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31:36-55 라반과 평화조약
야곱은 라반이 드라빔을 찾지 못하자 그동안 참았던 불만을 한꺼번에 토로한다. 야곱은 상식에 어긋날 정도로 라반을 섬겼고, 라반은 그런 야곱을 착취했다. 이런 야곱에게 라반은 불안감을 느끼고 언약을 맺자고 제안한다. 이에 야곱과 라반은 야곱이 다른 부인을 두지 않을 것과 서로 침범하지 말자는 내용으로 언약을 체결하고 평화적으로 헤어진다.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20년 세월을 섬겼다. 7년간 레아를 위한 기간, 추가적인 7년의 라헬을 위한 기간, 그리고 이후 라반을 위한 6년의 섬김 기간의 합산이다(41절). 그러나 야곱은 이 20년 동안 라반이 품삯을 무려 열 차례나 변경했다고 비난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열 번은 실제적인 수라기보다는 꽉 채움을 의미하는 완전수의 개념일 것이다. 말하자면 라반의 계약 위반이 수도 없이 반복되었다는 의미다. 이제 이러한 상황이 극적으로 뒤집힌다.
1. 야곱의 울분에 찬 항의(36~42절)
야곱은 라반에게 분노하며 그동안 참아왔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쏟아낸다. 그가 라헬에게 크게 분노한 이후(창 30:2) 다시 여기서 분을 내는 모습이 나타난다. 그는 라반과 법정 소송에서 싸우는 것처럼 자신을 변론하며 라반의 죄를 나열하기 시작한다. 야곱은 라반에게 내가 무슨 반역질과 죄를 저질렀기에 그에게 항명한 적도 없는 나에게 왜 이렇게 맹렬히 추격까지 하면서 나를 쫓아왔는지 항의한(36절) 것이다. 특히 드라빔의 분실을 야곱 일행에게 뒤집어씌운 것이 오히려 라반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야곱은 라반을 계속 몰아붙였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확인시키기 위해 자신의 헌신적인 목축 원칙을 나열한다.
라반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야곱의 섬김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38~39절). 첫째, 나는 임신한 양과 염소를 잘 돌보아 유산이 되지 않았다. 둘째, 나는 외삼촌의 숫양 고기를 일절 먹지 않았다. 셋째, 맹수에게 물려 찢긴 가축은 내가 배상했다. 넷째, 도둑맞은 가축도 내가 배상했다. 이러한 야곱의 목축 원칙은 큰 손해를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이것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이후 야곱이 얼마나 놀라운 인물로 변화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것이 허풍이 아닌 이유는 라반이 아무런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 여러 국가의 법에 따르면 천재지변이나 짐승에 의해 가축이 죽었을 때, 그리고 가축을 도둑맞았을 때 목자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었다. 이것은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율법에서도 동일한 원리가 되었다(출 22:9~13).
결국 야곱은 이 모든 손실을 자신이 메울 필요가 없었음에도 그는 외삼촌에게 가축의 손실분을 일절 청구하지 않고 자신의 몫을 떼어 그것을 채웠다. 암양은 새끼를 치고 우유를 짜는 이유로 비싸서 숫양을 흔히 식용으로 잡았다. 목자가 자신의 재량으로 가끔 잡아먹어도 되었지만, 야곱은 그 어떤 숫양도 일절 손대지 않음으로써 외삼촌에게 아무런 손해를 끼치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원칙을 따라 목축함으로써 외삼촌의 가축을 크게 늘려 놓았으며 낮에는 더위와 싸우고 밤에는 추위를 견디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을 했다고 항변한다(40절). 가혹한 환경 속에서 야곱은 오랜 세월 인내하며 라반의 목축업을 도맡아 최선을 다해 크게 번성시켜 놓았다. 그 혜택은 모두 라반에게 돌아갔다.
야곱은 그렇게 20년을 인내하며 라반을 섬겼다. 그의 희생적이고 성실한 목축으로, 또한 그와 함께하며 그가 가는 곳마다 큰 복을 받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라반의 가축 떼는 해마다 크게 번성했을 것이다. 야곱은 소나기 펀치 끝에 마지막 결정타를 날려 라반을 무릎 꿇게 했다. 라반이 결국 빈손으로 밧단아람에 온 자신을 빈손으로, 고향으로 돌려보내려 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수고와 고통을 아시고 어젯밤에 직접 외삼촌에게 나타나 꾸짖지 않았느(42절)냐고 일침을 날린다. 야곱은 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자신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며, 또한 자신의 아버지 이삭이 두려워하는 하나님이심을 강조한다.
2. 야곱과 라반의 조약 체결(43~55절)
라반이 야곱에게 굴복한다. 라반은 야곱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에 야곱에게 조약 협정을 제의한다(43절). 그런데 그의 허세는 여전하다. 야곱의 아내와 손주들, 그리고 야곱의 모든 소유가 자신의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조약을 제의한 순간 이 모든 허풍은 자신의 패배와 열세를 인정한 것에서 나오는 치기일 뿐이다. 이제 야곱과 라반의 관계는 더 이상 주종관계나 상하관계가 아니다.
두 사람은 엄중한 조약을 맺은 후 그들은 기념석으로 세운 돌무더기에 각자의 이름을 붙였다. 이것은 증거석과 더불어 그들의 조약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제 두 사람은 이 기념석을 중심으로 서로 존중하며 평화로운 동맹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 두 사람은 각각 자신의 언어로 돌무더기에 이름을 붙였는데, 라반은 아람어로 ‘여갈사하두다’라고 불렀고, 야곱은 가나안어(이 당시는 히브리어라고 부르지 않았다) 로 그것을 ‘갈르엣’이라 불렀다. 두 단어 모두 ‘증거의 무더기’라는 뜻이다. 라반은 그 돌무더기가 오늘 자신과 야곱 사이에 증거가 될 것이라고 공포한다. 라반은 이 돌무더기와 함께 별도의 돌기둥을 세우고 ‘미스바’라는 이름을 추가한다(49절). 미스바는 망을 보는 탑인 ‘망대‘라는 뜻이다. 라반은 그 기둥의 이름에 여호와께서 서로 멀리 떠나는 자신과 야곱을 그 망대에서 살피시고 지켜달라는 소망을 담았다(49절).
그리고 난 후 라반은 이 조약의 조건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준수해야 할 것을 마지막으로 상기시킨다. 그것은 자신의 두 딸과 관련이 있다. 라반은 야곱이 자기 딸들을 학대하거나 다른 아내들을 맞아 그들의 위치를 위협한다면 하나님이 둘 사이에 증인 될 것이라고 말한다(50절). 그가 다른 아내들을 경계하는 이유는 아내들의 증가로 인해 자기 딸들의 상속권이 위협받고 손주들 유산의 몫이 축소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그는 딸들을 타인 취급하고 딸들을 팔아 큰 이득을 얻었던 비정한 아버지였다.
51~55절은 야곱과 라반의 송별식이다. 라반은 조약 예식의 마지막 절차로 상호 간의 철저한 조약 준수를 맹세한다. 조약의 기념물로 세운 돌무더기와 기둥이 증거물이 될 것이다(52절). 동시에, 이 기념물은 양측의 경계선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이 조약은 일종의 상호 불가침 조약이었다. 만일 그 돌무더기 경계선을 넘어와 계약 위반한다면, 이제 아브라함의 ‘신들’과 나홀의 ‘신들'(개역 개정은 둘 다 ‘하나님’으로 번역됨), 그들의 조상의 신들이 둘 사이를 판단해달라고 기원한다. 한편, 복수의 신들을 부른 라반과 달리 야곱은 하나님을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자신의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분’으로 호칭하며 맹세한다.
이후 야곱은 그 산에서 화목제를 드린 후 라반 측의 사람들(‘형제들’)을 모두 불러 함께 풍성한 식탁을 나눈다(54절). 그들은 그 밤을 거기서 지낸 뒤, 아침 일찍 일어나 길을 떠날 채비를 갖추었다. 라반은 자신의 딸들과 손주들과 더불어 송별 인사를 나누며 축복한 뒤 고향으로 돌아갔다.
나는?
-야곱은 드라빔을 찾지 못한 삼촌 라반을 책망한다. 쩔쩔매며 도망하던 야곱이 아니었다. 훔쳐 달아나지 않았다는 확신, 노동의 대가라는 판단, 게다가 벧엘의 하나님의 임재 의식이 또렷했기 때문일 것이다. 라반의 집에서 야곱은 성실하며 인내하였다.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 속에서도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자기에게 맡겨진 짐승들을 잘 키워냈고, 자기 실수로 상한 짐승은 자기 것으로 보상했으며, 그럴 필요가 없을 때조차도(천재지변) 자기 것으로 손실을 만회하였다. 야곱은 라반의 번영만 생각한 충성된 종이었다. 이런 삶에서 나오는 당당함이 있었다.
-라반은 두 딸을 이용하여 야곱을 속인다. 무려 20년 동안 사위의 품삯을 열 번이나 바꿔치기하여 착취하였다. 그러고도 빈털터리로 만들어 보내려고 한다. 야곱이 가지고 간 모든 소유가 본래는 자기 것이었다며 하나 마나 한 허풍을 늘어놓는다. 지독한 욕심과 집착의 노예가 된 가련한 모습이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하시고 야곱의 수고를 감찰하셔서 일시불로 품삯을 얻도록 복 주셨다. 당하고만 산 것 같은 20년이 하나님 앞에서는 한날도 허사가 아니었으며, 더욱이 눈에 뵈는 부보다 야곱이 자기 한계와 하나님을 알아가기 시작한 것이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더 큰 보상이었다.
*20년 동안 라반은 야곱을 이용하기만 했고 빈털터리로 쫓아내려 했지만,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이 야곱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다. 그와 함께하시고 밀린 품삯도 다 받아 나오게 하셨다. 당하고만 산 것 같은 그 세월이 사실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의미를 만들어내신 하나님 덕분이다.
*불의한 일에서 보호하시고 수골르 갚아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야곱은 죄인을 쫓듯 자신을 뒤쫓아온 라반에게 20년 동안 당한 설움과 불만을 쏟아낸다. 야곱의 성실한 수고에도 불구하고 라반은 정당한 대가를 주기는커녕 열 번이나 품삯을 바꿨고, 맹수나 도둑에 의해 손해 본 것까지 야곱에게 배상하도록 하였다. 만약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하지 않으셨다면 야곱의 삶이 어땠을까? 더러 부당하고 불의한 일을 당할 때가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자초지종을 아신다. 우리의 걸음을 보호하시며 모든 수고한 것을 갚아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라반이 야곱과 조약을 맺은 것은 라반이 야곱을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휴전선처럼 돌무더기를 쌓아 서로 넘어가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라반과 야곱이 맺은 조약은 상대방의 적대 행위나 학대에서 서로를 보호하려는 일종의 평화조약이다. 가능하다면 모든 사람과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고(롬 12:18), 그럴 수 없는 사람과는 관계를 좋게 마무리하는 것도 지혜다.
*주님, 라반의 속임에도 성실과 인내로 살아온 야곱의 삶과 동행하시며 그 진가를 인정하신 하나님의 역전하시는 은혜가 통쾌합니다. 이것을 기억하여 세상의 속임 속에서 분노보다 더 탄탄한 성실로 세상의 기만을 무색하게 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