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히스기야의 통곡과 하나님의 응답_한참 동안 흐느껴 울며 벽을 맞댔다. [이사야 38:1-22]
 – 2026년 08월 30일
– 2026년 08월 30일 –
히스기야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위협 앞에 노출되지만,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삶과 죽음의 최종 결정권자이신 여호와께 나아간다. 그는 여호와의 권능을 인정하고 그분께 문제의 해결을 맡긴다. 그의 간절한 기도에 여호와께서 응답하셔서 죽음의 세력에서 놓임을 받는다. 히스기야는 자신의 경험을 글로 기록해 여호와의 구원 능력을 백성들과 함께 나눈다.

유다와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의지할 때 살 수 있다. 그것은 간절한 기도를 통해 이루어진다. 국난 앞에 모두가 하나님만 간절히 바라고 의지할 때 하나님의 구원은 실제가 되었다. 스스로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지키시는 주권이 실제가 되어 이루어진다. 오만과 교만의 앗수르는 물러가고 하나님의 영광은 찬란하게 증거 된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현장은 죽음이다. 어느 누구도 죽음 앞에 호기를 부릴 수 없다. 히스기야가 병들었다. 21절은 악성 종기로 인한 병 임을 짐작 케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죽음의 선고를 받는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죽게 되었으니, 너의 집안 모든 일을 정리하여라. 네가 다시 회복되지 못할 것이다.”(새번역_1절)

히스기야는 자신이 걸린 병으로 인해 사경을 헤멨다. 스스로도 죽음을 직감할 정도로 병은 위중했다(10-13절). 스스로 ‘주님께서 조만간에 내 목숨을 끊으실 것이다(새번역_12, 13절)’ 라고 반복하여 고백할 정도로 고통은 극심했다.



1. 통곡하는 히스기야(2-3절, 9-16절)
대게 이 정도쯤 되면 죽음을 기다리며 체념한다. 차라리 고통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히스기야는 달랐다. ‘제비처럼, 학처럼 애타게 소리 지르고, 비둘기처럼 구슬피 울었다. 나는 눈이 멀도록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주님, 저는 괴롭습니다. 이 고통에서 저를 건져 주십시오!’(새번역_14절). “주님, 주님을 섬기고 살겠습니다. 주님만 섬기겠습니다. 저를 낫게 하여 주셔서, 다시 일어나게 하여 주십시오. 이 아픔이 평안으로 바뀔 것입니다.”(새번역_16절)

병들어 부정하게 된 몸으로 성전을 올라가지 못하니 누워있던 그 침상에서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2절) 통곡하며 부르짖었다(3절). “주님, 주님께 빕니다. 제가 주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온 것과, 온전한 마음으로 순종한 것과, 주님께서 보시기에 선한 일 한 것을, 기억하여 주십시오.”(새번역_3절)

개인적으로 ‘주님 앞에서 진실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순종하며 살아온 것 뿐 아니라 주님 보시기에 선한 일을 했음을 기억해 다라는 것이다. 이 일이 무엇일까? 히스기야는 25세에 왕이 되었고 29년 동안 통치하였다. 역대기는 히스기야를 즉위 첫째 해 첫째 달부터 여호와의 전을 성결하게 하여 그 더러운 것을 성소에서 없앴다고 증언한다(대하 29:3,5). 선친 아하스왕이 설치했던 앗수르의 제단을 없앤 것이다. 그리고 온전한 유월절 준수를 단행했는데 이때 남북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모여 솔로몬 때로부터(분단 이후) 경험하지 못한 기쁨을 누렸다고 증언한다(대하 30:26). 이후 즉위 4년만에 북이스라엘이 멸망하자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 백성의 삶을 고수할 것을 선포하며 앗수르와 대척점에 선다.

그렇게 달려온 통치자로서의 길이 병듦으로 인해 멈추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의 위협이 점점 노골화 되고 있는 시점에 그의 마음은 육신의 병세가 위중한 만큼 타들어갔다. 그는 통곡할 수 밖에 없었다. 단순히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유다의 운명을 생각하며 절규하는 통곡이었다. 그가 제비처럼 학처럼 비둘기처럼 울며 하늘을 쳐다 본 것은 개인적으로 좀 더 살아보겠다는 일념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왕으로서의 사명이 위중한 병 중에서 하나님께 통곡하게 했다.



2. 이에 응답하시는 하나님(4-8, 17-20절)
“이에(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셨다.(4절) “너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기도하는 소리를 내가 들었고, 네가 흘리는 눈물도 내가 보았다. 내가 너의 목숨을 열다섯 해 더 연장시키고, 너와 이 도성을 앗시리아 왕의 손에서 구하고, 이 도성을 보호하겠다. 나 주는 약속한 것을 그대로 이룬다. 그 증거를 나 주가 너에게 보여 주겠다. 아하스의 해시계에 비친 그림자가 십 도 뒤로 물러갈 것이니, 해도 내려갔던 데서 십 도 올라갈 것이다.”(새번역_5-8절)

달리 설명할 것이 무엇이겠나!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다. 그리고 15년의 삶을 연장해 주셨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앗수르의 손에서 도성을 지키고 보호하겠다고 약속하신다. 이 일이 36-37장의 사건이다. 이 일은 모두 즉위 14년에 일어난 일이다.

히스기야에게 질병의 치유는 현재적인 사건이지만 앗수르에게서 구원받는 것은 미래의 사건이다. 주전 701년 예루살렘의 구원은 히스기야 왕의 개인적인 치유 사건이 모형이 된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 간절히 의지하는 방법외에는 없다는 것이다. 마치 히스기야처럼 죽음의 위기에 닥친 예루살렘이 어떻게 소생할 수 있겠는가를 먼저 경험한 것이다. 이 경험은 36-37장의 사건에서 보여주듯 흔들림 없이 성전에 올라가 기도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당연한’ 모습으로 이어진다. 산헤립의 능욕의 말들을 펼쳐 놓고 하나님과 독대하는 담대함과 견고한 믿음으로 나타난다.

죽음의 위기에서 치유하여 주신 하나님은 은혜는 이 때를 위한 예방주사 였다. 놀라운 예방백신을 맞은 히스기야 고백이 이를 증명한다.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17절)”


기도와 통곡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살려 주셨다. 예루살렘을 지켜 주셨다. 죽음을 직감할 정도로 절망에 빠진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살 길은 기도와 통곡을 들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뿐이다. “…네가 기도하는 소리를 내가 들었고, 네가 흘리는 눈물도 내가 보았다….(새번역_5절)”

기도를 들으시는…흘리는 눈물을 바라보시는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살려주셨고, 예루살렘도 살려 주셨다. “…내가 너의 목숨을 열다섯 해 더 연장시키고, 너와 이 도성을 앗시리아 왕의 손에서 구하고, 이 도성을 보호하겠다(새번역_5-6절).” 이것을 이루실 증거도 보여 주신다. 아하스의 해시계(아하스의 다락에 연결되어 위치한) 그림자가 ‘십도 뒤로’ 물러간다. 이 증거를 보여주시며 확언 하신다. “나 주는 약속한 것을 그대로 이룬다. 그 증거를 나 주가 너에게 보여 주겠다(새번역_7절).” 이것을 경험한 히스기야는 앗수르 대군의 위협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나을 가망성이 없으니 유언을 준비하라는 말을 들은 히스기야는 자신이 진실과 전심으로, 그리고 선하게 해앟여 하나님을 위해 살아온 인생임을 상기시키면서 구원을 간청한다. 통곡하며 간절히 기도한다. 내가 더 살아야 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을 근거로 생명과 자유를 간구하겠는가?

-절망스러운 상황을 만날 때 “벽을 맞대야 겠다!” 어느 곳에 있든지 그 자리에서 하나님만 찾아야지… 현장예배를 사수하겠다는 것은 하나님만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무언가, 나의 마음에 정해 놓은 기준를 더 중요시 여긴다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정말 절실하면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른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지금 그런 백성들을 찾고 계시는 듯 하다.

-형식을 따라 드리는 제의가 아니라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만 구하고 찾는 그런 백성들 말이다. 히스기야가 지금 그런 심정이다. 병 듦으로 인해 부정하여 져서 성전에 올라가지 못하니, 체념하고 포기한 것이 아니다. 성전에 올라가지 못하더라도 얼굴을 벽으로 향하여 하나님만 바라 보겠다고 몸으로 그 의지를 표현한다. 이런 간절함이 기도다!

-히스기야는 솔직하다! 미사여구는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절체절명의 시간을 허투루 낭비할 수 없다. 가장 간절한 단어를 쏟아낸다. “기억하여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그리고는 한참을 흐느껴 운다. 통곡한다. 달리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그 통곡에 다 담겨 있다. 그 눈물이 마음을 나타낸다. 눈물, 통곡이 기도다! 간절하면 눈물이 난다! 통곡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회복케 하심을 누린 그가 기록을 남긴다! “다음은, 유다 왕 히스기야가 병이 들었다가 그 병에서 회복된 다음에 읊은 시이다(새번역_9절).” 담담하게 그의 투병과 하나님의 치유하심을 고백한다. 치유함을 받은 이후 결심도 기록한다. “주님, 주님을 섬기고 살겠습니다. 주님만 섬기겠습니다….(새번역_16절)” 그는 이 결심처럼 앗수르의 위협, 능욕 앞에서 “주님 만” 바라보았다. 이것이 기도다! 주님만 간절하고도 확고하게 바라보는 것, 이것이 기도다!

-치유받은 기적을 과거의 흔적으로 흘려 보내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믿음의 동력으로 삼는다. 그 중심에 주님이 “약속하신대로, 말씀하신대로” 이루시는 분이심을 알고 확고히 경험한 것이 기초가 된다. 그렇다! 내가 무수한 세상의 도전들 속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나의 뻔뻔한 종교적 의지가 아니다. “말씀하신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은혜이다. “나 주는 약속한 것을 그대로 이룬다(새번역_7절)” 오늘도 말씀한 것을 바라보고 말씀하실 것을 기대해야 할 이유다!


*나의 기도가 울음과 통곡을 사모한다. 나의 기도가 직면하는 늘 직면하는 기도 이기를 바란다. 나의 기도는 어디에 있는 하나님만 바라보는 방향성을 놓치지 않기를 원한다. 나의 기도가 말씀대로 이루실 하나님이 드러나는 통로 이기를 사모한다. 그리고 내가 응답받은 기도가 불시에 닥쳐오는 위기들 앞에 더욱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는 은혜와 능력이 됨을 감사한다. 어느곳에 있든지 주님만 바라보자!

*내게 베풀어 주셨던 응답의 증거들을 소환해야 겠다. 지금은 그 확실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한 때다! 이런 저런 생각과 계산이 도무지 서질 않는 코로나 시국에 이전에 이미 경험케 하셨던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하나님의 증거들을 소환 해야 겠다. 무엇보다 기록된 말씀을 더욱 붙잡아야 겠다. 증거를 주신 하나님은 “말씀대로”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 기도제목

*주님, 어제를 보호해 주셨던 것 처럼 오늘을 도우소서
*주님, 저에게서 눈물이 마르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께 통곡할 정도로 긴밀한 관계를 거두지 마소서
*주님, 주님 앞에서 한참 동안 흐느껴 울 수 있는 나의 주님 이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