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누가 올라가리이까? [사사기 1:1-10]
 – 2026년 09월 01일
– 2026년 09월 01일 –
가나안에 들어온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정복 전쟁(수 2~12장)에 임했고, 그 결과로 얻은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분배받았다(수 13~19장). ‘가나안 정복 시대’로 불리는 이 시대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삿 1:1) ‘사사 시대’로 전환되어 간다. 본문은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정복 전쟁을 이어 가던 그들이 어떻게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사사 시대로 기울어 가는지를 살펴볼 수 있게 한다. ‘초지일관(初志一貫)’의 삶을 사는 것이 무척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며, 사사기 묵상을 통해 나를 향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사모해 본다.

1장은 사사기 전체 구조에서 프롤로그에 해당한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한 전쟁 이야기와 배교를 묘사하며, 이어서 등장할 중심 이야기의 문학적 틀을 제공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가나안의 나머지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 하나님께 물었고, 유다가 가장 먼저 올라가서 자신의 지역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유다는 시므온과 동맹을 맺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베섹과 예루살렘과 헤브론을 성공적으로 점령함으로써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로 시작하는 사사기는 여호수아서와 연결되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음을 확인해 준다. 지금까지는 여호수아가 주도하여 가나안 정복을 수행했다. 하지만 여호수아 생전에 가나안을 완벽하게 정복하지는 못했다. 남은 지역에 대한 정복 임무는 이제 그 지역을 기업으로 받은 지파들에게 일임되었다. 사사기는 그 임무를 맡은 지파들이 나머지 지역을 정복하기 위해 전쟁하는 기사로 시작한다.

사사기(쇼페팀, Judges/재판관들)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 사무엘이 등장하기까지 약 350여 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린 사사들의 기록이며, 주전 1050~1000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본다. 유대의 전승은 사무엘을 저자로 전하지만, 사무엘이나 혹은 다른 누군가가 이 기간의 기록들을 모아 정리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사사기는 여호수아에서 사무엘로 이어지는 시기, 지도력이 유다 지파로 옮겨지는 배경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어떤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지를 잘 보여 준다.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삿 2:10)라는 말씀이 이를 잘 요약해 준다.

사사기 묵상의 여정 속에서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지기를 좋아하는지 깨달아, 이런 악행에서 돌이켜 그 하나님을 더욱 내밀하게 사랑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1. 여호수아가 죽은 후(1절)
“여호수아가 죽은 후……” 펼쳐지는 이야기의 시작이다. 여호수아…… 모세와 함께 광야를 오롯이 견뎌 내며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했던 지도자다. 모세가 모압 땅에서 죽은 후 갈렙과 함께 가나안 정복을 이끌었던 불세출의 명장이다. 그가 죽었다. 리더십의 큰 공백이 생긴 것이다. 더 특이한 것은 여호수아의 뒤를 잇는 지도자를 하나님께서 세우시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전한 문제는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들이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땅을 분배하면서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은 분배받은 지파들이 끝까지 싸워 차지하라고 당부했다(수 23:5). 가나안 정복 전쟁 시대,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로 단합시켜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던 불세출의 인간 지도자가 죽은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의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 변함이 없는 듯하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1절)” 가나안 족속과의 싸움에 앞서 하나님께 여쭙는다. 이렇게 하여 “유다”가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응답을 따라(2절) 유다가 올라간다. 그런데 유다는 그의 형제 시므온에게 함께 올라가자고 요청한다. 그러자 시므온도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올라가서 싸우겠다고 한다(3절). 이게 뭔가 싶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지혜롭게 연합하여 싸운 것이고 부정적으로 보면 온전한 순종이 아닌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온전한 순종이 아니었다면 전쟁의 판세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유다 지파는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 둘째가라면 서러울 강력한 지파였고, 시므온은 가장 작은 지파에 속하였다. 유다 지파만 올라가도 충분했다는 것이다. 또한 유다 지파가 제비 뽑아 차지한 땅은 유대 산지 남쪽의 대부분 지역이었고, 시므온 지파는 그 안의 일부 지역을 분배받았다. 형세로 본다면 유다 지파의 땅 안에 시므온 지파가 자리 잡은 모양새였다. 추측하기로 유다 지파는 가장 약한 시므온 지파를 배려한 것이다. 그들을 위해(3절) 하지 않아도 될 연합과 연대를 해 준 것이다.

유다와 시므온이 먼저 올라가서 차지한 땅은 유다에게 배정된 땅이기에 유다 지파만의 힘으로 먼저 올라가 차지해야 옳다. 그럼에도 그의 형제 시므온 지파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베냐민 지파와의 경계인 북쪽의 예루살렘 지역과 남쪽의 헤브론 지역을 정복하는 쾌거를 올린다.

역사적으로 보면 유다 지파가 지금 차지한 땅은 가나안 중남부 지역으로, 장차 다윗의 국경선이 확정될 때까지 지속적인 국지전이 일어나게 될 장소이다. 지금은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의 땅인 베섹을 차지하고 이어 예루살렘과 헤브론을 점령하여 유다 산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지만, 다윗이 완전하게 평정할 때까지 블레셋 족속과 뺏고 빼앗기는 진흙탕 같은 국지전이 지속되었다. 결국 다윗의 왕권이 서기까지 이 땅은 블레셋 족속의 끊임없는 도발을 감내해야 할 곳이었다. 그 역사의 수레바퀴가 지금 막 돌아가기 시작했다.

걸출한 지도자가 죽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또 한 명의 지도자를 하나님께 돌려보내며 진정한 지도자이신 하나님을 붙든다. 이것이 오늘 본문 말씀이 주는 메시지다. 안정적으로 믿음의 여정을 이끈 것은 눈에 보이는 인간 지도자가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이셨다. 40여 년 전 시내산에서 늘 함께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이셨다. 그 하나님께서 여전히 차지해야 할 땅이 남아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정복 전쟁을 도우신다.

그럼에도 지도자의 부재에서 오는 허전함은 어쩔 수 없다. 그 허전함 속에서도 이스라엘은 여호수아 시대로부터 물려받은 가나안 정복의 사명을 잊지 않는다. 차지해야 할 땅 앞에서 함께하시는 참 지도자이신 하나님께 여쭈었다. “하나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싸울까요?”



2. 위기, 그러나 굳건하게(1~3절)
모세와 여호수아가 살아 있을 때는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스라엘에게 전달되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죽었으니 누가 하나님의 뜻을 전달했을까? 당연히 제사장이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 성막이 임시로 머물던 실로에서 아론의 후손인 제사장과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뜻을 물었을 것이다. 성막에서 하나님의 뜻을 보이고 가르치시겠다는 말씀을 따라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없는 시대, 그의 부재가 겉으로 드러날 때에도 공백을 느낄 틈이 없었다. 영원하고 유일한 지도자이신 하나님께서 함께 계셨고, 제사장들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그의 뜻을 구했다. 여전히 가나안 땅에는 물리치지 못한 족속들이 있었고 차지해야 할 땅이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이미 세워진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이 있었고, 그들을 통해 성막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들었다. 그러니 딱히 여호수아의 부재를 느낄 틈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차지하지 못한 땅을 치러 올라가려 할 때에는 누군가가 결정해야 했고, 그 누군가의 통솔을 따라 함께 움직여야 했다. 그래서 (아마도, 모세와 여호수아를 제외하고 리더십이 세습되는)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뜻을 구했고,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제비 뽑아 분배받은 땅의 주인 지파가 올라가라 하신다. 이렇게 중요한 시대에, 결정하고 판단해야 할 여호수아가 없다. 그의 지도력이 누구에게 이양되어야 하는지 정해지지도 않은 채 여호수아가 죽은 것이다. 그럼에도 영원한 지도자이신 하나님의 결정이 백성들에게 전달되었다.

한편으로는 이제 모세나 여호수아 같은 특출난 지도자보다, 각 지파가 힘을 합하여 자신들이 분배받은 땅을 차지해 나가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즉 한 사람의 결정권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이 계시기에 각자의 자리에서 그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말씀을 따라 순종하면 그만이다. 더구나 자신들이 분배받은 유다 산지의 남은 가나안 족속들을 몰아내기 위해 누가 올라갈지를 물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당연히 분배받은 유다 지파가 올라가야 하는 지역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권위와 인정을 통해 이 전쟁이 하나님의 전쟁임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사사기의 시작은 이런 믿음의 자세가 이어지는 모습으로 출발한다.

의지하던 지도자의 부재가 가져오는 상실감보다 산적해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앞에 있었기에, 리더십의 부재를 느낄 새 없이 맞선다. 하지만 모세가 그렇게 했고 여호수아도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께 묻는 것을 잊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믿음에 이상이 없다!

리더십이 부재할 때 직면하는 문제, 하나님께 여쭙고 나아가야 할 길을 구해야지…… 사람을 바라볼 때 한계가 분명하다. 하지만 완전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여쭐 때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겠다. 공동체의 위기는 지도력이 상실될 때 찾아오지만, 자연스럽게 리더십이 이양되는 시기를 거쳐도 흔들리는 것이 사회이다. 하물며 인생들이 모여 있는 교회 공동체라고 다를까! 그럼에도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이다.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공동체이기에 걱정 없다. 그래서 더온누리교회도 걱정 없다.



3. 그럼에도 우려되는 것은(4~10절)
유다와 시므온은 승승장구하였다. 그 원인은 분명하다. “……내가 그 땅을 유다 지파의 손에 넘겨주었다(새번역_2절 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약속하신 대로 땅을 차지하게 하셨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손에 넘겨주시니(4절)” 하나님께서 유다 지파에게 승리를 주셨다.

그런데 우려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쩌면 사사기의 전체 주제인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의 모습이 여기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유다 지파는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의 땅 “베섹”에서 아도니 베섹(베섹의 주인)을 잡아 그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잘라 버린다(6절). 문제는 이런 행위가, 잘림을 당한 아도니 베섹의 한탄에서 발견되듯 가나안 족속들의 잔인한 전쟁 문화였다는 점이다. 가나안 땅의 잔인한 행동들을 그대로 따라 행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그를 예루살렘에서 자연사하도록 둔다.

가나안 민족과 싸우면서 가나안 민족들의 행태를 따라가다니…… 아쉬울 따름이다. 우려스럽게도 가나안 민족과 싸우면서 가나안화되어 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나는?
-민족의 지도자, 가나안 정복의 선봉자, 신실한 하나님의 종 여호수아가 죽었다. 국가적 위기 상황이 분명하다. 충분히 절망적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자손은 이제 남은 가나안 정복의 역사에 어떤 지파가 나서야 할지 하나님께 여쭙는다(1절). 눈에 보이는 지도자는 사라졌지만, 영원한 지도자이신 하나님이 계심을 믿기에 낙망의 자리가 아닌 사명의 자리를 꿋꿋이 지켜 낼 수 있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유다 지파를 향해 가나안 족속과 싸우러 올라가라고 하신다. 그런데 유다는 레아에게서 난 동복형제이자 인접한 지파인 시므온에게 같이 가자고 제안한다(2~3절). 명분 있는 일에 “협력”하는 것이 그 자체로 그릇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유다가 올라가라’고 하신 하나님의 뜻과는 어긋난다. 지금은 사소한 것에 그치지만, 사사기 끝에 이르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21:25)” 행하는 데까지 이를 것이다. 주님은 더 나은 명분보다 온전한 순종을 원하시지 않을까? 순종보다 더 명분 있는 일은 없다.

-유다가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이기고 아도니 베섹을 붙잡아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자른다. 한때 일흔 명의 왕들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자르고 상 아래에서 먹게 하여 수치를 주던 아도니 베섹은 똑같은 수모를 당한 후 예루살렘에서 죽는다. 그는 죽으면서 하나님이 자신의 악행을 갚으셨다고 말한다(4~7절). 그는 생명의 땅, 약속의 땅에서라도 하나님을 역사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삶에는 죽음만 남는다는 것을 보여 주고 떠난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그분의 말씀을 내 삶의 중심에 두지 않을 때, 내 모든 삶의 조건은 ‘혼돈’이 되고 말 것이다.

-유다 지파는 승승장구한다.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에 남쪽으로 내려가 산지와 남방과 평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과 싸우고, 헤브론의 가나안 족속도 정복한다(8~10절). 그래서 그 땅이 유다의 기업(소유)이 된 것이다. 절대적인 순종만이 가나안 정복과 정착의 유일한 조건이었다. 먼저 묻고, 명령하신 대로 순종하는 곳에 승리가 있고 생명이 있고 안식이 있다.


-본문을 묵상하며 유다와 시므온의 연합을 보게 된다. 힘이 강한 지파가 가장 열악한 지파와 연합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어쩌면 유다 지파의 땅에 인접한 시므온 지파에게도 강력한 위협이 되는 예루살렘과 헤브론 지역의 대적을 함께 제거하고 그 땅을 차지하는 것은, 훗날의 안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시므온 단독으로 그 일을 할 수는 없었지만, 유다는 시므온에게 이 전쟁에 함께 참여할 것을 요청하면서 자신들도 시므온의 전쟁에 함께 참여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얼마나 힘 있는 자의 배려인가? “우리와 함께 우리 몫으로 정해진 땅으로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을 치자. 그러면 우리도 너희 몫으로 정해진 땅으로 함께 싸우러 올라가겠다(새번역_3절).”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의 연합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면, 공동체와 공동체가 연합할 때 먼저 힘 있는 공동체가 연약한 공동체를 배려하는 법을 유다 지파에게서 배운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섬기는 것”, 그것이 연합이다. 더온누리공동체가 지역의 교회들을 섬길 때 이런 정신을 기억하고 감당하면 좋겠다. 우리 공동체의 믿음의 행보도 일상에서 주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되 함께 공동체의 연약함을 감당하며 순종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순종하되 함께 지체로 불러 주신 성도님들과 “함께” 순종해야겠다. 우리의 영원한 목자 되신 주님의 인도하심에 기꺼이 반응하며 순종해야겠다.

-부정적으로 보면 유다의 온전하지 못한 순종의 모습도 간과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유다 지파를 향해 올라가라고 명하셨으나. 시므온 지파와 함께 올라간 것은 그들의 힘을 키우려는 인간적인 마음이 없었다고 단언할 수 없다. 동복 형제인 시므온에 대한 애착과 배려로 실행했을 것이지만, 온전하지 못한 순종이라는 틈이 사사시대의 단면을 보여준다. 또한 아도니 베섹의 엄지 손가락을 자른 것과 그를 예루살렘에서 자연사하도록 둔 것도 하나님의 전쟁 방식이 아니었다. 아도니 베섹이 ’70명의 왕들에게 저지른 일을 그대로 당한다’고 절규한 것은 유다 지파의 전쟁 방식이 가나안화 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가나안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전쟁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이런 작은 틈이 가나안화를 촉발시켰다.


-지금 한국 교회는 리더십의 교체가 활발하다. 오늘 말씀이 이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하신다. 교회 공동체는 인간 지도자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고 진정한 지도자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면 된다는 것이다. 나 역시 몇 해 전 이 과정을 경험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이 나의 목회 여정에 함께하심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니 앞으로의 목회 여정도 걱정 없다. 내가 믿고 의지하는 주님께서 나의 영원한 기업, 나의 영원한 목자 되어 주시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주님, 어떻게 할까요?”라고 더욱 잘 물으면 된다. 묻고 순종하면 된다.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의 연합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면, 우리 공동체의 믿음의 행보도 일상에서 주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되 함께 공동체의 연약함을 감당하며 순종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순종하되 함께 지체로 불러 주신 성도님들과 “함께” 순종해야겠다. 우리의 영원한 목자 되신 주님의 인도하심에 기꺼이 반응하며 순종해야겠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여호수아가 죽는 것으로 사사기의 서사가 시작된다. 신뢰하고 의지하던 지도자의 부재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인간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울 수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영원한 참 지도자이신 하나님이 계신다. 이스라엘은 남은 가나안 땅, 가나안 족속과의 싸움에 누가 먼저 나서야 하는지를 하나님께 여쭙는다. 인간 지도자의 자리는 비었으나, 진정한 참 지도자 되신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며, 낙망의 자리가 될 수 있었던 상황에서 소망의 자리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인간적인 지도자의 부재에 흔들리지 않고 진정한 지도자이신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할 때, 더 깊고 더 넓은 신앙의 지경이 펼쳐진다.

-하나님은 유다가 먼저 올라가라고 명령하신다. 그런데 유다는 자기 기업 안에 있던 시므온 지파에게 동참을 요구한다. 그리고 싸워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이긴다. 하지만 진멸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적장 아도니 베섹을 사로잡아 예루살렘까지 끌고 와서 거기서 자연사하도록 둔다. 유다 지파와 이스라엘 백성은 작은 타협과 불순종이 전면적인 타락과 국가적 재난의 불씨가 되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유다에게 승리를 주신다. 일흔 명의 왕들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자르고 상 아래에서 먹을 것을 줍게 한 잔혹한 아도니 베섹을 이기게 하신다. 북으로는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남으로는 산지와 남방과 평지, 헤브론까지 장악하게 하신다. 걸출한 여호수아라는 인간 지도자의 죽음에도 역시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선명하게 각인시키면서 사사기가 시작된 것이다.

+ 기도제목

*주님, 여호수아가 없는 가나안 전쟁이지만, 주님은 여전히 함께하심을 보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서로 힘을 합하여 더온누리공동체를 잘 섬기겠습니다. 공동체가 차지해야 할 영적 지경을 함께 순종하며 차지해 나가겠습니다.
*주님, 하지만 작은 틈, 온전치 못한 순종의 가능성을 늘 염두하겠습니다. 말씀대로, 지키기 위해 영적 긴장을 늦추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