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하나님의 뜻(바벨론)에 항복하라 [렘 27:1-11]
 – 2024년 07월 03일
– 2024년 07월 03일 –
예레미야가 성전에서 말씀을 선포했을 때 제사장과 예언자들은 예레미야를 죽이려 했다. 그 후 다시 바벨론에 대하여 예루살렘과 비슷한 여호와의 말씀을 전했다. 바벨론에게 굴복하지 않은 자에게는 여호와의 심판이 있으리라 선포하지만(7~8절), 거짓 예언자는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않을 것이라 선포한다(9절). 이 예언은 예루살렘과 주변 나라 사신들에게 ‘멍에’를 주어 각 나라 자기 왕에게 전하게 하는 행동(표적) 예언으로 선포하게 하다. 이 멍에는 바벨론을 뜻한다. 바벨론의 멍에는 온 땅을 만드신 여호와의 결정으로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유다뿐만 아니라 주변 모든 나라는 바벨론을 섬겨야 할 것을 말씀하신다.
    
1절은 여호야김이 통치하기 시작할 때(주전 608년) 예레미야가 선포한 말씀이라고 밝히는데, 본문의 3절과 27:12절에 등장하는 “시드기야”와 배치가 된다. 주변 나라 사신들이 시드기야를 보러 왔고(3절), 시드기야에게 경고의 말씀을 전했다(12절)는 부분과 상반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1절의 여호야김은 시드기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을 오기가 아닌 의도적인 기술이라고 한다면, 25장에 기록된 바벨론의 칠십 년 지배 예언의 구체적인 전개 과정으로 일게 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27장의 내용은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 통치 초반에 있었던 사건을 보고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26장과 27장의 내용은 약 10년 이상의 시간 차가 존재한다.
    
    
    
1. 줄과 멍에를 만들어 네 목에 걸고(2~3절)
예레미야는 줄들과 멍에들을 만들어 목에 메고 예루살렘에 와 있는 사신들의 손에 들려 그것들을 그들의 왕에 보내야 한다. 본문의 내용상 끈과 나무로 여섯 개의 멍에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다섯 개는 사신들을 통해 에돔, 모압, 암몬, 두로와 시돈의 왕들에게 보내지고, 나머지 한 개는 유다 왕 시드기야에게 보내진다(12절). ‘멍에’는 수레나 쟁기를 끌기 위해 소나 말의 목에 얹는 구부러진 나무이다. 문학적으로는 “속박과 억압”의 비유로 사용된다. 예레미야 30:8에서도 같은 줄과 멍에의 표상을 사용하여 심판 이후에 있을 구원을 선포한다.
    
이들 다섯 나라 사신이 왜 예루살렘에 와 있었는지에 대해 별도로 언급하지 않지만, 1절의 여호야김을 시드기야로 읽는다면 사신들을 왕위 즉위식에 참석한 사절단이었을 가능성이 있고, 시드기야의 통치 초반부라면 어떤 정치적 협의를 위해 예루살렘에 왔을 가능성도 있다. 바벨론이 급속히 팽창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여섯 나라의 외교도 숨이 가쁘게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역사적인 배경으로 보면 바벨론에 대항할 연합 전선 구축하기 위한 사절들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유다 말기 시드기야의 주도로 에돔과 모압과 암몬과 두로와 시돈이 예루살렘에서 회합을 가질 때 여호와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바벨론의 통치를 수용하는 것이 유일한 살길임을 줄과 멍에의 표적 행위를 통해 선포하게 하셨다.
    
    
    
2. 줄과 멍에 (표적)행위에 대한 해석(4~11절)
4절은 표적 행위의 도구인 줄과 멍에뿐 아니라 이에 대한 해석도 각 나라 왕에게 전해져야 함을 밝힌다. 해석의 주체는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분명하게 밝히시며 자신을 창조와 역사의 주로 소개하신다. 큰 능력과 펼친 팔로 “땅과 지상에 있는 사람과 짐승들”을 만드신 분(5절)이심을 분명히 들려주신다. 창조주이시기에 세상과 만물은 모두 그분의 지배 아래 놓인다. 민족들의 신들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저들의 운명도 결정하시는 것이다.
    
창조주로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든 땅을 그분 보시기에 올바른 사람, 곧 그의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주기로 하신다. “내가 보기에 옳은 사람(5절)”은 기능적인 의미를 담은 표현으로, “내 종(6절)”과 의미상 같다. 이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이 의로운 왕이라기보다 그에게 하나님께서 작정한 일을 맡기셨다는 의미이다. 당시 세계관에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한다는 의미에서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옳은 사람이고, 그의 종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셔서 모든 나라를, 심지어 들짐승들까지 그에게 맡겨 그를 섬기게 하셨다(6절).
    
물론 그가 세상 만물을 통치하는 기간은 유한하고 제한적이다. “그와 그의 아들과 손자”의 지배가 끝나면, 그의 나라가 종말을 맞을 때가 와서 많은 민족과 큰 왕들이 그를 종으로 삼게 된다(7절). 느부갓네살의 통치는 그의 아들과 손자 시대로 끝나고 그 후에는 바벨론이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의미다. 세 시대의 지배는 역사적이라기보다는 문학적 표현에 가깝다. 시간상으로 25:11~12과 29:10에서 선포한 칠십 년의 지배에 대략 일치한다.
    
여호와께서 세 세대 동안 세상 통치권을 바벨론 왕에게 주기로 하셨기에 바벨론의 지배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곧 여호와께 반역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않고 그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지 않으면, 여호와께서 바벨론 왕의 손으로 그들을 멸망하기까지 벌하실 것이다(8절). “그들이 멸망하기까지”를 직역하면, “내가 그들을 그의 손으로 멸망하기까지”로, 여호와께서 바벨론을 이용하여 자신의 결정에 거스르는 민족들을 멸망시키신다는 의미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 바벨론의 침략 전쟁은 여호와께 반역한 자들에 대한 징벌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바벨론 왕에게 항복하고 그를 섬기는 것은 곧 역사를 경영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되고 민족들이 유배당하지 않고 자기 땅에 남아 밭을 경작하고 살 수 있는 유일한 길(11절)이 되는 것이다.
    
9~10절은 이방 민족들의 거짓 예언을 다룬다. 유다의 경우와 다르지 않은데, 각 이방 민족 가운데도 선지자나 복술가나 꿈꾸는 자나 술사나 요술자가 등장하여 구원 예언을 선포했다. 하지만 이미 하나님께서 세 세대에 걸친 바벨론의 지배를 결정하셨기에 그들의 거짓 예언을 따른다면 자기 땅에서 쫓겨날 뿐이다. 10절의 후반부인 “…. 또 내가 너희를 몰아내게 하며 너희를 멸망하게 하느니라”를 직역하면 “내가 너희를 몰아내리니 너희가 멸망하리라”이다. 유배의 끝이 멸망임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여호와의 결정에 맞서 바벨론의 멍에를 받아들이지 않는 민족은 누구도 멸망의 유배를 피할 수 없다. 파멸적인 재앙을 피하고 싶으면 여호와께서 정하신 기간이 차기까지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나는?
-모든 민족의 운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본문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내신다. 하나님은 유다뿐 아니라 열국의 운명도 주관하신다. 에돔, 모압, 암몬, 두로, 시돈의 사신들이 바벨론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날 길을 모색하기 위해 시드기야를 만나러 예루살렘으로 모였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그들에게 바벨론에게 항복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줄과 멍에를 만들어 목에 걸고, 사신들에게도 주어 그들의 왕에게 보내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을 각 나라들이 연합한다고 막을 수 없다. 인류가 살길은 그저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인정하고 그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길밖에 없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존재하게 하시고 자기 뜻대로 땅을 나눠주신 창조주의 권위로 세상 역사에 관여하신다. 바벨론도 하나님이 지금 잠깐 필요하여 부리는 종일 뿐이다. 그 나라를 흥하게 하실 분도, 망하게 사리 분도 여호와시다. 때가 되면 바벨론도 멸망하고 느부갓네살도 노예로 전락하겠지만, 지금은 바벨론을 사용하여 주의 역사를 이루실 때가 된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역사가 정당화될 수 있거나, 아무 권력에든 복종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악하든 선하든 존재하는 모든 권력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 그들도 결국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주의 궁극적인 뜻을 이루는 종으로 사용될 것이니, 원치 않는 시련이나 부당한 멍에 앞에서 하나님과 나 자신을 해하는 분노나 체념을 멀리해야 한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하신다. 항복하지 않으면 친히 하나님께서 나서서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심판하시겠지만, 바벨론의 멍에를 수용하면 무난한 일상이 이어질 것이다. 바벨론을 섬기지 말라는 말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들리겠지만, 그것은 거짓 예언이며 멸망에 이르게 할 말이니 듣지 말아야 했다. 나라와 민족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을 저항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입술을 꼭 깨물고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길만이 살 길이다.
    
    
*왕과 왕의 사신들에게 예레미야를 보내 경고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왕들에게 줄 줄과 멍에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하고 강하게 전달하신다. 이를 통해 생각하게 된다. 나는 하나님의 경고를 잘 알아듣고 있을까? 잘 알아채고 있을까? 성령께서 이런 민감함을 늘 유지해 주시면 좋겠다.
    
*하나님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종으로 사용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그의 뜻을 펼치시기 위해 주변 국가나 특정인을 사용하신다. 그를 통해 유다와 주변 국가들이 느부갓네살을 섬기도록 명령하셨다. 순종은 내가 고집하는 것이 강할수록 어렵다.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여 인정하면 의외로 순종은 단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한편 내가 원치 않는 상황, 관계들로 인해 삶의 어려움이 지속된다면, 이런 상황에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바벨론 포로 생활이 70년으로 제한된 것처럼 내가 힘들어하는 멍에도 기한이 있다는 것이다.
    
*멍에를 메지 아니하면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진멸하시겠다(8절)고 선언하셨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면 곧 멸망이라는 의미다. 내가 살아오면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므로 얻은 아픔들이 다시 반복되면 안 된다. 내가 메기 싫은 멍에를 피하려다가 더 큰 멍에가 온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 멍에는 피할수록 아픔이 더 커진다.
    
*거짓 선지자의 예언을 조심해야 한다(9~10절). 하나님의 뜻은 항복인데 승리를 외치는 충동의 소리를 외친다. 이 충동의 외침을 거부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설교나 칭찬만 듣는 것은 나에게 독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결국 거짓 선지자는 나를 망하게 할 뿐이다.
    
    
    
*주님, 온 세상의 창조주가 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항복하여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주님, 내 마음의 뜻과 달라도 주님의 뜻을 더욱 굳건하게 붙잡겠습니다.
*주님, 하나님의 뜻을 헷갈리게 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외침에 귀를 열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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