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속이고, 거짓말하여 [창 27:15-29]
 – 2026년 04월 19일
– 2026년 04월 19일 –
창 27:15-29 속이고, 거짓말하여
    
리브가는 이삭이 즐기는 음식을 만들고 야곱을 에서처럼 가장시켜서 이삭에게 가게 한다. 그리고 야곱은 자신을 의심하는 아버지 이삭을 적극적으로 속이며 에서인 것처럼 행동하였고 마침내 속은 이삭은 야곱에게 축복을 주게 된다.
    
창세기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죽기 전에 해주는 축복의 내용은 크게 재물에 대한 것과 권위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재산권과 지도력을 아들에게 물려주는 행위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예나 후에 야곱의 예에서도 보듯이 한 아들에게만 모든 축복을 다 주지 않고 일정 부분 나누어 주었다. 아브라함도 대부분 이삭에게 주었지만, 나머지 서자들에게도 어느 정도 나누어 주었다. 야곱은 자신의 지도력은 유다에게, 재물은 요셉에게 장자의 권한대로 나누어 주었다. 하지만 이삭은 이 모든 축복을 오직 에서에게만 주려고 한 것이다.
    
    
    
1. 이삭을 야곱으로 변장시키다(15~19절)
리브가의 행동은 일사불란하고 빠르다. 그녀는 자기가 보관하고 있던 에서의 좋은 옷을 가져와 야곱에게 입힌다(15절). ‘좋은 옷’으로 번역된 원어는 “매우 소중한 옷”임을 암시한다. 리브가는 요리를 위해 새끼 염소 가죽을 벗겨낸 뒤 옷 밖으로 드러난 이삭의 신체를 모두 위장했다(16절). 팔뚝까지 포함해서 두 손을 덮고, 이어서 목에 둘렀을 것이다. 또 그것을 만졌을 때 에서의 피부와 비슷한 느낌이 들도록 세밀하게 새끼 염소의 털을 손질했을 것이다. 그녀는 에서의 피부에 난 털의 크기와 감촉, 밀도까지 고려해서 가짜 피부 털을 만들었을 것이다.
    
축복 예식에서는 입맞춤하는 것이 관례이기에 이삭의 얼굴 주변에도 염소 털을 붙여 구레나룻을 위장했을 것이다. 리브가가 새끼 염소 두 마리로 음식과 위장을 동시에 해결했다는 사실은 그녀의 음모가 사전에 매우 구체적으로 치밀하게 준비된 것임을 알게 한다. 이렇게 해서 리브가와 야곱은 옷을 가지고 아버지를 속인다. 그러나 후에 야곱 자신도 아버지가 된 후 결국 자녀들에 의해 위장된 옷에 속는다(창 37:31~34).
    
이삭이 이런 위장술에 속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둔해진 감각 때문이다. 그는 시력뿐 아니라 손의 감각도 예전 같지 않다. 그녀는 정성스레 준비한 이삭을 위한 특식을 야곱의 손에 들려준다(17절). 야곱은 그것을 들고 아버지의 숙소로 가서 아버지를 부른다(18절). 야곱은 최대한 에서의 목소리를 흉내 냈을 것이다. 아마 이삭은 이때 시력뿐 아니라 청력도 예전 같지 않았기에 위장된 목소리를 어느 정도 의심하긴 했지만(22절), 결국 속고 만다.
    
이삭은 ‘네가 누구냐?’라고 묻는다. 시력이 희미했던 이삭이 아들의 신분이 의심스러워 이 질문을 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에게 이 질문은 특별하지 않다. 방문하는 모든 사람에게 물었던 질문이었을 것이다. 야곱은 대담하게 자신이 에서라고 답변하면서 아버지를 위해 준비한 특식을 드시라고 권면한다(19절). 사냥한 고기를 다 드신 뒤 자신을 마음껏 축복해달라고 요청한다.
    
    
    
2. 이삭이 속임수에 넘어가다(20~23절)
리브가와 야곱은 계획을 빠른 시간 내에 진행해야 했다. 에서가 돌아오기 전에 모든 일을 마무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삭은 예상보다 너무 빨리 나온 특식이 의아스러웠다. 그는 야곱에게 어떻게 사냥을 이렇게 빨리 마칠 수 있었느냐고 묻는다(20절). 야곱은 하나님께서 사냥감을 ‘내 앞에서 만날 수 있게 해주셔서’라고 거짓말을 한다. 기만적이고 조작한 위장술에 이어 거짓말을 추가한다. 게다가 여호와의 이름을 끌어들여 사기극에 이용한다.
    
이삭은 나름 신중하게 축복 의례를 진행하려 한다. 시력이 좋지 않았기에 최종적으로 기도의 대상을 확실하게 점검하고자 아들의 몸을 만져서 에서 인지를 확인하려 한다. 그런데 이삭에게 아들의 음성이 에서의 음성이 아니라 야곱의 음성처럼 들렸다(22절). 이삭은 야곱의 두 손(아마 팔뚝까지)을 만져보고 에서의 피부 털의 감촉을 느낀다. 이에 따라 그는 속으며, 결국 야곱을 축복하게 된다(23절).
    
그가 속은 것은 리브가의 탁월한 조작 기술(?) 때문이기도 하지만, ‘분별하지 못했다’라는 저자의 평가를 무시하면 안 된다. 그의 신중치 못함과 손 감각의 기능 저하, 그리고 영적 분별력의 감퇴로 인해 생긴 결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성경은 듣는 것을 진리의 원천이라고 말하는데(신 4:12), 이삭은 이 감각이 둔화하여 있었다.
    
결국 이삭은 리브가와 야곱에게 속아 에서를 위해 준비한 모든 축복의 말을 야곱에게 하고 만다.
    
    
    
3.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다(24~29절)
이삭은 야곱을 자신이 총애하는 에서라고 확신한다(24절). “너는 진짜 내 아들 에서로구나”는 이삭의 말에 야곱은 ‘맞습니다’라고 마지막 화답을 하면서 확인 작업이 끝난다. 이삭은 아들이 가져온 별미를 즐긴다. 축복 예식의 절차대로 음식을 배불리 먹은 다음 아들을 축복하겠다고 말한다(25절). 야곱은 특식과 떡을 드렸고, 이어서 포도주를 가져와 마시게 하였다.
    
식사를 마친 이삭은 야곱을 가까이 오라고 부른다. 이어서 자신에게 입 맞추라고 명한다(26절). 이것은 쌍방 간의 축복과 평안을 비는 관례였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에게 입을 맞춘다. 이삭은 아마 그의 머리와 몸을 껴안았을 것이며, 그 옷의 향취를 맡으면서 그를 축복한다(27절).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주신 밭의 향취다’라며 그가 받은 복과 그에게 복을 주신 여호와를 찬양한다. ‘밭’은 ‘들’을 상징한다. 앞서 에서를 들사람이라고 묘사한 것과 연결된다(창 25:27). 이삭은 야곱에게 속아 에서인 줄 확신한 것이다. 에서의 옷에서 들사람의 냄새가 나기에 이삭은 그가 나가서 활동하는 사냥터와 목초지의 풍요함을 찬양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축복은 야곱에게 그대로 성취된다. 나중에 야곱은 탁월한 목자가 되었으며, 가나안 전역을 누비는 사람이 된다. 이삭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새 포도주를 의미함) 가 그에게 넘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원한 복들은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셨던 약속의 반복이며 확증이다. 만민이 그를 섬기고 열국이 그를 경배한다는 것은 야곱 후손의 번성을 전제한다. 따라서 그의 이름이 창대해져 모든 민족이 그를 높이고 경배하게 될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그러했듯이 이삭의 장자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받을 것이다. 이삭의 축복의 승계자는 결국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축복의 승계자임이 드러난다.
    
    
    
나는?
-리브가가 행동을 시작한다. 정확히 이해하자면 야곱과 리브가의 합작품이다. 그런데 너무나 정밀하다. 에서의 옷과 염소 새끼의 가죽을 매끈한 곳에 입힌다. 그리고 별미와 떡을 들려 아버지 이삭에게 나아가게 한다(15~17절). 한번 속이려고 마음먹기가 힘들지 일단 속임의 걸음을 떼자, 야곱은 더욱 정교하게 속인다. 말로서(거짓말로)….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철저히 속인다… 이삭은 목소리가 다름을 눈치챘지만(22절) 분별하지 못하고 축복해 준다. 축복하기 직전 다시 한번 정말 에서인지(24절_’참 내 아들 에서냐?) 확인하지만, 철저히 속이려고 작심한 야곱의 짧고 간결한 대답에 속는다.
    
-그런데 서글프다… 야곱은 안다. 이삭의 축복은 분명 에서를 향해 진심으로 하는 것임을… 축복을 받고 있지만 그 대상은 에서라는 사실을… 하지만 야곱은 개의치 않는다. 그 축복의 내용에 집중한다. 음… 대단하다. 축복을 받으려고 이렇게까지 하는구나. 이렇게 복을 갈급한다. 도대체 아버지의 축복을 빌어 주는 것이 무엇이기에…. 야곱도 서둘러 속이기 위한 치밀한 행동을 진행한다. 도대체 이 축복이 무엇이길래….
    
-에서는 이미 장자권을 팔아넘겼고, 야곱은 이미 장자권을 샀는데…. 이 사실을 적어도 리브가는 알고 있지 않았을까? 야곱과 늘 장막 안에서 거했으니, 소통이 되었을 텐데…. 왜 이리 이삭의 축복에 목을 매는 것일까? 이삭이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4절)”라고 말했다. 100세쯤 된 이삭이 두 아들에게 이렇게 선언하였다. 죽기 전에 유언과도 같은 축복이었다는 것이다. 즉, 유언이다. 장자의 축복을 베풀려 한 것이다. 또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축복권을 통해 에서에게 모든 축복을(내 마음껏….) 부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에서는 이미 헷 족속 여인을 아내도 맞아들였다. 그것도 둘씩이나…. 이런 에서에게 모든 장자의 축복을 쏟아부어 주려는 이삭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이미 어두워질 때로 어두워진 영적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선택과 결정 그 상태가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어쩌랴…. 이것이 인생인 것을…. 이것이 삶인 것을….
    
-리브가가 기민하게 속이는 것 또한 기가 차다. 지아비를 속이려고 하고 아버지를 속이라고 한다. 리브가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이삭과의 사이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모리아 산 사건과 어머니 사라의 장례로 이어지는 삶에서 큰 위로가 되었던(24:67) 리브가가 이렇게 되어 버렸다. 지아비를 속여서라도 야곱에게 축복을 받게 하려 한다. 야곱의 동조도 기차다! 속임이 탄로 나면 저주까지 받을 수 있다면서(11~12절) 완강했다. 하지만 리브가는 그 저주를 자신이 받겠다며 부추긴다.
    
-이삭의 무디고 무뎌진 분별력이 마음 아프다. 목소리는 미심쩍어했는데, 손의 감각이 무디어 질대로 무디어졌다. 허~~ 그런데 무뎌진 감각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바로 하나님의 주권, 계획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설마 리브가만 두 아들이 태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알고 있었을까? 20년을 기도하여 얻은 아들들인데….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얼마나 이들이 긴밀했을까?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 말씀보다 에서에 대한 애잔한 마음이 더 컸다. 그 마음이 하나님의 계획과 상관없는 결정을 한 것이다. 심하게 표현하면 자기 마음의 욕심에 자기가 넘어졌다. 에서에게 그렇게 축복해 주고 싶었는데 결국 속아서 야곱을 향해 모든 축복을 해주고 만다.
    
-속여서 받고자 한 리브가와 야곱이나, 속아서 주려고 한 이삭이나, 그저 자기 맘대로(욕심대로) 살다 축복만 받으려고 안달하는 에서나… 에고야 그렇게 받은 축복이 무엇이기에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사기극을 벌인다. 이것이 이삭의 가정 모습이었다. 어쩌다 이리되었단 말인가?
    
    
*야곱은 형 에서의 옷을 입고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속임수를 위해 염소를 동원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훗날 야곱의 아들들은 옷으로 아버지를 속이고, 그 속임수를 위해 염소를 동원한다(37:31~33). 어쩌면 이렇게 반복되는지 놀랍다. 내가 한 대로 돌려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님의 말씀처럼 대접받고 싶은 대로 다른 사람을 대접해야 할 것이다(마 7:12).
    
*리브가와 야곱의 조작에 그대로 속는 이삭의 모습이 안타깝다. 나의 마음과 눈이 나의 계획과 욕심에 어두워지면 올바로 분별하지 못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의 거듭되는 확인에 차분하게 거짓말로 응대한다. 태연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아버지를 속인다. 혹, 나의 삶 속에 하나님의 이름이 형제들을 속이거나,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데에 사용되지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이렇게 기막힌 속임의 현장에서 하나님께서는 택한 자에게 복을 주시고 야곱에게 언약의 상속자가 되게 하신다.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한 내용은 야곱이 아버지 아브라함과 자신의 뒤를 잇는 약속의 상속자라는 것을 나타낸다. 이는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 백성이 된 우리가 누릴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에 대한 약속이다. 나는 나를 향한, 그리고 우리 교회공동체를 향한 주님의 계획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고 의지하는가? 사람은 복을 빌어줄 수 있어도, 복 주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님, 저희 어리석음과 거짓에도 변함없이 약속하신 계획을 이루어가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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