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명의 야곱의 아들들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의 기틀이 세워진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바를 신실하게 이루어가시며, 사람은 실수하고 욕망에 따라 움직이지만 이 모든 상황과 과정까지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가신다. 이삭은 180세를 향년으로 죽게 되며, 그의 세대는 종결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스마엘을 먼저 소개하고 이삭의 족보를 기록했던 것처럼, 언약 밖에 있는 에서의 족보가 먼저 소개되고, 언약 안에 있는 야곱의 족보가 이어질 예정이다.
1_야곱의 아들들 (23-26절)
야곱의 4명의 아내와, 12 아들에 대한 기록이다. 출생 순서가 아닌, 어머니를 기준으로 작성되어 있다. [레아 |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 [라헬 | 요셉 베냐민] [빌하 | 단 납달리] [실바 | 갓 아셀] 이는 곧 아브라함-이삭-야곱-야곱의12아들로 이어지며, 이 계보는 4대에 이르러서야 이스라엘 민족의 기틀다움이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손,땅,복을 약속하셨을 때에, 이를 읽는 독자들의 생각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1명임을 보며 느린 전개에 답답할 수도 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만을, 이삭에게는 야곱만을 (에서는 이 약속의 계보에서제외됨) 주시는 부분도 생각해보면 인간의 기준에 더디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많은 민족을 이루는 것이 과연 과연 가능한 일인가?’라는 질문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 12아들을 통해, 하나님은 신실하게 그 계획을 이루어가고 계심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다른 아들의 소개에 대한 내용들과 달리, 여기에서는 어머니 별로 자녀들이 기록되어 있다. 야곱은 아마도 끝까지 ‘라헬’에 대한 더 깊은 사랑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성경의 편집 순서로 보았을 때에, 레아가 가장 앞에 오며 결국 막벨라굴에 같이 매장된 사람은 라헬이 아니라 레아이다. 물론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레아와 라헬 모두를 중요한 어머니로 여기고 있지만, 매우 감정적이었고, 편애를 했었던 야곱을 생각해볼때, 성경의 기록은 감정과 개인의 판단보다는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이 무엇인지를 먼저 기준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삭과 에서에게 행했던 ‘속임’을, 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결혼의 과정에서는 오히려 ‘속임 당하면서’ 레아와 가장 먼저 결혼을 하게 되고, 이후 라헬, 빌하, 실바와 결혼한다. 당시의 야곱의 마음만을 생각할 때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였다. 사랑받지 못했던 레아의 입장에서도, 힘든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다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상황이 이 가정의 연속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를 시작으로, 4명의 아내와 함께하게 되었으며, 출산에 대한 경쟁 속에 야곱도 4명의 아내들은 매일이 전쟁같은 나날이었다. 이는, 자녀들 대에도 이어져, 이 짧은 가족 소개 안에, 다사다난한 상황들이 얽혀있다. 디나의 겁탈 사건으로 엄청난 위기가 드리웠으며, 가정의 장자인 르우벤이 부친의 아내인 빌하와 동침이라는 충격적인 일이 또 일어난다. 멀리서보면, 멀쩡한 가정처럼 보이나 가까이서보면 이런 비극이 없다.
2_이삭의 죽음 (27-29절)
성경은 이삭의 죽음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언약의 후계자였던 이삭은, 이제 그에게 맡기신 사명을 다 마치고 마지막 숨을 쉬었다. (=기운이 다하다의 의미) 180세까지 살았다는 것을 고려할 때에, 야곱이 다시 돌아와 이삭과 12년 이상을 함께한 것으로 보여진다. 에서와 야곱은 아버지의 장례를 함께 하게 되며, 이삭을 막벨라굴에 장사한다.(49:31) 이곳은 아브라함-사라, 이삭-리브가, 야곱-레아가 장사된 곳이다. 이삭의 족보(톨레도트, 족보, 내력, 후손 등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창세기에 10번 등장하여 창세기의 구조적 뼈대를 이루는 것으로 볼 수 있음)가 마무리되며 한 세대는 떠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이뤄져가는 중이다. 결국 사람은 언젠가 죽게 되지만, 하나님의 이 위대한 계획은 단순히 창세기에서 끝나지 않고, 메시야이신 그리스도가 오시며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교회 공동체가 세워지고, 마지막 재림을 통한 종말의 때까지를 이미 조망하고 있다. 사람은 죽고, 그 세대는 떠나지만 하나님의 역사와 인도하심은 변함 없다. 한 사람의 인생에 여러 이야기와 희노애락이 있으나, 결국 인간은 언젠가 떠난다는 것은 정해진 바임을 다시 한 번 드러난다. 에서와 야곱은 여기에서 같이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며, 일시적인 화해가 이루어진다고 보여진다.
3_에서의 족보 (1-8절)
에서의 족보가 먼저 나오고, 이후에 야곱의 족보가 나온다. 이 본문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에서가 아닌 야곱을 통해 이어짐을 다시 한 번 선명히 밝히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지만, 동시에 에서 스스로 자발적으로 언약에서 벗어나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1) 이방 여인과의 결혼 – 에서는 헷 족속, 히위 족속 여인 2명과(2절) 사촌을 아내로 맞이한다.(3절) 창세기 안에서 이방 여인들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야곱의 아람 출신 아내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는 곧 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듣지 않았으며, 나아가 영적 분별력이 없었음을 드러낸다.
2) 약속의 땅을 떠남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은 가나안 지역이었다. 이 약속을 붙든다는 것은 곧,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이 있더라도 버티며 살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야곱과 에서 가문의 재산이 늘어나자 에서는 스스로 가나안을 떠나 세일산 지역으로 이주한다. 야곱의 이주와 다른 점은 하란으로 떠났으나 그는 가나안으로 귀한하였다면, 여기에서의 이주는 완전한 이주이다. 물질적 축복을 많이 받았으나, 도리어 이것이 걸림돌이 되어, 약속을 스스로 저버리는 결정을 한다.
[적용점]
-인간은 실수하고, 분투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하게 이 과정을 이어가신다. 야곱이 속임을 당해 레아를 아내로 맞이하였을 때에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시다. 모두가 혼란스러웠겠지만 하나님은 야곱의 아들들이 태어나고, 민족의 기틀이 세워지는 과정 속에, 레아, 라헬, 빌하, 실바 간의 엄청난 경쟁과 울분이 있었을 것이다. 그 때 당시로서는, 이 과정이 이스라엘의 12민족이 세워지는 중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였을 것 같다. 오늘도, 나는 다 이해할 수 없는 하루를 살아가며 희노애락 속에 걸어간다. 그러나 주님은 일하고 계시다고 오늘 말씀은 말한다. 그러니, ‘다 이해되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생각해본다.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음에 다시 초점을 두고, 주신 이 하루를 하나님의 뜻 안에 걸어가기를 소망한다.
-아브라함, 이삭은 죽는다. 그리고 이어 야곱도 죽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믿음의 사람들, 나에게 신앙을 전수하며 함께해왔던 분들도 점점 나이가 들어가시며 세상을 떠나시기도 한다. 아무리 우리가 죽음에 대해 이해하려 하여도, 인간은 다 이해하지 못한다. 성경은 여기에서도 매우 담담하게, 이를 기록한다. 그리고 다시 야곱에게 초점을 두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오늘 나는 살아있음을 다시금 생각한다. 이 하루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오늘도 하나님의 약속과 부르심을 붙잡으며 살아가기를 노력해보려 한다. 분주함과 이 세상의 즐거움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닌, 허락한 이 하루에 대한 감사를 다시금 기억해야겠다.
-에서는 스스로 떠난다. 본인 스스로 이방 여인과 결혼하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을 본인의 번성함과 부를 추구함을 위해 세일산으로 떠남을 통해, 언약의 후계자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한다. 하나님의 선택과 인간의 자유의지 사이의 늘 논란과 질문은 많았지만, 이는 우리의 수준에서 명확하게 나눌 수는 없는 것 같다.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며, 그 분을 따른다고 한다면 이는 곧 삶으로 증명되며 약속의 백성임이 드러나야 한다. 오늘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해본다. 믿음의 가정을 세우고자 함께 애쓰며, 맡기신 공동체에 충성함이 오늘의 부르심임을 받든다. 하나님의 신비한 섭리 속에 오늘도 일하심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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