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이 땅에 거하라, 반복되는 죄 [창 26:1-11]
 – 2026년 04월 16일
– 2026년 04월 16일 –
창 26:1-11 이 땅에 거하라. 반복된 죄
    
본문은 이삭의 인생을 개괄하고 있다. 기근으로 인해 가나안 땅을 떠나려고 한 이삭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랄에 머물지만,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리브가를 누이로 속인 사건이 소개된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사라를 누이라고 속였던 죄를 반복한 것이다. 복을 나누어주도록 부름을 받은 아브라함의 후손 이삭이 도리어 아비멜렉에게 추궁을 당하는 처지에 놓인다. 26장은 아브라함이 175세에 사망한 이후의 사건으로 확인되며(창 28:18), 그렇다면 이때 이삭의 나이는 최소 75세, 이미 태어난 야곱과 에서는 최소한 15세다.
    
    
    
1. 다시 엄습한 기근과 이삭의 이주(1~5절)
가나안 지역에 흉년이 들었다. 26장을 시작하면서 이 흉년을 언급함으로써 12장의 아브라함 때의 흉년 이야기와 연결하려 한다. 이삭은 흉년이 들자, 아브라함처럼 애굽으로 가려고 하였던 것 같다. 남쪽으로 이동하다 가나안 남쪽 경계인 그랄 지역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신다. 그리고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명령하시면서 12:1~9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을 그대로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땅인 가나안 땅의 그랄 지역에 머무르면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겠다는 약속과 함께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복과 땅과 자손에 대한 약속을 주셨다. 특별히 “함께해주시겠다”라는 약속은 사실 아브라함에게는 직접 표현하신 적이 없었다. 다만 아비멜렉이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창 21:22)”라고 증언해 주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삭에게는 직접적으로 함께하시겠다는 약속하신 것이다. 그만큼 하나님의 약속 성취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하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삭에게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을 다시 주시고 성취를 약속하시는 이유가 본문에서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셨기 때문이다(3절). 이 장면은 21:16~18에 나오는데, 이삭을 아끼지 않고 바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별과같이 많은 자손과 복을 주시겠다고 맹세하셨다. 둘째,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에 관한 결과라고 하셨다(5절). 이렇게 이삭은 아버지의 유산으로 좋은 신앙을 물려받았으나, 한편으로는 본문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결단을 요구받은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에 이삭은 순종하여 그랄에 머물렀다.
    
    
    
2. 아내를 누이로 속임(6~11절)
이삭은 그랄에 머물면서 아브라함이 했던 것처럼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다. 이유도 아브라함과 동일하게 리브가가 아름다워서 그녀로 인해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에 이어 그도 여전히 가나안 땅에서 자신이 약자라고 생각하고, 강자인 그랄 사람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 아브라함의 전철을 따랐다.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흔들린 것이다. 이삭은 아버지에게 좋은 신앙의 유산을 받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잘못된 행동 양식도 배운 것이다. 하지만 거주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삭과 리브가가 함께 있는 장면을 아비멜렉 왕에게 들키게 되어 오히려 이방인인 블레셋 왕에게 책망을 듣고 망신을 당한다. 매우 역설적으로 리브가를 건드리면 죽일 것이라고 백성들에게 공표하여 오히려 그의 보호를 받게 된다.
    
이 장면을 아브라함 사건과 비교하면, 먼저 본문의 아비멜렉이라는 인물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 사건에서는 사라가 애굽의 궁과 아비멜렉의 궁으로 끌려가서 위험에 처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개입으로 풀려날 수 있었다. 하지만 본문의 아비멜렉은 리브가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이삭의 아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보호하려고 한다. 이런 모습을 통해 가나안 땅에서 아브라함의 가족에 대한 위험이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동안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복 주심을 통해 아브라함의 가족이 점점 강성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이삭 본인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여전히 그들을 두려워하며 잘못된 행동을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것도 중요하나, 그것을 받는 사람이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힘 있게 살아가는 모습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나는?
-아브라함은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갔지만, 이삭에겐 내려가지 말라고 하신다. 아무리 기근이 심해도 이 가나안이 약속의 땅이고, 여기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땅과 자손의 약속은 외적인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으로만 성취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다시 이삭에게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과 자손의 약속을 들려주시면서 순종을 요구하신다. 당장 손에 잡히지 않는 이 약속만 믿고 계속 그 어려움의 자리에 있으라는 명령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까?
    
-순종 뒤에 곧 이삭의 불순종이 이어진다. 자손의 축복을 약속으로 받고도 축복의 통로인 아내를 넘겨주었다. 부전자전이다. 아버지와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위기 상황에서 똑같이 반응한다. 오늘의 순종이 자동으로 내일의 순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앙으로 우쭐할 틈이 없다. 늘 깨어 말씀을 청종하고 날마다 죽을 뿐이다.
    
-‘우연히’ 아브라함과 리브가가 부부임을 안 아비멜렉은 이삭의 행동을 책망하고, 백성에게는 리브가를 범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하마터면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할 사람이 화의 근원이 될 뻔했다. 하나님은 ‘우연’처럼 보이는 필연을 통해 자기 백성을 보호하신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이삭에게도 동일하게 하신다. 하나님이 세대마다 약속의 상속자와 더불어 언약을 재확인하시는 것은 이 언약이 대대로 이어지는 영원한 언약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아브라함은 죽었지만, 그에게 하신 약속은 이삭에게로 계승되고 있다. 이 약속은 야곱에게도 주어졌으며(28:15), 부분적으로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그리고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성취되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약속이 복을 누리며, 복의 통로로 살고 있는가?
    
*앞선 실수를 보고 배우지 않으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두 차례나 어머니 사라를 누이라고 속인 것처럼 이삭도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인다. 그로 인해 아브라함과 이삭은 동일하게 하나님을 모르는 아비멜렉이라는 세상 통치자를 통해 책망을 받게 된다(20:9; 26:10). 혹시 선대가 저지른 실수를 반고하고 있지는 않은가? 또 후대에 어떤 본을 보여주는가?
    
*기근이 든 땅에서도 얼마든지 많은 곡식을 거두게 하신다. 하나님은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인 이삭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농사와 목축에 크게 복을 주어 블레셋 조속에 비해 백배의 수확을 얻은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과 은혜를 보여준다. 이는 믿기만 하면 누구라도 큰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돌봐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확신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가?
    
*가뭄이라는 상황과 여건보다 “머물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이삭의 믿음의 결단을 결코 쉽게 보면 곤란하다. 이마저도 결단하지 못하는 어려운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기근이 아무리 심해도 하나님께서 머물라 한 그곳에 머물러야 한다. 내 눈으로 보기에 애굽에 물이 많음을 알아도 풍부한 물이 풍요를 가져오지 않는다. 복을 가져오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 복이 있다. 거기에서만이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된다. 그런데 이삭의 고의성이 아쉽다. 그것도 오랜 시간 동안(8절) 반복되었다. 이것 참…. 나에게도 이런 연약한 부분이 상황과 여건이 되면 언제든지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이삭을 뭐라 할 수 없다. 그의 연약함이 오히려 나에게 위로가 된다. 이삭도 그리했구나….
    
*그럼에도 하나님의 은혜는 변치 않는다. 특히 보호하심의 은총이 크다. 그 위세 등등한 인간 권력조차도 마음을 움직이셔서 오히려 보호의 장막이 되게 하신다. 이삭의 연약함을 아비멜렉이 측은히 여겼다. 나그네의 불안함과 염려를 이해하게 하신 것이다. 오죽하면 그랬겠냐는 측은지심의 마음을 주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살았다! 하나님 측은지심의 은혜가 아비멜렉의 마음과 조치를 통해 실현되고 이삭은 살았다!
    
*오늘 나의 삶에도 하나님의 측은지심이 누구를 통해, 어떤 상황을 통해 전달될까? 이 은혜가 오늘을 살게 할 것이다.
    
*세상 속에서 이삭은 어떻게 살았나? 본문은 세상을 속이며 살다 오히려 세상의 보호를 받게 되는 아이러니한 은혜를 보여주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측량할 수 없는 것이다. 이야…. 이런 은혜라니…. 세상을 향해 당당하지 못한 그의 속임이 지금은 오히려 세상의 측은지심을 얻어 보호함을 받는다. 너도 어쩔 수 없는 약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아브라함의 일이 이삭에게서 그대로 이어지며 드러난다. 데자뷔다! 겉으로 보이는 과정과 결말이 판박이다. 반복되는 실수를 통해 족장들이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졌다. 실수가 정죄의 대상이라기보다 인내와 기다림의 대상임을 분명히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다려 주셔서 이삭의 순종이 완성된다. 내 삶 역시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다려 주시기에 조금씩 온전해져 갈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주님,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겠습니다.
*주님, 기근이라는 두려움을 말씀에 의지하여 직면했지만, 세상의 관습이 주는 두려움은 여지없이 죄 된 습성의 세습으로 대처하는 이삭의 모습을 봅니다. 때로 믿음으로 때로 여지없는 불신앙으로 왔다 갔다 하는 신앙의 자화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연약함에도 신실하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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