라반은 7일의 축하연이 끝나면 라헬도 주겠다고 약속한다(27절). 이것은 야곱이 라헬을 위해 다시 7년 봉사하면 그 후에 그녀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즉시 야곱이 라헬을 아내로 삼되, 대신 신붓값으로 7년간의 봉사를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다.
라반은 이렇게 야곱을 혈육이 아니라 고용인처럼 부리며 착취했다. 심지어 자기 딸들을 이익의 수단으로 사용한 꼴이다. 딸들의 이름은 각각 ‘암소’와 ‘암양’을 의미하는데, 목축하는 가정에서 적절한 이름일 수 있지만, 라반의 행동은 레아와 라헬을 자신이 기르는 가축처럼, 매매하려고 내놓은 듯 취급한다.
2. 라헬을 얻은 야곱(28~30절)
야곱이 레아와의 결혼 축하연을 정상적으로 마치자, 7일 후에 라반은 약속대로 라헬을 그에게 아내로 주었다. 그리고 라헬을 위하여 여종 빌하를 혼수품으로 딸려 보낸다. 야곱은 다시 라헬과 잠자리를 가졌고 그는 라헬을 레아보다 더 사랑했기에 다시 7년 동안 라반을 인내하며 섬겼다. 흥미로운 것은 7년을 며칠처럼 생각했다는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의 나중 7년의 세월은 처음 7년과는 분명 달랐음을 암시한다.
3. 레아가 네 아들을 낳다(31~35절)
레아는 야곱에게 사랑받지 못했다. 원문은 ‘미움을 받았다’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야곱에게 미움을 받는 레아를 불쌍히 여기셨다. 그리고 그녀의 태를 먼저 열어주셔서 연달아 아들을 낳게 하신다. 하지만 라헬은 자녀를 갖지 못했다.
레아가 낳은 아들들의 순서는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다. 레아는 아들들이 태어날 때마다 의미 있는 이름을 붙인다. 처음 세 아들의 이름에는 자신의 고통을 하나님께 하소연하며 남편의 사랑을 갈망하는 뜻을 각각 담는다. 르우벤은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보셨다’, 시므온은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받지 못함을 들으셨다’, 레위는 ‘내 남편이 나와 연합할 것이다’이다. 그런데 넷째 유다는 ‘내가 여호와를 찬양하리라’라는 의미다. 그리고 유다를 낳고 출산이 멈춘다. 이는 야곱과의 잠자리가 중단되었음을 의미한다(창 30:14~20).
어떤 이유인지 밝히지 않지만, 유다의 출산은 레아의 마음에 있던 야곱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해결되었음을 암시하는 듯하고 비로소 여호와를 찬양하는 고백을 하게 된다. 그녀의 넷째 아들 유다는 장차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지파로 드러난다. 유다의 뿌리에서 다윗이 출현하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다.
넓게 보면 라반의 기만으로 야곱은 사기 결혼을 당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가 원치 않던 아내를 통해 섭리하시면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 속에 깃들어 놓았던 천하 만민이 구원의 복을 누리게 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어 가신 것이다.
나는?
-형을 속여 장자권을 빼앗고, 대낮에 눈이 어두운 아비를 속여 축복을 가로챈 야곱이 이제 캄캄한 밤중에 라헬로 변장시킨 라반에게 속는다. 야곱은 자신이 원하던 여인이 아니라 라반이 원한 딸,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과 결혼하게 된다. 그녀를 통해 하나님은 영적 장자권을 레아의 넷째 아들 ‘유다’에게 주신다.
-장자의 축복을 받기 위해 아버지를 속였던 ‘속이는 자 야곱’이 라반으로부터 속임 당한다. 다른 이를 속여 원하는 것을 얻어 냈다면 그것이 결론이 될 수 없다. 그 또한 누군가에게 기만당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라반도 예외가 아니다. 라반은 장차 야곱과 두 딸에게 속게 될 것이다(31:35). 주님은 하나님 나라 백성들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이 율법이며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하셨다(마 7:12). 행한대로 일어난다.
-라헬을 얻으려고 야곱은 7일의 레아와의 결혼 잔치를 보내고, 신붓값으로 7년을 더 일한다. 야곱의 노동력을 탐내던 라반의 탐욕의 결과지만, 자기 힘을 믿던 야곱에게 그 힘으로 얻은 것 역시 자기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일깨워주신다. 그토록 사랑하던 라헬을 얻었지만, 그녀로부터 아이는 얻지 못한다.
-라반에게 속아 7년을 더 일하는 야곱의 마음은 어땠을까? 처음 라헬을 얻기 위해 며칠처럼 여겼던 7년과는 분명 다른 7년이었을 것이다. 처음 7년은 짧고 즐거웠지만, 라반의 억지스러운 요구로 다시 일해야 하는 7년은 매우 길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레아를 향한 야곱의 태도가 이를 방증한다. 야곱은 레아를 ‘미워했다(사랑받지 못했다).’
-이삭과 리브가의 편애로 가족이 산산조각 난 것을 경험했으면서도 야곱은 라헬만 편애한다. 하지만 라헬을 통해 자손의 축복을 이루려던 계획은 라헬의 불임으로 물거품이 된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받지 못하는 여인 레아를 통해 자손을 주신다. 레아는 그 자식들로 인하여 남편에게 받지 못한 사랑으로 상처 입은 마음에 위로를 얻는다.
-하나님은 레아를 어루만지신다. 상처 입은 영혼을 위로하고 치유해 주신다. 야곱이 라반의 집에 왔을 때부터 야곱이 원한 아내는 라헬이었기에 레아에게 라헬을 향한 열등감이 없을 리 없었다. 또한 라반의 기만으로 야곱과 억지 결혼했지만, 역시나 야곱에게서 느껴지는 거절과 미움의 아픔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레아의 마음을 아시고 태의 문을 먼저 열어주셨다.
-첫아들을 출산한 후 레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괴로움을 돌보아 주셨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또한 아들로 인해 이제 자신이 남편의 사랑을 받게 될 것이라고 소망을 품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의 문제는 해결 받지 못했으나 하나님께서는 아들들을 출산하는 과정을 통해 레아의 상처 난 영혼과 마음을 치유하시고 위로하신다. 하나님은 남모를 우리의 속앓이를 아시고, 돌아보아 주신다. 우리 아픔을 위로하실 뿐 아니라 그 아픔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신다.
*사기 결혼을 당한 야곱이 측은하다, 이내 화가 난다. 라헬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만큼 사기 결혼의 원인이라 생각한 레아를 미워한다. 그 모습을 보니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레아가 짠하다. 남편에게 미움받는 여인의 마음이 어떨까? 에휴….
*레아가 아들들의 이름을 지을 때마다 그 심정이 어땠을까? 그런데 레아의 그 모습에서 점점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모습들이 나타난다. 남편에게 미움받는 그 설움이 하나님을 찾게 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체적으로 바라게 됐다. 레아가 어떻게 하나님을 알게 되었을까? 이방신들이 가득한 그 하란에서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어떻게 들을 수 있었을까?
*아브라함의 이야기, 리브가 고모가 시집을 갈 때 엘리에셀에게 들었던 그 하나님의 놀라운 이야기들, 야곱이 벧엘에서 경험하였던 하나님의 은혜들을 라반에게 이야기했을 때 들었을 테다. 그 희미한 하나님에 대한 것들이 여인으로서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극한 처지에서 아들들을 낳을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에 대한 구체적인 갈망들로 나타나게 되었을 테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놀랍다. 미움받는 여인에게서 이스라엘 지파들의 조상들이 나오게 하신다. 하나님의 신비한 간섭이다. 벧엘에서 야곱에게 약속하신 것들을 야곱이 미워하는 여인들을 통해 먼저 성취하고 계신다. 물론 야곱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내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도 신실한 하나님의 간섭은 계속되고 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신다.
*주님, 속이는 삶을 살았던 야곱이 이제 속임 당하는 모습을 봅니다. 죄 된 방법으로 이룬 삶을 반드시 교정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봅니다. 속임 당한 감정을 맛보게 하심으로 속이는 삶을 살았던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기억하겠습니다. 올바로 살아내겠습니다.
*주님, 편애를 받고 자라서일까요? 아니면 속임 당한 속상함을 레아에게 쏟아내는 것일까요? 편애가 가져올 파장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야곱이 안쓰럽습니다. 제 안에 이런 무지가 여전함을 알기에 그저 주님의 깨우쳐주심을 오늘도 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