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32:1-21 지키실 이는 오직 하나님
야곱은 멀리 세일 땅 에돔 들판에 사는 형 에서에게 전령들을 보내 자신의 귀향 소식을 알린다. 야곱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서자 에서에게 사람을 보내 허락을 받으려 한 것이다. 그런데 에서가 400명이나 되는 사람을 이끌고 자신에게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두려워하여 자신의 무리를 두 떼로 나누는 등 인간적으로 준비하면서 동시에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드린다. 그는 가축 550마리를 선별하여 다섯 떼로 나누고 각각의 떼를 에서에게 예물로 보낸다. 그는 이 예물을 통해 지난날의 자신의 잘못을 속죄하고 형 에서의 용서를 받기 원했다.
세일 산이 있는 세일 땅은 에돔 족속의 거점 지역을 일컫는 총칭으로 사해 남쪽 지역의 고산 지대를 말한다. 에돔이 그곳을 점유하기 전에 호리 족속이 살고 있었다. 에돔 지역에는 그 산지를 중심으로 인근에 아라바 광야라 일컫는 꽤 넓은 평원도 존재했다. 얍복 강 근처에서 세일 땅까지는 약 150km였다.
1. 하나님이 보낸 사자들(1~2절)
야곱이 길르앗 산에서 계속 남쪽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내 그의 귀향길에 힘을 주신다. 1절의 주어는 야곱이 아닌 ‘하나님의 사자들’이다. 그렇다면 이 만남은 우연한 조우가 아닌 하나님의 의도적인 계획임을 암시한다. 또한 천사들과의 만남은 벧엘 사건(28장)과 연결된다. 20년 전 야곱이 에서를 피해 하란으로 도망하던 막막한 밤, 하나님은 그의 꿈에 천사들과 자신을 나타내셨고, 임재와 보호를 약속하셨다.
이제 야곱이 다시 에서를 대면해야 하는 위기에 처하자 하나님은 다시 천서들을 보내 그 약속을 재확증하신다. 이는 하란에서 라반의 위협에 불안해하던 야곱에게 귀향을 명하시며 동행을 약속하신 것과도 같다(31:3). 야곱은 천사들을 보고 ‘하나님의 군대’라 불렀다. 그만큼 많은 수의 강력한 군대가 그를 호위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야곱은 군대를 만난 곳을 ‘마하나임’이라고 불렀다. 이는 ‘두 군대’ 또는 ‘두 진영’을 뜻하여, ‘천사의 두 무리’ 혹은 ‘천사 진영과 야곱 진영의 만남’을 상징한다. 마하나임은 요단 동편 얍복강 북쪽 약 10km에 있다. 한편 천사들의 등장은 과거 벧엘에서처럼 야곱이 하나님과 재회하게 될 것(24!29절; 35:1~5)을 내다보게 한다.
2. 야곱이 보낸 사자들(3~8절)
에서와의 대면에 앞서 야곱은 인간적 두려움과 계산에 사로 잡혔다. 하나님이 사자들을 보내 동행해주심에 대한 확신을 주셨지만, 야곱은 자기 사자들을 에서에게 보내 동태를 살핀다. 이런 행동은 에서의 반응에 따라 후속 대책을 마련하는 철저한 계산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에서는 이삭의 예언처럼(27:39~40) 황량한 세일 땅 에돔 들에 거주하고 있었다.
야곱은 전갈에서 에서를 ‘내 주’로 부르고, 자신을 ‘당신의 종’이라 낮춘다. 이는 상대를 예우하는 일반적인 표현이지만, 야곱의 경우에는 에서와의 갈등과 그에게 행한 일(27:45)을 다분히 의식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장자권과 축복을 빼앗아 형제의 주인이 되는 축복을 받았지만, 지금은 에서의 종을 자처하고 자기 권리를 모두 내어준다. 야곱이 보낸 전갈의 내용은 먼저 귀향이 늦어진 점에 대한 해명(4절)과 둘째 재산에 대한 언급(5절), 셋째 사자를 보내 알리는 이유로 에서의 은혜가 절실함을 밝힌다.
한편 돌아온 전령들은 에서가 전갈을 받고 400명을 거느리고 오고 있음을 전한다(7절). 야곱은 심히 두려워하고 답답해했다(7절). 이에 야곱은 즉각적은 대응에 나선다. 그는 에서가 한 진영을 공격하면 다른 한 진영은 피할 수 있을 것을 계산하여 그의 일행들과 가축을 두 진영으로 나눈다(7~8절).
3. 야곱의 기도(9~12절)
야곱은 인간적인 방책을 마련한 채, 이제는 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이 기도도 벧엘 사건과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간구의 핵심은 에서의 손에서 자신과 가족을 건져 달라는 간청(11절)이며, 나머지 기도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내용이다.
첫째, 간구 대상은 벧엘에서 만난 언약의 하나님이다(9절). 야곱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을 부르며 조상들과 맺은 언약에 근거하여 개입하시기를 바란다. 둘째, 야곱은 하란에서 하나님이 “네 고향으로 돌아가라”라고 명하시며, 호의를 약속하셨음을 상기하면서 이제 하나님의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개입이 필요함을 표현한다. 셋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고백(10절)이다. 감당할 수 없는 인애와 신실하심을 하나님이 베푸셨음을 공손히 인정한다. 지팡이 하나만 들고 요단을 건넜던 그가 두 진영을 이룰 만큼 번창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한순간에 잃을 수 있는 위기다. 따라서 하나님은 다시 언약적 사랑과 신실하심을 나타내셔야 한다. 넷째,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하는 직접적인 간구다(11절). 야곱은 칼과 활에 능숙한 에서의 위협에 인간적인 방책을 세우면서도 이처럼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다. 야곱은 라반의 것을 하나님께서 낚아채 주셨듯이 이번에 에서의 손에서 그와 가족을 낚아채 건지시기를 구한다. 다셧째, 야곱은 하나님이 벧엘에서 주신 자손의 번성 약속을 붙든다(12절).
4. 야곱의 전략(13~21절)
야곱은 기도 후에도 자신의 꾀를 내려놓지 못한다. 여전히 자기 대책을 시행한다. 그의 대응은 라반과의 품삯 협상이나 두주 때처럼 치밀하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 한마디로’ 라반의 계획을 좌절시킨 일(31:24)은 고려하지 않은 듯하다.
야곱은 먼저 소유의 일부를 에서에게 보낼 예물로 정한다(13~15절). 그 규모는 염소, 양, 낙타, 소, 나귀로 구성된 총 550마리였다. 이때 염소와 양의 암수 비율은 10:1로 맞춘 것은 번성과 생산성을 고려한 배려다. 이 예물은 야곱의 부의 규모를 보여 주는 동시에 에서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계산된 조치다. 또한 다수의 가축 떼를 나눠 앞세운 것을 혹시 모를 기슴이나 군사적 충돌 위험을 분산하거나 저지하려는 방책이기도 했다.
야곱은 이 예물을 네 떼 이상으로 나누고, 각 떼 사이에 간격을 두어 차례로 보냈다. 동시에 ㄱ가 떼를 맡은 종들에게 동일한 말을 에서에게 반복하도록 지시했다(16~20a절). 여러 선물과 아첨의 말을 단계적으로 보내는 전략은 에서의 분노를 점차로 가라앉히려는 목적이다. 야곱이 종들에게 지시한 말은 “이는 당신의 종 야곱의 것으로 내 주 에서에게 드리는 예물입니다”와 “야곱도 뒤에 있습니다”라는 내용이다.
예물로 에서의 ‘얼굴을 속죄하려는(덮으려는, 20b절) 방식은 과가 그가 붉은 죽으로 장자권을 뺏은 수법과 매한가지다. 그는 보상으로 달랜 후 에서를 만나면, 그가 자기를 용서하리라 기대한다. 33장의 에서와의 실제 대면을 고려하면, 이 모든 계획은 화해보다는 생존을 위한 방책에 가깝다.
이제 예물은 먼저 떠나고, 야곱은 진영에 남아 밤을 보낸다.
나는?
-하나님은 야곱이 에서를 만나기 전에 만나 주신다. 하나님의 군대 모습으로 만나신다. 그래서 야곱이 한 걸음도 제 힘으로 미래를 향햐 발을 내디딜 수 없게 하신다. 벧엘에서 나타난 그 하나님의 사자(28:12)는 이제 약속의 땅에 들어선 야곱을 맞아준다. 믿음은 선택이다. 야곱은 여호와의 군대와 에서의 군대 가운데 누구를 두려워할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와 군대를 보았으면서도 여전히 형의 보복이 두렵다. 속임수로 장자권을 빼앗았지만, 결국 형 에서를 ‘주(주인)’로 부르고 자신은 ‘종’으로 자처한다. 그에게 ‘사자’를 보내 은혜 받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한다. 그런데 에서의 호의를 확신할 수 없어 재산을 두 떼로 나눈다. 그는 ‘하나님의 군대’와 에서의 ‘400명의 군대’, 구 군대를 모두 믿지 못한 채 경계에 서 있다. 에서를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하나님의 군대를 신뢰하지 못한 것이 여실히 보인다.
-에서에게 동생이 아니라 종이라고(4절) 소개한 야곱이 하나님을 향해서도 자신을 종이라고 소개한다. 그런 자신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총과 진리를 회상하고 에서로부터 보호해주실 것을 구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에서에게서 은혜를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데서 조금씩 변하고 이쓴ㄴ 야곱의 모습이 보인다.
-야곱은 에서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예물을 준비한다. 그것을 여러 차례 나누어 보냄으로써 에서의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지도록 유도한다. 많은 짐승을 한 떼 씩 받다 보면 군대의 행렬도 흐트러지고 주위도 산만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이용했을 듯 하다. 하지만 그러고도 야곱의 두려움은 여전했다. 에서에로부터 도망치던 그 때, 돌베개 의지하여 자던 벧엘의 밤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그때 벧엘의 하나님의 약속도 떠올리지 않았을까?
*하란을 떠났으나 곧장 벧엘로 갈 수 없었다. 중간에 에서의 칼이 기다리고 있다. 이에 하나님은 가나안을 떠날 때 나타나셨던 하나님의 사자(28:12)를 보내어 야곱이 가나안에 들어서자 다시 나타나 맞이하게 하신다. 이제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와 함께 한 하나님의 군대를 보고 에서의 군대를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을 행사해야 한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의 군대를 보고도 형 에서의 군대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사자를 보내서 형에게 은혜를 구한다. 그러나 에서를 믿지 못해 재산을 두 떼로 나누어 만약의 공격에 대비한다. 야곱은 하나님의 군대도, 에서(의 군대)도 믿지 못하는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야곱은 에서를 ‘내 주’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야곱이 형의 주인 될 것이라고 하셨으나, 야곱은 자기 힘으로 장자가 되려다 결국 스스로 종으로 내려오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하나님께도 ‘내 주’라고 부르며 약속을 상기시키며 지켜달라고 요청한다. 에서도 의지하고 하나님도 의지한 꼴이다. 세상과 믿음의 경계선에서 세상과 믿음을 모두 의지한다.
*하나님께 기도했으나 점점 조여오는 군대로 인해 두려움은 잦아들지 않는다. 이에 예물 공세를 퍼붓는다. 봉신국이 주군에게 공물을 바치듯 한다. 장자권을 빼앗았고, 축복을 가로챘으며,. 라반에게서 재산을 얻어 가나안으로 돌아왔으나, 결국 형에게 다 바치고 있다. 음… 결국 무엇을 위한 고생이었고, 종살이었을까?
*에서에게 한꺼번에 예물을 보내지 않고 나누어 보낸다. 조금씩 마음을 누그러뜨리려는 속셈이다. 많은 짐승들로 군대의 행열을 산만하게 만들려는 의도도 있다. 아쉽게도 라반의 본노를 다스리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서도 에서의 분노를 다스릴 분도 하나님이심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는 모습이다.
*20절 한 구절에만 ‘얼굴’이라는 단어가 네 번 등장한다. 야곱의 예물 공세는 에서가 자기 얼굴을 봐주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의 감정을 풀어(얼굴을 속량하여)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얼굴과 대면하여(32:30) 근본적인 관계가 재정립되기 전에는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직은 모른다.
*하나님은 은혜를 맛보고(마하나임) 난 직후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 자기 계획, 자기 감정(두려움)에 얽매인다. 이것이 인생이다. 누가 야곱과 다를 수 있을까? 그럼에도 하나님은 약속하신 말씀을 따라 하란에서뿐 아니라 지금 에서를 만나는 과정에서도 함께 하시며 지키신다. 신앙의 수준이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약속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약속으로 인해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얼마나 큰 은혜인가!
*야곱은 마하나임(두 진영)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지 못해 마하노트(마하나임의 복수형, 떼들)로 행동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의 행동이 근거가 되어 행동하지 않으신다. 약속에 따라 불신앙의 행동임에도 굳건하게 지켜주신다. 하나님의 은례가 놀랍고 놀랍다.
*주님, 극심한 두려움으로 결국 기도의 자리로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더욱 깨닫습니다. 기도 무릎으로 주님께 나아가겠습니다.
*주님,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과 지혜를 구합니다. 끝까지 성실하게 믿음으로 구하며 살도록 이끄시옵소서.
*주님, 나의 신앙의 수준에 따라 역사하지 않고 약속을 따라 역사히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더욱 약속의 말씀을 붙잡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